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정치2016.07.25 06:48


방학이 시작되기도 전에 40도 가까운 불볕더위다. 방학이 되어도 방학이 없는 아이들... 학원시간을 쪼개 겨우 가족 휴가를 떠나는게 우리네 서민들의 삶이다. 휴가라고 찾아가는 곳이라고 해야 북새통을 이루는 해수욕장이나 유명 계곡정도다. 가정의 추억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고생도 추억이 될까? 이번 방학은 땀띠와 눈병을 얻어 오는 고통스런 방학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오붓하게 계획을 세워 체험 학습을 다녀오는 건 어떨까?    

마산에서 30년 가까이 살면서 가끔 가본 곳이다. 대구로 가다 버스 차창에 보이는 모습을 곁눈으로 지켜 보기도 하고 학교에 근무할 때 선생님들과 함께 다녀오기도 했던 곳이다. 같은 곳이지만 분위기나 안내자가 누군가에 따라  여행의 맛은 다른가 보다. 소풍처럼 풍광만 보고 돌아오는 여행이야 차라리 TV에서 전문 사진작가가 찍은 동영상이 훨씬 더 잘 보일수도 있지만 역사를 해설하는 그것도 어떤 시각에서 역사를 보는가의 여부에 따라 여행의 맛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창녕군이 주최하고 경남도민일보 자회사인 유한회사 '해딴에'가 주관한 '우포늪생태체험장과 창녕의 숨은 매력' 팸투어'에 갔다가 만난 창녕은 지금까지 수박겉핥기로 지나친 창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 팸투어 일행의 일정은 첫날이 17일 오전 교동·송현동 고분군을 시작으로 성씨고가, 18일 만옥정~석빙고~창녕시장~ 동삼층석탑~하씨고가 ~ 관룡사 ~ 옥천사터 순으로 탐방했다. 

장마면 유리에 위치한 지석묘는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으로 지석묘라 부르며 규모가 크거나 부장품이 많은 것은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네개의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 돌을 올려놓는 탁자식과 땅 속에 무덤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 식이 있다. 이 잘 생긴 창녕 지석묘는 바둑판 식으로 7기의 고인돌이 북두칠성모양으로 무리지어 있었는데 지금은 파괴되어 2기만 남아 있다. 

팸투어 일행이 두번째로 찾은 곳은 교동·송현동 고분군이다.창녕 고분군은 창녕에서 밀양으로 가는 국도변에 위치한 5~6세기 경 가야 연맹을 이루는 나라 중 하나였던 비화가야(非火加耶) 왕들의 무덤으로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이 있다. 송현동 고분은 목마산 기슭의 무덤으로 1지역과 2지역으로 나누어진다. 1지역은 목마산 기슭의 16기, 2지역은 20기정도가 있엇지만 지금은 대부분 논으로 변해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한다.    

교동고분군은 화왕산 서쪽 기슭의 목마산성 아래에 있는 송현동 고분군과는 현풍으로 통하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남쪽에 위치한 대형 고분군이다. 교동에는 왕릉이라고 불리는 대고분을 중심으로 주위에 대소 수십 기의 고분들이 모여 있었으나, 현재는 8기만이 남아 있고 그나마 봉토들의 파손이 심하다. 이 고분군은 1918년에서 1919년 사이 일본인에 의해 그 일부가 발굴, 조사되어 유물은 대부분 일본으로 옮겨가고 지금은 금봉관을 비롯하여 순금이식(純金耳飾) 등 각종 귀금속으로 된 장신구와 동, 철제의 무구, 토기 정도다. 놀라운 것은 창녕 송현동 15호분에서 1,500년 전 고대(古代) 순장(殉葬) 인골(人骨)이 발견돼 순장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창녕 하면 억새태우기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순수비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창녕을 여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망우정이다. 망우정이란 ‘근심을 잊고 살겠다.’는 뜻이 담긴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곽재우(郭再祐 1552~1617)장군이 만년을 보냈던 곳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장군은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함안, 연산, 창녕 등지에서 홍의장군으로 불리면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장군의 공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이 고을 유림들이 뜻을 모안 1789년 정조 13년에 여기 높이 180Cm, 너비 70Cm의 유허비를 세워 의병장 곽재우의 전공을 기념비하고 있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권력을 놓고 암투를 벌여 파벌을 만들어 피를 흘리거나 당파를 지어 대립과 갈등을 빚어 왔다. 곽재우장군은 하사한 권력조차 거절하다 거절할 수 없어 맡았던 절도사를 1600년 봄에 병을 이유로 삼아 경상좌도병마절도사를 사직했는데 이 때문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2년 동안 전라도 영암으로 유배되었고, 그 후 현풍 비슬산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다가 1602년 영산현 남쪽 창암진(지금의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 강가에 망우정(忘憂亭)을 짓고 기거하였다. 곽재우장군은 이 정자를 자신의 자손이 아닌 벽진이씨 이도순(李道純)에게 망우정을 물려주었는데, 그 후로 명칭이 여현정(餘賢亭)으로 바뀌었다.

관광지 치고 가장 매력없는곳이 박물관이나 공원이다. 공원이 매력없다는 뜻이 기껏해야 어느 지역에서 출토됐거나 발견된 석물 몇조각을 모아놓고 무슨 역사공원이니 하며 거창한 선전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창녕의 만옥정 공원은 그 성격부터가 다르다.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 하면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에 가야의 일파 세력이 있었던 경상남도 창녕군 지역을 정복하고 561년에 세운 국보 33호 척경비다. 이 비에는 왕을 수행한 신하들의 명단이 직관, 직위, 소속의 순서대로 나열되어 창녕객사와 함께 만옥정공원 내에 있다.

창녕이 역사의 고향이라는 것은 징흥왕의 순수비뿐만 아니다. 살아 있는 아버지를 두고 왕이 된 사람.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그는 아들의 나라 조선을 지키기 한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소용돌이 치는 서양침략에 대비해 척화비를 세운다. 이 척화비는 신미양요가 일어났던 1871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비석에는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ㅡ해석:서양 오랑캐가 침범해 올 때 싸우지 않음은 곧 화친을 주장하는 것이며,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곧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글씨를 크게 새겨져 있다. 

이런 척화비에는 작은 글자로 '우리의 자손 만대에 경고하노라(戒我萬年子孫). 병인년에 만들고 신미년에 세우다(丙寅作 辛未立)'라는 글씨가 있다. 원래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흥선 대원군의 명령하에 처음 만들어졌고 1871년 신미양요까지 겹치면서 두 번의 양요를 다시는 겪지 않는다는 뜻에서 또 조국을 침범하여 피해를 입힌 양놈들과는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흥선 대원군과 위정척사파 및 유림들의 확고한 입장과 강경책 등을 담아 지어졌다. 

척화비는 신미양요 이후 한양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널리 세워지게 되었으나 흥선 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어 정치에서 실각되고 명성황후 민씨가 환궁하여 집권을 잡게되고 문호개방을 가속화하면서 명성황후의 명령에 따라 모두 철거되거나 매장되었다가 발굴해 이 만옥정 공원에 옮겨 놓았다. 

