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私)과 네 것(他), 우리 것(, 公, 共)...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는 ‘우리 것’보다 ‘내 것’에 집착하는 사회가 되기 시작했다. 공동체 사회가 무너지고 산업사회, 자본주의가 진전되면서 그런 개념은 우리의 삶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소유의식’이 사회의 분위기를 바꿔놓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는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면서 이기주의 인간을 양산하는 양극화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공(公)과 사(私)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공사에 대한 구별이 엄격해진 것은 그렇게 오래된 얘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농업사회였던 과거 우리네 선조들은 내 것보다는 우리 것을 먼저 생각하는 공동체사회였다. 우리집이나 우리 논이라는 소유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그런 사회였다. 이런 사회에서는 내 것과 네 것을 따지기보다는 ‘우리 것’이 우선이 되는 가치관이 지배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두레나 향약 품앗이 문화에서 그런 모습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공적인 것보다 사적인 것, 네것보다는 내것이 우선하기 시작한 때는...? 추측컨대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가 정착되면서가 아니었을까? 자본주의 사회는 사유에 대한 가치가 공유사상보다 우선시되고 그런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다. 경쟁을 통한 효율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사적인 이익을 우선시하는 분위기는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것이 선진화를 앞당기는 촉매제라며 법을 만들고 그런 분위기가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공적인 것보다 사적인 게 우선시 되는 사회는 좋기만 할까? 물론 공정한 경쟁이란 발전을 위한 촉매제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이란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조절할 수 있는 제어장치가 잘 듣지 않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너보다 돈이 많아야 하고, 좋은 집, 높은 지위.. 거기다 보다 잘 생기고 학벌도 좋아야 하고.. 이렇게 무한경쟁으로 가다보면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무한경쟁,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로 승부를 가리는 막가파 사회로 바뀌기 마련이다.
도덕군자가 아닌 한 보통사람들에게 욕망을 제어하기란 쉽지 않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되어야할 원론적인 자본주의는 매점매석이나 독과점이라는 이름으로 변칙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뀐다. 일례를 들면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100%가 넘은 지 오래됐다. 그런데 왜 집값은 고공행진을 계속할까?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되는 사회라면 집 한 채를 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자.
서울에서 사는 20세 청년이 월급을 150만원씩 받는다고 치자. 먹지도 입지도 않고 그 돈을 고스란히 저축한다고 해도 1년에 1800만원, 전세 자금 2억을 모으려면 40세가 가능하다. 대학시절 학자금도 갚아야 하고 의식주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아프면 병원에도 가야한다. 언제결혼하고 언제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을까? 이렇게 따지고 보면 청년에게 몇십억하는 내집 마련의 꿈은 공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일찍이 성현들이 그리는 이상적인 사회는 내 것보다 우리 것이 중시되는 공유사회다. 기독교나 불교가 지향하는 사회는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공유사회다. 그런데 현실은 사유가 공유보다 소중한 가치로 자리매김하는 사회가 되다보니 공유 어쩌고 하면 빨갱이로 몰리기 안선맞춤이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다. 아무리 자본주의가 진화해 금융자본주의로 또 신자유주의로 바뀌고 있어도 사유해서는 안 될 금기의 영역이 있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태생적으로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게 인간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모든 경쟁이 선이 되는 사회는 막가파사회로 갈 수밖에 없다. 물과 공기와 같은 공공재가 그렇다. 자본주의가 아무리 진화해도 물이나 공기는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만약 물이나 공기와 같은 자연재를 상품화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후안무치한 자본은 이미 물과 공기조차 서서히 상품으로 만들고 있다. 물과 공기뿐만 아니다. 봉이 김선달도 아닌데 땅은 왜 사유화해야 하나? 서구유럽처럼 땅은 국가소유로 두고 건물만 매매할 수 있도록 하면 우리처럼 집 한 채에 수십억하는 일은 없을 것이 아닌가? 주택이 주거의 대상이 아니라 투기의 대상이 되면 앞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기본적인 삶조차 파괴되는 막장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체제의 문제로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법이라는 게 필요하고 정치가 존재하는 게 아닌가?
고려대 강만길교수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란 ‘자유와 권리가 모든 사람에게 확대되고 부가 소수에게서 다수에게로 분배되는 사회’라고 했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되더라도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될 영역이 있다. 오늘날 교육이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사람의 가치까지 학벌로 혹은 스팩으로 서열매기는 일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물과 공기처럼 교육과 의료 철도와 같은 영역까지 민영화하는 사회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막가파사회로 변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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