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모든 중학생들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의 교과서를 배우고 있다. 그들은 독도가 일본 땅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의해 불법점거당하고 있다고 교과서에 기술해 놓았다. 일본의 교과서는 국정이 아닌 검정교과서다. 일본정부는 각 출판사가 만드는 공민·지리·역사 등 사회과 3과목 교과서독도에 관한 기술 지침을 내려 이와 같은 내용을 삽입할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Scoopnest>


왜 일본은 주변국과의 선린우호를 해치고 정치 외교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행보를 계속하는 것일까?” 독도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두 말 할 것도 없는 우리 영토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학생들에게 독도가 일본 땅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거짓말도 반복하다 보면 사실화 된다는 말을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해가 일본해로 바뀐 이유도 동해가 일본해가 된 것이 그렇다. 독도도 이렇게 계속 우기다 보면 국제적으로 분쟁지역 화시켜 일본 땅으로 만들겠다는 저의가 숨어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한국사 교과서를 놓고 결국 국정화하하기로 결정했다. 국정교과서란 세계에서 북한과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몇몇 이슬람 국가뿐이다. OECD 34개국 중 국정 역사교과서를 쓰고 있는 나라는 그리스와 터키, 아이슬란드 정도다.(터키와 아이슬란드는 민간 검정 교과서를 같이 쓰고 있어서 순수하게 국정만 쓰는 곳은 OECD 국가 중 그리스 하나뿐) 핀란드·프랑스·스웨덴·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는 검정제보다 더 나아간 자유발행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왜 정부는 교과서를 국정제로 바꾸겠다는 것일까?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는 국정제와 검인정제 그리고 자유발행제가 있다. 국정교과서란 1종 교과서라고도 하는데,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지고 만드는 교과서. 검인정교과서는 민간 출판사가 만든 교과서를 국가의 검정·심사를 통과한 뒤 발행한 교과서. 말썽이 일고 있는 일본의 교과서가 검인정제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을 거친 8종의 국사교과서를 각 학교에서 자유롭게 채택해 쓰고 있는데, 정부여당이 이 제도를 바꿔 국정 교과서로 통합하겠다고 해 말썽이 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과서의 역사를 살펴보면 파란만장이다. 교과서는 1895년에 처음 발행됐다. 일제강점기에서 조차 유지됐던 검인정제가 197210월 박정희 정권이 유신 체제로 들어서면서 그 이듬해인 1973년에 국정체제로 바뀌게 된다. 박정희정권은 유신의 정당화를 위해 19742월부터는 중·고등학교의 11종 국사교과서를 통합해 하나의 단일화된 역사교과서를 채택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정부 주도로 편찬해온 국사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획일적인 시각을 주입한다는 비판이 제기됨에 따라, 2007년 노무현 정권 당시 개정 교육과정에 의해 다시 검인정체제로 전환됐다. 교과서의 명칭도 '국사'에서 '한국사'로 바꿔 지금까지 유지돼 오고 있다.




<이미지 출처 :구글 검색에서 >


국정교과서란 국가가 저작권자란 뜻이다. 역사교과서는 역사학자나 역사교사가 쓰는데 역사학자가 아닌 정권의 뜻에 따라 만들면 교과서에 어떤 내용을 담게 될까? 물론 국정이라고 해서 정부가 직접 집필한다는 뜻이 아니라 정부가 친정부성향의 학자들을 동원해 정권의 시각에 맞는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역사교과서를 국정제로 했을 때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학생들이 다른 교과서로 배운다면...? 그래서 우리 헌법 제 31항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해 놓고 있다.


교실에서부터 역사로 인해 국민이 분열되지 않도록 역사를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 필요하면 국정화도 배제하지 않겠다.”, “족보가 여러 개 있을 수 있느냐. 중도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한국사 교과서가 필요하다.” 황우여 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의 발언이다. 새누리당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정말 그럴까? 우리아이들이 역사를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고...? 그런데 왜 야당을 비롯해 교원단체 학계, 교육계, 종교계에까지 국정화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설까?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지속될수록 근대적 시간관념은 한국인에게 점차 수용돼 갔다", "한국인들을 내쫓은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신시가지를 조성했다", "일본으로 농산물을 실어 나르고", "철도를 이용해 먼 거리 여행도 가능해졌다"고 기술해 놓았다. 어떤 느낌이 들까? 마치 일본 학생들이 배우는 일본국사교과서 같지 않은가?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서는 "일부 여성들이 희생당했다"는 짧은 내용이 담겨 있는가 하면 독립운동을 다룬 본문에서는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이름까지 빠져있을 정도다.


