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가 지난 2001년 7월 18일 썼던 글을 여기 올립니다. 거의 10년전... 이 글을 준비하고 있는데 중앙일보에 <교육부 '일제고사' 폐지 2년만에 U턴 "모든 학생 학력진단"> 이런 기사가 실렸네요. 교원단체에서 ‘폐지됐던 학업성취도평가를 부활시키려는 음모’라는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우려가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육평가본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초학력 진단은 학급 학생 30명 중 학력미달 1~2명을 찾아낼 뿐, 나머지 29명에 대해서는 아무 정보도 주지 못한다”며 “학력미달 뿐 아니라 기초·보통 수준인 학생까지 파악하고 더 나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모두를 위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성적으로 다시 한 줄 세우는 시대를 예고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점수로 사람의 가치까지 서열매기는 세상을 다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위의 표를 한번 보십시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고위층과 서민... 2001년 경남의 00고등학교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지 않습니까? 에어컨 방에 사는 고위층과 찜질방에 사는 민초들.... 문재인대통령이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말했지요. “상식이 상식이 되고 당연한 것이 당연한 그런 나라....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가난에 허덕이지 않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지금 그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까? 


<이미지 출처 :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에어컨반 학생과 찜질방반 학생


“전교생을 성적순으로 나눠 학년별로 1~60등까지는 에어컨이 가동되는 자습실에서, 나머지 학생들은 냉방시설이 없는 일반교실에서 하고 있다.”(경남도민일보 2001년 7월 17일보도)는 보도를 읽고 있노라며 같은 교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자립형 사립고 전환문제로 말썽을 빚고 있는 거창 00등학교가 재학생들의 자율학습실 시설을 성적순으로 갈라 일부 학부모로부터 비난을 사고 있는 학교다. 00고등학교에는 현재 1학년 253명, 2학년 245명의 재학생들이 정규수업을 마치고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학교측은 학생들을 전교 성적순으로 나눠 학년별로 1~60등까지는 에어컨이 가동되는 자습실에서, 나머지 학생들은 냉방시설이 없는 일반교실에서 공부하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00고는 1,2학년 다같이 7개 반으로 구성돼 있으며 1개 반 인원은 30여명 수준이다. 따라서 2개반 규모 인원만 냉방시설이 가등되는 별도 학습실에서 자율실습을 하고 있다.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더니 교육을 한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한지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학교에 교육이 가능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백번 양보해 학교의 주장대로 학교 예산상 전교실에 에어컨을 설치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갈라 우수학생은 에어컨 교실에 앉아 공부하게 한다는 발상을 교육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묻고 싶다. 00고의 에어컨반 소식을 들은 교사들은 ‘이러한 발상을 한 학교의 당국자는 전직이 혹시 사육사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십여전 전에는 일제고사가 있어 학년별 성적을 산출하고 그 결과를 복도 게시판에 공고하던 때가 있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성취감으로 만족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은 ‘공개 망신’을 시키는 게시를 보고서는 ‘죽고싶은 심정’이었다고 했다. 아니 실제로 수많은 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거나 자살이 끊이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 ‘부끄러운 줄 알면 열심히 공부해 성적을 올리면 될 것이 아니냐?’고 할 지 모르지만 우군가는 어차피 꼴찌를 해야 하고 그는 끝내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다.


성적이란 무엇인가? 도덕을 100점 받은 학생은 과연 도덕적인 인간인가? 인간이 만든 불안전한 평가방법으로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로 하여금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게 했으며 자살조차 강요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그동안 인성교육이 아닌 경쟁교육으로 사람의 가치를 서열화해 오던 방식에서 탈피하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다. 평가가 완전무결하지 못하면서 성적인 낮은 학생을 ‘하등동물 취급’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않는한 교육실패는 반복될 뿐이다.