 만옥정 공원에는 근현역사의 보고다. 물론 해설사의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 일행에게 해설해 준 김훤주기자의 해성은 여행의 진가를 더해주고 있다. 창녕이 고향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그의 해박한 역사지식은 듣는이로하여금 역사에 대한 안목을 넓혀 준다.     

방학이 되기 바쁘게 학원에서 학원으로 내몰리는 아이들... 이제 부모의 과욕으로 경쟁 교육에서 벗어나 창녕으로 가보세요. 역사를 알면 세상이 보입니다. 거기다 세상을 보는 안목까지 갖춘 해설사를 동반한다면 금상첨화겠지요. 근현대사가 숨쉬는 고장 창녕에서 여러분들의 자녀가 세상을 보는 암목을 키우는 보람 있는 방학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손바닥헌법책 보급운동에 함께 합시다 - '헌법대로 하라!!! 헌법대로 살자!!!


==>>동참하러가기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 추진위원이 되어 주십시오. 

==>>동참하러가기 [손바닥헌법책 선물하기 운동!!!]

"한 권에 500원 후원으로 최고의 선물을 할 수 있어요!!"

 ..................................................................


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공교육의 정상화를 꿈꾸다'
를 

구매하실 수 있는 사이트입니다.



 교보문고 바로가기  , yes24 바로가기  알라딘 바로가기  인터파크 바로가기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4.10.20 06:29


세종시 농민들이 성났다. 땀흘려 일해도 생산비를 제하면 인건비도 건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대형매점까지 난립해 농민들이 설 곳이 줄어들자 농민들이 자구책을 찾아 나섰다. 이러한 노력은 세종시로컬푸드 생산자연합회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세종시 농업기술센터가 주관한 ‘2014년 세종시 로컬푸드추진위원회 제 1회 팸투어 시작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종시 로컬푸드추진위원회 제 1회 팸투어는 1013일 오전 10시부터 김길하 윤한덕 무화과 농가를 비롯해 의당 손메주, 홍문기 포도농가, 이규봉양상추 농가를 방문하는 순으로 진행됐다.

 

 

김길하 윤한덕씨 무화과 농가

 

세종시 금남면 금천 1길 8  전화번호 : 010-3138-9269

 

 

이날 행사는 정용화부시장을 비롯해 농업기술센터 신은주소장, 로컬푸드 생산자 추진위원회 기획실장 송윤주를 비롯한 센터 사무국장과 홍보팀장 그리고 한솔동을 비롯한 세종시 일원에 살고 있는 5개지역 소비자 26명이 참석, 로커푸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세종시장의 부인까지 참석해 농민들의 실정과 고충을 보고 듣는 모습도 눈에 띠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만남어쩌면 가장 자주 그리고 서로가 필요한 관계인 이들이 시공간적인 문제로 유통구조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농민들이 가격을 결정하지 못하는 현상이 안타까운 현상이 계속되어 왔다.

 

 

농민이 생산한 상품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은 신자유주의라는 시대적인 배경도 있지만 유통구조의 한계 그리고 재벌의 시장 점유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농민들에게 힘겨운 희생을 강요당해 왔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소비자와 생산자가 만나 직거래를 통해 쌍생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모티브를 만들겠다는 참신한 행사를 기획해 앞으로 그 추이가 주목받고 있다.

 

 

의당전통손메주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용연로126-4

전화번호 : 044-855-0333 010-8670-0553

 

 

농촌에는 아이들이 없다. 아니 젊은이도 찾아보기 어렵다. 갈수록 농촌이 살기 힘들어진다는 말이 나온다. 이제 농촌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7~80대 노인들이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7~80대 노인들이 일해 젊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웃지 못 할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분들이 다 돌아가시고 나면 우리 농촌은 누가 지킬까?

 

젊은 사람들 중에는 쌀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조나 수수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모른다. 흙을 밟지 않고 사는 사람들.... 추위도 더위도 모르고 아파트에서 배고픈 게 뭔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는 젊은이들... 땀흘려 농사짓는 농민의 수고도 모르고 돈의 가치와 먹거리의 가치를 교환할 줄 밖에 모르는 사람들...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하기만 할까?

 

 

농가 맛집에서 맛있는 된장 찌개로 푸짐한 점심식사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 발효중인 나라는 한미 FTA를 비롯해 한-칠레 FTA...등 모두 9개국이요, 서명한 나라는 2개국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시대적인 자본의 야망은 국가간의 경계를 허물어놓고 있다. 농산물이 무분별하게 유입되고 주식인 쌀까지 완전 개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다 유통구조의 문제로 농민들이 땀흘려 지은 농산물을 제값을 받기는커녕 농사는 짓는다는 이유로 홀대까지 받고 있다.

 

 

소비자이기 전에 아름다움을 뽑내고 싶은 여성들입니다.

 

포도 수확체험도 하고 기념촬영도 하고 소비자들깐에 우정도 다지고....

농민들이 가난한 이유는 정책적으로 농산물에 대한 국가의 보호와 지원 그리고 농민들에 대한 정보화교육사업을 비롯한 농촌 지원 사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이 부족했다. 농어촌이 피폐한 이유도 농촌에 대한 정부의 정책지원이 부진 탓이 크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 직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길도 있고 또 학교급식을 위한 노농간의 자매결연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정부는 늘 가난한 농민들 편이 아니었다.

 

 

체험보다 더 급한게 인증샽... 맛 보기는 다음 차례입니다.

 

 홍문기 포도 농가

 

세종시 연서면 쌍류리 솔티삼거리

전화번호 : 044-868-4833  휴대폰 : 010-3210-4833

 

 

이규봉 양상추 농가

 

세종시 전의면 서정리길 19

전화번호 : 010-8274-7767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세종시 로컬푸드 생산자연합회가 기획하고 추진한 제 1회 팸투어로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들이 다 같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러한 행사가 전시성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정용화부시장의 주장처럼 이번 행사에 농협중앙회의 후원과 세종시의 협조로 앞으로 농민과 소비자들이 쌍생하는 계기로 삼아 농민들의 소득도 높이고 또 소비자들도 믿고 소비할 수 있는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도록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참가자들의 기념촬영도 잊지 않고...

 

평가의 시간... 세종시 농업기술센터에서 마지막 평가회를 가졌다. 참가자 전원이 오늘 팸투어에 참가한 소감과 건의사항을 정리하고 다음 팸투어를 27일 하기로 했다. 농산물의 제값 받기... FTA를 비롯한 재벌들의 무차별 공격에 대비해 농민들이 살길은 농민 스스가 찾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뜻 깊은 제 1회 세종시 팸투어 행사는 이렇게 마쳤다.

