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학생과 피해학생간의 학교폭력문제가 교과부와 진보교육감의 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경기도 교육감을 비롯한 진보성향의 교육감은 학생인권보호차원에서 반교육적인 학생부 폭력가해사실 기록을 거부하겠다는 반면 교과부는 폭력사실을 기록하지 않는 시도에 대해서는 특별감사를 실시하는 등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학교폭력...! 반드시 근절되어야 하고 가해학생은 엄벌에 처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처벌이 ‘학교폭력을 근절할 수 있는 방안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와 ‘보복적 처벌 위주의 징계가 전과자를 양산해 폭력의 재생산 확대로 이어지는 반사회적인 방법이 아닌가?’ 하는 문제를 놓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교과부와 진보교육감뿐만 아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세력과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성향의 단체들 간의 대립도 날이 갈수록 첨예화되고 있다. 수구세력들은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학교폭력 가해학생들의 가해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해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하는 반면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성향의 단체들은 학교폭력을 학생부에 가입하는 것은 교육을 하는 학교가 할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개선권고까지 받은 사안을 강행해서 안 된다는 주장이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을까?

 

 

 

학교폭력 가해자의 폭행사실을 학생부에 기록하면 안 되는 이유

 

첫째 학생부 기록은 교육을 하는 학교가 할 일이 아니다.

 

학교는 미성숙한 피교육자를 성숙의 단계로 이끌기 위한 사회화 기관이다. 변화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면 교육이란 무용지물이 된다. 미성숙한 학생들을 교육을 통해 가치내면화하는 학교에 처벌을 능사로 삼는 것은 학교가 할 일이 아니다. 학교가 해야 할 기본적인 책무를 무시하고 보복적 처벌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교육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학생부 기록은 법령을 위배하고 있으며 이중처벌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교과부가 학교폭력을 근절한다는 명분으로 법률도 아닌 훈령을 개정하여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장기간 기록, 보존토록 한 것은 학교폭력대책법 상 명시된 인권침해 주의 의무와 비밀 누설 금지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다. 또한 이미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결정으로 처벌을 받은 학생에게 장래와 관련된 추가적인 불이익까지 주는 것은 헌법상 금지된 이중처벌에 해당한다.

 

셋째, 우리나라 헌법과 국제기준에도 맞지 않는다.

 

학생의 인격권,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자기정보결정권 등은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보장되어야 할 가치다. 학교폭력 사안으로 인한 벌을 받은 학생의 기록이, 형사 처벌을 받은 것 보다 더 오랜 기간 보존되고 장래에 큰 불이익을 미칠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은 법적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죄를 지었으니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은 형법정신에 비추어 옳지 않다. 응보주의는 ‘사적보복금지’에도 위배된다. 나쁜 놈을 처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자력구제다. 우리가 사형제를 반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이다. 잘못을 찾아내 처벌하는 것은 사법기관이 하는 일이다. 학교는 가치기준이 완성되지 않는 미성숙한 인간을 성숙한 단계로 이끄는 기관이다. 아무리 죄가 미워도 공적체제를 통해 응징하듯 학교는 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의 목적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수업시간 잠자는 같은 반 친구의 옆구리를 찌르며 일어나라고 한 행동이 학교폭력으로 오해받아 7년동안 기록이 남게 된 기막힌 사연이 있다. 장난삼아 한 행위가 학교폭력으로 오해돼 폭력전과자(학생부에 기록되는...)로 기록되어 불이익을 당하거나 반성의 기회조차 외면하고 학생부에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것이 학교폭력 학생부 기록이다.

 

 

다른 나라는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학교가 어떤 벌을 주고 있을까?

 

“학생기록부에 기록한 징계 기록은 학생이 중등과정을 종료할 때 삭제한다”

 

프랑스의 학교폭력 대책이다. 어릴 적 잘못이 대입과 취업에서 장애로 작용하지 않도록 특별장치를 두고 있는 것이다.

 

대책도 ‘경고, 꾸지람, 견책, 수업정지, 정학, 퇴학 등 6단계의 징계과정을 두고 있다. 6단계 징계 중 앞의 세 징계는 그 해 학년이 끝나면 학생부에서 삭제된다. 수업정지와 정학 단계의 징계는 1년 뒤에 삭제한다.

 

미국은 어떨까?

 

미국도 ‘근신, 토요 근신, 교내 정학, 교외 정학, 퇴학 등 5단계로 징계하며 ‘교내 정학’ 이상부터 학생부에 적는다‘ 미국은 주(또는 교육구)마다 학생부 징계 사실 기록 여부를 다르기 때문에 사실상 학생부 징계 기재가 대입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학생부에 ‘서면사과, 접촉 금지, 학교봉사, 사회봉사, 특별교육이수,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 퇴학 등 9개 사항을 적도록 하고 있다.

