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세상읽기2019.05.18 06:08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은....?”

수업시간에 들어오신 국어선생님이 흑판에 이렇게 쓰셨다. 아이들은 저마다 “뜰에 깐 콩깍지 깐 콩깍지인가 안 깐 콩깍지인가입니다.”, “아닙니다. 작년에 솥장사 헛솥장사입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어려운 말을 앞 다투어 말했지만 선생님은 흑판에 “아니오입니다”라고 쓰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은 ‘아니오’라는 말이란다. 듣고 있던 아이들은 저마다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 말이 뭐가 어려운데...’ 당시 아이들은 아니오가 왜 어려운지를 깨닫지 못했다.



오늘은 광주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난지 39년째 되는 날이다. 광주민주화운동 혹은 광주민중항쟁으로 부르는 5·18혁명이란 무엇인가? 워낙 많이 들어온 얘기라 5·18민주화운동이니 5·18광주민중항쟁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정신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행사가 행사로 끝난다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 그야말로 건조한 행사를 위한 행사로 끝난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거창하게 많은 예산을 투자해 금남로 거리에서 그날을 재현하기도 하지만 1회성 행사가 끝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런 행사의 참뜻을 알고 체화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청주에 가면 흥덕구에 모충사(慕忠祠)라는 사당이 있다. 1894년(고종 31) 10월, 충청병영의 영관 염도희는 70여명의 병사를 이끌고 대전방면의 동학군을 해산시키기 위해 출진하였다. 그러나 청원군 강내면 지역에서 동학군의 매복에 걸려 몰살당하고 만다. 그해 11월 청주목사 임택호는 남석교 밖에 모충단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으며 광무 7년(1903년) 모충단이라는 호를 받아 당산에 단을 쌓고 기념 비각을 건립, 1914년 모충사를 건립 제사를 지냈다. 그 후 일제의 신사건립으로 옮겨 다니다 1975년 이 자리에 옮겨 남아 있다. 동학혁명군을 토벌하려다 희생한 관군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라...?

역사를 지우자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아직도 청주 흥덕구 모충사가 있는 이 동네 이름이 모충동이다. 사당이야 사적으로서 역사적인 보존의 가치가 있지만 모충동(慕忠洞)이라는 동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니.... 그러고도 동학은 난(亂)이 아니라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동학운동이든 3·1운동, 광주민주화운동은 왜 혁명이 아니라 운동이니 항쟁일까? 세월이 지나 혁명이 원하던 가치는 사라지고 1회성 행사를 치르고 끝난다면 그런 행사를 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역사인식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광주민중항쟁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해마다 거창하게 치른다고 항쟁의 정신을 되살려 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일제에 저항해 나라를 되찾겠다는 3·1혁명을 혁명이 아니라 3·1운동이라고 부른다. 삼정문란과 외세에 저항해 일어난 농민들의 거룩한 희생이 Play인지, Movement인지는 알 수 없어도 왜 혁명으로 명명하기를 꺼리는 것일까? 동학혁명, 3·1혁명, 여순사건, 제주항쟁, 부마항쟁, 4·19혁명,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은 “아니오”다. 불의에 저항하는 목숨을 내건 투쟁이 혁명이 아니라 사건이니 운동이니 항쟁으로 비하하는 것은 역사를 가해자의 편에서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 저항의 핵심의 불의에 저항하는 정의가 아닌가? 정의가 실종된 역사는 민중은 없고 가해자의 수탈과 노예만 살아남는다.

동학운동, 3·1운동, 제주항쟁, 6월항쟁, 광주민주화운동...은 혁명으로 고쳐 불러야 하지 않을까? 불의에 저항한 정신은 정의다. 우리는 선조들의 거룩한 이 저항의 정신이 있었기기에 오늘날 우리는 민주주의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 진 빚(負債意識)을 덮어두고 어떻게 정의를 말할 수 있는가? 정의를 살려 낸 숭고한 저항은 혁명으로 부르지 못하고 폄훼(貶毁)하는 이유는 가해자가 주인으로 행세하기 있기 때문이 아닌가? 가해자가 기득권 세력으로 남아 있는 한 저항의 반란이다. 친일사관의 학자들이 기록하는 역사를 거부하라. 운동이니 항쟁은 혁명이 아니다. 진정한 해방의 정신, 저항의 정신이 정의요, 혁명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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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역사2019.01.03 05:55