 

세종시표 로컬푸드의 첫출발 "싱싱장터' 운영안내

한솔동 - 화요일 (07~09시) 한솔동 주민자치센터 앞 임시주차장 인근 생태터널

중촌동 - 수요일(08시~11시) 가재마을 11단지 맞은편 광장

아름동 - 금용일(08시 ~ 10) 아름초등학교 옆도로

한뜰마을 - 토요일(08시~11시) 어진동 세종 1번가 상가 옆 공원길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전자책을 구매할 수 있는 사이트입니다.

 

교보문고 http://digital.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Detail.ink?selectedLargeCategory=001&barcode=4808994502151&orderClick=LEA&Kc=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99450215

북큐브 http://www.bookcube.com/detail.asp?book_num=130900032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렌즈에 비췬 세상2013.10.10 07:02


'2013 보물섬 남해 블로거 팸투어' 이틀째...

 

 

금산의 해돋이를 보기 위해 우리 일행은 새벽 5시에 숙소에서 출발해 금산을 올랐다. 감탄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남해 금산(705m)은 산전체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아름다운 남해 바다로 둘러쌓여 있는 산이다.

 

 

왜 이 산을 금산이라고 이름 지었을까?

 

금산은 신라의 원효대사가 보광사를 짓고 보광산이라고 불렀는데 조선태조 이성계가 보광산에서 산신께 100일 기도하면서 자신이 왕이 되면 산 천체를 비단으로 감싸겠다는 약속을 했단다. 실제로 이성계가 왕이 된 후 금으로 산을 들러 쌀 수 없어 이름을 금산이라고 부르도록 한데서 오늘 날 금산으로 부르게 됐다게 금산의 전설이다

 

 

 

정현태남해군수. 우리 팸투어 일행이 금산입구에 도착했을 때 그는 벌써 그 시간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산의 또 다른 맛은 구수한 입담과 자상한 성품의 정현태 남해군수가 있어 우리의 여행은 더 즐가웠다.  

 

 

정현태 남해군수님은 남해문화관광해설사를 무색케 했다. 해박한 지식과 그의 특유한 인간적인 친밀감으로 듣는이로 하여금 친밀감까지 느끼게 했다.  군수님의 안내로 우리는 보다많이 그리고 더 자세한 금산을 볼 수 있었다.

 

 

 

해돋이를 찍겠다고 기대에 부풀었던 일행은 안개와 구름으로 우리에게 그런 행운을 허락하지 않앗다. 그러나 우리는 아름다운 국립해상공원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부소암 가는길... 지난 9월부터 개방했다는 부소암... 부소암을 보지 못하고는 금산을 말하지 말라! 남해가 꼭꼭 숨긴 비경... 우리는 그 신비를 찾아 피곤한 줄 도 모르고 정상에서 350여m를 찾아 내려갔다.

 

 

 

 

부소대는 법왕대라고도 한다. 남해에와서 금산을 오르지 않고서야 남해를 다녀갔다 말할 수 없듯이 금산에 올라 법왕대를 보지 않고 금산을 다 보았다 말할 수 없다. 명산의 반열에 우뚝 솟은 금산, 금산을 더욱 명산답게 만든 곳, 그곳이 바로 법왕대이다. 헬기장에 서있는 푯말을 따라 인적 드문 오솔길로 접어들어 숲길을 10여분 내려가면 갑자기 탁 트이는 시야에 요새처럼 거대한 돌산이 우뚝 솟아 있다. 쇠다리리를 건너거나 바위동굴을 올라가면 비로서 절해고도 법왕대다.

 

 

 

 

 

천길 낭떠러지로 달리는 암반 끝에 일주문마냥 소나무 한 그루가 일행을 맞이한다. 낯선 길손에게 신고식이라도 시키듯 매서운 바람이 세차게 불어 철재 다리를 잡고서야 겨우겨우 건널 수 있었다. 

 

이 부소암에는 중국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유배되어 살다가 갔다는 전설과 단군의 셋째 아들 부소가 방황하다 앉아 천일을 기도 했다는 전설 등 여러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부소대에 어찌 전설인들 다양하지 않겠는가?

 

 

 

 

 

 

 

  

부소암을 오르는 계단은 돌계단이지만 돌을 깎은 게 아니라 바위산을 계단처럼 깎아 만든 길이었다. 스양의 길이 이렇게 험난해야 해탈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부소암에서 건나다 본 산은 마치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일본의 후지산을 연상케 했다. 

안개가 마치 화산에서 뿜어내는 연기처럼 바람을 타고 지나가는 모습에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과 신비감마저 자아내게 했다. 

 

 

 

 

 

 

 

설악산에만 흔들바위가 있는 게 아니다. 금산에도 흔들바위가 있어 힘 자랑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가끔 지나가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도 한다. 

 

 

 

 

 

 

땀흘리고 나서 만나는 밥상.. 그기다 이 집의 막거리는 우리나라 그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특이한 맛이었다. 건강 때문에 술을 끊은지 5년. 맛만 본다는 게 반잔이나 마시고 말았다. 술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이 집 술을 맛보면 한모금 마시지 않고 일어서지 못하리라.

 

기암괴석으로 둘러쌓인 산 속에서 절밥과 같은 특별한 점심에 좋은 친구까지 곁에 있으니 왜 술맛이 나지 않겠는가?  배불리 요기한 우리 일행은 이제 쌍용문을 거쳐 보리암으로 향했다.  

   

 

 

 

 

 

 

장군바위를 감싸고 있는 이 거대한 나무는 수령이 얼마나 됐는지 알 수 없지만 늙어서 뿌리에 힘이 없어 죽을 지경이 되면 다른 나무에 얽혀 한 나무가 된다. 뿌리는 죽어 있지만 그 위의 줄기는 살아서 다시 생명을 이어가는 나무.... 사람들도 이와같이 한데 얽혀 살아가라는 자비하신 부처님의 게시는 아닐런지... 

 

 

 

 

 

 

 

 

 

 

 

 

무슨 사연일까? 보리암을 다녀간 수많은 길손들이 남긴 소원의 유산... 가진 게 없어 주머니르 틀어 가장 소중한 것을 놓고 부처님께 소원성취를 기도한 것일까?

 

 

 

 

 

 

 

남해 금산 
  
                                                                     - 이 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정끝별 시인은 이성복의 시를 이렇게 풀이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이 되고 바위가 되는지 남해의 금산(錦山)에 가보면 안다. 남해 금산의 하늘가 상사암(相思巖)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불길 속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채 돌이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의 고통 속에서도 요지부동으로 서로를 마주한 채 뿌리를 박고 있는지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을 들여다보면 안다.

금산에 가면 시인이지 못함이 한스럽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최고의선물... 화려한 절경... 기암괴석과 한려수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지 못하는 길손은 부끄럽고 미안하다. 감탄사만 연발하다 돌아오고 마는 천하의 절경... 금산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가보시지 않으시렵니까?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렌즈에 비친 세상2013.10.05 07:00


축제란 이런 것이다!

천고마비의 가을.... 지자체 곳곳에서 축제의 열기가 뜨겁다. 그러나 수원 화성문화축제가 다른 시군의 축제보다 열기가 더한 이유가 있다.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만난 수 있는 역사가 있고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명성뿐만 아니라 생태교통 수원 2013과 같은 특별한 아이디어가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불러 모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시간에쫒겨 여기저기 둘러 본 수원 문화축제...