지난 2013년 정부가 추진하려다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혀 포기했던 교학사 교과서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교학사교과서에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인반민족 행위자로 규정한 장덕수, 이종린 등은 사진과 함께 독립운동 서술 부분에 담겨 있었다. 특히, 친일파로 꼽히는 <동아일보> 창업주 김성수에 대해서는 '김성수의 광복 직전 동향' 꼭지를 통해 항일 운동을 한 것으로 묘사돼 있다. 김성수가 19447월 일본 총리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을 두고는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표현도 했다. 다수의 친일 기고문에 대한 언급은 빠진 채, 일부 친일 기고문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다'고 표현했다. 또 다른 친일인사 최남선을 두고는 공과가 공존하는 인물로 포장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승만은 당시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지도자였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또 새마을운동을 '농촌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며 긍정적인 측면만 소개하는가 하면 유신의 배경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장기집권야욕보다는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에 무게중심을 두기도 했다. '5·16 혁명공약'을 소개하면서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로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는 마지막 6번째 공약을 빼기도 했다. "518일 광주에서는 대규모의 시위로 표현, "진압군이 투입되면서 대규모 시위로 번지게 되었다"며 광주항쟁을 폄훼하는 등 오류만 모두 453건에 달했다.


학생들이 이런 교과서를 배우면 우리 역사를 어떻게 인식할까? 정부가 학교에 채택을 권유하다 실패했던 교학사교과서로 우리역사를 배우면 친일을 미화하고 10월 유신이 정당하다고 믿게 된다. 교학사교과서 채택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친일과 유신을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이승만을 국부로 8·15광복을 대한민국 건국절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지 출처 :구글 검색에서 >


8·15가 건국절이 되면 단군조선은 어느 나라며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은 누구의 나라인가? 야당을 비롯해 학계나 학부모단체까지 나서서 국사교과서 국정제를 반대라는 이유다. 교학사교과서가 각 학교에서 채택률 1%를 밑돌자 박근혜 대통령은 자라나는 아이들에 역사교육 통해 올바른 국가관과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길러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면서 정부의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많은 사실 오류와 이념적 편향성 논란 있는데, 이런 게 있어선 안 된다. 교육부는 이런 문제가 다시 발생 않도록 이번 기회에 사실에 근거한 균형 잡힌 역사 교과서 개발 등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멀쩡한 한국영토인 독도를 일본 땅이라며 2세 일본 국민들이 배우는 교과서에까지 기록하도록 지시한 일본정부를 보면 이성을 잃었다는 감을 감출 수 없다. 우리 정부는 어떤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게 은혜를 입은 세력들은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기를 좋아할까? 마찬가지고 이승만시대, 유신시대,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정권시절 그들과 함께 했던 세력들은 역사를 객관적인 사실이 기록되기를 원치 않는다.


역사교과서가 이념 주입, 선전과 선동, 극단적 국가주의, 인종주의 등을 추동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 교과서 집필과 발행은 국정이 아닌 검인정과 자율발행이 세계적 추세다. 피교육자에게 정권에 입맛에 맞는 하나의 역사관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려는 교과서 국정화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고 아이들의 교육을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정권을 비호하려는 의도다.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시도는 중단해야 한다.


- 이기사는 '마음을, 세상을, 자연을 맑고 향기롭고'(2015. 11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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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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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3.07.20 07:00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하거나 수업시수를 늘리는 등 최근 거론되는 역사교육 강화 방안은 공교육 체제 와해와 사교육시장 팽창을 초래할 수 있다"

 

"(한국사 수능 필수 지정은)사회탐구영역 선택 과목에서 타 과목의 존립을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한국사회과교육학회)

 

"한국사 수능 필수는 역사교육 강화를 위한 가장 효율적 수단이다"

 

"이 문제를 교육계 내부의 밥그릇 싸움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국사 수능 필수 과목 지정 등 역사교육 강화’를 놓고 교육계가 시끄럽다.