 

이 내용은 초중고 학생 졸업 뒤 5년간 의무적으로 보관하도록 하고 대입 자료로 활용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초등학교 1학년생이 ‘서면사과’ 징계를 받으면 학생부 기재 내용은 11년이 흐른 뒤에야 삭제된다.

 

학교폭력은 반드시 근절해야한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폭력근절대책은 폭력을 근절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학교를 교육하는 곳이 아닌 범법자를 처벌하는 사법기관화하자는 것이다. 학교폭력을 뿌리 뽑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학교를 교육하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 교육 없는 학교에 어떻게 학교폭력이 근절되기를 바라는가?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8.18 06:30


 

 

어쩌다 다음 아고라의 토론자로 참여하게 됐다가 배가 터지도록 욕을 얻어 지금도 배가 부르다. 사람들이 살다보면 욕 안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지 모르지만 신념대로 살다보면 욕을 안 먹기 어렵다. 내가 왜 욕을 먹었는지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글을 워낙 못되게(?) 써다보니 아고라 기획토론 담당자가 Vew의 추천을 받았다며 학교폭력에 대한 토론자로 참여해 줄 것을 제안 받았다. 제 성격이 워낙 남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탓도 있지만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런 생각에서 흔쾌히 승낙하고 ‘학교폭력. 연간 2만4천 800명씩 전과자를 만들겠다고?(2012년 1월17일)’라는 블로그에 썼던 글을 토론방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웬걸... 내 글이 올리기 바쁘게 댓글이 무려 150여개가 달렸습니다. 그것도 원색적인 욕에서부터 인신공격까지...

 

 

‘원론적이고 가해학생 입장에서만 이야기하시는 군요’라든지, ‘탁상공론이군요’와 같은 온건한 비판도 있었지만 ‘전과자로 만들어야 한다.

 

아니 죽여야 한다’느니 이 사람 미친 사람 아닌가 3살 버릇 80살까지 간다고 하던데 미연에 그 싹을 잘라버려야지 저 미래의 살인자들을 위해서 선량한 수천만의 아이들을 죽이자는 건가 선량한 서민의 인권은 없고 오직 살인자 양아치 학생들의 인권만 있냐 이넘아 너처럼 범죄자집안의 자식쉑휘들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캬악 퉤 더러운 동물아....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운영하다보면 알바들로부터 욕을 먹는 것은 예사이고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는 눈에 쌍심지를 돋우며 덤비는 사람도 있다. 종교문제를 얘기했다가는 아예 초죽음이 되기도 한다. 일일이 댓글도 달 수 없고 고스란히 배가 터지도록 욕을 먹어야 한다. 옛날 경남도민일보에 무너진 교실 얘기를 썼다가 학부모회 간부로부터 ‘제자들을 팔아 유명인사가 되고 싶은가’라며 심한 꾸중(?)을 듣기도 했다.

 

내 글을 보고 욕하는 사람들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그들이 욕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폭력 가해학생ㅇ르 두둔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폭력학생을 미워하기는 그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그런데 왜 그들의 눈에는 내가 가해학생을 두둔하는 것으로 보였을까?

 

나와 나를 욕하는 사람들은 폭력을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폭력 그자체를 보지만 나는 폭력을 유발하게 하는 종합적인 요인을 보기 때문이다. 이들의 시각은 찌라시 신문과 교과부의 표퓰리즘의 한계를 벗버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폭력근정대책을 수백가지 내놨으나 해결이 안되는 걸 보면 알수 있는 일이다.

 

‘초등학생 45명, 중학생 569명, 고등학생 302명’

 

무슨 수치일까요? 지난 3월부터 시행된 학교폭력 가해자 학생부에 기록된 학생의 수입니다.

지난 2월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이 시행된 이후 6개월만에 경남에서만 900여명의 학생이 학교폭력 전과자(?)가 됐다. 이대로 가면 해마다 2만여명의 ‘학교폭력 전과자’가 생겨나는 셈이다.

 

염려했던 문제가 현실로 다가 오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학생부에 학교폭력 가해사실을 기록하는 것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가 교과부에 권고까지 냈을까? 그러나 교과부는 "가해학생의 긍정적 변화 모습도 함께 기재해 낙인효과를 방지, 상급학교 진학 등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며 "고등학생의 경우 학생부 기재기간을 졸업 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해 인권침해요소를 해소했다"고 인권위의 권고를 거부했다.