수원축제가 남달랐던 이유는 정조대왕이 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이리라. 정조임금님의 애민정신과 그분의 지극한 효성을 만날 수 있는 곳. 그래서 유치원 어린이에서부터 780노인에 이르기 까지 수원은 살아 있는 교육장이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10.01 07:13


 

 

2200세대, 4300명의 인구가 사는 동네에 1500대의 자동차가 없는 동네, 가능할까? 이번 지난 8월 17~18일 수원화성에서 진행된 전국파워소셜리 생태교통 팸투어 일행이 가장 관심 있게 지켜 본 의제가 행궁동 일원의 차없는 거리조성이었다.

 

 

 

 

골목골목 주인이 된 자동차, 아참저녁 출퇴근시간이면 매연이며 소음으로 사람이 자동차의 눈치를 보며 살고 있는게 도시의 모습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차를 몰아내야겠다는 발상을 한 곳이 있었으니 그게 수원시가 추진한 ‘생태교통 수원 2013’행사였다.

 

 

 

 

 

그로부터 한 달 후 9월 27일~28일 다시 수원을 찾았다. 팸투어 주제야 ‘수원화성문화제’였지만 우리일행이 더 궁금했던 것은 그 차 없는 동네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우리 일행이 처음 찾았을 때의 행국동은 이름그대로 ‘공사 중’이었다.

 

 

 

 

 

‘낙후되고 침체된 원도심의 도시를 보행중심, 사람중심의 환경도시’로 만들겠다는 수원시의 무모한(?) 노력이 화서문로와 신풍로에 통신 지중화 사업과 가로등 정비와 노후된 옛길이나 골목길에 불량노면을 재포장하고 골목길 정비사업을 하느라 온통 공사판을 방불케 했다.

 

 

 

 

 

 

가끔 전세로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차없는 불편을 감수해야할 어려움에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과 동네가 정비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면 집세가 올라갈 것이라고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의 기대반 호기심 반으로 이 사업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거나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생태교통 수원 2013’이란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신봉동, 장안동) 일원을 2013년 9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1개월간 ‘보행 자전거, 인라인같이 바퀴와 수레 등을 이용하는 무동력 이동수단과 대중교통수단 친환경 전기동력수단 그리고 이들 사이의 연계를 포함하는 환경적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교통체계’를 일컫는다.

 

 

 

 

 

 

자동차로 마취된 현대인들에게 잠시라도 차를 빼앗는다는 것은 자동차에 마취된 현대인들에게 금단현상을 불러 올 무모한 짓(?)이라는 반발을 살 수도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시도가 우리나라 수원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75개국 1,250개 도시가 가입한 ‘생태교통연맹 및 ICLEI(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지방정부)이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태교통 수원 2013’ 사업은 1. 사람 중심의 도로운영. 2. 생태교통 이동수단 지원3. 생태교통형 마을 만들기4. 축제 등 부대행사였다.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어떤 모습이 됐을까? 우리 일행이 가장 궁금했던 현장의 모습이었다. 사람이 사람대접 받는 곳은 주민들이 나서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이 무모(?)한 도전이 시민들은 물론 환경에 관심이 있는 나라안의 사람들과 외국인들까지고 성공여부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내일의 주인공이 될 청소년들이 공해없는 마을을 찾아 오염으로 찌든 도시가 사람이 주인이 되는 마을에서 놀라운 현장을 체험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엄마의 손을 잡고 공해없는 미래의 교통수단을 타고 즐거워하는 모습은 보는이들로 하여금 즐거움과 행복감에 젖게 했다.

 

 

 

차가 주인이 아닌, 사람이 주인인 동네... 골목에는 의자가 놓여지고 기 가던 사람들이 앉아 대화를 나눈다. 부모님들이 시골에서 보내 온 고추를 늘어 말리기도 하고 자기 집 담벽에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사진을 전시하기도 하고 공터에는 어김없이 꽃이며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심지어 빗물을 저장하는 정장탱크까지 만들어 채소를 심는 부지런한 집도 보였다.

 

 

 

 

 

동네사람들이 만나 대화가 이루어지는 도시...

옛날 빨래터에서 아낙네들이 정보교환을 하던 마음이 열리는 동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웃음과 행복을 나눌 수 있는 마을이 된다면 이게 사람 사는 곳이 아닐까?

 

 

‘생태교통 수원 2013’ 행사는 10월 1일이면 끝난다. 지난 25일 현재 축제기간동안 찾은 방문객은 외국인까지 모두 77만명이나 됐다. 수원시가 옛도심에 추진하려는 트램(노면전철) 전시장에는 38만명이 다녀갔다. 45개 나라 90개 도시에서 전문가 250여명이 행궁동현장을 방문해 관심을 보이기도 했던 행사. 

 

 

 

어린이 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어른들은 무슨생각을 할까? 공해와 소음이 없는 마을.. 그래서 그들이 위험부담없이 행복한 웃음을 만들어 줄 수만 있다면 어른들의 불편을 감수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자. 골목골목 차가 들어와 사람들의 공간을 빼앗은 문화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발상의 전환!

 

생활습관을 바꾸면 안되는 일이 없다.  건강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일까?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는 현대인들의 폐쇄적인 삶. 엘레베이트를 타고 올라가면서 서로 외면하고 지내야 하는 이웃. 이런 도시인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게 아닐까?

 

 

 

 

불가능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미 세계 75개국 1250개 도시가 이러한 꿈을 실현하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갈곳이 없어 역전이나 지하철로 몰리는 노인들...

복지가 따로 있겠습니까? 막걸리 한 주전자를 놓고 추억담을 즐기시는 동네 어르신네들.... 몸은 불편하지만 우정이나 추억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고추를 말리고 있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불편한 점은 없으세요?"

"왜 없어요? 시끄러워! 시끄러워 못살겠어!"

"사람들이 많이 오면 좋은점도 있잖아요?"

"그렇기는한데 휴지도 버리고..."

 

할머니 얘기를 들으면 '매연과 소음으로 차가 주인이 된 동네에 사는 다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배부른 투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우리동네는 시끄러워도 좋으니 매연과 소음이 없는 동네, 그래서 아이들이 골목에 숨박꼭질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동무들과 뛰어놀 수 있는 그런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생태교통 수원 2013'을 보러 온 모든 사람들의 꿈은 아닐까? 

  

수원시의 이 무모(?)한 도전. '생태교통 수원 2013'이 다른 도시로 보급돼 대한민국의 모든 도시가 차없는 마을이 될 수 있는 날을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우리 일행들은 행궁동을 뒤로하고 수원화성문화제를 보러 발길을 돌렸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08.19 07:00


 

 

 

“우리도시는 지금 도시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라 도로와 차량이예요. 모든 구조가 그렇게 맞춰져 있어요.

