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2008.10.18 23:29


개신교에 30여년동안 다니다 사연이 있어 천주교로 개종했을 때의 일이다. 개신교보다 예배절차가 중세의 귄위적인 냄새가 나기도 했지만 ‘십일조를 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재산을 도둑질 하는 것’이라는 부흥전도사의 협박(?)이 없어 좋았다. 그런데 어느날 신부님의 본명(세례명) 축일에 '어떻게 저런일이...'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이 강대상(천주교 에서는 뭐라고 하는 지 잘 모른다) 앞에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아 있고 신자들이 차례로 나와(물론 희망자이기는 하지만... 연세가 많은 분도 함께...) 꽃다발과 봉투를 주고 받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요즈음 같은 세상에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 한가?’ 하고 놀랐다. 그 행사(?)에서 받은 봉투는 신부님의 판단에 따라 자선사업에 씌어 진다는 것을 뒤에 알기는 했지만 말이다.

  처음 교회에 나가면서 나는 이런 뚱딴지같은 생각을 한 일이 있다. ‘천국은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곳이라는데,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데 왜 근심걱정, 고통과 억압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더 오래살고 싶어 할까?’ 정말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믿기만 한다면 ‘하루 빨리 죽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해야 될텐데.... ‘혹시 천국이 없을 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 때문이 아니가?’라고 말이다. 아직도 그 의문은 풀린 것이 아니다. 언제가 개인적으로 목사님이나 신부님을 만나면 한 번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살다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 그뿐만 아니다. 같은 신자인데 섬기는 하나님이 제 각각이다. 처음에는 그냥 교회에 나가고 성서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려고 애쓰면 그게 신자고 그렇게 바르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교 장로교(고려 신학파)에 다니다 감리교로 바꾸면서 예수도 다르고 성서를 해석하는 기준도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다 민중신학도 해방신학 책도 읽으면서 신을 보는 사람에 따라 예수의 모습도 다르고 하나님도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예수는 없다(현암사)'라는 책을 읽고 정말 예수를 바르게 믿으려면 이분과 같은 생각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는 없다'에 나오는 글을 몇구절만 함께 보자.   

기자: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핍스 : 예수님이 하나님께 가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뜻입니까?
기자 ; 네.
핍스 :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기자 : 목사님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믿으십니까?
핍스 : 저는 예수님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살아 계신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그 부활경험의 순간 이후부터 그러하셨습니다.
기자 : 그렇지만 그가 돌아가셔서 죽은 상태로 3일간 지내시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땅을 밟고 다니셨다는 것은?
핍스 : 아니오. 저는 그것을 과학적 사실로 믿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었는지 아닌지 알지 못합니다. ... 그것은 우리와 상관 없는 문제입니다.
기자 ; 그래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으면 우리 믿음이 헛되다고 했는데요.
핍스 :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

기자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라고 믿으십니까?
핍스 : 아니오. 저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셨다고 믿지 않습니다.
......
 
캐나다 최대 개신교 교단인 케나다 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anada) 총회장으로 선출된 핍스 목사가 1997년 11월 2일 일간지 Ottawa Citizen 지와의 인터뷰에서 예수의 신성과 부활에 대해 한 발언이다.(예수는 없다 ; 현암사 P. 185~)
만약 우리나라에서 어떤 교단의 총회장이 그런 발언을 했다면 사탄으로 단정 제명되어 교단에서 영구히 축출됐을 것이다. 같은 성경구절을 놓고서도 핍스목사는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을 ‘예수님이 하나님이다’라고 믿어야 천당 간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똑같은 예수님인데 핍스 총회장님이 아는 예수님과 평신도인 신자 특히 우리나라 보수적인 신자와는 전혀 다른 예수님이다. 한국의 목회자들은 부활을 '죽었던 사람의 몸이 다시 살아 나는 것'으로 해석하지만 핍스를 비롯한 다른 나라는 이렇게 해석하지 않는 경향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은 후 40년이 지나는 동안 구전되어 오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의해 기록된  성서도 무오류설이 정설로 인정해 '일점 일획도 잘못이 없다'는 해석을 한다. 역사를 공부해 보면 알겠지만 역사는 몇 년 몇 월 며칠 무슨 일이 있었다‘는 사건의 나열이나 암기보다 ’그 사건이 오늘의 무엇인가’라는 해석이 중요하다고 했다. 신학을 전공하지 못한 평신도의 수준으로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주기도문대로 살아야 한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직접 가르쳐 줬다는 주기도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러데 그 하늘이란 고공 몇천 Km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공간. 그러니까 세계사회와 한국 그리고 지역사회 직장, 가정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말이다. 보수적인 신자들은 하나님은 하늘 어딘가 놓은 보좌 위에서 불꽃같은 눈으로 사람의 마음 속 생각까지 내려다보고 계시는... 그래서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무소불위하고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에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그런 하늘, 그런 권위의 하느님으로 보고 있다.

