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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계급사회에서 대접받기

by 참교육 2008.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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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모국회의원이 이익단체인 학원연합회 단합대회에 나타났다. 국정운영에 고민해야할 의원께서 여유가 그렇게 많은지 몰라도 그게 표심잡기 사전 선거운동이라는 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다음 선거를 위해 득표 작전이란 필요하겠지만 분명히 사전 선거운동이라는 선거법까지 위반해가며 표심잡기를 해야 다음 선거에 승리할 수 있다는 풍토가 안타까웠다. 선거법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국회의원이 학원연합회에서 특별예우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 국회의원이라는 뺏지만 달면 어디서든지 특권층 예우를 받는 현실이 이해가 안 된다는 얘기다.


물론 국회의원이 직무상 업무의 효율성이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불체포 특권이나 면책특권을 준다는 것은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공무를 맡아 수고하는 사람의 예우를 너머 귀족대접을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물론 국회의원뿐만 아니다. 단위회사의 사장도 공무원 사회도 상사와 부하는 계급은 직무상 역할분담이 아니라 ‘사람이 곧 사장’이 되고 ‘과장이나 국장’이 된다는 게 그렇다. 업무상 책임을 맡는 역할분담이 아니라 회사 밖에서도 사장이나 국장으로 행사하고 대접받는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배역과 실재인물을 구별 못하는 전근대성이 잔존하는 나라에서 사람들의 지위란 곧 그 사람의 인품이 된다. 실제로 몇 달 전 4년 전에 정년퇴임을 하신 교장선생님을 모 서점에서 만났는데 내게 대하는 말씨나 태도가 옛날 부하 대하듯 그대로였다. 좋게 보아 친밀의 표시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 교장선생님의 생각은 인간을 보는 기준이 개인의 인격으로서가 아니라 상사와 부하라는 계급적 관점에서 대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고등학교시절인가? 이름을 기억할 수 없지만 외국영화를 보면서 그 영화에 출연한 상사와 부하관계가 참 흥미롭게 느꼈던 일이 있다. 군부대 안에서는 철저하게 지키던 상사와 부하라는 상하관계가 술집에서는 만났을 때 상사를 대하는 태도는 부대 안에서 공적으로 대하던 태도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이렇게 공사가 분명한 그들의 사회를 보고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자가 선(善)이 되는 사회에서는 목적을 위해 과정은 무시되기 일쑤다. 오늘날 재벌이 어떤 과정을 거쳐 부를 축적하게 됐는지,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어떻게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는지, 정부수립과정에서 권력을 장악한 세력들이 식민지시대 어떻게 살았는지 따지려 하지 않는다. 한 개인이 국회의원이라는 사회적 지위 때문이 아니라 그 국회의원이 지지세력의 요구를 얼마나 많이 반영하고 있는지에 따라 존경여부가 결정되는 게 순리다. 부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납세의무를 다하고 정직한 경영을 했는가의 여부가 존경의 기준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얼마 전 민주화 기념 기념사업회에 갔다가 축사를 하는 분들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축사를 하는 분 중에는 당시 민주화를 위해 최루탄을 마시면서 시위를 주도했거나 군사정권에 저항했다가 구속 수배의 고통을 겪었던 사람도 있었지만 군사정권에서 복무했던 가해자가 축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었던 일이 있었다. 축사를 한 사람 중에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도 있었고 당시 어느 쪽에 서야 다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계산하는 기회주의자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념사업을 위해 경비가 필요했고 그 경비를 부담했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자가 투사가 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사회적 지위가 인격이 되고 과정을 무시한 결과가 존중되는 사회에서는 정의가 설 자리가 없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 되어서도 안 된다. 성숙한 사회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관행을 비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고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나 재벌만이 비판의 대상일 수는 없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시민사회나 시민단체들도 이제는 비판과 상호비판을 수용해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 날 때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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