 

차량은 평지로 다니고 사람은 지하나 공중(육교)으로 건너게 하고 완전히 주객이 전도 됐어요”

 

염태영수원시장의 말이다.

 

역사의 도시, 문화의 도시, 수원시는 지금 세계의 어떤 나라도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교통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사람이 주인이 도시의 주인으로 만들겠다고 시작한사업, 그 혁명적인사업이 ‘생태교통 수원 2013’ 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금단현상에 이어 자동차 금단현상에 얽매여 사는 도시인들... 오늘날을 사는 현대인들은 컴퓨터나 스마트폰보다 더 심각한 자동차 중독에 걸려 있다. '아내 없이는 살수 있어도 자동차 없이는 못산다'는 도시인들...  그것이 21세기 도시인들의 '자동차 금단현상이다. 그런데 이런 병적인 자동차 사랑을 극복하고 차 없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생태교통 수원 2013’.... 그 실체를 알아 본다.

 

 

 

 

 

‘전국 파워 소셜러 생태교통 팸투어’라고 명명된 이번 팸투어는 제주에서 부산에서 그리고 전남과 서울시, 경기도, 세종시에 사는 블로거 10명이 섭씨 30도를 윗도는 찜통더위를 무릎 쓰고 수원시에 모였다. 우리 일행이 둘러 본 수원시의 교통혁명은 경이와 감탄 바로 그것이었다. 그 어떤 나라도 어떤 도시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사업이 감히 진행되고 있었다. 

 

수원시의 ‘생태교통 수원 2013’란 도대체 오떤 사업일까? 

수원시 행궁동(신풍동, 장안동 일원) 일대. 2200세대 4300명이 사는 0.34㎢에 차 없는 동네를 만드는 사업. 평소 1,500대의 차량이 염시장의 말처럼 '사람이 아닌 차가 주인이 된 도시'에 '사람이 주인이 되는 도시로 바꾸는 그런 사업이 바로  ‘생태교통 수원 2013’이라는 사업이다.

 

작은 읍면소재지 만한 동네에 차가 없다? 그것도 도시 한 복판에...? 상상만해도 신나고 가슴떨리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수원시가 추진하는 '생태교통 수원 2013' 사업은 2200세대 4300명의 주민이 사는 0.34㎢에 마을에 1500대의 차량이 주차하고 있다. 이 마을을 사람이 주인이 되는 마을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소음과 매연에 뒤엉켜 사는 현대인들... 언제부터인가 마을도 차량과 뒤얽혀 소음과 매연을 찌들어 사는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문화인이라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관념에 빠져 살고 있는 것이다. 

 

행궁동은 수원 전 지역의 3분의 1일의 차량이 통과하는 지역이다. 이 사업이 시작하면서 수원시는 수많은 남관에 부딪히게 된다. 지금까지 동네 주인 노릇을 하던 차량 1500대를 어떻게 할 것이며 주민들의 불만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공무원들이 이런 '사서 고생하는 일'을 스스로 나서서 주민들을 설득하고 협조할 수 있을까... 

 

                  <수원시가 마련한 행궁동에 주차하고 있는 차량을 옮길 주차공간>

 

이런 과제를 하나씩 풀어내며 지금 수원 행궁동 일대는 도로를 다듬고 전주를 지하로 매설하고 더러워진 집 외모를 다듬고 꾸미느라 온통 야단이다. 가당키나 한 일인가라고 항의하고 방관하던 주민들의 생각도 하나 둘 바뀌면서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즐거운 도시산책 생태교통 수원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이 있기까지는 우여곡절 또한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복지부동의 공무원들은 어떻게 설득하고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차없이는 못산다’는 현대인의 고질병은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오늘이 있기 까지는 환경을 살려야 한다는 수원시장의 불굴의 신념과 공무원들의 자발적인 협조, 그리고 세입자들의 반대와 불편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협조와 참여가 오늘의 놀라운 결실을 만들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 바람이 머무는 곳>

 

나날이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이번 여름의 기온은 무엇인가? 환경오염과 파괴에 대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경고용 메세지다. 이대로 가면 환경오염과 자연의 파괴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한계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지구는 인류와 함께 공멸의 갈 수 없다. 언젠가는 풀어야 할 과제, 누군가는 져야할 십자가.. 그 십자가를 수원시가 자원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전기 자동차를 비롯해 대체에너지 개발과 시민들의 환경의식 제고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를 손 놓고 구경꾼이 된다는 것도 시민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수원시는 자동차 매연이 없는 생태교통을 위해 이색이동수단인 세그웨이, 이색 자전거 등 친환경 이동수단을 구입해 선보이고 있다.

 

자동차가 없는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자동차가 없는 마을이란 마을의 주인이 자동차가 아닌 사람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난다. 골목을 되찾은 아이들... 학원에 가지 않으면 친구가 없는 아이들의 놀이문화가 부활하고 마을, 옆집에 누가 사는 지 모르는 도시인들이 차가 차지하던 공간에 평상을 내놓고 이웃사람과 소통이 시작된다. 공해와 오염으로부터 해방된 마을의 주인공들은 생기가 돌고 모처럼 되찾은 마을 공동체로 마을은 사람 사는 세상으로 바뀌지 않을까?

 

역사의 도시 수원, 문화의 도시 수원이 또 다른 비약이 시작됐다. '생태교통 수원 2013' 9월 1일..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사람이 마을의 주인이 되는....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03.26 07:00


 

수원에 가면 볼거리 먹을거리 공부할 거리가 많아 시간이 아쉽다. 서원의 화성은 이제 조선 고유의 성곽이 있는 곳이 아니라 중국, 일본, 성곽의 장점을 모아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세계문화유산으로 우뚝 서 있다.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학생들의 수학여행은 물론이요, 체험학습 등 생태도시 교통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수원에 오면 화성이라는 역사를 만날 뿐만 아니라 전통시장의 매력에 다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화성은 누가 지켰을까?

 

SBS 인기드라마 백동수. 그 백동수가 조선의 최강부대인 장용영 소속 군인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장용영은 1793(정조 17)년에 정조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군영(軍營)으로 궁중을 지키고 임금을 호위하고 경비하던 친위병이다. 내영(內營)과 외영(外營)으로 구성되어 각각 한양 도성과 수원 유수부(留守部)의 숙위(宿衛) 업무를 담당하던 부대다.

 

 

정조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은 말을 타고 활쏘기를 하던 신기대의 용맹스런 부대다. 웅혼의 기상과 놀라운 무예실력을 갖춘 무사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SBS 인기드라마의 주인공 이었던 ‘무사 백동수’다.

 

‘동문은 부서지고, 서문은 서있고, 남문은 남아 있고, 북문은 부서졌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화성을 보고 수원사람들이 한 말이다. 한국전쟁당시 북한군이 아닌 미군의 폭격으로 수원과 화성은 쑥대밭이 되었다. 성곽은 부서지고 북문과 동문은 폭격을 당해 문루가 파괴되었다.’

6․25사변이 끝난 후 수원사람들이 한 말이다.