  왜 어머니가 아니고 아버지냐 성차별이 아니냐? 그런 논쟁은 여기서 잠시 접어두고 다음을 보자.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라는 구절은 하느님의 이름을 금박으로 새겨 벽에 걸어놓고 기도나 드리라는 뜻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우리들이 한 행위를 통하여 '역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뭔가 달라도 다른 데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귀하신 분이다’라고 그분에게 인사가 돌아가게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이런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신학적으로 옳은 지 그른지 따지고 싶지 않다. 분명히 성경은 ‘어린아이가 읽어도 지식인이 읽어도 다 해석할 수 있다‘고 적고 있는 것이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구절도 기도를 많이 그리고 정성껏 하면 쌀 독에 씰을 가득히 채워 놓는다'는 는 뜻이 아니라 '내가 열심히 일해 내 먹을 양식을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벌겠습니다' 이런 뜻으로 해석하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라는 구절도 그렇다. 아버지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지배와 피지배, 약탈과 억압, 고통과 괴로움이 없는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받을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가 ‘아버지 나라’가 아닐까?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 신천지와 같은 다른 공간에 만들어 놓고서 ‘나를 하나님이라고 믿고 교회에 결석하지 않고 잘 다니던 사람은 죽어서 여기서 살아아‘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이 땅, 이 나라에 천국을 너희가 만들어 살아라’ 그런 뜻이라고 이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경파괴는 물론 불의한 사람도 사랑으로 깨우쳐 착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고, 정직하고 근면하게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고 잘 사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는 뜻으로 말이다. 내가 능력이 있어 돈을 벌었으니 그 돈은 내 마음대로 주식투자를 하든(여기서 주식투자란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꾼을 지칭함) 주택을 주거의 공간이 아니라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이용해 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 색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라는 구절도 내가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 일곱 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그런데 성서를 읽다보면 보통사람으로서는 실천이 어려운 그리고 현실에서는 그렇게 행할 수 없는 디렘마에 빠진다. ‘이산을 저쪽으로 옮기는 기적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하나뿐인 생명을 내놓기 까지 어려운 일도 했는데 너희들도 나를 따르라‘ 이게 예수님의 가르침이요 이를 실천하는 게 신자 아닐까?

그런데 주기도문은 물론 교회 안에서 선한 목자가 됐다가 밖에서는 못할 일이 없는 파렴치가 되고 또 일주일에 와서 한번씩 죄를 씻으면 말짱하게 되고 또 죄를 짓고 씻고... 반복하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는가? 그런 뜻 아닐까? 그러기에 ‘나보고 주여, 주여 하는 자 모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통과하기보다 더 어렵다’고 하지 않았는가?

  오늘날 성서의 무오류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신약학과의 게르트 타이센 교수(「역사적 예수」다산글방)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신약성서학자들은 예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그의 행적, 기적, 부활 이야기들의 일부는 후대의 신앙고백에 의해 덧칠된 것이거나 창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 말을 적고 있다. 머리는 있고 가슴이 없는 교회 지도자들, 실천은 없고 이론만 남아 회칠한 무덤같이 불의와 타협하는 성직자들은 위선의 껍질을 벗어야 한다. 그게 이 땅에 하늘나라를 세우는 길이요, 하나님의 이름의 욕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