올해는 3·1절 100주년, 건국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3·1절 100주년을 맞아 정부가 3·1운동을 3·1혁명으로 바꿔 부르자는 이른바 '정명(正名) 작업'을 언급하고 나서 관심을모으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의 제안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이른바 '정명(正名) 작업'은 일부 보수층에서는 '건국절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전략이 숨겨져 있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3·1절 하면 유관순열사를 떠올리지만 3․1혁명은 ‘전국 각지의 면소재지 단위로까지 확대된 만세시위로 3월부터 5월까지 1500회가 넘었다. 시위 참여자는 일제의 통계만으로도 200만 명이 넘었으니 당시 인구 1700만을 감안하면 엄청난 사건이었다. 더구나 이 과정에 7500여명이 사망하고 1만6000여 명이 부상하였으며 4만7000여 명이 체포되어 2만여 명이 수감된 세계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대혁명이었다.


우리는 갑오농민혁명을 동학운동으로, 3․1혁명을 3․1운동으로 6월 항쟁을 6월 민주화운동으로 불렀다. 광주민중항쟁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불러오다 1980년대부터 '광주민중항쟁' 또는 '광주항쟁'을 불리게 되었다. 3·1운동이라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3·1혁명으로 명명해야 옳은가? ‘혁명’과 ‘운동’은 다르다. 운동(運動)이란 ‘몸의 건강을 위하여 또는 어떤 시합에 나가기 위하여 하는 몸의 기능을 높이고 그리고 어떤 기술을 배우는 온갖 일’ 혹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일’을 일컫는 말이다. 이에 반해 혁명(革命)이란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서 국가의 기초, 사회의 제도, 경제의 조직을 급격하게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이다.


3·1절이 운동인가? 혁명인가? 동학농민전쟁 농민운동이며 6월 항쟁이 민주화운동인가?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어차피 역사의 기록은 승리한 쪽의 입장에서 역사를 정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식민지사관으로 공부한 사학자들이 우리역사를 왜곡하거나 폄훼(貶毁)한 식민지교육의 영향으로 왜곡된 역사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 친일의 후예들, 10월유신과 광주학상정권에 복무한 학자들이 집필한 역사가 민주적이고 객관적인 역사를 기록할까? 이런 학자들에게 전수받은 우리역사는 저항정신을 소거하거나 평가절하(平價切下)한 역사를 진실로 믿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17년 11월 예산 국회에서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추진위원회 운영과 3·1 운동 지역별 수형기록 발굴 등을 위해 편성된 예산 50억원이 한국당의 반대로 삭감된 바 있다. 자유한국당이 누군가? 자유한국당은 친일의 후예, 이승만독재와 10월유신, 공주학살의 복무했거나 그 후예들이다. 그들이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요, 대한민국의 건국은 이승만정부가 수립된 1948년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지만 대한민국헌법 전문에는 분명히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을 무시하고 주권자를 농락하다 유치장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교조와 공범이 아니랄까바 자신들정체성을 드러내기를 망설이지 않고 있다. 그들이 한글독해 능력이 있다면 1919년 4월 11일 상해임시정부가 임시정부법령 제 1호로 발표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대한민국임시헌장 제 1항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이 건국의 아버지요,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절이라니 무슨 실성한 소리인가? 5.18단체의 공식적인 통계발표대로라도 1천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비롯한 4,300명의 희생자를 낸 광주학살의 살인마를 “민주주의의 아버지는 내 남편”이라는 이순자의 망언과 다를게 무엇인가?


3·1혁명이 없었다면 오늘의 건국 100주년이 가능했을까? 오늘은 모든 어제가 만든 결과다. 내가 생명을 이어 오는 것도 민주주의도 조국의 주권과 민족문화를 지키며 살아 온 선조들의 피땀이 만든 결과가 아닌가? 왜곡된 역사는 청산하여야 하고 빼앗긴 주권은 되찾아야 한다. 3·1절 100주년, 건국 100주년을 맞아 할 일도 많지만 거창한 일회성 행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인인 주권자들이 헌법을 읽어 주권의식, 민주의식을 되찾는 것이 100주년의 진정한 의미를 살리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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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8.02.28 06:30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1960228일 낮 1255, 대구 경북고 학생부 위원장 이대우 등이 조회단에 올라 외친 선언문이다.



대구하면 보수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대구는 원래 "동양의 모스크바"라 불린 우리나라 진보의 본산이었다. 대구는 박정희 정권 때까지 서울, 부산과 함께 3대 야도(野都)로 불리어 왔다. 그런데 어쩌다 대구하면 박정희를 떠올리게 되지만 박정희가 지역감정을 부추기기 전까지는 대구는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도시였다. 역사적으로 대구는 외침(外侵)이 있을 때마다 의병을 일으키고 국채보상운동, 3·1운동 등 항일운동에 목숨을 바친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된 도시다.