 

이렇게 수난을 당한 화성이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 될 수 있었던 것은 ‘화성성역의궤’ 덕분이다. ‘화성성역의궤’에는 각 건물 하나하나에 형태와 치수는 물론 못의 수량까지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원형복원이 가능했고 1997년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것이다.

 

 

원래 수원은 지금보다 남쪽으로 8Km 떨어진 화산 아래가 그 중심이었다. 정조임금이 1789년(정조13년)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의 화산으로 옮기면서 현재의 수원이 형성 되었다. 알다시피 화성은 실학자인 유형원과 정약용의 설계를 기본지침으로 영의정 채제공이 주고나하고 화성유수 조심태 등이 이룩한 우리나라 성곽 중 가장 과학적이고 우아하고 장엄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성곽의 축조에 석재와 벽돌을 함께 사용한 것, 화살과 창검을 방어하는 구조와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구조를 갖추고 있는 점, 축성재료를 규격화하여 거중기 등의 기계장치를 활용한 점 등에서 우리나라 성곽 중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수원화성에는 어떤 시설들이 있을까?

 

- 화성행궁 -

 

청해대, 청남대는 대통령 별장이다. 군주제사회에서는 임금이 이용하던 별장은 없었을까? 평소 임금은 궁궐에서 기거하며 정사를 살피지만 전란, 유양, 능원참배 등으로 본궁을 떠나 지방에 머무를 때 기거하는 곳을 행궁이라 한다.

 

화성에 가면 행궁 외에도 성문으로서 장안문과 창룡문, 팔달문 화서문 등이 있고 암문(暗門)으로 북암문, 서암문서남암문(, 동암문, 남암문이 있다. 또 수문으로는 북수문(화홍문), 남수문이 있고 장대(將臺)로는 서장대(화성장대)와 동장대(연무대)가 있다.

 

 

공심돈(空心潡)은 서북공심돈, 동북공심돈, 남공심돈이 있다. 그밖에도 동북각루 서북각루서남각루, 동남각루와 포루, 봉돈 노대와 치성, 적대 중포사 내포사, 서남포사 등이 있다.

 

화성에는 당시 장용영의 군사들이 훈련하던 모습을 재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활을 쏘고 민족의 전통 놀이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맛볼 수 있다. 

 

 

1박 2일 동안의 수원시 팸투어. 갈 곳도 많고 볼 것도 많았다. 화성의 가치는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화장실문화의 새로운 장르를 만든 해우재를 비롯해 장용영군사들의 무술훈련, 활쏘기 궁중 문화축제 관람이며 주변에는 박물관민속촌을 비롯해 용주사와 수목원, 독산성세마대지 등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특히 정조가 심은 잘 생긴 소나무들..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공해에 그대로 방치돼 있어 그대로 둔다면 수명대로 살지 못할 것 같다며 일행들이 안타까워했다.

 

수원에 가면 꼭 들려야할 곳이 있다. 백화점이나 마트와 같은 곳에서 맛볼 수 없는 전통시장의 매력... 수원 지동시장에는 유명한 순대전문시장이 있다. 순대만 전문으로 파는 이 시장(?)에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발 디딜 틈이 없는 순대집에는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손님이 그치지 않았다. 지동시장의 순대 맛을 보지 않고는 수원에 다녀왔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순대 맛은 특별한데가 있다.

 

 

안녕하세요?

불친님들과 구독자님들 덕분에 제가 운영하는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사단법인 한국블로그산업협회(KBBA)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 서울시가 후원하는 제 4회 2013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개인부문에 문화/예술 부문 Top100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투표는 3월 11일부터 31일까지 심사 및 투표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옆의 주소로 가셔서 투표 부탁드립니다.    http://snsawards.com/iblog/vote2012_01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03.23 07:00


 

 

수원에 팸투어를 갔다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부모들이 이외로 많은 걸 보고 놀랐다. 역사 기행인지 테마여행인지 단체로 인솔해 온 여행단들의 모습도 많이 눈에 띠었다. 역사기행이 유행이다. 여행을 많이 시켜야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선현들의 충고 때문일까? 이제는 단순히 눈을 즐겁게 하는 관광지를 찾는 여행이 아니라 역사를 만나는 역사테마기행으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사기행이 인기 있는 이유가 뭘까?

 

역사공부든 역사탐방이든 역사를 만난다는 것은 한마디로 ‘나를 찾기 위해서...’다.

역사를 통해 나를 만난다는 것은 오늘의 시각으로 역사 속의 나를 만나는 과정이 아닐까?

 

구경꾼에게는 역사가 보이지 않는다.

 

서울중심의 역사, 문제풀이식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는 역사 지식은 있어도 역사의식은 없다. 제대로 된 역사는 나를 찾는 훈련부터 시작해야 한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의 가족사, 지역사, 그리고 역사의식을 기르기 위한 사실(事實)을 찾아 그 사례 속에서 해석하는 능력을 기르는 게 진정한 역사 공부다.

 

 

입시공부로 접근하는 역사공부는 고대사에서 중세, 근대, 현대의 사건 중심으로 원인, 경과, 결과로 암기하는 학습에는 역사가 보일 리 없다. 오직 내가 다른 학생들보다 얼마나 더 많은 역사 지식을 암기하고 있는가의 여부를 가려 서열을 매기는 것을 역사 공부라고 착각하고 있다.

 

한쪽 눈으로는 세상을 골고루 볼 수 없다. 양반의 시각에서 본 역사는 서민들의 삶이 보이지 않는다. 화성에 가면 양반중심의 역사가 아닌 특별한 역사를 만날 수 있다. 화성은 축성에서부터 일본이나 유럽의 성(城)과는 다르다. 우리나라에 수많은 성이 있지만 유독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가 뭘까?

 

 

화성은 다른 성에서 볼 수 없는 치성, 옹성, 공심돈 등 새로운 축성법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성벽을 돌출시켜 적의 동태를 감시하거나 공격하기 용이한 공격하기 용이한 치성이나 성문을 방어하기 위한 옹성은 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모습이다.

 

그밖에도 과학적으로 축성됐다는 것과 돌과 벽돌을 성재(城材)로 주로 사용하여 외면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성곽의 기초와 축성의 견고함을 살린 성이었다는 점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화성을 보고 감탄한 또 다른 이유는 화성은 성곽을 지키는 군사들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배려를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전망을 살피는 군사가 좌측과 우측을 관망할 수 있도록 고안한 전망대는 한쪽 눈이 아닌 양쪽 눈으로 역사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정조임금은 지방분권의 선구자?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에서 서울이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이요, 지방은 서울을 위한 변방에 불과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조임금은 지방분권의 필요성을 깨달은 선각자라고 해야 할까? 화성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단순한 성이 아니다.

 

화성성역의괘(10권 9책)을 보면 화성이란 성곽이 건설되기 1년 전 1793년 1월, 정조에 의해 팔달산아래 새로이 조성된 신도시다. 정조는 화성신도시를 건설해 유수부를 두어 기존의 개성, 강화, 광주유수부와 함께 동서남북으로 둘러싼 수도권의 4유수부 체제를 완성시킨 것이다.