 

학교폭력문제는 반드시 근절해야한다는데 이이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학교폭력은 가해자의 잔인성이며 연령대가 낮아지는 현상을 보면서 근본적인 대책 없이 이대로 두면 수많은 학생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거나 트라우마로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 수도 있다. 그런 현실을 두고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학교폭력을 근절해야겠지만 근본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않고 아랫돌 빼 윗돌괘기 식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학교폭력 문제가 해결될 수만 있다면 가해자의 학생생활기록부가 아라니 주민등록부에 기록하거나 전자발찌라도 채워야 한다. 그런데 원인을 두고 가해 학생에게만 처벌일변도로 나갈 경우 폭력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가해학생을 전과자로 만들어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어 더 큰 폭력범을 만들 수도 있다.

 

‘어린아이를 보고 주위에서 '바보'라고 낙인찍어보자. 그 아이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가? 바보 아닌 바보라는 낙인이 찍힌 아이는 갈수록 의기소침해지면서 자신이 진짜 바보인 줄 의심하게 되어 결국은 진짜 바보가 될 수도 있다’는 게 낙인이론이다. 교도소를 다녀 온 사람이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렇고 ‘위스쿨’(문제아 학교라는 딱지) 출신이라는 낙인 때문에 사회에 적응할 수 없도록 만드는 교육정책도 그렇다. 폭력가해자로 낙인 찍혀 재활의 기회마저 빼앗아 사회로부터 격리하면 그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되겠는가?

 

내가 욕을 들으면서 블로그로에 손을 떼지 못하는 이유가 그렇다. 교육계에 평생 몸담고 있다가 무너진 학교를 두고 정년퇴임을 했다. 무엇이 잘잘못인지 내 눈에 보이는 데 모른 채 하고 살 수는 없다. 욕을 들어도 펜을 꺾지 못하는 이유다. 아니 더 많은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학교를 살리고 아이들이 좀 더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데 작은 보탬이라도 된다면 블로그를 계속해야겠다는 것이 나의 각오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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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총의 교직윤리헌장- 우리의 다짐에는 '학생의 인권과 인격을 존중하다'고 명시했다>

 

교사에게 사법권을 주면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을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교과부와의 교섭에서 “교사에게 특별사법경찰권(준사법권)을 부여해 달라”고 요청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특별사법경찰권이란 교사가 검찰의 지휘를 받아 수사권을 행사하는 사법경찰권으로 이 권한을 갖게 되면 학교폭력에 연루된 학생을 체포·신문·구속영장 신청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교도 행정이나 식품위생관리, 삼림 관리 등 전문 수사인력이 부족한 분야에 한해 일부 공무원에게 제한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고 있는 제도다. 한국교총은 23일 이와 같은 특별사법경찰권을 교육과학기술부와 단체교섭을 위한 1차 본교섭에서 정부에 공식 요구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횝회 안양욱회장이 교과부와 교섭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교사가 특별사법경찰권을 갖게 되면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학생과 학부모를 소환하고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를 경찰과 검찰에 수사 자료로 넘길 수 있게 된다. 한국교총은 “학생인권조례 추진 후 교사들의 학생 생활지도권이 무너졌다”면서 “교사들이 효과적으로 생활지도 활동을 하기 위해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행할 자와 그 직무 범위에 관한 법률’ 개정을 요구”, “법률 개정을 통해 교사에게 학교폭력 사건을 수사할 수 있는 특별사법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해 12월, 대구의 한 중학생에 이어 올해 4월 영주에서도 중학생이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가 하면 지난 26일에도 대구에서 학원폭력을 견디지 못한 중학생이 투신했지만 나무에 걸려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학교폭력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국교총이 원하는 교원에게 특별사법경찰권 요구는 것은 학교폭력을 해결하려는 방법으로서 옳지 못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20만 회원 한국교총의 교육관은 교육을 하겠다는 것인지 순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교육은 가치내면화를 통해 학생 스스로 행동을 바꿔나가는 과정이요, 순치란 짐승을 길들이듯 강압으로 ‘길들이기’다. 학교폭력문제는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나 자기 존중감을 길러 상대방의 인권도 소중하다는 걸 깨우칠 때 가능한 일이다. 교총은 우발적인 폭력조차 학생생활기록부에 남겨 진학에 불이익을 주거나 폭력학생을 격리시키는 Wee스쿨을 설립, 폭력배로 낙인찍는 교과부의 폭력 근절책으로는 정말 학교폭력을 근절할 수 있다고 믿는가? 

 

 

 

지금이 경찰국가시대도 식민지시대도 아닌데 모든 학생을 예비범죄자로 취급해 교사에게 특별사법경찰권을 행사해 일진여부를 가려내는 준사법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망상이다. 교사는 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올곧은 길로 이끄는 사람이다. 잘못한 일도 앞으로 잘 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믿고 이끌어 주는 것이 교사가 해야 할 책무다. 그런데 경찰이 할 일을 교사가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교사로서의 무능을 스스로 인정하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총의 인간관은 교육자로서 황당하다 못해 엽기적이다. 헌법을 비롯한 유엔인권헌장이나 청소년헌장이 보장하는 인권조차 반대하면서 어떻게 '학생의 인권과 인격을 존중'하겠다는 것인가? 역사적으로 권력의 비위를 맞춰 준 대가로 승진의 떡고물을 받거나 지도부 출세를 보장해 주는데 이력이 난 교총, 교육학의 기초이론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교사와 학생들과의 공감적인 인간관계, ‘라포르’형성이 대화의 기본이라는 걸 교총은 모르는가? 라포르의 형성 없이 어떻게 학생지도가 가능하다고 믿는가?