같은 사안을 놓고 한국사회과교육학회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어 학부모와 교사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두 단체의 주장 중 누구 말이 옳을까?

 

역사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 조상들의 삶과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지만 문화민족으로서 자부신과 긍지까지 의심케 하는 심각한 문제다.

 

 

역사교육 강화는 서울의 한 일간지와 입시 전문업체가 전국의 고등학생 5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3년 청소년 역사인식’ 결과에 따르면 국내 고등학생 10명 가운데 7명이 한국전쟁을 '북침'으로 알고 있다는 보도로 촉발됐다. 뒤에 알고 보니 설문문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의 응답이라는 게 밝혀진 해프닝이었지만 대통령까지 나서게 됐다. 

 

역사교육강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참이 없다.  3·1운동을 3점 1운동으로 읽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이토 히로부미를 누가 저격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수능에서 한국사를 선택한 수험생은 전체 수험생의 7.1%에 불과하다는 보도는 우리역사가 청소년들로 부터 얼마나 홀대받고 있는가를 증면하고 있다.

 

역사교육 강화를 위해 교육부는 고교생의 한국사 이수단위를 현행 5단위에서 6단위로 늘리고 집중이수제에서 국사과목을 폐지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이와 함께 한국사를 수학능력고사에서 필수교과로 할 것인지의 여부는 이 달 말까지 결정해 발표하겠다고 한다. 

 

 

역사교육강화에 대해 이이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단순히 수업시간 수만 늘리거나 수능에서 필수과목으로 바꾼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물론 사회교과 11과목 중 역사 교과시간 수를 늘리면 타교과가 위축되거나 혹은 홀대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일리기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교육을 강화해야하는 당위성은 부정할 수 없지만 어떤 방법으로 강화할 것인가가 문제다.

 

우리역사는 사학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수구세력과 진보세력, 애국세력과 매국세력, 보수세력과 진보세력간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뉴라이트계열의 수구세력들은 한국현대사학회의 '중·고등 한국사교과서 분석과 제언' 학술대회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조선 사회를 변혁하고 외세 침략에 맞서려 한 투쟁으로 본 관점은 북한 학계와 닮은 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현행 교과서들은 해방 후 좌익이 신탁통치를 받아들인 것이 소련의 지시 때문이란 점을 감추고 있다"며 교과서가 진보세력들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자고 건의했던 게 뉴라이트계의 시각이다. 이런한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만든 교과서가 고교 한국사교과서 검정심의에서 8종이 본 심사를 통과했다고 한다. 물론 최종 결과는 8월 30일 발표되겠지만 이들이 만든 교과서를 많이 배울수록 애국심이 높아지고 민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강화될까?

 

국정교과서가 아니라 검인정교과서이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수학능력고사라는 과정이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나라에서는 어떤 과목도 내용이 많으면 수험생의 부담만 늘어나게 된다. 수능점수를 잘 받기 위한 암기 량만 늘리는 역사교육강화는 역사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기는커녕 역사 공부에 대한 진저리만 내게 하는 건 아닐까?

 

-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서남수교육부장관이 ‘5·16군사정변’을 놓고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14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5·16과 5·18이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대립된 이슈라고 생각하느냐. 5·16은 군사정변이냐, 구국의 혁명이냐”는 질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서장관의 5.16, 5.18에 대한 정체성확인 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리에서도 ‘5·16을 군사정변으로 보느냐, 혁명으로 보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양해를 바란다”고 말해 교육수장으로서 자질을 의심받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교과서에 기술한데로 ‘5.16은 군사정변이요, 5.18은 민주화운동’이라고 답변은 했지만 불편한 심기는 그대로다. 그가 5.16이나 5.18에 대한 답변을 소신대로 못하는 이유는 임명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눈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사가 만신창이 되고 있다. 일베의 막말파동, 조중동의 역사왜곡, 뉴라이트 인사들이 이끄는 한국현대사학회가 집필한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교학사)의 검정심의 본심사 통과 등등... 일제시대는 축복으로, 광주는 북괴군의 개입으로, 5.16은 혁명으로 공공연하게 왜곡시키고 있다. 유신시대 관료, 박정희시대 개발논리가 목소리를 내고 사이비역사학자들은 때를 만난 듯 기고만장이다.