 

또한 정조는 화성에 농업생산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만석거 저수지 등 수리시설과 대유둔(일면 북둔) 등 시범농장을 설치하고 여기에 최신의 수리시설과 영농기술을 적용함으로써 농업개혁의 전진 기지로 삼았던 것이다.

 

정조의 이러한 선견지명과 혜안은 화성이 행정 군사기능과 소비기능, 그리고 생산기능이 함께 갖추어진 도시로서 모든 시설물이 인공과 자연의 조화 그리고 신기술과 전통기술의 융합, 평상시와 비상시 기능을 상호보완적인 세련된 도시로서 역할을 감당하게 했던 것이다.

 

 

일한 만큼 임금을 지급한 군주 영조

 

전제군주시대 조제제도는 전세, 역(役) 그리고 공납(貢納)이 기본이었다. 전란으로 황폐화된 복구공사나 성의 축조는 주로 부역(負役)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공평과세가 될 리 없었고 과중한 조세로 허리를 편지 못하는, 서민들의 고통과 원성이 그칠 날이 없었다.

 

그런데 화성을 축조하는 공사에는 일한만큼 나라에서 임금을 지급하는... 그래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인부들이 일거리를 찾아 모여들었다. 화성축조공사에는 22개직정 184면의 장인들이 동원되었다. 평소 같으면 부역이나 혹은 조세를 면하게 하는 임금형태가 이들에게 임금으로 지급했다는 것은 정조의 애민정신과 노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정조는 성을 쌓기 위해 주민들을 소개할 때 권력의 힘으로 강제로 이주시킨 게 아니다. 주민들에게는 현재 살고 있는 집의 매매가를 정당하게 쳐주는가 하면 이주비까지 지급했다. 축성 때 고생하는 인부들에게 떡, 북어, 술, 밥, 국, 생선 등을 내려주기도 하고 더위를 이기는데 쓰라고 부채, 베, 모자 심지어 약까지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은 다른 군주에게서는 볼 수 없는 애민정신의 실천이었다.(계속)

 

 

안녕하세요?

불친님들과 구독자님들 덕분에 제가 운영하는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사단법인 한국블로그산업협회(KBBA)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 서울시가 후원하는 제 4회 2013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개인부문에 문화/예술 부문 Top100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투표는 3월 11일부터 31일까지 심사 및 투표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옆의 주소로 가셔서 투표 부탁드립니다.    http://snsawards.com/iblog/vote2012_01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03.18 07:00


 

 

왜 영어로 썼느냐고요?

글쎄요, 혹시 아침부터 무슨 '× 이야기'를 하느냐며 기분 나빠 하실 분이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기분 나쁜 일이 아니라 이 문제가 해결돼야 만사형통하지 않을까요?

 

인간의 지속가능한 삶을 가능케 하는 가장 첫 번째 행위가 바로 똥을 누면서 부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도 황금똥을....

 

 

지금부터 저와 함께 이 공원을 한번 둘러보시면 그런 선입견을 깨끗이 없어질 겁니다.

 

이 공원이 어디냐고요? 수원시에 있는 'Mr.해우제 Toilet House'랍니다. 너무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이 공원 저와 함께 한번 출발해 봅시다.

 

(제가 어제와 그저께 Daum 커뮤니케이션이 주최하는 전국 파워 소셜리 초청 수원 팸투어에 다녀왔답니다)

 

 

냄새가 날거라고요?

 

전혀 아닙니다. 그런 걱정은 마시고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리고 다른 나라의 화장실문화 등 자세하게 안내할 것입니다.

 

차에서 내려 해우교(解憂橋)를 건너면 ‘왕궁리 유적 화장실’ 모형을 볼 수 있습니다.

 

1,400년 전(백제 무왕 600년) 전북 익산의 왕국유적에서 발견된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 화장실로 고고학학의 보물 창고입니다. 당시 사용하던 숟가락 모양의 나무주걱과 화장실 터의 토양에서 기생충 알이 발견되어 당시의 식생활과 화장실문화를 짐작할 수 있답니다.

 

두 번째 고대 로마의 변기, 중세 유럽의 변기 모형과 프랑스의 전위예술가 마르셀 뒤샹의 유명한 작품 ‘샘’을 재현한 현대 화장실도 만날 수 있고요.

 

 

옛날 사람들은 뒤 처리를 어떻게 했을까요?

 

물론 휴지라는 게 있을 리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 양쪽에 막대를 막아놓고 새끼줄로 연결한 다음 볼일이 끝난 후 다리를 벌려 걸터앉아 ‘쓰윽’ 지나가면 그게 끝입니다. ‘에~ 설마’ 하시겠지만 사실입니다.

 

다음은 요즈음도 드라마에서 가끔 등장하는 똥장군과 지게입니다. 화장실을 퍼 내 논이나 밭에 갖다 버리기 위해 사용되었던 가운데가 불룩하게 생긴 통(똥장군)과 지게가 필요했겠지요.

 

재미없다고요?

그럼, 여기서 잠간 수수께끼 풀고 지나갑시다.

화장실의 이름이 몇 가지인지 아세요?

 

 

뒷간, 측간, 정랑, 통시, 변소, 매화간, 해우소, 화장실....

이게 모두 요즈음 화장실의 다른 이름이랍니다. 다 아신다고요? 그럼 뜻도 다 아세요?

 

뜻을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럼 제가 알려드릴게요! 사실은 저도 이번 팸투어에 가서 모두 알았답니다.

 

 

뒷간이란 ‘뒤에 있는 방’이라는 뜻이고요,

 

측간(厠間)이란 ‘중국에서 온 이름으로 조선시대 양반들이 사용하던 화장실 이름이랍니다. 양반과 평민의 화장실이 다르냐고요? 당연하지요. 계급사회에는 옷이나 모자, 빈발은 물론이고 사는 집의 크기 까지 달랐다는 건 드라마 같은데서도 나오잖아요?

 

정랑은 ‘절에서 사용하던 화장실’ 이름으로 깨끗한 곳을 가르키는 말로 부처의 세계와도 통한다는 뜻이랍니다.

 

통시란 ‘수세식이 아닌 구덩이를 파서 만든 재래식 변소랍니다. 변소가 뭔냐고요? 아 ~ 변소란 ’편안한 방‘이라는 이름의 화장실의 다른 이름이랍니다.

 

매화간은 궁중에서 쓰인 화장실 이름으로 궁중에서는 똥을 ’매화‘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임금님의 대변은 매화꽃이라고 했다지요?

임금님은 똥조차 거룩하게 향기롭다니.... 그런 불경스런 말을 하면 경범죄로 처벌 당할걸요?

 

경범죄라는 게 없었다고요?

아! 그렇지요? 그 때는 법은 없었지만 왕에게 입법권과 사법권 그리고 행정권까지 다 있었으니 임금님의 말씀이 곧 법이었겠지요.

