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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도박판 벌이는 승려, 종교는 구원인가, 아편인가?

by 참교육 2012.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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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의 불고 종단인 조계종 승려 8명이 호텔에서 억대 불법 도박을 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수도(修道) 하는 스님이 그것도 담배를 피워 물고 억대의 도박판을 벌이다니...?

 

‘지난 4월23일 저녁 8시부터 이튿날 아침 9시까지 전남 장성의 한 관광호텔 스위트룸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13시간 동안 포커 도박판을 벌였다. 다음날 아침에 있을 백양사 전 방장 수산 스님의 49재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한겨레신문>’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의 3법인의 진리를 터득하는 스님들이... 중생을 계도해야할 스님들이 스스로 욕망을 끊지 못하고 도박판이라니 믿어지 않는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Religion is the opium of the people.”) - 칼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왜 종교를 아편이라고 했을까? 학자들은 ‘쾌락을 주는 아편에 중독된 사람이 무기력해지듯이 종교라는 쾌락 또는 거짓 희망에 빠진 사람이 현실에서 지배 계급에 저항하지 않고 안주하게 된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지적처럼 종교는 아편일까? 아니면 죽음을 해결하는 구원일까? 종교 내부의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갈등을 겪는 문제인지의 여부는 덮어두더라도 종교의 본질적인 기능은 무엇일까?  종교가 개인에게는 고통을 치유하는 기적이나 행복을 주기도 했지만 역사적으로 민중들에게는 전쟁과 억압의 고통을 더 많이 안겨 주었다.

 

자본주의와 종교는 공생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는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 그런 종교가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예수님은 폭력이 된 권력과 맞섰다가 십자가라는 잔인한 형벌로 처형됐지만 그분의 가르침과는 다른 길을 걸어 왔다. 불교 또한 전래 초부터 권력의 필요에 의해 혹은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해 왔다.

 

부처님이 승려들이 그레인저나 체어맨을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승려들이기 때문에 컴퓨터니 SNS까지 외면하고 탁발(托鉢)만 하고 살라는 말이 아니다. 오늘날 불교를 포함한 종교는 마음이 너무 부자이거나 재산이 많다.   

 

 

 

억대 연봉을 받는 목사나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진 불교재단에게 면세 특혜를 베푸는 이유가 무엇일까? 억대연봉을 받는 목회자가 교회를 대물림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진정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종교인지 의심이 든다. 물론 불의한 권력에 맞서 고난의 길을 걷는 종교지도자가 없는 게 아니다.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혼신의 힘을 쏟는 성직자나 자신의 건강조차 돌보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걷는 성직자도 없지 않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포커 도박판을 벌인 몇몇 승려들 때문에 불교 전체를 매도할 생각은 없다. 아직도 이땅에는 수많은 성직자와 신자들이 도움이 필요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그들의 손발이 되기도 하고 그들과 아픔을 함께 하는 성직자도 많다.

 

자기희생의 살신성인을 실천하는 성직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다수의 국민들의 비난을 받는 이유가 뭘까? 난세를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종교지도자들이 심어놓은 씨앗... 그 열매가 부처나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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