정치/사는 이야기2018.03.31 06:30


여성들의 모습이 점점 똑같아지고 있습니다. 화장이며 옷이며 생활양식이나 가치관, 심지어 얼굴모습까지 말입니다. 특히 요즈음 길에서 중·고등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화장이나 롱코트를 입고 얼굴에 화장까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개성의 시대에 참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성시대라면서 개성이 실종되고 옷이며 사고방식, 가치관까지 획일화시키는 보이지 않는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사진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창에서 캡쳐>

획일적인 문화란 문화변동에서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살일까요? 이탈리아 시인은 단테 알리기에리는 유행이라는 것은 나뭇가지의 잎과 같다. 한 잎이 지면 그 뒤에 또 다른 잎이 난다.”고 했습니다.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유행이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추한 것이어서 우리는 6개월에 한번 씩 바꿔 줘야 한다.”고 했으며, 일본 센고쿠 시대의 다이묘 호조 우지츠나는 유행을 좋아하는 자들 중 경박한 자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유행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의 의식까지 획일화 시킬까? 사전을 찾아보니 유행이란 특정한 행동 양식이나 사상 따위가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의 추종을 받아서 널리 퍼짐. 또는 그런 사회적 동조 현상이나 경향.’이라고 풀이해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일란성 쌍생아도 자세히 보면 다 다르게 생겼습니다. 식습관에서부터 색깔, 취미, 행동양식이나 사고방식 또는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릅니다. 그런데 누가 왜 이런 개성적인 존재인 인간이 갈수록 획일화되는 것일까요?

대한민국 현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980년대에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냈던 위컴이 한국인들이 군중심리에 이끌려 우르르 무언가에 쏠리는 현상을 지목해 한국에는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다는 모욕적인 발언을 했던 일이 있습니다. 강남스타일이 유행이면 온통 그쪽으로 쏠리고, 특정 브랜드의 옷이 유행하면 너, 나 할 것 없이 그 옷을 입고 다닙니다. 노스페이스 점퍼가 혹은 롱패딩이 출시되며 온통 나라 안에는 롱패딩 점퍼로 물결칩니다.

따지고 보면 유행을 창조하는 조종자는 보이지 않는 손, 자본입니다. 자본의 생존방식은 스타를 키우고 그 스타를 표준으로 선망의 대상으로 만든 후 광고를 통해 그를 샌드위치맨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유행은 여성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남자들의 넥타이나 바지통이 널어졌다가 좁아졌다, 혹은 꽉끼는 양복을 입다 헐렁한 양복으로 유행을 바구기도 합니다. 옷은 그렇다 치고 사람의 외모까지 표준을 만들고 성형을 통해 똑같이 만드는 모습을 보면 자본이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tylor는 문화를 , 도덕, 신념, 예술, 기타 여러 행동 양식을 총괄하는 것이라고 어렵게 정의 했지만 문화란 사람들이 자연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 낸 모든 것, 즉 사상, 의상, 언어, 종교, 의례, 법이나 도덕 등의 규범, 가치관과 같은 것들을 포괄하는 사회 전반의 생활 양식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정의 하면 문화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필요에 의해 만들어 진 자연이 아닌 모든 것이라고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가 자본에 예속 되면 어떻게 될까요? 본에 예속당한 문화는 개성을 가진 존재인 인간을 게리맨드링으로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왜 사느냐고 물어보면 다양한 대답이 나옵니다. 가치관에 따라 다른 인생관이지만 공통점을 찾는다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닐까요? 내가 일을 하는 것도 음식을 먹고 잠을 자고 공부를 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한마디로 줄인다면 행복한 삶을 위해서일 것입니다. 워낙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어서 그럴까요? 사람들 중에는 나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닌 남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사는...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 남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돈의 노예가 되어 이성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자본이 돈벌이를 위해 만든 유행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똑같아 지는 게 아니라 개성이 있는 삶입니다. 남의 흉내를 내고 남이 만들어 준 지식, 남의 눈을 위해서 희생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찾아 낸 것이 아니라 남의 눈으로 본 세상을 자기 것으로 고집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보다 성숙한 모습을 추구하는 미완의 존재입니다. 개 발에 주석편자처럼 유행을 쫓는 기형적인 내가 아니라 부족하지만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하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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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직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반응 없는 수업시간이다. 문제풀이를 하는 교실에 반응을 기대한다는 것부터가 잘못이지만 학생들의 표정이 없다. 소수점 이하 몇 점으로 운명이 바뀌는 수능을 앞둔 교실에서 무슨 반응같은 감정표현을 기대하겠는가? 삭막한 경쟁심리가 이겨야 산다는 절박감으로 가득찬 교실에 인간미 넘치는 정서교육, 감정교육을 찾아 볼 수 없기에 하는 말이다.


