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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33년 전 제자가 우리학교 이사장이 됐습니다

by 참교육 2012.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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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교직생활 마지막 정년퇴임 학교인 합포고등학교 재직 때의 일이다.

 

스승의 날이라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학교에 꽃바구니를 든 참한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선생님!

저 마산여상 00회 졸업생 이연줍니다."

 

그렇게 반갑게 꽃을 안기며 찾아 온 제자에게 야속하게도 나는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이 별로 남아 있는 게 없었다. 일년내내 말썽한 번 부리지도 않고 자신의 할 일만 성실하게 하는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 학급 담임도 맡지 않고 교과담임만 맡은 교사에게는 그래서 특별한 제자가 없다.

 

학교임원을 맡거나, 성적이 특별히 좋거나 혹은 나쁘지도 않은 학생, 또 특별히 선행이나 문제가 될 일을 저지르지 않는 평범한 학생(?)은 세월이 지나도 교사의 기억에 별로 남아 있는 게 없다. 그것도 일주일에 30시간 정도를 두서너 과목을 맡아하던 그 시절에는 더더구나 그랬다.

 

여상을 졸업한 제자들은 대부분 취업을 한다. 그런데 이 친구는 취업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훌쩍 세월을 보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가끔씩 찾아와 사는 얘기도 하고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얘기도 했다. 어렵게 공부했으니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땅을 사 둔게 있어 학교를 지어 좋은 교육을 하고 싶다고 터놓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숙형 공립대안학교인 태봉고등학교 이모저모입니다-자료-다음검색에서>

 

그런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나는 정년퇴임을 했고, 어쩌다 공립대안학교를 설립하는데 TF팀장을 맡아 보수도 없는 학교에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추천한 교장선생님의 간곡한 청으로 대장암 수술을 한 지 몇 달도 되지 않은 몸으로 ‘대안학교지원센터장’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이름으로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정념퇴임을 한 사람은 공립학교에 공식적인 직함으로 일 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채식도 하고 몸 관리도 해야 하는 기간에 신설하교, 환경호로몬이 남아있는 폐쇄된 공간에서 생활은 어쩌면 목숨(?)을 건 행위이기도 했지만 설립을 주장했던 사람으로서 업보려니 생각하고 그런 삶을 시작했다. 당시 기숙형 공립대안학교인 태봉고등학교는 대

부분의 선생님들이 그랬듯이 퇴근도 일요일도 없이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다.

 

공립대안학교. 그것도 기숙형이라니... 성적이 좋지 않아도 되고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해 체벌은 물론 징계조차도 스스로 회의에서 결정하는 그런 대안학교라는 소문이 나자 지원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어느날 갑자기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자퇴를 한 학생, 죽어도 학교가 싫다는 학생들조차 적응도 잘하고 재미를 붙이는 모습을 보고 부모들은 너도 나도 아들딸을 데리고 입학을 신청했다.

 

한 한급에 35명, 한정된 3학급이 전부인 이 학교 학생 모집에 입학을 못해 낙담하는 학생과 박부모를 보면서 이런 대안학교을 많이 설립해야 하는데, 정부에서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을 문제아로 보고 착한학생(?)들이 물들지 않도록 분리해야 하다면 ‘위스쿨을 짓고 위클래스’를 만들어 문제아 수용소를 만들고 있었다.

 

        <보리학교 활동 모습입니다. 보리학교 카페에서.... http://cafe.daum.net/hi-changdong >

 

이 학교에 기숙을 하면서 민주화운동에 함께했던 김상열선생님과 시간이 되면 가끔 세상 돌아가는 얘기며 교육에 대한 고민을 나누곤 했다. 그러다 이 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듬어 줄 그런 공간을 만들 수 없을까 고민하게 됐다. 이런 소식을 들은 나를 찾아왔던 지금은 대학생을 둔 어머니가 된 제자 이연주가 적은 힘이라도 보태겠습니다며 시작한 게 보리하교(전 별초학교)다. 창원시 부림시장에 입구 3층에 문을 연 이름은 학교지만 정규 교육과정도 없고 교과서도 정해진 게 없었다.

