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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왜 서 있는 부처도 있고 앉아 있는 부처도 있죠?

by 참교육 2008.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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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이 세상에 와서 불교나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고 가르쳤는데 사립학교법을 개악하고 세금도 내지 않겠다면서 문화재관람료는 받겠다고 생떼를 쓰는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 불같이 화를 내며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하지는 않을까? 3법인 4성제 8정도를 통해 부처가 되라고 가르치신 부처님이 서로 지분을 많이 가지려고 몽둥이질을 하고 부자가 되어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과연 성 내지 않을까?

대웅전에 모셔둔 부처님은 한결같이 금 색깔이며 얼굴은 또 왜 또 그렇게 권위에 차고 살이 쪘을까? 그런 모습을 쳐다보면 평화와 자비심을 느낄 수 있을지… 수양부족인 중생의 눈에는 부처님의 덕을 가리는 사이비 승려들의 적악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언짢다.

역사기행을 다니다 보면 다양한 불상을 만나게 된다. ‘저렇게 정성을 들여 만든 부처님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을까?’ 이런 생각과 함께 부처님의 모습도 시대별로 다양하게 바뀌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누워 있는 불상, 않아있거나 서 있는 불상, 또 깡마른 부처와 뚱뚱하게 살이 찐 부처, 천진난만하게 생긴 부처와 범접할 수 위엄과 권위에 찬 모습의 불상도 있다. 철불과 동불이 있는가 하면 금동불과 금불상도 있다. 왜 이렇게 생김새가 다양한 불상이 등장하게 된 것일까?

                          
                            <반가사유상>                    <입불>                     <좌불>
세상은 보기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탈레반이 잡아둔 한국 인질을 보고 한 편에서는 ‘일면식도 없는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을 돕고, 병든 사람들을 고치고, 사람의 생명을 살리던 착한 사람들이 사악한 테러세력이 잡고 있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순교는 그들이 원했던 게 아닌가’, ‘유서까지 써놓고 죽으러 갔으니 죽게 내버려두자’, ‘전지전능한 신이 왜 선교활동을 하러 간 교인들을 어쩌지도 못하는 무력한 신이 됐는가…?’라고.
왜 이렇게 상반된 반응이 나올까? 아프간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차이가 뭔지 또 아프간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면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불상이란 불교의 신앙대상으로 창조된 부처의 모습이다. 불상은 불격에 따라 불타. 보살. 명왕. 천부. 나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불타는 여래라고도 불리는데, 이를 풀이하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불상은 재료의 종류에 따라 석불, 마애불(磨崖佛. 커다란 암벽에 부조 또는 선각 등으로 얕게 새긴 불상), 목조불, 은불, 금동불, 철불, 소조불(塑造佛. 점토로 만든 불상), 건칠불(乾漆佛. 나무로 간단한 골격을 만들고 종이나 천 같은 것으로 불상을 만든 후 옻칠을 하고 다시 금물을 입힌 것이다) 등이 있다. 불상을 생김새로만 이해해서는 불교의 진수를 모른다. 부처님은 너무도 거룩한 분이라서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 자체가 자칫 그분의 성스러움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 아는 얘기지만 초기에는 불상이 없었다. 불상을 대신해 불사리탑이나 법륜, 보리수 연화좌, 금강좌와 같은 상징물들을 부처님의 위치에 표현해 놓고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부처님이 입멸한 지 500여년의 세월이 흐르기까지는 불상이 아니라 이러한 부처님의 상징물이나 사리를 모신 탑이 예배의 대상이었다. 

                     
                          <철불>          <법주사의 도금한 불상>        <금불상>  
부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는데 왜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면서까지 불상을 만들게 됐을까? 불멸 후 500년까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지켜왔지만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부처님의 불사리를 놓고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때 향성 바라문의 중재에 의하여 사리는 8등분되어 여덟 개의 불사리 탑 및 병탑(사리를 담았던 항아리), 회(재)탑을 건립하여 사리가 모셔진 탑이라는 형상을 통해 부처님을 대하듯 숭배하였던 것이다. 불상의 기원을 보면 가장 일찍 편찬되었다고 하는 <아함경(阿含經)>을 비롯한 여러 경전을 보면 코삼비(Kaus mb)국의 우다야나왕이 향나무로 석가의 모습을 조각하도록 했다는 것이 불상조각의 시초라 볼 수 있다.