입시교육의 교육덕분(?)일까? 이런 분위기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몇마디 나누다보면 정나미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덩치는 다 컸지만 자기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고 감정이 메마른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기계적인 사무처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그런 모습, 인간적인 정서가 메마른 모습이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무감각하고 무표정할 수 있을까? 천진난만해야할 청소년들의 모습에서 감정표현이 사라지다니... 누가 청소년들에게 저런 모습으로 자라게 하고 있을까?

언젠가 저 학생도 직장을 가지고 또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 갈텐데... 저런 정서로 어떻게 가족에게 자기의 감정을 전하며 행복을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직장생활에서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사람과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갈까? 표정이 없는 사람들.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슬프면 슬프다는 기쁘면 기쁘다는 쾌, 불쾌도 표현하고 좋으면 좋다는, 사랑하면 사랑한다는 표현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무표정한 사람이 가족의, 친구의 직장동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학교가 인성교육을 한다고 난리다. 학교폭력이 사회문제가 되자 교원단체인 교총이 국회와 함께 만든 법이 인성교육진흥법이다. 교육기본법(9조 제3)학교교육은 학생의 창의력 계발 및 인성 함양을 포함한 전인적 교육을 중시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하고 있지만 공교육을 정상화 할 생각은 않고 아랫돌 때 윗돌괘기식 대안이다. 교육부는 인성의 덕목이 '(), (),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이 사람됨됨이의 핵심가치라며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 공포한지 일년이 지났다. 인성교육진흥법 세행 후 학생들의 인성이 좋아지고 교권이 신장되고 있는가?

인성교육보다 정서교육이 더 문제다

앞에서 지적한 무표정한 학생은 인성이 아니라 정서교육 부재가 만든 결과이다. 가정에서 정상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또래집단으로부터 배워야할 인간관계를 배우지 못하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렇게 정서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하면 감정조절을 못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정서를 행복, 슬픔, 분노, 공포, 혐오, 놀람 등 6가지로 분류한다. 부모나 친구로부터 사랑받고 자라지 못한 아이들. 놀이를 빼앗기고 인간관계를 배우지 못하고 어린이 집에서 혹은 유치원에서 혹은 학교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교육만 받고 자란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건강한 감정이 자라날 수 있겠는가?

사람이란 열이면 열 하나같은 사람은 없다. 외모도 그렇지만 개성이며 소질, 특기가 모두 다르다. 개성을 살리고 인간관계를 잘할 수 있도록 다양성과 창의성을 살려야 할 교육이 유아교육이나 학교교육을 통해 개성이 아니라 점수로 사람을 평가하는 교육을 받아 획일적인 인간을 길러내고 있다.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생각을 하도록 길러내는 교육은 교육일까, 사육일까? 경쟁만이 살길이라며 교육과정은 무시하고 인성교육은커녕 기본적인 욕구까지 억제당하며 수학문제까지 외워야 살아남는 게 학교교육이다.


교육을 통해 길러내겠다는 인간상은 어떤 인간일까? 우리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지덕체를 겸비한 조화로운 인간양성'을 교육이 길러내겠다는 인간상이다.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교육법 제 2)고 명시하고 있지만 교육현장에서는 이런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

정서교육조차 할 수 없도록 무너진 가정 그리고 일류학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피나는 경쟁만이 살아남는 최고의 가치가 되고만 학교에 교육을 통해 길러내겠다는 인간상을 길러낼 수 있을까? 합리적인 사고와 민주의식을 가진 사람은 언제쯤 길러낼 수 있을까? 공동체의식과 관용정신, 상호존중과 상대방을 배려하고 양보하고 타협할 줄 아는 사람은 언제쯤 길러낼 수 있을까? 교육을 상품이라며 시장에 던져 놓고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사육이다. 교육하는 학교 개성과 특기와 창의력을 길러내 꿈을 키우는 학교는 언제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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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1.07.28 05:00



한국 여성은 유행을 좋아한다.’
‘한국 여성의 얼굴은 전부 똑같아서 누가 누군지 구별이 안 된다.’