불의에 항거한 저항의 도시 하면 3·15마산의거나 5·18광주항쟁을 떠올리게 되지만 일제강점기 3·1운동과 함께 대구는 대동청년단, 조선국권회복단, 대한광복회 등 독립운동단체가 대구를 무대로 활동했다. 또 유림단(儒林團) 독립청원운동, 신간회 대구지회 활동, 의열단 무력항일운동,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의 항일독립운동, 태극단 활동, 대구 24부대 학병의거 등 수많은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곳이 대구다.

3·15의거와 4·19혁명은 알아도 2·28의거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4·19혁명은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학생의 눈에 미제 최루탄이 박힌 비참한 사진을 보고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의 불의에 저항한 혁명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2·28이 먼저다. 2·28의거는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유세 현장에 학생들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등교 지시를 내린 것이 화근이 되긴 했지만 단순히 학생 몇몇이 주도해 일어난 사건이 아닌 3·15의거와 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불의에 대한 저항이다.

<2·28의거의 시대적 배경>

1945815일 광복 이후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단되었다. 이후 유엔은 한반도의 정부 수립을 위해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하지만 소련이 방북을 거부하였고, 결국 선거가 가능한 남한에서 단독선거를 치르게 된다. 1948510일 드디어 총선거가 치러져 임기 4년의 대통령 간선제의 헌법이 만들어진다. 대통령간선제로 국회가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 19488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유엔은 대한민국 정부를 합법 정부로 승인하게 된다.

권력에 눈이 어두워진 이승만은 1952년 집권이 어려워지자 대통령의 선출 방식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꾸어 재집권에 성공한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승만은 3선에 성공하지만 미국의 무상 원조가 줄어들면서 경제 사정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민심이 흉흉한데다 대통령의 중임이 불가능한 헌법을 개헌하는 과정에서 집권당이 자유당은 무리한 개헌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1960315, 4대 정부통령 선거일을 앞두고 집권당인 자유당은 부통령 후보였던 이기붕을 다시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그의 측근들이 내무부 관료들과 자유당 소속 정치 폭력배를 동원하여 3인조 5인조를 조직하는 등 노골적인 부정 선거, 개표 조작을 시도했다. 5·18이 광주시민만의 분노가 아니라 전두환의 집권야욕이 광주시민의 저항으로 나타났듯이 2·28의거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정부의 부정부패와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대구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정치적인 불신이 저항정신이 강한 야성의 대구라는 도시에서 2·28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2·28의거의 경과>

1960228일 낮 1255, 경북고 학생부 위원장 이대우 등이 조회단에 올라 격앙된 목소리로 백만학도여~!”로 시작하는 결의문으로 시작된 반독재의 횃불은 대구에서 처음 불타올랐다. 대구 경북고등학교는 일요일인 이날 등교 지시를 내린다. 학생들을 일요일에 등교지시를 내린 사연은 3월에 있을 중간고사를 앞당겨 친다는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유세에 학생들이 참여하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현상은 경북고 뿐만 아니라 대구 시내의 국공립 7개 고등학교 마찬가지로 일요일인 228일 등교를 지시한다.



1960227일 오후 대구 동인동 이대우 경북고등학교 학생부 위원장 집에 경북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학생 8명은 부당한 일요등교 지시에 항의를 하기 위해 시위를 조직해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는 결의문도 작성하게 된다. 228일 오후 1시 학생 800여 명이 대구 반월당을 거쳐 경상북도청으로 가는 과정에서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합류하며 시위대는 점점 늘어나 1,200여명의 참여해 120여명이 경찰에 체포된다. 경찰은 시위의 확산을 우려해 시위를 주도한 학생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을 석방하게 된다.