철불 법주사의 도금한 불사 금불상 무신론인 불교가 부처가 신앙의 대상이 됐다는 것부터가 불교가 지향하는 가치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해탈자이기 때문에 그분이 가신 길,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 해탈의 길을 가자는 것이 불상을 만들고 절을 많이 하고 시주를 많이 하면 극락왕생할 것이라는 생각은 불교와는 거리가 멀다. 불교가 권력과 밀착해 승려들에게 계급을 하사하고 불전을 줘 수탈자로 만든 것은 권력의 뜻이다.

                       
                              <도금한 범어사 불상>                                       <마애사 석불>
절대왕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불교는 왕이 곧 부처(왕즉불-王卽佛)가 되게 마련이다. 불상을 만들기 시작한 때부터 불교는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정체성을 달리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해탈의 경지를 터득해야 할 불교가 부처라는 신을 만들어(형상화) 구복과 기복의 길을 걷게 된다. 이렇게 시작한 처음의 불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러한 불상의 제작과정을 보면 순수하게 민간신앙 차원에서는 목불이나 소조불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러다 국가차원에서 불교가 받아들여지고 권력과 결합하면서 철불이나 금동불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처의 표정도 처음에는 ‘깡마르고 고통에 찬 모습 -> 천진난만한 친근감이 넘치는 모습 -> 차츰 살이 찌고 근엄한 모습’으로 바뀌어 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왕이 곧 부처’가 되는 고려시대는 외모나 권위 면에서 종전의 천진난만하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어지고 위엄과 권위에 찬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

역사적으로 국가의 흥망과 함께한 불교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주류를 이룬다. 흥미 있는 사실은 동남아시아국가들처럼 외세의 지배를 받은 국가는 대부분 소승불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반면, 외침을 받지 않은 주권국가들은 대승불교가 흥했다는 사실이다. 식민지 종주국은 식민지배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개인의 해탈에 전념하는 것은 식민통치에 방해가 될 리 없기 때문에 방치한 것이고 대승불교는 개인의 해탈이 아니라 중생의 아픔을 구제해야 하기 때문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즉 식민지배의 저항에 나서게 된다. 식민지 종주국은 당연히 대승불교를 용납할 수 없었고 소승불교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교가 권력과 유착하지 않고 식민사회의 모순에 나선다면 식민지배가 순조롭지 못했을 것이라는 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1. 소승불교 소승은 열소(劣小)한 수레라는 뜻으로 많은 사람이 함께 타고 피안(彼岸)에 이를 수 있는 큰 수레가 아니라고 한다. 부처님 입멸 후 캇사파가 중심이 되어 경전을 결집하고 계를 지키며 수행하는 전통적 보수 교단을 소승불교라고 한다. 소승은 자리, 즉 자신의 구제(해탈)만을 목표로 삼은 출가주의로 세속을 버리고 출가하여 엄한 계율을 지키고 수행해야만 해탈할 수 있다고 본다.

2. 대승불교 ‘대승’은 큰(maha) 수레(yana), 즉 많은 사람을 구제하여 태우는 큰 수레라는 뜻으로,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제도(濟度)를 그 목표로 하였다. 이 운동은 종래에 출가자(出家者:승려)만의 종교였던 불교를 널리 민중에게까지 개방하려는 재가자(在家者)를 포함한 진보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것으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불교 유적인 스투파(stupa:墳墓)를 관리하고 있던 사람들이 중심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3. 대승과 소승은 어떻게 다른가? 내가 있는 곳이 욕계요 강건너 저쪽의 세계가 열반의 세계라면 ‘어떻게 강을 건너가느냐?’가 문제다. 소승불교에서는 출가자가 자기 위주의 독선적 사고에 빠져 석가의 근본정신을 잊어 버렸다고, 대승불교는 소승불교를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대승불교는 석가 본래의 정신에 되돌아와 출가자뿐 아니라 재가의 신자들도 등산을 할 수 있게 된 불교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다.
[불상의 모습]