외국인이 한국 여성을 일컬어 칭찬인지 비아냥거림인지 어디서 읽은 글인데 기억이 잘 안 난다. 앞의 두 가지 예는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여성들은 개성이 없이 유행에 휘둘린다는 뜻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이야 어느 나라 여성인들 다를 리 없겠지만 한국 여성들이 주체성이나 개성이 없이 똑 같은 옷에 똑같은 화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이다. 개성을 잃고 유행을 쫓는 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왜 누구나 아름다워지고 싶은데 우리나라 여성들에게만 손가락질일까?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똑같을 수 없다. 아름다움이란 특정한 사람의 가치기준에 따라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나라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환경의 산물이다. 미의 기준은 나라와 민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아름답다는 것은 화려하게 꾸민 값비싼 상업주의문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급화장품으로 단장하고 명품 옷으로 가꾼 외모에서 느끼는 전유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끼고 길가에 핀 이름 모르는 잡초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똑같은 것. 획일적인 것은 아름답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질서의 미’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체전에서 벌이는 학생들의 메스게임이 그렇고 군인들의 제식훈련에서도 그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세상에 피는 꽃의 모양이나 색깔, 크기까지 모두 똑같다면 그런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앞집 처녀나 옆집 처녀가 키도 똑같고 얼굴 생김새도 모두 똑같이 잘 생겼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어머니 얼굴과 이웃집 아주머니 얼굴, 자신의 여자 친구의 얼굴과 친구의 여자 친구 얼굴이 한결같이 똑같이 생겼다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집들이 똑같고 똑같은 옷을 입고 목소리도 웃는 모습도 생각도 모두 똑 같으면 살맛이 날까?

군사문화가 좋아하던 획일적인 미(美)와 상업주의문화가 지배하는 사회가 만든 문화는 과연 아름답기만 할까?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여성의 미의 기준이 똑같은 키에 똑같은 가슴둘레와 피부며 몸무게까지 일정한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에 합치될 때 미인이 되는 획일주의가 그렇다. 기계의 부속품은 기계를 구성하고 있는 부품이 고장 나면 다른 것으로 교체 가능할 때 가치가 크다. 이른바 수단가치가 효용성이 크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고귀하고 아름답다는 가치가 인간의 존엄성이다.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나가는 가방을 메고 수백만원짜리 옷을 입는다고 못 생긴 사람이 미인이 될까? 명품을 구입하기 위해 몸을 팔아 명품을 사 입으면 그런 사람을 일컬어 미인이라 할까?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상업주의 문화가 인간의 영혼을 좀먹고 있다. 자본이추구하는 세계는 물질만능주의, 감각주의, 괘락주의 문화를 이끌어 휴행이라는 이름의 돈벌이를 하고 싶은 것이다.

 


눈이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다. 피부가 검은 사람도 있고 흰 사람도 있다. 얼굴이 큰 사람, 작은 사람도 있고, 입이 상대적으로 크기도 하고 코가 낮은 사람도 있다. 사람은 어쩌면 개성이 있어 그 자체가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사람을 기계처럼 특정 기준으로 표준을 만들어 아름다움의 여부를 판단하는 상업주의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가꾸고 다듬는 일에서 출발해야하지 않을까? 돈벌이가 목적인 장사꾼이 만든 유행이라는 문화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3.03 21:45


"나의 지능지수가 낮기 때문에 노력해도 공부를 잘하는 친구를 따라 갈 수 없다"고 체념하거나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
"나는 지능지수가 100도 안돼"
 "나는 지능지수가 120이야!"
 학창시절 알게 된 지능지수, 자신의 지능지수가 노력과 상관없이 자신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지능지수가 낮기 때문에 불행하거나 가난하게 살아도 당연하다고 체념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대체 지능지수가 무엇이기에 인간의 삶의 방향을 좌우하는 것일까? 실제로 지능지수가 그렇게 위력을 가진 절대진리일까? 

지능지수가 교육용 참고자료가 아니라  서민들에게 운명론적 세계관을 심어주어 기재로서, 혹은 기득권의 체제유지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생각해 본 일은 없는가?

지능지수가 우열을 가리는 수치라는 걸 믿고 있는 학부모가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킨 후 지능검사 결과가 나쁘다는 걸 알아 버린 어머니의 심정은 어떨까?

