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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는 이야기

‘말콤 엑스’와 ‘마틴 루서 킹’ 누가 더 정의로운가?

by 참교육 2022.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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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역사 ‘말콤 엑스’와 ‘마틴 루서 킹’의 삶과 철학-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그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지금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주지사가 간섭이니 무효니 하는 말을 떠벌리고 있는 앨라배마주에서 흑인 어린이들이 백인 어린이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 킹 목사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중에서 -

1963년 8월 28일 수요일 햇살은 뜨거웠지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일자리와 자유’를 요구하며 링컨 기념관까지 행진해 온 25만 시민의 환호 속에 기념관 난간(발코니)에 서른네 살의 지도자 마틴 루서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목사가 한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중 일부다.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버스 보이콧 운동에 동참하면서 시작한 킹의 흑인 민권운동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흑인과 백인의 ‘평등과 공존’에 대한 요구였다.

“나의 내 자식들이 이 나라에 살면서 피부색으로 평가되지 않고 인격으로 평가받게 되는 날이 오는 꿈입니다.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빛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증오로 증오를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미국의 인종 평등을 이끈 그의 연설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1863), 존 F. 케네디의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1963)와 함께 미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연설로 손꼽힌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는 1929년 미국 남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침례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5살에 남부 지역에서 흑인이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학 중 하나인 애틀랜타의 무어하우스 대학(Morehouse College)에 들어갔다. 1948년 대학을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크로저 신학대학에서 공부했는데 이때, 그는 인도의 무저항주의 독립운동가 마하트마 간디의 철학에 심취했다. 킹목사는 감금 등 수많은 박해를 받았으면서도 비폭력 무저항 흑인 인권지도자로 그리고 월남전 반대운동으로 196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마침내 1964년 7월 미국의회는 민권법을 제정하여 존슨대통령이 서명하였다. 마틴루터킹은 1968년 테네시에서 백인우월자에 의해 살해되었다.

<목적은 같았지만 서로 다른 삶을 살았던 두 사람>

사람들은 노벨 평화상을 받은 ‘마틴 루서 킹’은 알아도 ‘말콤 엑스’는 잘 모른다. 마틴 루터 킹(1929~68)과 말콤 엑스(1925~65). 두 사람 모두 목사의 아들로 자신도 목사가 됐고,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비슷한 시기에 암살됐으며, 매카시즘의 얼음장 밑에서 막 솟아오르던 60년대 미국 사회운동의 진용 한가운데서 흑인 민권운동을 이끌었지만, 그 방식은 전혀 달랐다. 이 둘은 같은 세대에 살면서 흑인의 인권에 대해 앞장선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아버지가 침례교인이었다는 점과 또 순수 흑인이라기보다는 백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점 그리고 둘 다 암살에 의해 생을 마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둘은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또 이념과 종교도 다르며 사생활도 역시 많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먼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보스턴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기도 한 엘리트 코스를 받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말콤 x는 출생시 이름이 말콤 리틀이였다. 말콤의 아버지는 말콤이 6살이던 해에 열차 사고로 인해 사망했으며 그의 가족은 매달 18달러의 미망인 수당만을 가지고 생활해야 했다.

마틴 루터 킹은 목사인 아버지의 유복한 환경 덕분에 대학에서 승용차를 몰고 다닐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으며 아버지가 경찰의 인종 차별에 당당하고 논리적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며 옳지 않은 것을 보면 굴종하거나 침묵하지 말고 항의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이에 비해 말콤의 집안은 kkk단에 의해 한 곳에 정처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야만 했으며 중학교 때까지 공부를 잘하는 명석한 아이였으나 8학년 때 선생으로 부터 ‘현실적 목표도 갖고 있지 못한 깜둥이”라는 말을 듣고 흑인은 똑똑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느낀 후 점차 범죄자의 길을 가게 된다.

두 사람은 다 같이 암살을 당했지만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장례는 애틀랜타에서 존슨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장으로 치러지고 ‘킹의 날’ 연방정부 공휴일로 지정됐다. 하지만 말콤 엑스는 청중 4백여 명이 모인 뉴욕 할렘가의 오두본볼룸에서 연설 중 무려 16발의 총알을 맞고 39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나의 운동과 킹 목사의 비폭력 운동은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목표는 항상 같았다. 그 목표는 백인이 무방비상태의 흑인에게 저지르는 만행과 죄악을 낱낱이 드러내는 것이다. 이 나라의 이런 풍토에서, 흑인 문제에 대한 '두 극단적 접근방식'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지... 즉, '비폭력'의 킹 목사인지, 이른바 '폭력적'이라는 나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킹이 남긴 말이다. ‘말콤 엑스’와 ‘마틴 루서 킹’ 중 누구의 삶이 더 아름다운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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