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어떤 밭에서 자라는가에 따라서 잘 자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식민사관으로 씌어진 교과서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으로 양성한 학생이 민족의식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교육이 그 본질적인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교사, 유능한 교사도 있어야 하고 제대로 만든 교과서를 포함한 좋은 환경조건이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오늘날 학교는 어떤가? 교육과정에는 국민적 합의를 담을 수 있는 과정을 거치고 그렇게 만들어진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하고 있는가? 교과서는 교사의 철학과 소신에 따라 가르칠 수 있는가? 재량권도 없는 교사에게 결과에 대해 책임만 지라는 것은 교육실패에 대한 교육부의 책임 떠넘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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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학교에는 ‘정직, 성실, 근면’이라는 교훈이 참 흔하다. 불의한 사회에서 정직하거나 근면하기만 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정직하기만 하거나 근면하기만 한 사람은 폭력집단이나 악덕 기업에서 일해도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한다.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회사에서 노동자는 어떤 삶을 사는가? 저임금과 온갖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다 직업병이 걸리면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지고 끝내는 내팽개쳐져도 자신의 운명으로 알고 살라고 가르치는 것이 제대로 된 교육일까? 권리는 없고 의무만 가르치는 교육은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니다.
자본이 원하는 인간상은 권리의식이나 민주의식을 가진 인간이 아니다. 이데올로기가 된 국정교과서를 비판 없이 암기시키고 암기한 지식의 량으로 사람의 가치를 서열매기는 교육은 인류가 지향하는 인간상을 양성하는 교육이 아니다. 교사는 사랑하는 제자가 사회에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야할 학습권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 아이들의 학습권을 지키기 위해 교사는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지의 여부를 살피고 그렇지 못하다면 이를 개선하는 일에 나서는 게 순리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인격적인 차별은 받지 않는지, 교칙은 민주의식을 마비시키는 독소조항이 없는지, 교과서에 담긴 내용에는 자본의 논리가 지나치게 담겨 있는 것은 아닌지... 에 대해 살펴야할 책임이 있다.
미국의 교육운동가 존 테일러 게토(John Taylar Gatto)는 「연관성을 파괴하도록 가르치는 혼란과 교실에 가두기, 무관심, 정서적 의존성, 지적 의존성, 조건부 자신감, 숨을 곳이 없다며 고자질을 가르치는 것」을 ’교사의 일곱 가지 죄‘라고 했다. 가치 혼란의 시대 교사는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자들의 가능성을 발견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안내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교육에 시행착오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세월 교육이 자본의 논리나 혹은 정치논리에 매몰돼 제자들에게 정치의식이나 민주의식을 마비시키고 인격적인 만남을 통한 교육을 하지 못한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민주화가 진전되고 개성과 창의성을 키워야 하지만 성장과정이 다른 아이들에게 획일적인 가치관과 창의성을 미비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해관계가 다른 수요자(?)에게 똑같은 가치체계를 사회화시키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 아이들에게 교사는 죄를 짓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을 자본의 논리에 순응하도록 체화시키고 그것은 교사의 능력 밖이라고 체념하고 운명적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사가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교육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의 편성과 심의에서부터 교사의 의견도 반영돼야 한다. 아무리 능력 있는 교사라도 수업시간, 학생평가 및 피드백시간, 연구시간, 자기계발을 위한 연수 시간이 적정하게 배분되지 못하면 교사로서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실패한 정책을 수정하면서 교원단체와는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는 게 교육부다. 교육을 상품으로 보는 신자유주의 철학으로는 학교를 교육하는 곳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수업시수의 법제화 없이 또 우수한 교사는 교장교감이 되고 무능한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승진제도를 이대로 두고서는 훌륭한 교사를 찾기란 어렵다.
학습자의 가장 중요한 환경조건은 훌륭한 교사다. 신자유주의 분위기와 보수화의 경향에 편승해 교육부가 교원들의 자질을 평가하겠다지만 교원의 자질은 평가해 서열화한다고 향상되는 게 아니다. 훌륭한 교사, 유능한 교사란 어떤 교사인가? 사회적인 존재인 사람을 개인적인 존재로 만들어 개인의 출세가 삶의 목표라고 가르치는 교사는 유능한 교사가 아니다. 지금은 현실을 체념하고 운명적으로 살아가는 무력한 교사가 아니라 제자들이 가장 좋은 환경조건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에 능력 있는 교사도 필요하지만 제도개선을 위해 나서는 교사 또한 필요하다.
‘죽을 용기가 있다면 무슨 짓을 못해!’ 또는 ‘노력 하면 안 되는 게 없다’고 밀어붙이지 말자.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사는 아이들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이끌어 줄 교사다. 술 취한 운전자를 끌어내리는 일은 나중에 해도 될 일이 아니다.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그 일을 해 주겠지...’ 라고 외면하지 말자. 교사들의 작은 무관심으로 아이들은 실의와 고통으로 많이 지쳐가고 있다. 모든 교사들이 오직 가르치는 일로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훗날 ‘역사의 방관자’라는 부끄러운 오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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