'지능이 낮은 아이는 창조적인 직업이나 지도자의 자질이 없다'고 알고 있다면 그날부터 그 어머니는 선입견으로 '우리아이는 머리가 나쁘니까 할 수 없다'는 식의 체념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과연 지능지수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절대지수인가?

<지능지수란 무엇인가?>

IQ라는 용어는 독일의 Intelligenz-Quotient에서 변화한 것으로 독일의 정신학자 윌리엄 스턴(William Stern)이 1912년에 현대의 어린이들의 인지 검사의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제안한 것이며, 이 용어는 생활 속에서 일상적으로 쓰인다.(위키백과)

프랑스의 A. Benet와 T. Simon의 고안으로 만들어진 지능지수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 또한 학습능력'이라 정의하고 있다.

지능지수란 IQ(intelligence quotient)라고도 표현하는 이 개념은 ‘개인의 지능을 판단, 이해, 추리 등등과 같은 일반적인 정신능력에 의하여 판정하려고 나타낸 수치’다.

학습에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언어능력, 수리력, 기억능력, 지각능력, 추리능력 등과 같은 능력을 수치로 나타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한계를 지닌 연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학업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측정하는 언어능력이나 수리력..등은 연구자의 검사항목으로 개인의 모든 능력을 우열을 가린다거나 100% 신뢰한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엄마의 애정과 아동의 언어발달에 관한 상관관계를 연구한다고 할 때 엄마의 애정을 포옹한 횟수로 나타내는 수치가 애정을 100%표현한다고 믿어도 좋을까?

IQ가 110은 머리가 좋고 90은 저능아라든가 하는 식의 해석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연구를 위해 추상적 개념을 측정한 값(개념의 조작적정의)을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수치로 해석한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말장난이다.

지능발달 이론에 따르면 일란성 쌍생아를 문화적 여건이 상반된 환경에서 양육할 경우 최고 지능지수의 차가 20까지 차이가 나타난다고 한다.

이것은 환경의 중요성을 나타내 주는 수치이기도 하지만 그 만큼 지능지수의 절대적인 신빙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또 18-19세가 최고의 수치로 나타나며 50세의 경우는 15세와 비슷해진다고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60-70세 이상의 장관과 대통령은 지능지수가 10여세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린아이에게 국가통치를 위임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이론은 직업과 지능은 필연적인 상관관계에 있다고 보고 창조적 전문직의 자녀의 평균 지능지수는 116.2정도이고, 전문직 107.5, 단순노동자의 자녀는 97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앞에서 예를 든 지능지수가 낮은 학부모의 좌절이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고 넘어가자.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과 가능성과 희망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누가 왜 이런 지능지수표를 만들었을까?>

특히나 지능지수를 신봉하는 교사의 경우 지능지수가 낮은 아이들에게 '가능성을 포기'한다면 이는 교육자로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이러한 위험한 발상에서 비롯된 논리를 '지배이데올로기'라고 하자. 그것은 소수의 몇사람의 출세나 기득권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주고 현실 유지의 논리로 다수에게 억압적인 운명론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능지수는 해석하기 따라 다르다. 지능지수란 '초등학교에서부터 경쟁교육으로 서열을 매기고 당근과 채찍으로(보상과 좌절) 운명에 순응하는 인생관을 갖도록 길들이고 있는 것' 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자.

성적이란 어차피 1등에서 꼴찌까지 나올 수 밖에 없다. 꼴찌가 없는 일등짜리가 있을 수 없다면 일등은 꼴찌를 업신여길 일이 아니다.

사람은 얼굴모양이나 성격이 열이면 열 모두가 다르듯, 개성이나 소질, 취미, 특기도 모두가 다르다.

지능지수에서 측정하려는 언어능력, 기억력, 수리력...... 그런 획일적인 틀에서 퍼센트를 나타낸 불완전한 수치가 소중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생각해보자. 특정 분야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지능지수가 특정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세상에 있는 색깔을 좋아하는 순서대로 매기는 일이 가능 할까?
빨간색 일등, 노랑색 이등, 파랑색 삼등......
좋아하는 사람도 순서대로 매기고 좋아하는 친구도 서열을 매길 수 있을까?

설사 그 서열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떤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이지 객관적인 진리는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떠 학급에서 꼴찌를 하는 학생은 음식을 먹는 일에서 돈버는 일, 심부름하는 일...... 모두가 꼴찌인가?

