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 세력들이 이승만 ‘건국 대통령’ 만들기

‘인간을, 포로도 아닌 동포를, 이렇게 처참하게 학대할 수 있을까 싶었다. 6·25전쟁의 죄악사에서 으뜸가는 인간 말살 행위였다. 이승만 정권과 그 지배적 인간들, 그 체제 그 이념의 적나라한 증거였다. 얼마나 많은 아버지가, 형제와 오빠가, 아들이 죽어갔는지... 단테의 연옥과 불교의 지옥도 그럴 수 없었다. 단테나 석가나 예수가 한국의 1951년 겨울의 참상을 보았더라면 그들의 지옥을 차라리 천국이라고 수정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리영희 선생이 쓴 ‘한국 현대사 산책’에 나오는 글이다.
아직도 이승만을 대한민국의 ‘국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부산정치파동’이나 ‘국민방위군 사건’을 알게 된다고 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1950년 11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6·25 전쟁의 전세가 악화되자 이승만은 「국민방위군 설치법」을 제정하여 군인과 경찰, 학생을 제외한 만 17세 이상 40세 이하의 남자를 제2 국민병에 편입하고 이들을 국민방위군으로 조직하였다. 정부는 국민방위군 운영 일체를 이승만(李承晩)의 유력한 정치 기반으로 역할 하던 대한청년단과 청년방위대에 일임하였다.

■ ‘국민방위군’ 그들은 누구인가
1951년 1월 1·4 후퇴 때 제2국민병으로 편성된 국민방위군 고위 장교들이 국고금과 군수물자를 부정 처분하여 착복함으로써 12월~2월 사이에 500,000명에 달하는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된다. 이들 가운데 아사자, 병사자, 동사자가 약 50,000-90,000여명에 이르렀고 동상으로 인해 손가락과 발가락뿐만 아니라 손과 발까지 절단난 200,000여명이 넘는 동상자들을 나오게 한 사건이 국민방위군사건이다.
적군도 아닌 대한민국의 젊은이가 부정부패와 인명 경시로 전투에 참여는커녕, 총 한 번 못 만져보지 못한 장병이 7만 7천 ~ 12만 명이 후방에서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전체의 80%가량이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이승만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역사학자 유영익 교수도 ‘국민방위군 사건은 장정 9만 명 가량이 동사, 아사, 병사한 천인공노할 사건’이라고 개탄했다.
■ 임시 수도 부산에서 ‘발췌개헌’ 통과시키고
우리나라 개헌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발췌개헌’이 처음이다. 이승만이 1952년 7월 4일 부산의 피난 국회에서 정부수립 이후 첫 번째의 헌법개정이다. 이승만은 재선이 어려워지자, 6·25전쟁 중인 1951년 11월 30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1952년 1월 18일에 국회는 정부의 개헌안을 부결했고, 4월 17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주축으로 의원 123명이 발의한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제출되었다. 7월 4일, 군경(軍警)들이 국회의사당을 포위한 가운데 국회의원들은 기립하는 방식으로 투표하여 출석 의원 166명 중 찬성 163표, 반대 0표, 기권 3표로 발췌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 제2차 개헌 ‘사사오입 개헌’
권력에 취하면 이성을 잃는다. 권력에 취한 이승만도 1954년 본인의 영구 집권을 위해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 당시 재적의원 203명 중 찬성한 의원이 135명, 반대한 의원이 60명, 기권이 7명으로 개헌 정족수에 1표가 부족해 부결이 선포됐다. 헌법개정에는 국회 재적의원 203명의 3분의 2인 135.333명 이상의 찬성표가 필요하였고, 이 개헌안에 대해 찬성 135표가 나와 부결이 선포됐다. 그러나 이틀 후 여당인 자유당과 정부에서는 사사오입의 논리를 주장하며 개헌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했다. 위헌이자 무효가 되어야 하는 개헌이었다.
■ 보도연맹 학살사건
이승만은 1950년 6.25 전쟁 중에 어린이와 여성, 노인을 가리지 않고 당시 남한 인구의 5%에 해당하는 113만여 명을 아무 법적 절차도 없이 경찰서로 연행하여 모진 협박과 고문을 가한 것도 모자라 인적이 드문 산골짜기, 폐광산, 공동묘지, 교통호, 바닷가 등에 철삿줄, 통신용 삐삐선 등으로 묶어 끌어다 총살시킨 사건이 ‘보도연맹사건’이다.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였다는 이유로 약 500여명, 인민군 점령기에 협조 내지 동조하였다는 이유로 1,500여명이 넘는 선량한 양민을 경찰에 지시하여 집단학살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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