 

제자와 스승의 사이에 기본적인 믿음과 사랑이 없으면 교육이란 불가능하다. 신뢰가 아니라 회의와 불신의 눈으로 일진을 가려내고 조사해 처벌하는 사제지간에 어떻게 진정한 교육이 가능할까? 교사에게 특별사법경찰권 달라고 요구하기 전 학벌이 지배하는 사회풍토부터 바꾸고 입시교육이 아니라 인성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부터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는 게 교원단체로서 떳떳한 일 아닌가? 사랑하는 제자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체벌옹호론이나 준사법권을 요구하는 교육관으로 어떻게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는 교사가 될 수 있는가?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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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이주호)는 2012년 3월 1일부터 초·중·고등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기재한다고 밝혔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학교폭력 행위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제2조에 따른 ‘학교 내외에서 학생 간에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 및 성폭력,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이다.

학생부에 기록된 가해학생에 학생생활기록부는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요구할 경우 입시 전형 자료로 제공되며 학생부에 기록된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 사항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졸업 후 5년간, 고등학교는 10년간 보존된다.

YTN 보도에 따르면 초중등 학생 중 연간 2만4천800명이 경찰의 학교폭력단속에 검거됐다고 한다. 연간 200여명의 학생들이 자살하고 2008년에서 2010년까지 전국 초중고교에서 학교를 그만둔 학생은 20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학생들만 나무랄 수 있는가?

자살한 학생을
두고 그들의 자살은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뭔가? 날이 갈수록 연령이 낮아지고 잔인해지고 흉포해지는 학교폭력을 처벌로 해결할 수 있는가? 



폭력을 폭력으로 해결하겠다는 대책은 해결책이 아니다. 교과부는 폭력이 사회문제만 되면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형사처벌 대상(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낮추고 스쿨폴리스를 확대하고 학교 폭력 전담팀을 설치한다. 가해학생을 강제 전학시키고 학부모를 소환해 시말서를 쓰고, 학교폭력 제로 만들기 기반 조성, 예방교육, 교원의 책무성 역량 강화, 안전망 구축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관련 법 개정 등 수없이 반복해오던 대책을 반복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남교사 비율을 늘려야 한다느니 30~40대 무술 유단자를 '배움터 지킴이'로 일선 학교에 배치해야 한다는 웃기는 대책까지 나오고 있다.


폭력의 잔인성이나 흉포화에 비추어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강화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런데 열이 나는 환자라고 무조건 해열제를 처방하는 게 근본적인 치유책일 수 있는가? 유능한 의사라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분석해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있는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교과부의 폭력대책을 보면 한결같이 처벌 일변도다.

폭력가해학생의 행위를 학생생활기록부 기재하겠다는 방안만 해도 그렇다. 처벌을 강화하면 순간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학교폭력의 원인은 처벌이 가벼워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학교폭력은 가정환경과 사회적인 요인 그리고 학교교육의 실종 등 우리사회의 총체적인 모순이 낳은 결과다.


학교폭력을 발본색원하기 위해서는 무너진 가정을 복원해야하고 학교의 교육과정을 정상 운영해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대상으로 돈벌이를 하겠다는 게임이나 영화, 드라마와 같은 퇴폐적이고 잔인한 폭력성에 대한 재점검부터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사회의 얼짱, 몸짱과 같은 퇴폐적인 문화에 대한 반성과 가치관의 재정립이 우선 점검해야 한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 폭력은 재생산된다. 배우지 않은 폭력이 양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청소년들의 폭력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폭력의 반영이다. 교과부의 생활기록부 기재라는 대책은 폭력을 폭력으로 해결하겠다는 잔인성에 근거하고 있다. 연간 2만4천 800명의 학생들을 낙인찍어 전과자를 만들어 놓으면 그들이 갈 곳은 어딘가? 해마다 2만4천800명씩 폭력 전과자로 만들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위스쿨을 만들어 격리하고 폭력전과자라는 낙인까지 찍어 사회로부터 축출시키면 그들이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학교폭력의 가해자는 우리사회가 저질러놓은 사회적 모순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학교인권조례를 만들어 선도하겠다는 진보세력들의 대책을 막아보겠다는 꼼수로 가해학생을 폭력범으로 만드는 '학교생활기록부 가해 사실 기록대책'은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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