일등짜리 학생보다 우수한 면이 많이 있을 수 있다. 노래를 잘 부르는 학생, 시를 잘 쓰는 학생, 달리기를 잘 하는 학생, 청소를 잘 하는 학생......

개성과 다양성을 무시한 사회는 사람들이 살 수 없다.

모두가 똑같은 가치관, 똑같은 것을 선호하는 가치관을 갖는다면 결혼 상대자도 등수를 매겨야 할것 같다.

어떤 여자나 어떤 남자가 최고의 신랑감, 신부감이라고 똑같이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눈에 못난 사람도, 또 어떤 사람에게는 예쁘게 보여 짝을 맞추어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중요한 문제는 살아 가는데 열등의식을 갖는다든지 자포자기를 한다든지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일류대학을 나오고, 일류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최고 일등짜리 인간이고......

지능지수가 무용지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교육학자들에 의해 중요한 교육자료로 활용될 수 있지만 그것이 이데올로기로 악용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아무리 인간이 만든 소중한 문명의 이기(利己)일지라도 사용자의 이용에 따라 흉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어떤 문명의 이기도 좋은 제도로 인간의 삶에 굴레가 되거나 짐이 된다면 그것은 가짜요 폐기해야 될 대상이다.

인간을 편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은 참이요, 진리다. 그러나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에게 고통을 주는 어떤 것도 그것은 악(惡)이다. 더구나 어떤 학자의 연구의 결과가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불리하게 적용된다면 그런 논리는 폐기되어 마땅하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0.26 09:27


지금도 그렇지만 수년 전 청소년들 중에는 머리카락을 노랗게 혹은 빨갛게 염색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텔레비젼에서도 가수나 T.V 탈렌트들이 머리를 노랑색 또는 빨강색으로 혹은 얼룩 덜룩하게 염색을 하고 출연하는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행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못마땅해 했고 그들은 이런 사람들을 구세대로 낙인 찍고 상종못한 사람으로 소외시키도 했다.

유행이란 무엇인가?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유행이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만든 순수한 변화가 아니라 '특정한 행동양식이나 사상 따위가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의 추종을 받아서 널리 퍼지는 일종의 사회적 동조의식'이라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유행은 순수한 미를 추구하는 행동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한 때 유행했던 꽁지머리>

고대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은 미(美)를 '일종의 이데아'라고 이해하였고 헤겔은 '이데아의 감성적 현상'이라고 했다. 디드로는 미(美)를 '관계'라고 정의하였다. 중국의 묵자는 '공리(功利), 선(善)과 함께 연결된것'이라고 하여 '만민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이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공자의 경우는 "군자는 다른 사람이 덕을 행하도록 도와 주고 악을 행하도록 하지 않게 한다."고 하여 미(美)와 덕(德)과 선(善)을 동의어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적인 의미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왜 젊은이들이 머리에 이상한 색깔을 칠하고 다니는 것일까?

개성? 아름다움? 도대체 현대의 x세대들이 추구하는 개성이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이들은 아름다움에 대하여 상대성이나 절대성,시대성을 소화한 표현인가?

학자들은 아름다움을 정의하여 "인류의 창조능력,지혜,재능,사상,품격,감정등과 같이 사람의 본질역량의 대상화"라고 해석 하고 그 역량의 긍정적인 측면의 대상화가 아름다운 것이고 부정적인 측면의 대상화는 아름다움이 될 수 없다고 정의 하고 있다.

오늘날 텔레비젼에서 개성으로 포장된 모방은 엄밀한 의미에서 형상성(形象性)과 효용성(效用性), 감염성(感染性)을 무시한 상업주의를 포함하고 있어 미의 본질적인 면에서 재고해 볼 문제이다.

미(美)의 어의상의 기원에서 보면 美자의 형태는 위는 羊이요, 아래는 大이니 羊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大는 비대(肥大)의 뜻이 아니라 人이라는 뜻이였다고 하니 고대의 중국인들은 양을 사육하면서 양의 젖은 그들의 주식이요, 가죽은 방한용으로, 그리고 사냥을 위해 양머리 가죽을 둘러 써고 양가죽을 몸에 걸쳤다.