“자식공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똑같은 육성회비 내고 누구는 찜통더위에서 공부하고 누구눈 에어컨 밑에서 공부 한다는게 말이 되느냐?”라는 00고 학부모의 항변이 아니더라도 아이들 가슴에 상처를 주는 일은 중단해야 한다. 학교현장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로지는 이러한 행위는 교육이 아니라 폭력이다. 계급사회에서나 있음직한 인간을 차등화는 것은 인간존엄성에 대한 배신이다. 인간에 대한 철학이나 애정이 없는 사람이 교육을 한다는 것은 학생들에 대한 죄악이요 범죄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쟁이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불완전한 잣대로 인간의 가치를 서열화 하는 일은 그쳐야 한다. 사람의 외모가 그러하듯 능력이나 취미도 각양각색이다.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생각 똑같은 인간을 만드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서로의 차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민주주의 사회다. 학교는 남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과시하고 약자를 무시하도록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을 가르치는 것임을 00고등학교 관계자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 2001년 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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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1.12.20 06:24


#1 서울의 한 중학교. 지난 5월 한 학생에게 얼굴을 맞은 담임교사가 병가를 내는 일이 발생했다. 한 달 뒤에는 한 학생이 교사에게 “야 이 씨X XX야, 휴대폰 달란 말이야”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2 지난 3월 경기도 한 중학교. 선생님이 실내외화 구분을 하지 않는 학생들을 지도하자 학생들은 욕설을 했다. 수업시간에 전자 담배를 버젓이 피우는 학생도 있지만, 제재 수단이 없다.
#3 지난 6월 초순 인천의 한 중학교. 한 학생이 휴대폰으로 여자 선생님의 스커트 아래를 촬영, 동영상을 유포하는 일이 벌어졌다. 학교 측은 해당 학생에게 전학을 권고했지만, 이 학생은 계속 버티고 있다.(출처 : 한마음 교사되기 ‘교원임용고시’)


이 기사는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이 전하는 현실이지만 유사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어쩌다 학교가 이 모양이 됐을까? 이런 사건이 어제 오늘도 아닌 수십년 전부터 있었지만 사람들은 한결같이 문제 학생의 도덕성만 질타하거나 교권이 무너졌다며 위기의 교육에 대한 책임을 교사나 학교에 돌리곤 한다. 성적이 나빠 자살하는 학생을 보고도 성적 때문에 자살한다면 살아남을 학생이 몇이냐며 자살한 학생의 심약함을 나무라곤 한다. 수업 진행이 어려운 교실, 입시과목이 아니면 공부를 하는 학생이 몇이 되지 않는 교실... 시험이 끝나면 교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난장판이 되는 교실을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할까?


교육을 살릴 길은 없을까? 이런 현실에서도 교육위기를 말하면 하나같이 전문가다. 수많은 논문이 발표되고 상담교사제가 도입되고, 수준별 교육이니, 위클리 스쿨이니, 대안학교를 만들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교육정책이 발표되고 수많은 학자, 교육전문가, 박사들이 나서서 대책을 내놓지만 효과가 없다. 아니 날이 갈수록 학생들은 더 거칠어지고 더 잔인해지기까지 하고 있다. 보수적인 교원단체에서는 교권을 말하고 체벌이 있어야 한다며 인권조례를 만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체벌을 허용하고 사랑의 매를 허용하면 무너진 교실이 살아나고 공부하는 교실, 인성교육이 가능할까? 모든 문제가 그렇듯이 원인을 두고 ‘아랫돌 빼 윗돌괘기’식 처방은 문제를 더더욱 꼬이게 만들 뿐이다. 어쩌면 너무나 간단한 문제,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문제를 왜 이토록 힘겨워 하고 풀지들 못할까?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이다. 학교에서 교육만 제대로 한다면 원하는 인간을 길러내지 못할 리 없다. 학교는 교육하는 곳인가? 이런 질문에 선 듯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있을까? 지금학교는 교육하는 곳이라기보다 시험점수를 잘 받아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준비하는 곳이 된 지 오래다. 예체능교육이나 인성교육을 제대로 할 리 없다.

                       <위의 모든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교육을 살리는 길은 이외로 간단하다. 학교에는 교육을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커리큘럼(curriculum)이라고도 하는 교육과정이 있다. 교육과정이란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그 내용을 체계적으로 조직한 교육의 전체 계획’이다. 학교가 교육과정만 제대로 운영한다면 교육이 잘못될 리 없다. 일류대학만 보내면 좋은 학교가 되는 현실에서 교육과정 정상화가 가능할 수 없다. 백점만 받으면... 일등만하면 최고다. 교육다운 교육,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을 해야 하는데 일류대학이 교육과정이요, 교육의 목표가 됐기 때문이다. 