 

 

 

수구세력의 역사왜곡으로부터 우리역사를 지킬 방법은 없을까?

학교에서의 역사교육은 사건중심의 역사다. 원인, 경과, 결과로 나눠 시대별로 사건을 암기하는 게 역사공부의 전부다. 선사시대부터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 현대사...로 훑어 내려오면서 건국과정에부터 통치조직, 관료체제, 문벌귀족, 외교관계, 종교, 문화... 에 대한 사건이며 자료를 빠짐없이 배운다.

 

역사적 사실을 많이 기억하는 학생이 역사공부를 잘한 학생일까? 시험을 위해 배운 공부는 시험이 끝나면 끝이다. 역사 지식을 많이 암기하고 있는 학생이란 퀴즈대회에서 우승을 할 수는 있지만 역사를 보는 안목이나 역사의식은 제로다. 역사공부는 과거에 있었던 구체적인 사건을 모두 배울 필요가 없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가치 있는 사실(史實)을 통해 오늘을 사는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 지식이란 나와 무관한 역사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첫째, 나와 무관한 역사는 역사로서 의미가 없다.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에서 일어났던  사실(事實)을 모두 외울 필요가 없다. 내가 알아서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史實)을 통해 지혜를 얻지 못한다면 역사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역사공부란 내가 소외된 역사, 양반중심의 역사, 서울중심의 역사... 그런 역사를 교과서대로, 하나라도 더 많이 외워야 좋은 점수를 받는게 역사공부라고 가르치고 있다.

 

역사공부는 나를 찾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재의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 또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나를 찾는 작업... 그것이 역사공부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가족의 역사, 우리고장의 역사부터 배워야 한다. 내가 빠지고 내 가족, 우리고장과 무관한 역사가 애정이나 관심이 있을 리 없다.

 

내가 실종된 역사는 역사로서 가치가 없다.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샅샅이 공부했지만 시험이 끝나면 기억에 남는 게 없다면 그런 역사적 지식이란 시험용일 뿐이다. 선조들이 우리역사와 문화를 가꾸고 지키는 삶을 배우면서 내가 역사의 빚을 지고 있다는 부채의식(역사의식)을 깨닫지 못한다면 역사공부란 헛수고로 끝날 뿐이다.

 

둘째, 제대로 된 역사는 사관(史觀)부터 가르쳐야 한다. 

 

똑같은 사건을 다른 모습으로 비춘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1135년에 일어난 ‘서경천도운동’의 경우, 옛날 고등학생들이 배우던 교과서에는 ‘승려 묘청 등이 금국정벌론과 서경천도론이 개경 귀족들의 방해로 무산되자 서경(西京)에서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 군호(軍號)를 천견충의군(天遣忠義軍)이라 하여 대위국(大爲國)을 선언하고 일으킨 반란이다.’라고 기록했다.

 

그런데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사학의 선구자인 단재 신채호선생은 ‘서경천도운동’을 두고 '조선역사상 1천년래 제1대 사건'이라 했다.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의 실상은 ‘낭가(郎家)와 불교 양가 대 유교의 싸움이며, 진취 사상 대 보수 사상의 싸움이니, 묘청은 전자의 대표요 김부식은 후자의 대표였던 것이다. 묘청이 패하고 김부식이 이겼음으로 조선사가 사대적, 보수적, 속박적 사상인 유교 사상에 정복되고 말았다.’고 해석하고 있다.

 

왜 똑같은 사건이 하나는 ‘난(亂)으로 또 하나는 ’일천내 일대사건‘으로 달리 보게 되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역사를 어떤 안경으로 보는가하는 사관(史觀)의 차이다. 같은 물이라도 그것을 담는 그릇의 모양에 따라 물체의 형태가 다르게 보이듯 역사도 마찬가지다. 우리역사에는 수많은 민란(?)이 있었다. 양반중심의 사관에 따르면 무지랭이 민초들이 일으킨 난(亂)일뿐이지만 민중사관의 입장에서 보면 민초들의 권리찾기 항쟁이요, 민중의 정당한 유구다.