이러한 모습이 羊과 人이 美자를 만들게 되었다는 설과 羊大爲美, 즉 美는 甘(달다)의 뜻으로 "양은 당시 생활 수단의 중요한 원천이였으며,음식물이기도 하였으니 살찌고 크면 클수록 사람들이 좋아 하였고 더욱 아름답다"고 여겼을 것이다.이와 같이 실용성의 측면에서 아름다움의 개념이 생겨 났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젊은 가수나 T,V탈렌트들의 의상이나 헤어 스타일은 미적인 관점에서 대중들의 미적인 공감대를 얻어 유행이 될 만큼 가치로운가? 예를 들어 남자가 머리를 묶었기 때문에 부도덕하다든지 남자가 치마를 입었기 때문에 남자답지 못하다든지 하는 관점은 선악에 대한 가치기준의 설정이 모호하다.

의복 문화를 포함한 인류의 문화란 절대가치를 부여하고 재단할 선악의 근거는 없다.그러나 건강의 차원에서 머리에 염색을 심하게 했을 경우 모발이 상하고 안질이 나빠진다든지 하는 문제는 별개의 문제다.
주체성을 상실 하고 어떤 특정 국가의 문화를 모방하여 전통 문화를 부정하는 경우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아름다움을 형식 미(形式 美)만을 고집하여 내용 미(內容 美)를 무시한 자세는 바람직스럽다고 볼 수 없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하여 선정적인 내용의 오락물을 만들어 건강한 전통문화를 오염시키는 행위는 상업성에 치우쳐 건강한 문화정서를 오도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이러한 문제는 특정 개인의 비판적인 미의식의 정서로 지나치거나 유행이란 이름으로 상업주의를 포장하고 지나칠 정도로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대중문화란 이름으로 건강한 미의식의 정서를 오염시키는 행위는 문화정책적인 차원에서 분석하고 이끌어야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

유행이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온갖 상업주의와 퇴폐풍조가 정당화되는 길을 열어 준다는 것은 건강하게 성장해야할 청소년들의 정서 발달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간과 해서는 안된다.오늘날 문화정책의 부재현상은 신비적인 종교의 맹신으로 인한 가정의 파탄과 저질적이고 향락적인 외국문화의 무분별한 수용,그로 인한 청소년의 타락과 방황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피해와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오늘날 물질문명의 발달로 온갖 향락과 저질문화의 홍수 속에서 건강한 문화의 향유를 위해 미의식을 포함한 국민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0.22 10:50



몇년 전 미국에서 수입한 청바지가 10만원대의 고가로 날개 돋친듯이 팔렸던 이리 있다. 당시 한국에서 찢어진 청바지가 유행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찢어진 수입 청바지가 미국에서 입다버린 옷이란다. 그것도 걸레로 재활용될 산업 폐기물이라니? 장사속의 어느 상인이 헐값에 사들여 신촌에서 팔아 유행시켰단다. 미국의 산업 폐기물인 청바지가 유행이란 이름으로 각색되어 전국을 활보하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양장과 화장, 악세사리의 기원은 프랑스의 전제주의에서 부터 비롯된다. 루이 14세 전후의 유럽은 군주와 제후들을 중심으로 지배계급이 귀족 세력을 형성하여 민중의 빈곤과는 아랑곳 없이 방탕, 사치, 부패, 타락, 음란 생활을 하였다.


유행이란 이들 귀족 지배 계급의 '성 애완물'이 된 '귀부인'들의 머리에서 고안 되었다. 1m 80cm (3에르레 - 1에르레는 60cm)의 가발을 쓰고 그들의 시선을 끌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치마의 길이도 12--13m로 늘여 입기도 한다. 하이 힐이 유행하게 된 것은 배가 들어가고 가슴이 나오도록 보이게 하는 성적인 자극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신게 된다. 루이 14세의 궁중에서는 화장실이 없었기 때문에 요강에 용변을 본 후 길에다 버렸다.


비가 오면 오물 때문에 뒤축으로 걸어다니는 모습에서 고안된 이 하이 힐(HIGH HEEL)은 뒤축의 높이가 무려 22--15췌르 (1췌르는 엄지 손가락의 넓이) 였다니, 이 신발을 신고 있으면 전체의 몸매와 앞가슴이 도발적인 모양으로 마치 발 끝으로 서 있는 자세가 된다. 여성이 남성의 예속에서 벗어난 사회일수록 육체를 들어 내 보이는 경쟁적 유행이나 하이 힐은 반드시 신어야 한다는 필요성은 그만큼 적어진다.


