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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죄가 무엇이기에... -평신도의 눈으로 본 기독교 -

by 참교육 2008.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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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교회는 사순절(그리스도교 교회에서 부활절을 준비하는 참회기간)이라 회개와 죄가 화두가 되고 있다. 신, 구교를 막론하고 기독교는 사람들이 짓는 ‘죄’에 대해 민감하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었으니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신도들에게 구체적으로 '죄란 무엇인가?' 물어보면 그렇게 명쾌하게 대답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냥 정서적으로 ‘바르게 살지 못하는 것’ 혹은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생활‘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죄란 무엇인가? 교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 죄란 ‘양심이나 도의에 벗어난 짓’이나 ‘실정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의 계명을 어긴 행위’를 죄라고 이해한다. 즉 모세가 시내 산에서 야훼로부터 받았다는 10계명 즉 ‘다른 신을 섬기지 말 것, 우상을 섬기지 말 것,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 것, 안식일을 지킬 것, 어버이를 공경할 것, 살인하지 말 것, 간음하지 말 것, 도둑질하지 말 것, 거짓말하지 말 것, 남의 것을 탐하지 말 것 등을 일컫는다.  

 로마의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죄를 정의하기를 ‘① 자만 또는 거만, ② 탐욕, ③ 정욕, 즉 지나치거나 부정한 성적 욕망, ④ 질투, ⑤ 과식(과음도 포함됨), ⑥ 노여움, ⑦ 게으름’을 죄라고 규정한 일이 있다. 교황이 크리스도의 대행자라는 천주교의 관점에서 보면 교황이 정의한 죄의 의미는 그만큼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아직도 다수의 신도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가지고 태어났다는 원죄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기독교인이 되는 순간 평생동안 ‘죄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게 되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죄란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있을 수밖에 없는 행위'다. 그렇기 때문에 '죄란 시공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어제까지 죄였던 것이 오늘은 죄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동양에서 죄로 인정되는 것도 서양에서는 죄가 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명예훼손이나 지적소유권 침해와 같은 죄는 과거에 없던 문화의 변화로 나타난 죄다. 이렇게 본다면 수백년 전의 광야에서 유대인에게 적용한 사회적 규범이 오늘날 그대로 적용하기란 무리다. 예를 들면 '제정일치시대 십일조'와 제정분리시대 세금의 개념이 생긴 후 십일조는 같은 의미일 수 없다.

 무조건 죄의식에 사로잡혀 신의 자비를 끝없이 구하며 사는 것은 건강한 생활인의 자세라 보기 어렵다. 그러나 대부분의 목회자는 모든 신자는 끝없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죄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10계명을 어기지 않고 다 지킬 수 있는가? 최근 도올 김용옥선생의 성서강좌에서 구약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천주교와 대립하고 있지만 성경이 소수 특권층만 읽을 수 있었던 시절의 신앙관을 고집하는 것은 올바른 싱앙일 수 없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는 십계명에 규정된 죄는 당시의 세태를 반영한 것으로 오늘날 반드시 지킬 수 없는 덕목도 많다. 예를 들면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이래되는 날은 쉬라‘는 계명은 오늘날 적용하기는 무리다. 사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이 탄생하게 된 동기는 당시 이집트에서 지독한 노예살이를 하던 유대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6일을 일하고 7일을 버틸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 반영된 계명이 곧 '이레되는 날...'이라는 계명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하루 벌어서 하루를 연명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이 계명을 사실상 지키기 어렵다. 이를 두고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신의 계명을 어긴 파렴치범'으로 몰아가는 것은 성경의 바른 해석이라 할 수 없다.

 구약시대 죄란 ‘도둑질하지 말 것, 거짓말하지 말 것, 남의 것을 탐하지 말 것...’과 같은 개인적인 차원의 부도덕한 죄로 규정했지만 부자들이 주인인 세상이 되면 그들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계명을 만든다. 이런 복잡한 사회에서는 개인적인 범죄보다 지능적이고 사악한 화이트칼라범죄(횡령, 뇌물수수, 독점 및 가격조작, 부당노동행위, 탈세...)가 훨씬 더 다수에게 고통을 주는 사악한 범죄다. 이런 세태를 외면하고 생계형 범죄를 중범취급하고 화이트칼라 범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목회자가 있다면 이는 예수님의 의도를 반대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죄를 자각하게 하는 이유는 회개를 위한 것이지 '죄의식에 사로잡혀 열등의식을 가지고 고통스럽게 살아라'라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회개란 무엇인가? 성경은 회개의 목적을 중생(영적(靈的)으로 새사람이 됨) 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가는 방향을 바꿔 바른 길로 가는 것’이요, '거듭남‘을 뜻한다. 회개나 거듭남이 없는 죄를 강요하는 것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불행하게 살라고 가르치는 것이나 진배없다. 인간이 사악할 지라도 자식이 불행에 빠져 고통스럽게 사는 것을 원치 않을 텐데 하물며 사랑의 하느님이 자녀들에게 죄의식에 사로잡혀 고통스럽게 살기를 바랄 리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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