 

사관이란 역사를 해석하는 기준이다. 서경으로 서울을 옮기는 일 하나를 두고 한쪽에서는 ‘난’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1천년만에 있을까말까한 대 사건‘으로 보는 차이만큼이나 다르게 보이는 게 사관이다. 이렇게 역사란 황국신민화라는 식민사관도 있고 왕이나 귀족이 역사창조의 주인이라는 왕조사관도 있다. 민중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보는 민중사관도 있고 민족주의사관, 유물사관 불교사관, 기독교사관... 등 다양하다.

 

실제로 우리역사에 임금님의 역사, 양반의 역사는 있지만 서민의 역사, 민초들의 역사는 없다. 서울의 역사는 있어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사는 없다. 왕의 생각, 양반의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 만드는 역사란 나를 위한 역사공부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로서의 역사일 뿐이다.

 

 

골품제의 경우를 보자. 골품제란 ‘공복(公服)의 빛깔, 착용할 수 있는 옷감의 종류, 관(冠)의 재질, 요대(腰帶) 및 신발의 재질, 수레에 사용하는 장식품의 종류, 일상생활의 용기까지도 골품에 따라 차등 있게 구분하였다는 것까지 상세히 배우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는 계급 없는 평등사회인지 부모의경제력으로 사회적 지위가 대물림되는 양극화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과거의 사실(史實)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해석해 내는 일.. 그것은 제대로된 사관을 배울 때 가능한 얘기다. 사실이 모두 과거에 있었던 사실(事實)로 파지(把持)의 대상이라면 그런 지식이란 시험 점수를 높게 받을 때나 필요할 뿐이다.

 

내가 실종된 역사. 사관 없는 역사를 안다는 것은 무의미철자를 암기한 것이나 진배없다. 친일사관으로 씌여진 역사, 양반이 역사의 주인인 역사는 삶의 안내자가 될 수 없다. 내일의 주인공들에게 사관없는 이데롤로기로서의 역사를 가르치는 역사교육은 이제 그쳐야 한다.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한국사’하면 무슨 생각이 나지요?

 

‘우리역사의 형성과 고대국가’ ‘고려와 조선의 성립과 발전’... 단군신화에서부터 삼국시대....고려와 조선 그리고 근대국가와 현대사회...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우리나라 역사는 학생들에게 참 재미없고 어렵기만 한 과목입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벌써 세 번째 배우게 됩니다.

 

‘국사’하면 머리 아프다. 원시시대 무덤 이름이며 고인돌이 어떻고...복잡한 나라 이름이며 여기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복식이며 식생활, 그 많은 책이름이며 토지제도, 계급, 그리고 그 많고도 많은 사건의 원인, 경과, 결과를 연대까지 외우려면 ‘아! 머리가 아프다’ 그런 생각이 들지요?

 

이렇게 어느 임금 때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데 언제, 왜.. 이런 식으로 외우는 역사는 정말 시험을 위해 준비하는 나와 무관한 관념적인 지식의 암기일 뿐 나를 알게 하고 내 삶에 도움을 주지도 못하는 그런 지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실은 역사가 어려운 과목이 아니랍니다. 역사과목이 재미없게 된 이유는 시험 준비를 위해 외우기만 해야하는 암기 과목이 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역사를 애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과거의 일(사건)이 내일의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런 지식이야말로 시험을 위한 지식일 뿐이랍니다.

 

예를 들면 동학농민전쟁이란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군에서 교조 최제우(崔濟愚)가 풍수사상과 유(儒) ·불(佛) ·선(仙)의 교리를 토대로 서학(西學:기독교)에 대항하여 ‘인내천(人乃天):천심즉인심(天心則人心)’을 내걸고 일어난 학정에 저항한 운동‘으로 암기한다면 그런 공부란 시험용일 뿐이지요.

 

‘동학도’들이 중심이 되어 1년 동안에 걸쳐 무려 30∼40만의 희생자를 낸 사건을 ‘운동’이라고 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혁명’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현대사의 ‘5·16’도 어떤 학자는 ‘혁명’으로 어떤 학자는 ‘쿠데타’ 혹은 ‘정변’이라고 기술하는 이유가 뭘까요?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으로 ‘사관(史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상 : 고 2~3학년 학생

 

주제 : 사관(史觀)이란 무엇인가?