학교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게 누굴까? 교육과정을 파행으로 몰고 간 장본인은 다름 아닌 교과부요 학교요, 학부모다. 지육(智育), 덕육(德育), 체육(體育)을 해야 할 학교에 덕육과 체육은 팽개치고 지육(智育)만 하고 있으니 교육이 이 지경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을 살리는 길은 어렵지 않다. 대학서열화를 없애고 대학을 평준화하면 된다. ‘대학평준화’를 주장한지 꽤 오래됐지만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들은 성적 때문에 죽어가고 교실은 난장판이 되어 가는데... 이대로 교육위기 타령이나 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교육을 살릴 것인가? 이대로 두면 결과는 뻔하다. 일등만 살아남는 잔인한 교육, 성적지상주의, 막가파식 서바이벌 게임을 교육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 한 교육에 대한 희망은 없다.

-이 기사는 충남도청인터넷신문(http://news.chungnam.net/news/articleView.html?idxno=74860)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5.12 17:41


- 이명박정부의 시장화정책, 그 끝은 어디인가? -


이명박후보가 당선되고 착잡한 심정으로 썼던 글입니다. 당선되기가 바쁘게 쏟아냈던 신자유주의 친부자정책을 보고 '노동사회교육원' 회지에 썼던 글입니다.

세월이 지난 글을 본다는 게 진부한 면도 없지 않지만 예상했던대로 경제문제며 청년실업문제, 남북문제, 교육, 환경 등 참담 그 자체입니다. 임기를 1년 남짓 남겨놓고 이제 그가 꿈꾸던 부자들의 세상, 마지막 의료보험민영화가 그 절정을 이룰 것 같습니다. 
그 때, 무엇을 걱정했는지 걱정했던 일이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 지 한 번 뒤돌아 보는 의미에서 이 글을 옮겨 놓습니다.

홍세화씨가 말했던가?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이라고...

‘자신은 노동자이면서 머릿속에는 노동자가 아닌 경영자라고 착각하는 사람’
을 일컬어 그렇게 표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병리학적으로는 자기치료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이런 사람이 많을수록 본인은 물론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닐까? 덕분에 이명박 정부가 나타났고 부자들을 위한 정치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영어 몰입교육’,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 ‘학교자율화 추진 3단계 계획’...등 점입가경이다. 오죽하면 2메가바이트(2MB)라고 했을까? 머지않아 ‘철수한 아프칸에 파병 추진’, ‘의료보험 민영화’, ‘한반도 대운하 건설’, ‘법인세 인하’... 등 메가톤급 폭탄정책이 기다리고 있다.

‘경제를 살립시다’에 희망을 걸고 이명박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목을 죄는 정책이 드러나자 허탈하고 참담해 하는 분위기다. 이명박대통령의 부자들을 위한 정책에 대한 반응도 가지각색이다. ‘자업자득이다’, ‘당해도 싸지’, ‘국민들도 식겁 먹어봐야 한다’...라는 등.


이명박정부의 탄생은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가진 서민들이 선택한 결과요, 자기 눈을 스스로 찌른 사람들의 업보다.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 평생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자식 사교육비 마련을 위해 온갖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서민들... 그러다 훌쩍 중병에라도 걸리면 파산을 당해 노숙자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 피해자들이 스스로 가해자(?)를 선택한 것이다. 이제 이명박정부 5년동안 당할 서민들의 애환은 ‘학교자율화 추진 3단계 계획’에서 알 수 있듯이 상상을 초월한다.


'강부자 내각'이나 '고소영 청와대' 혹은 '2MB'도 모자라 '매드 카우(Mad Cow) 프렌들리 보이'(MB)라는 별명까지 붙은 이명박대통령의 정책은 노골적이고도 엽기적이다. 조중동이나 기득권 세력과 코드를 맞춰 ‘짜고 치는 고스톱. 부자들을 위한 준비된 정책이 몰고 올 파장은 출범초기부터 후폭풍이 만만찮다. 그가 추진했고 앞으로 추진하려는 ‘시장화정책’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들은 국가의 개입을 최소한 배제하고 ‘시장의 질서’에 나라를 맡기겠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철학에 바탕을 둔 이들 시장 지상주의자들은 복지니 평등과 같은 것은 쓰레기통에 내다버려야 할 가치로 안다

고등학교 사회시간에 조금이라도 졸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이들이 추구하는 세상이란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역사적으로 실패한 정책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을 몰고 왔던 고전 자본주의의 한계는 시장만능주의자들이 불러온 당연한 결과요, 자업자득이었다. 소위 ‘시장실패’로 일컬어지고 있는 고전자본주의의 한계는 자본주의 수호자들에 의해 스스로 수정된다.

