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2011.05.27 05:30



“종 앞에서 절대 무신론을 주장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반역할 것이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의 말이다. 친구와 나누는 얘기를 종이 들을까봐 노예를 밖으로 내보내고 난 후 친구에게 한 말이다. 노예의 각성이 두려워 진리까지 감추려했던 종교인의 속내를 보여 주는 말이다.


볼테르가 한 말에 비추어 보면 예수의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뜻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사람들은 자유를 누리기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교육을 통해 종교나 언론을 통해 이데올로기라는 마취제로 마취시켜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예는 마취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운명론자가 되어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노예들은 기득권자의 논리를 자신의 생각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예상 외로 많다.

노예들은 마취에서 깨어날 수는 없을까? 왜 사람들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객관적인지 여부를 확인하려 하지 않을까? 노예의 머리에 주인의 생각을 갖고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내가 알고 있는 세상, 그 세상은 정말 신(神)만이 아는 세상일까?

사람의 감각이나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은 모두가 진실인가? 현상을 보고 본질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볼테르가 노예가 알기를 그렇게 두려웠던 신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세계의 모든 사물과 현상은
물질적인 것(인간의 의식 밖에 존재하는 외부세계의 사물과 과정들)과 정신적인 것(의식에 존재하는 감각, 사상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물질과 의식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세상을 볼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마르크스와 칸트>

물질적인 것이 먼저인가, 아니면 정신적인 것이 먼저인가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이 의식보다 중요하고 먼저라고 생각하는 사상을 유물론이라고 하고, 의식이나 정신이 있어 물질은 인식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을 관념론이라고 한다.

물질이 근본인가 아니면 의식이 근본인가의 여부에 따라 관념론과 유물론이라는 세계관으로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다.
유물론은 정신이나 영혼, 사유란 인간의 의식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보는 반면, 관념론은 정신이나 영혼, 사유, 관념이 있기 때문에 물질이나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관념론으로 세상을 보면 사람이란 신에 의해 창조되었고 육체와 의식은 인간의 육체와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국 나이 들어 늙어 죽지만 정신이나 영혼은 육체와 분리돼 다음 세상에서 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론의 편에 선 학자들은 플라톤, 토마스아퀴나스, 칸트와 같이 의식이나 정신은 육체와 병도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관념론자들 중에는 세계란 인식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을 주장하기도 한다.

유물론으로 세상을 보면
물질세계는 인간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다고 본다. 유물론자들은 물질은 인간의 의식에 반영되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의식이 먼저냐, 아니면 물질이 먼저냐에 따라 나누어지는 관념론과 유물론은 오늘날 세계를 양대 진영으로 분류,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관념론과 유물론은 유신론과 무신론으로 또 효율과 경쟁, 복지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세력을 대립된다. 자유와 경쟁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세력과 복지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세력,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념으로, 유신론과 무신론으로 분류되어 각각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오늘날 민중들에게 마취제 역할을 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란 무엇일까? 이데올로기는 교육이나 종교, 언론을 통해 볼테르가 두려워했던 각성을 잠재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노예의 머릿속에 든 주인의 생각 즉 기득권 세력들의 논리인 이데올로기는 교육으로, 종교로, 언론으로 피지배계급을 정당화시키고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전생에 죄가 많아서 여자로 태어났다, 창조주인 신은 인간을 귀하게 쓸 그릇과 천하게 쓰일 그릇을 만들 권리가 있다. 현생에서 못나고 가난하고 고통스럽게 사는 것은 내세에 하나님이 더 큰 사랑을 베풀어 주기 위한 신의 뜻이다. 인생은 풀의 이슬과 같은 것이다... 권력은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

착각은 자유다. 사람들은 말한다. 교육은 사람들을 세계를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고... 과연 그럴까? 교육이 자아를 발견하게 하고 모두가 행복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중세 학교가 등장하게 된 이유는 지배자를 양성하기 위해 생겨난다. 서민들의 각성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학교가 설립된 것이 아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왜 식민지 조선 사람들에게 교육을 시켰을까? 이데올로기를 숨겨놓고 지식이나 주입시키는 걸 교육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학교가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진짜 이유를 알 만 하지 않은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