 

‘학교가 싫은 아이들, 마음 붙을 곳이 없는 학생들은 다 오너라!’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선생님들이 무상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시간만 나면 야외로 산으로 바다로 나갔다. 중학교에 근무하시는 이병규, 과학선생님, 진영욱, 고등학교 국어선생님, 태봉고등학교 사회과 김상렬선생님, 영어과 맹혜영선생님.... 많은 선생님들이 그런 뜻이라면 시간을 아끼지 않고 참여 했다. 전교조 마산지회선생임들... 어떤 초등학교선생님은 자신이 무슨 일이라도 돕겠다며 스스로 찾아오기도 했다.

 

 

시장에 문을 연 보리학교는 제자가 전세자금과 월세를 책임지고 또 상근자임금과 경비까지 후원해 주는 바람에 학교는 하루가 다르게 활기를 찾아갔다. 이런 일에는 몸을 아끼지 않는 분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방학이며 제주도로 지리산으로, 독서나 그림공부도 하고 상담교사를 초청 학부모와 함께하는 자리도 만들었다. 공부를 하겠다는 학생을 따로 지도해 검정고시를 치르게 했다. 예상외로 1년이 지나 3명의 학생이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대로는 안 된다. 제자 한사람에게 이런 짐을 지우는게 옛 스승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생각하다 떠오른 게 ‘법인으로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제자를 법인 이사장으로 그리고 몸으로 봉사하는 선생님과 물적이 지원을 해주시는 이사들이 하나가 돼 지난여름 드디어 ‘가온누리센터, 보리학교’로 법인이 허가가 나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33년이 지난 지금 이 자랑스런 제자와 나는 사제지간이었던 사이가 현재는 법인 이사장과 학교장이라는 사이가 된 사연이다.

 

<보리학교 학생들의 행복한 생활... 제주도로 지리산으로 그리고 체험학습을 하는 모습입니다>

 

현재 우리가 운영하는 보리학교(법)에는 창원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황금령씨, 경남도민일보 기주완편집국장을 비롯해 창원대학교 이성철교수님,  창원시의회 이옥선의원, 그리고 현직교사로서 이사를 맡고 있는 이병규, 맹혜영, 진영욱, 현재 상근을 하시는 정수호선생님.. 이연주이사장과 김용택... 이렇게 10명이 함께하고 있다. 그 밖에도 우리는 후원해 주시는 많은 후원회원님들이 있어 앞으로 갈곳없는 아이들의 쉼터로서 뿌리 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단풍이 곱게 내리는 계절이면 “선생님! 우리 동기회에서 선운사 단풍놀이에 선생님과 함께 하기로 했으니 꼭 오십시오”라는 제자들이 있는가 하면 30년도 훨씬 더 지난 제자들이 블로그를 보고 인천에서 부산에서 대구에서... 청주로 한걸음에 달려와 “선생님 그 때는 정말 무서웠습니다”라며 어께 자랑을 하는 제자도 있다.

 

이번 허리 수술 소식을 듣고 ‘내가 가서 우리선생님 안아드려야 빨리 낫는다’며 천리를 멀다않고 한달음에 달려와 함께 걱정을 해 주는 친구며 카페에서 많은 제자들이 하나같이 빠른 회복을 기원하기도 한다. 다음 블친들도 늙은이 건강을 하나같이 해줘 고맙고 행복하다.  

 

나이가 들어 찾는 이가 없는 노후는 더더욱 외롭고 쓸쓸하다. 그런 의미에서 제자와 함께하는 갈곳없는 아이들에게 대안학교를 열어 함께 하는 제자를 둔 나는 참 행운아다. 어렵게 공부했으니 어려운 아이들을 도우면 살겠다는 이런 착한 제자의 기특한 삶을 경남도민일보 ‘피플파워(11월호)는 그의 선행을 ‘Happy 나누는 사람’에 자세히 소개해 놓았다. 이연주이사장의 꿈이 더더욱 영글어지도록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내 작은 힘이라도 보태며 살겠다는 게 나의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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