자본의 횡포로 위기에 처한 자유주의자들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수정자본주의라는 간판으로 바꿔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큰정부, 개입주의 혹은 복지국가라 붙인 이름이 말해주듯 자본의 논리 시장만능주의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역사가 증명하는 ‘시장실패’란 무엇인가?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이란 ‘외부요소의 개입이 없는 완전경쟁의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소비자나 공급자는 다 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컴퓨터 뚜껑을 열고 무슨 칩의 가격이 얼마며 어떤 공정절차를 거쳐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소비자는 몇 명이나 될까? 소비자가 시장정보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도 없이 자본의 논리에 따라 만들어진 질서란 인플레나 독과점이나 인플레이션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시장실패란 이렇게 ‘시장을 둘러싼 환경이나 재화의 특성상 시장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독과점이나 인플레이션, 환경오염, 공공재의 부족, 실업의 증가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시장만능주의는 1930년대 사상 최악의 세계대공황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고 일선에서 후퇴한다.

사회주의의 등장으로 위기를 느낀 자본주의는 재기의 기회를 노리다가 레이건이나 대처와 같은 자유주의자의 도움으로 신자유주의라는 외피를 쓰고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한다. 레이거노믹스나 대처리즘으로 가장한 신자유주의는 FTA라는 이름으로 세계시장을 누비다가 이명박정부와 코드를 맞춰 한반도에 구체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명박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처음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멀리는 김영삼정부시절 민영화니 자율이니 하는 이름으로 서서히 서민의 목줄을 죄어왔던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대통령으로부터 책봉(?)을 받기 위해 방미 길에 오르고 진상품과 하사품을 주고받는다. 이 과정에서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겠다는 진상품을, 미국은 한국국민들이 비자 없이 왕래할 수 있는 하사품(?)을 주고받았다. 알 수는 없지만 아프칸에 군대파견이나 한미동맹의 새로운 장을 연다는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진상품을 바쳤는지 알 길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이명박대통령은 미국에서 돌아오기 바쁘게 오는 5월부터 미국산 'LA갈비'를 전면 개방해 서민들의 밥상에 올릴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광우병위험을 걱정하지만 잠복기가 평균 10년가량이고, 길게는 30년~60년 정도 지나서야 증세가 날수도 있으니까 이명박대통령으로서는 걱정할 일이 아니다.

대운하건설은 또 어떤가? 삼면이 바다인 국토 환경에서 손쉬운 해양 물류를 외면하고 내륙에 운하를 파서 물류를 개선한다는 발상부터가 황당하다. 건설비용만 해도 무려 16조가 투입된다는 한반도 대운하를 건설하면 홍수뿐만 아니라 환경 파괴와 재난, 문화재 망실... 등 그 피해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명박정부는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 국민의 생명도 국토 파괴도 안중에 없다는 투다. 이대통령이 살리겠다는 경제는 재벌과 강부자내각, 강부자 청와대의 이익이지 서민들의 경제가 아니라는 걸 이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교육은 어떤가? 교육과학부가 지난 4월 15일 발표한 ‘학교자율화추진 3단계 계획’을 보면 어이가 없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초등학생까지 일제고사를 실시해 그 석차에 따라 우열반을 편성하고 건강문제로 폐지됐던 0교시와 야간보충자율수업도 허용했다. 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방과 후 학교에 학원 강사가 수업을 할 수 있게할 뿐만 아니라 학원이 아예 방과 후 학교를 위탁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학업성취도에 따라 수준별로 우열반을 편성하고 서울대반 고려대반, 연세대반...과 같은 특정대학 진학반도 운영할 수 있도록 한 각종 규제지침 29개를 폐지한 것을 ‘학교자율화’조치라 했다.