 

해우소(解寓所)는 많이 들어 본 이름이지요? 해우소는 ‘걱정을 푸는 곳’이라는 뜻으로 절에 있는 화장실을 말할 때 붙인 이름이랍니다.

 

마지막으로 화장실(化粧室)이란 아파트나 양옥이 들어오면서 용변뿐만 아니라 씻고 화장을 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씌어지게 된 이름이랍니다.

 

 

화잘실 이름을 소개하다. 해우교를 지나 다니던 소개가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네요. 이 공원에는 요강과 매화그릇 통시변소, 노둣돌, 똥지게 메는 사람, 남성용 변기, 여성용 변기 등의 모형을 전시해 놓았답니다.

 

이제 더럽다고 생각하시던 기분이 좀 가셨지요? 대신 궁금했던 것들을 아시게 됐지요?

아참! 위에서 소개한 노둣돌에 대해서는 더 설명을 드려야겠습니다.

 

노둣돌이란 발을 딛도록 놓아 둔 돌을 의미하는데 불국사의 노둣돌은 신라 귀족 부인이 사용하던 수세식 화장실로 추측되고요, 대문 앞에 놓아 둔 노둣돌은 예날 양반들이 말을 타고 내릴 때 사용하던 대문 잎에 놓아 둔 큰 돌을 뜻한답니다.

 

(후편은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그 동안 제가 너무 딱딱한 글을 써서 독자들을 피곤하게 했던 것 같아 내일은 팸투어에서 배운 재미 있는 얘길 들려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불친님들과 구독자님들 덕분에 제가 운영하는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사단법인 한국블로그산업협회(KBBA)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 서울시가 후원하는 제 4회 2013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개인부문에 문화/예술 부문 Top100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투표는 3월 11일부터 31일까지 심사 및 투표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옆의 주소로 가셔서 투표 부탁드립니다.    http://snsawards.com/iblog/vote2012_01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렌즈에 비친 세상2012.09.18 07:09


 

 

사람들은 말한다.

‘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른다’고....

 

여행도 목적 없이 떠날 바에야 차라리 집에 앉아서 텔레비전 화면으로 구경하는 게 훨씬 낫다. 

산은 어떤가? ‘산이 거기 있으니까 그냥 바라보고 올 바에야 왜 힘들고 돈 들여 산에 오를 이유가 없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화상은 이렇게 노래했다. 이왕 가는 산이라면 건강도 챙기고 푸짐한 생각도 키워 오면 더 좋지 않을까?

 

이름은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주관하는 ‘2012년 합천 명소 블로거 팸투어’였지만 그 속에는 블로거들의 사랑과 열정이 있어 함께 한 등반은 여니 산행과는 다른 의미가 있어 좋았다.

 

혼자서 떠나는 산행은 부담 없이 사색을 할 수 있어 좋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떠나는 산행은 마음과 세상을 섞어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어 좋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세상은 아름답다. 여기다. 맑은 공기와 기암기석이 반겨주는 모산재는 가보지 않고서는 그 즐거움을 이루 다 표현하기 어렵다.

 

합천은 참 아름다운 곳이다. 곳곳에 잘생긴 산.  중에 철쭉의 비경, 황매산이 있는가 하면 세계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는 해인사의 판만대장이 있고, 숨겨진 역사 영암사지와 옥전고분, 영상테미파크, 홍류동 계곡의 소리길, 합천호 보조댐 관광지, 젊은이들의 낭만과 추억을 만드는 황강의 래프팅...등 끝이 없다.

 

경남에 30년이 넘게 살면서 철쭉재로 유명한 황매산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합천에 있는 영남의 소금강이라는 모산재(767m)를 모르고 살았다니...

 

황매산은 황매산(1108m) 군립공원 내에 자리 잡은 삼라만상의 기암괴석으로 형성된 산이다.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는 절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나는 처음에 모산재라기에 ‘재가 높아보면 얼마나...?’라는 기분으로 참가 했다. 허리 수술을 할 날을 잡아놓은 환자가 모산재가 얼마나 오르기 힘이 드는 산인가를 모르고 겁도 없이 덤볐다. 그것도 몇 달만 지나면 70이 될 노인이....

 

오르는 즐거움이 있는가 하면 숨이 차 둘러보면 어느 것 가나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 비경에 식ㅇ는 땀을 식혀 준다. 아름다운 바위산이면 온갖 동물의 형상을 빚어 만든 듯한 기암괴석,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내려다보면 아찔한 계곡은 팽팽한 김장감으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90도에 가까운 바위산을 숨차게 오르면서 뒤돌아 보면 다리가 떨려 오르지 못할 산. 로프 줄에 의지하기도 하고 철재 계단을 잡고 한걸음 할 걸음 올라가 지칠대로 지친 등산객에게 뜬금없이 나타난 한국제일의 명당자리 '무지개 터'가 있고....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예부터 이 자리에 묘를 쓰면 천자가 태어나고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다 가문의 영화를 위해 묘를 쓰면 온 나라가 가뭄이 들고 흉작이 계속된다니....

정상에서 휴식은 수고 보다 백배 더 달다. 여기다 순결바위에 얽힌 전설에 웃고 왜놈들의 칩임에 저항하다 이름없이 숨져간 의병들의 무덤이 널려 있는 항매산성터를 보며 숙ㅇ녀해지기도 한다.

 

정상에서 둘러보는 모산재는 그야말로 절경 그 자체다. 정상에서 느끼는 통쾌한 맛이 없다면 산을 찾는 이들이 있을까? 지친 등산객들에게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이며  올라오느라 지친 동료들과의 짧은 대화는 쌓였던 피로를 풀어주고도 남는다.  

 

꿀같은 휴식도 잠간, 밧줄을 잡고 철재 다리를 오를 때의 긴장감으로 땀이 범벅이 된 일행은 비경을 한 조각이라도 더 카메라에 담겠다는 욕심으로 피로도 잊는다.

 

내려오는 길... 절재 계단이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한 절벽으로 지나면 건너편에 먼저간 일행들이 비탈을 올라가는 모습에 다리가 더 떨린다. 절벽에 붙어 있는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처럼....

 

사진을 찍겠다는 욕심으로 내려다보면 천 길 낭떠러지... 고공 공포증환자라면 얼어버리고 말... 아찔한 현기증에 질려버리고 만다.

 

절벽을 굽이돌아가다 내려오고 또 내려오고 하기를 767m 모산재는 전문등산객들에게는 즐거움일 수 있겠지만 도시의 글쟁이들에게는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 충분하다. 얼마를 내려왔을까? 피로에 지친 어줍잖은 등산객에게 황매산성터도 보여주고 태조 이성계의 등극을 위한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올렸다는 국사당도 나타난다.

 

하산의 안도감으로 나른해진 등산객에게 나타난 모산재가 주는 또 다른 선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삼국시대 절터로 알려진 영암사지... 흠잡을 데 없는 모산재에 어울리는 삼국시대의 거대한 절터... 영암사지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계속)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