왜 어떤 부처는 누워 있고 어떤 부처는 앉아 있고 어떤 부처는 서 있는가? 와불(臥佛)부터 살펴보자. 와불은 부처님이 ‘열반에 들 장소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형상’을 상징하고 입불은 서 있는 불상이며 좌불은 결가부좌한 자세로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것과 설법을 하는 자세’를 뜻한다. 초기는 입상이었다가 후기로 가면 앉아 있는 불상으로 바뀌는데 이는 권력화되고 권위적인 부처님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불상의 모습도 바뀜을 알 수 있다. 보통 대웅전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은 부처님이 삼매에 드신 상태(삼매인)와 설법하시는 모습(전륜법인)을 형상화하고 있다. 반가상은 부처보다 주로 관음보살 등의 보살에 많이 쓰이며 주로 사유상 즉 생각하고 있는 자세다. 반가상은 ‘현생의 중생들의 고달픔을 생각’하는 모습을 상징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불상은 왜 그렇게 살이 찌고 권위에 차 있는가?]

초기 불상은 재료는 나무나 흙으로 만들어 진 목불이거나 토불이었다가 후기로 가면서 철불이나 금동불 혹은 금불로 바뀐다. 모습도 처음에는 고뇌에 찬 갈비뼈가 앙상한 모습,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살이 찐 건강한 모습으로 바뀐다. 불교가 이데올로기 역할을 하게 되고 권력화되면서 외모도 그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어 온 것이다. 특히 고려시대 승과제도가 도입되고 왕사나 국사와 같은 계급을 차지하고 사원전을 받아 경제력까지 가지면서 불상의 모습도 그에 상응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불상을 통해 보는 불상은 본래의 부처님 얼굴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불상이 권력과의 위계관계에 따라 다정다감하고 천진난만하다가 위엄과 권위에 찬 모습으로 바뀌어 왔다는 사실이다. 귀족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귀족이고 싶었고 왕 또한 살아서도 죽어서도 왕이어야 했다. 결국 왕은 살아서 부처요(王卽佛)이요, 죽어서도 부처였던 것이다.

[과거불, 현재불 그리고 미래불 ]

우연의 일치일까? 미륵불을 뜻하는 ‘미르’와 야훼 태양신(미트라(Mithra)=메시아)는 어원이 ‘미르‘로 같다. 기독교의 3위일체 신인 야훼와 예수, 그리고 성령처럼 불교에서도 과거불인 약사불과 현재불인석가불, 그리고 미래불인 아미타불이 있다. 역사적으로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 혼자이지만 교리적으로 "진리를 깨닫은자", "진리의 발견자"로서 부처님은 얼마든지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부처님은 오래된 성(城)을 발견한 사람에게 비유하기도 한다. 즉 자신 속의 불성을 일구어 내어 깨달음을 얻으면 바로 부처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종교가 이데올로기로 바뀌면...]

역사적으로 종교가 권력화되면서 민중의 억압자로 군림한다. 그 증거가 입불이나 좌불, 와불로 나타난다. 불상의 얼글도 자애로운 모습에서 권위에 찬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지배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종교가 필요했고 종교는 당근을 받아먹으면서 공생한다. 불교만 그런게 아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권력화되면서 그 종교가 지향하는 이념이나 교의와는 다르게 변질된다. 거대한 불상을 만들고 도금을 하고 그래서 그런 붙상이 더 영험이 있다고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3법인 4성재 팔정도를 통해 해탈을 지향하는 불교가 부처님을 신으로 만들어 구복, 기복신앙으로 바뀌어 간다. 불의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독재자와 민중을 호도하는 사이비 불교 지도자 때문에 애꿎은 부처님만 수모를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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