교사들의 채택비리로 금지했던 학습 부교재 선정지침과 아직도 교사들의 리베이트문제로 말썽이 그치지 않고 있는 사설모의고사 금지지침도 폐지하고 심지어 초등 어린이신문 강제구독 예방 지침이나 교복 공동 구매 지침, 촌지 안주고 안 받기 운동까지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이 학교자율화란다. 학교자율화란 학교가 부패와 불의로터 지켜야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만 폐지한다고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진정한 학교자치란 학교의 주인인 학생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석하고 형식적인 교사회나 학부모회가 법적기구로 보장받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명박정부의 시장논리의 끝은 어딜까? 선거공약에도 명시했듯이 이명박정부의 다음 카드는 의료민영화가 될 것 같다. 현재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요, 국민은 국가로부터 당연한 권리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의료나 교육을 공공성을 포기하고 자본의 논리에 맡겨 돈의 가치를 사람의 가치보다 중요시하고 있다. 영화 ’식코‘에서 볼 수 있듯이 돈으로 사람의 생명을 사고파는 미국의 의료 민영화를 이명박정부가 공약으로 내걸었고 서민들은 그를 지지해 의료 민영화도 코앞에 닥쳐왔다.

뉴라이트 학자들이 기존의 역사교과서가 ‘좌편향 역사인식‘을 심어준다는 이유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내놓았다. 어찌 대안 교과서뿐이겠는가? 사경을 헤매던 국가보안법도 부활시키고 노동운동이며 시민운동의 숨통을 끊어놓을 때까지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이나 ‘개구리 경영론’(개구리를 물에 넣고 서서히 온도를 높이면 개구리 자신은 그 온도를 감지하지 못한 채 50도가 되면 죽어버린다는 이론)처럼 서서히 주권자들을 마취시켜 무력화하고 있다. 삼성특검은 삼성 살리기로 끝내고 철수한 아프칸에 재파병도 시간문제다.

이명박정부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 노동권(근로권), 노동3권, 교육권, 보건권, 환경권과 같은 사회구너적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 차별을 정당화하고 그들만의 자유 그들만의 천국을 만들겠다는 것이 1% 내각이 지향하는 세계다. 이명박정부의 각료와 청와대구성원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해 평균재산이 35억을 넘고 있다.

그들이 비정규직을 위한 정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성장 후 분배를 해도 늦지 않다’던 자본의 목소리는 이제는 대물림으로 정당화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세상은 그들의 천국, 3공, 5공의 부활이 아닐까?

- 이 글은 노동사회교육원회지(연대와 소통 2008년 여름호)에 실린 원곱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시험 감독을 들어갔을 때 일이다. OMR카드를 먼저 나눠주고 문제지를 나눠주려고 하는데 뒤에 앉은 한 학생이 OMR카드에 부지런히 마킹하고 있었다.

‘아~니 문제지도 안보고 답을 적다니...?’

시험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 문제지를 다 나눠준 뒤 문제의 학생(?)에게 다가갔다.

“야! 넌 귀신이냐? 어떻게 문제지를 보지 않고도 답을 적을 수 있니?”

했더니 답지를 완성하고 엎드려 있던 학생이 졸리는 눈을 치켜뜨면서 귀찮다는 듯이...

“선생님! 문제지 보나마나 똑같습니다”

                                   <자료 :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홈페이지에서>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듯이 시험지를 깔고 다시 엎드리는 것이었다. OMR카드를 보았더니 답이 모두 똑같은 번호였다.

이 학생뿐만 아니다. 문제지를 다 나눠준 뒤 5분도 채 안 돼, 5~6명이 시험지를 엎어놓고 엎드린다. 10분정도 지나면 전체 45명 가운데 반 가까운 학생들이..., 시험이 거의 끝날 무렵이면 서너명 정도가 문제를 풀고 있을 뿐이다. 인문계 고교의 시험장 풍경이다.

중고등학교는 매 학기에 평균 2회 실시하는 내신 정기고사(중간·기말고사) 외에도 도학력평가, 모의고사, 일제고사, 고입선발고사, 전국단위 학업성취도 평가 등 적게는 7번, 많게는 12번까지 시험을 본다. 고3의 경우, 진도도 나가기 전 3월부터 수능모의고사를 치기 시작해 연간 한 달 이상을 시험을 치르는데 시간을 보낸다.

평가란 교육과정에 명시한 목표 달성을 측정하거나 교육계획 수립을 위한 정보를 수집, 적용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러나 현재 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평가는 평가가 목적으로 둔갑해 평가 만능주의, 일등지상주의로 변질되고 있다. 학생간. 학급간뿐만 아니라 학교간, 시군단위, 전국단위로 비교, 서열화하고 심지어 교원평가까지 연계하겠다는 것이다. 명문대학 합격자 수로 고교를 서열화하고 고시합격자 수로 대학을 등급화 하는 나라에 과연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할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