여성이 얼굴에 분을 바르거나 입술을 붉게 칠하거나 하는 것도 처음에는 아름답다고 보기 보다는 보기 흉하다고 치부되어 "저속한 여자들"만의 습속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치열해진 자본주의적 선전 공세의 교묘한 술수로 시민 계급의 여성도 처음에는 몹시 조심스럽게, 그러나 이윽고 전혀 주저하지 않고 입술을 온갖 색상으로 칠하게 되었다. 또한 당시에 일반화되었던 "메이크업"에 빼놓을 수 없는 상품으로 간주된 이 화장품이 사실은 간접적으로 금주법의 산물이었던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금지된 알콜의 대용품 "코카콜라"의 제조에는 카페인이 필요했다. 이 흥분제는 차의 잎, 커피 열매나 카카오 열매에서 채취한다. 카카오 열매에서 추출하는 경우 카카오 기름이 남는데 더 큰 이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그 응용처를 찾아야만 했다. 입술연지의 원료가 바로 이 카카오의 기름이며 그것을 가공하여 색깔과 향료를 첨가한 뒤 시장에 내놓았다.


화장의 역사는 이렇게 여성의 욕구와 상업주의의 결합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요즈음 신세대라 불리는 젊은 층의 유행 감각은 남다른 데가 있다. 저마다 다른 개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어떤 경향인지 알 수 없는 존재라 하여 X세대(뜻대로 행동, 그래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세대)라 불리는데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힘든 가치의식을 갖고 있다. 개성이란 자기만의 특성을 드러내는 행위이며 이는 독창성을 내포하고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X세대들의 개성은 전통 도덕에 대한 도전적이고 반항적인 성향을 내포하고 있다.


X세대들의 개성 속에 담겨진 그들의 유행은 상업주의나 자본의 논리가 포함되어 있음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유행은 대중매체, 특히 텔레비전의 영향을 받으며 텔레비전은 배양 효과(유사 환경을 실제와 혼동하는 경향)나 문화 규범 효과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행동이나 규범이 청소년의 머리속에 사회의 일반 규범으로 자리 잡는다.)로 나타나기 때문에 광고의 효과나 텔런트(Talent)의 선호는 유행이란 이름으로 재현된다.


프라임 시간대의 15초 스파트 광고의 1일 1회 비용이 1320만원(라디오의 경우 20초-800만원)을 초과하는 것은 텔레비전의 영향이 어떤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정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무서운 모습으로 화장한 여인이 미인상으로 비쳐지기도 하고 개성이란 이름으로 소비 지향적이고 감각적인 문화가 서민의 정서로 자리 잡기도 한다.


텔레비젼의 프로그램이 건강한 삶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중매체가 이윤 추구를 위한 상품으로 전락함으로써 편성 및 내용의 기준을 시청률에 두기 때문이다. 시청률을 제작 기준으로 생산된 프로그램은 업무 담당 직원에 의해 광고주들에게 판매되어 이윤이 창출된다. 판매고를 높이기 위해서는 원초적인 본능에 초점을 맞춘 오락적 감각 중심의 내용으로 채워진다.


X세대들의 의식을 좌우하는 대중매체가 에로티시즘, 폭력물, 넌센스물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런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청소년의 폭력성이나 비윤리성, 이기주의, 성도덕의 문란, 신비 지향성은 대중매체의 상업성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특히, 재벌이 소유주가 된 텔렐비전 프로그램은 의상의 화려함이나 광고확대의 결과, 대중들의 소비 욕구와 소유욕을 자극하여 과소비를 충동질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한 사회, 특히 독재 정권이 장기 집권을 위해 대중매체를 장악할때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진다. 드라마를 비롯한 쇼, 코메디, 오락 프로그램의 내용도 주종관계, 군신관계의 전통적인 보수 지향의 가치를 담게 되고 복종이 운명으로 미화되거나 탈의식적인 경향을 담게 된다.


건강한 청소년 문화가 정착되고 개성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 풍토의 조성을 위해서는 텔레비젼이나 라디오, 비디오를 비롯한 잡지등의 대중매체가 상업성만 앞세워 잘못된 가치의식을 오도하는 역기능이 자제되어야 한다. 어른들의 그릇된 놀이문화와 향락, 퇴폐산업의 성황, 절제되지 않은 자본의 논리와 상업주의는 제도적인 차원에서 개선되지 않을때 청소년의 방황은 끝을 찾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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