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세기 중엽, 그리스 출신의 학자 폴리비오스는 그의 저서 『역사』에서 인간 세상의 정치 체제는 원시 군주정, 왕정, 참주정, 귀족정, 과두정, 민주정, 중우정의 순서를 거치며 변화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제국을 건설한 로마 공화국의 정치 체제는 비록 완전하지는 못했지만 폴리비오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집정관과 원로원, 민회가 권력을 분산하는 체제였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국가의 권력을 여러 기구에 분산시키고 '견제와 균형'을 취하게 하는 것은 현대 민주국가의 기본정치체제다.
대한민국의 정치 시계는 지금 어디쯤 왔을까? 국가권력의 선거개입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원세훈국정원 원장의 댓글 사건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 국정원법 위반 혐의는 유죄’로 판단, 원 전 원장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이를 두고 현직 부장판사가 내부 인트라넷 게시판에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내부고발자가 징계를 받거나 불명예퇴직을 했던 선례에 비추어 재판결과를 비판한 김동진부장판사에게도 같은 징계를 면치 못할 것이다.
로마시대에도 권력을 집정관과 원로원, 민회로 분산, 견제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입법, 사법, 행정의 3권분립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가?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국가인가? 삼권분립의 한 축인 국회의장은 국회에서 선출하지만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도의 한계 탓일까? 예상은 했지만 법원이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받아들인 댓글·트위터글만 무려 78만건이었다. 이를 두고 무죄라...?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진리(?)를 확인한 것일까? 원세훈전국정원장의 판결을 본 국민들은 ‘근조 사법, 혹은 원세훈구하기 판결이 아닌 박근혜 구하기 판결’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SNS에서도 난리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것인가”(@ph*****),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는 법정"(@so******)
“법원이 이석기 전 의원에게는 RO의 실체가 없으나 내란을 선동했다며 유죄를 선고하였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는 대선에 개입한 것은 명백하나 선거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은 권력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음을 재차 느낀다”(@yi****)고 꼬집었다. “국정원법은 위반했지만 그게 공직선거법 위반은 아니다… 법원의 정치적 판단인 거군”(@ra*********)이라는 댓글이 그치지 않고 있다(한겨레신문)
<이미지 출처 : 아이엠피터>
오죽하면 현직부장판사가 원세훈선거개입 무죄판결을 보고 "국정원 댓글 판결은 지록위마(指鹿爲馬-중국 진시황의 아들 호해 왕에게 환관 조고가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고 주장한 일화) 판결"이라면서 "국정원이 2012년 대통령 선거에 불법적인 개입을 했던 점들은 객관적으로 낱낱이 드러났고 삼척동자도 다 아는 자명한 사실인데 담당 재판부만 선거개입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고 비난했을까?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 박근혜 대통령은 말이 없다. 법원의 판결에 만족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공정한 재판이라고 공감한다는 뜻일까? 세월호 참사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국민적인 요구를 입법부가 할 일이라고 딴지를 놓는 대통령이니 이번 판결도 ‘사법부의 결정을 대통령인 자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선을 긋겠지. 참 편리한 대통령이다. 이런 대통령이라면 아무나 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의 나는 대한민국의 법치주의가 죽어가는 상황을 보고 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부장판사의 비판이 아니라도 지금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놓은 쇼’를 하는 사법부, 300명의 학생들이 부모와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월호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한 정부. 다시는 그런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법을 만들자는데 반대하는 대통령과 여당. 권력의 환관노릇이나 하는 언론... 정치, 경제, 사회문화, 종교... 중 어느 구석 하나 멀쩡한 곳이 없다. 사회정의는 실종되고 일베와 같은 인격파탄자가 판을 치고 있다. 철학이 없는 대통령으로 인해 정치도 법도 교육도, 도덕도 침몰 중이다. 누가 감히 사회정의를 말하고 법치주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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