 

학습목표 : 사관을 이해하고 역사를 보는 관점을 이해한다

 

차시 : 2/3 차시

 

 

역사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국사교과서는 우리나라에서 4,345년 동안 일어났던 모든 사건의 기록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그 많은 일들 중 왜 교과서 한권에 담길 내용만 기록해 놓았을까요? 국사 책에 기록된 사건은 누가 선정해 교과서라는 책에 담아놓았을까요?

 

- 역사는 누가 기록한 것일까요?

 

교과서에 담긴 역사는 사실(事實)이기도 하지만 사실(史實)이기도 합니다. 그 많고 많은 사건 중 어떤 건 사실(事實)이 되고 어떤 건 왜 사실(史實)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사가(史家)들이 ‘가치 있다고 선택한 사실(事實)’...을 골라 역사책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事實) 중에 사실(史實)이 되는 건 전적으로 역사가의 가치기준에 따른 선택이라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과서에 담긴 사건의 내용 즉 사실(事實)은 사실(事實)이 아니라 사실(史實)이 된 것이랍니다.

 

역사가가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가에 따라 역사책은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과거 교과서에는 아메리카를 찾은 사건을 두고 ‘신대륙의 발견’이라고 기록했던 일이며(사실은 원주민의 입장에서 발견이 될 수 없는데...) 5·16을 혁명이라고 기록하거나 민주주의를 부정한 10월 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기술한 교과서가 그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

역사는 사가의 시각 즉 사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역사가의 역사를 보는 시각(가치관, 세계관)을 우리는 사관(史觀) 혹은 역사관(歷史觀)이라고 합니다. 서민들의 입장에서 기록한 역사를 민중사관(民衆史觀)이라하고 지배자들, 양반들의 시각(가치관, 세계관)에서 기록한 역사를 영웅사관(英雄史觀)이라고 합니다. 민족주의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면 민족사관이 되고 하느님이 보호하사 오늘의 역사가 존재했다고 보는 사관은 기독교 사관이라고 합니다.

 

역사는 이렇게 민초들의 입장에서 쓰면 ‘민중사관’이 되고 지배자들 입장에서 쓰면 ‘영웅사관’이 된답니다. 삼국유사란 일련이라는 스님이 썼으니 당연히 불교사관이 되겠지요. 기독교사관에 의해 역사를 기록할 수도 있고 중국이나 일본의 입장에서 기록된 역사는 사대주의 사관이 되는 것입니다. 김부식 같은 이가 쓴 ‘삼국사기’란 바로 대표적인 사대주의 사관에 의해 기록된 역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불교신자가 기독교사관에 의한 역사를 배우면 역사를 이해하기 어렵듯이 서민들이 왕의 시각에서 쓴 역사를 배우면 ‘존재를 배반하는 가치관’을 가진 인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관을 알기만 하면 사실(事實)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관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장래 노동자가 될 사람의 머리속에 양반의 생각을 갖도록 만드는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내가 배운 역사, 황국신민화를 외치던 식민사관 학자들이...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수년 전 까지만 해도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는 주로 식민사관. 혹은 실증주의사관에 의해 기록된 역사였습니다.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학자들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근대화 시켜준 은인의 나라라는 가치관을 역사 책 속에 담아놓았지요. 영웅사관에 의한 역사 즉 왕이나 귀족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사관이나 일본이 우리나라를 근대화시켜준 은인의 나라라는 가치관으로 쓰인 식민사관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우리민족에 대한 열등의식이나 일본은 위대하다는 사대주의 시각을 갖게 만들겠지요.

 

-왜 ‘민중의 의거’가 ‘민중의 난’으로 기록한 이유...?

 

과거의 역사교과서에는 ‘서경천도운동’을 ‘묘청의 난’으로 만적의 의거는 ‘만적의 난’으로 ‘동학혁명’은 ‘동학 난’으로 기록했었답니다. 현대사에도 제주폭동이니 여수반란사건으로 기록했었고요.

 

단재 신채호선생님은 1175년에 일어났던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조선 1천년간 제1대 사건’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왜 ‘난(亂)이 ‘운동’으로 바뀌었는지는 바로 그 사관이 민족주의 입장이냐 아니면 사대주의 사관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인가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기록된 것입니다.