이승만정부의 관제 데모에 동원되기만 했던 학생들이 처음으로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의사표시를 한 2·28의거는 한 알의 불씨가 되어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다. 3.15마산의거, 4.19대학생시위, 4.26 이승만대통령 하야로 이어져 마침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민권 민주주의 혁명의 도화선이 된게 2·28대구학생 민주의거다. 2·28의거는 가난과 독재, 불의와 부정에 항거한 대구 시민정신이 표출이요, 민주주의의 승리였다. 2·28의거는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자유당 12년 독재를 종식시킨 역사적 사건이다. 2·28의거, 315의거 그리고 4·19혁명은 5·16군사쿠데타로 무너지기는 했지만 불의에 항거한 저항정신은 이후에도 부마항쟁, 5·18광주항쟁 그리고 6월항쟁과 2017년 촛불집회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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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3.28 07:00


 

 

"△전국의 토지와 대생산기관의 국유화(國有化) △전국 학령아동(學齡兒童)의 전수가 고등교육의 면비수학(免費修學=무상교육)과 교과서 무상공급 △전국 각 동·리·촌과 면·읍과 도(島)·군·부(府)와 도(道)의 지방자치실현 △적산(敵産=일본 재산) 몰수와 국유화 △몰수 재산을 빈공(貧工=가난한 노동자)·빈농·무산자(생산수단이 없는 사람)를 위한 국영·공영 집단 생산기관으로 충당"한다.

 

사회주의 북한의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건국강령에 나와 있는 건국세력들이 만들고자했던 건국얼개다.

이 뿐만이 아니다. 건국강령에는 "△노공(老工=늙은 노동자)·유공(幼工=어린 노동자)·여인의 야간노동 금지 △고리대금업과 사인(私人)의 고용농업의 금지 △농공인(=노동자·농민) 면비의료(免費醫療=무상의료)로 질병 소멸·건강 보장" △18세 이상 남녀 선거권보장, 20세 이상 남녀 피선거권...까지 보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건국강령은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좌·우를 넘어서 당시 독립운동세력 대부분이 합의해 만들고자 했던 해방된 대한민국의 이상적인 국가상이다.

 

 

부모의 유지(有志)를 받들지 못하면 불효라고 했던가?

 

‘쏘련식 민주주의가 아모리 좋다 하여도 공산독재정권을 세우는 것은 싫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아모리 좋다 하여도 독점자본주의의 발호로 인하여 무산자를 괴롭게 할 뿐 아니라, 낙후한 국가를 상품시장화 하는 데는 악질(惡疾)이다.’

 

이 말씀은 1949년 김구선생님의 신년사다. 2002년 권영길대통령후보가 ‘무상급식, 무상의료’를 공약으로 내놓았을 때 빨갱이들이 주장하는 수법이라고 많이도 매도(罵倒)당했다. 그런데 1949년 김구선생님을 비롯한 당시의 임시정부요인을 비롯한 독립운동세력들이 세우고자 했던 나라의 강령에는 무상교육, 무상의료뿐만 아니라 토지의 국유화와 노동자, 농민들의 무상교육까지 실현하려 하지 않았는가?

 

누가 감히 사회주의자도 아닌 김구선생님의 주장을 빨갱이들의 상투적인 수법이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건국강령 발표 후 7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아직도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포퓰리즘으로, 18세 이상 선거권 보장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의 무상교육은 空約을 남발하는 새누리당의 4·11총선에 구색 맞추기로 나와 있을 정도다. 식민지시대 적산(일본인 재산) 몰수는커녕 친일분자의 후예들이 재산 찾기 소송을 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독립운동의 후손들은 아직도 달동네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가 하면 친일세력에 학살자의 후예와 그들과 한통속이 된 공모자들이 함께 만든 정당이 집권당이 되어 해방 70년의 대한민국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다.

 

일찍이 김구선생님이 우려했던... 북한은 독재정권이, 남한은 미국식 독점 재벌에 의해 가난한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해방 70년이 가까워 오는 독립국가 대한민국은 분단의 상태에서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조차 친일분자들이 작곡, 작사한 노래를 부르고 친일분자가 된 자가 만든 태극기를 게양하고 살고 있다.

 

 

국민의 주권을 도둑질하고 10월 유신으로 민주주의를 말살하려 했던 쿠데타의 주역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선거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명되고 있다. 유신을 찬양하던 언론인도 밀수를 하던 재벌도 민주화운동을 때려잡던 사법부 인사도 권력이 되어 민주주의를 말하면 빨갱이로 매도당하는 나라.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현행 대한민국의 헌법도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건국선현들이 강령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세상은 아직도 우리들에게는 꿈이다. 무상교육, 무상의료는커녕 나라는 온통 재벌 공화국으로 만들어 놓고 정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 가난한사람들이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일제의 강점을 온몸으로 저항했던 독립운동가들이 그렇게도 원하던 조국 대한민국의 건국강령은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까? 건국강령으로 만들고저 싶어했던 이상적인 나라는 언제쯤 가능할까? 

 

건국강령 원문을 보시려면...

대한민국 건국강령-2.hwp☜ 클릭하십시오

 

* 위의 이미지는 다음 검색에서 거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