 

어떤 역사가 진짜 역사일까요? 사관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역사라는 것도 모르고 교과서에 있는 지식을 금과옥조로 생각해 외우기만 했던 역사 지식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신학 없이 읽기만 한다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듯이 사관(史觀)도 없이 교과서 지식이 역사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쪽 역사, 왜곡된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배운 역사는 어떤 사관(史觀)으로 쓰인 역사지식일까요?

 

-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5.08 05:00



2012년 고교 입학생부터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배우게 된다고 한다. 교육과학부는 "학생들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우리 영토를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갖게 하려는 강화방안’을 마련, 2012년 고교 입학생부터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교과부가 내놓은 방안에 따르면 현재 고교에서 선택 과목인 한국사를 내년 고교 입학생부터 문과. 이과. 예체능 등 계열과 인문계고. 특성화고 등 학교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고교생이 이수해야 하는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 입학생들은 졸업 때까지 85시간(5단위) 안팎으로 한국사 과목을 배우게 된다.



교과부가 마련할 역사교과서가 어떤 내용으로 채워 질 것인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역사와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재미있게 베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란 무엇일까?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을 예를 들어보자.

묘청의 난은 고려 인종(仁宗) 13년(1135) 묘청(妙淸)이 풍수지리의 이상을 표방하고, 서경(西京, 지금의 평양)으로 천도할 것을 주장하면서 일으킨 반란이다..... 17대 인종이 15세의 어린 나이로 등극하여 국내 정세가 자못 불안해지자, 음양도참설을 교묘히 이용한 묘청이 서경(지금의 평양)으로의...’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은 서경천도운동을 이게 배웠다. 지금도 백과서전을 보면 이렇게 기술해놓고 있다.

그런데 똑같은 사건을 신채호선생님의 시각은 180도 다르다.

신채호선생님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에 대하여
“서경 전역(戰域)을 역대의 사가들이 다만 왕사(王師 : 김부식)가 반적(反賊)을 친 전역으로 알았을 뿐이었으나, 이는 근시안의 관찰이다. 실상은 이 전역이 낭(郎)·불(佛) 양가 대 유가(儒家)의 싸움이며, 국풍파 대 한학파의 싸움이며,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며, 진취 사상 대 보수 사상의 싸움이니, 묘청은 곧 전자의 대표요, 김부식은 후자의 대표였던 것이다.

이 전역에서 묘청 등이 패하고 김부식이 승리하였으므로 조선의 역사가 사대적·보수적·속박적 사상, 즉 유교 사상에 정복되고 말았거니와, 만일 이와 반대로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 등이 승리하였더라면 조선사가 독립적·진취적 방면으로 진전하였을 것이니, 이 전역을 어찌 ‘일천년래 제일대사건(一千年來第一大事件)’이라 하지 아니하랴.”
라고 하였다.

왜 같은 사건이 하나는 반란이요 하나는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 되는가? 역사란 학자에 따라 보는 안목이 다르다. ‘왕의 눈으로 역사를 보는가?, 아니면 민중의 눈으로 역사를 보는가?’에 따라 역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쳐진다. 민중이 폭정에 저항한 사건의 경우 왕이나 지배세력의 눈으로 보면(왕조사관) 반란으로, 민중의 눈으로 보면(민중사관) 혁명이 된다.


민족의 주체성이라는 눈으로 보면 묘청의 천도는 ‘운동’이나 ‘혁명’이지만 사대주의 시각으로 보면 묘청이 일으킨 ‘난’이다. 교과서가 재미없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역사를 암기한 지식의 양으로 등수를 매기는 관념적인 교육 때문이었다. 입시준비를 위해 암기한 지식은 시험이 끝나면 폐기처분의 대상이 된다.

교과서가 식민주의 사관, 영웅사관으로 씌어 있다면 노동자로 살아야할 학생들의 머리에 양반의식을 집어넣는 의식화 작업인 것이다. 교과부가 학생들에게 "우리 역사와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우리 영토를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갖게 하려면...’ 민족사관에 의한 역사의식을 제대로 심어주는 교육부터 해야할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