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다른 학생의 돈과 물건을 훔쳤다’는 학교의 전화를 받고 사람 만들겠다며 인근 야산으로 끌고 가 집단폭행하고 구덩이를 판 후 ㄱ군의 얼굴만 남겨둔 채 흙으로 묻는 등 차마 못할 짓을 한 보육교사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 양주경찰서는 15일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ㄱ군을 집단폭행하고 땅에 묻은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이모씨(32) 등 양주시 소재 ㄴ보육원 생활지도교사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2. 최근 서울 강북지역 모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담임교사의 물심부름에 최근 1년간 마실 물 대신 변기 물을 떠다 준 사건이 문화일보에 보도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 학생은 담임교사의 물심부름을 하면서 ‘변기 물을 떠온 뒤 친구들에게 알리고 물을 마시는 담임교사를 보며 즐거워했다’

 

#. 3 ‘자살 사망자가 매년 100만명, 40초에 1명꼴’

거짓말 같은 세상이다. 전쟁이 터져 죽는 수만큼 자살이라니...

우리나라는 어떨까?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우리나라가 8년째 자살률 1위다. 2010년 한국에서 하루 평균 42.6명씩, 매년 1만5566명이 자살했다. 2010년 청소년 자살자는 인구 10만 명 당 13명으로 자살, 학업과 입시스트레스로 자살하는 학생이 20여 년 전부터 3일에 1명꼴.

 

#. 4 사회 양극화

소득불평등 심화, 노동 불안정화로 ‘노동빈곤층’ 출현 등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소득양극화, 고용양극화, '가계부채 900조 시대' 서민들은 부모의 사회 경제적인 지위가 자녀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고 있다. 국내 10대 그룹 상장사의 순이익이 전체 상장사 순이익의 80%다. 한달에 21억 1천만원을 받는 사람(산성전자 부회장)이 있는가하면 단 돈 100만 원도 못 벌고 살아가는 빈곤 인구가 676만 명이나 된다.

 

#. 5 교육양극화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신입생 가운데 중학교 내신 성적이 상위 20%인 학생은 전체의 49.7%인데 반해 하위 50%인 학생은 불과 5.1%다, 일반고 신입생 중 중학교 내신 성적이 상위 20%인 학생은 18.1%이고 하위 50%인 학생은 무려 50.7%에 달함.

2012학년도 수능의 평균 2등급 이상 학생이 많은 상위 30개 학교 중 일반고는 2개(특목고 24개, 자사고 4개)에 불과함.

 

#. 6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 조사(2011·3·1~2012·2·29 기준)에 따르면 해외유학·이민을 뺀 학업중단 학생은 5만9165명으로 파악됐다. 전체 초·중·고교 재학생 1000명 중 9명(0.85%)꼴이다. 학업 중단자는 고교생이 3만3057명(1.7%)으로 가장 많고 중학생 1만5337명(0.8%), 초등학생 1만771명(0.34%) 순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 복지니 삶의 질을 말할 수 있을까? 섬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니다. 일상화되고 사회문제가 되기에 하는 말이다. 어쩌다 우리사회기 이지경이 됐을까? 

 

우리나라는 교육에 관한 한 전문가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하기야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니 어련히 교육에 관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학부모 말고도 교육학자, 교육관료, 교사, 사교육업체 종사자... 등등 모두가 교육자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위로 올라간다고 했던가? 갈수록 태산이다. 교육을 비롯해 사회양극화, 묻지마 범죄, 자살.... 우리는 지금 총체적인 멘붕시대에 살 고 있다. 그 많은 교육자 교육전문가 학자...들이 있는 나라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이런 형상을 두고 나는 교육자다, 교육학자다... 할 수 있을까?

 

“선생님! 공부는 언제해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외손자반 선생님이 만든 카페에 올라 온 글이다. 마을 돌아보기, 딱지치기, 소꿈놀이, 달팽이 놀이, 뱀놀이...와 같은 입문기 생활지도와 얼굴 익히기, 인간관계 맺기 등등 기초생활교육을 하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선생님께 던진 항의(?)다. 고등학교에서 수업시간에 훈계를 하면 ‘선생님! 공부 합시다’라는 항의를 듣기도 하지만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공부를 못해 안달(?)인 현실을 뭐라고 해석해야 할까?

 

 

아이들 나무랄 일이 아니다. 얼마나 부모가 ‘공부 공부’ 했으면 어린것이 공부를 하고 싶어 안달(?)일까? 기저귀를 찬 영아가 영어 플래시 카드를 공부하고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지 않은 아이가 하루 5~6군데 학원으로 내 몰리는 아이들.... 오죽하면 학원에 가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다고 할까?

 

공부를 왜 하는 것일까? 일등이 공부라고 착각하는 부모들로 아이들이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도대체 산다는 게 뭔지, 사람답게 사는 게 뭔지..., 교육을 왜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도 없다. 살다 지치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 내리기도 하고 기분 나쁘면 친구를 폭행하고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기 기분대로 행동하는 아이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아 온 결과가 만들고 있는 현실...

‘아이들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든, 학교폭력이 갈수록 잔인하고 심각해지든, 교육양극화 따위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배짱 좋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날이 갈수록 삭막해지고 살맛 안 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궁금한 게 있다. 교육에 대한한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교육은 왜 날이 갈수록 교육은 벼랑으로 내 몰리고 있는가? 진짜 교육자라면 진짜 전문가라면, 진정한 교육정책가라면.... 현직에서 물러났든, 정년퇴임을 했든, 지혜를 모아 위기를 극복하는 길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지식인들로 인해 세상을 하루가 다르게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다. 누가 이 멘붕시대를 바꿀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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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에서는 목적전치현상을 사회병리현상으로 규정한다. ‘점차 그 수단이 중요해지면서 수단이 목적이 되는 현상’을 일컬어 목적전치현상이라고 한다. 어떤 목표를 위해 계획을 세웠는데 나중에 보니 그 계획을 지키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경우라든지, 공부를 자아성장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 가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사람이 인격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로 평가받는 경우가 그렇고, 자격증이란 자신의 능력을 위해 필요한 것인데, 대학이나 취업을 위해 필요하게 된 경우나 예수를 가장 많이 닮아야 할 성직자들이 예수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그렇다. 학교는 어떤가? 오늘날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가 교육목적과는 상관없이 상급학교 진학이 교육의 목표가 된 경우가 전형적인 목적전치현상이다.

 

과정이 무시되고 결과로 성패를 가리는 사회는 막가파 사회다. 매춘을 하든, 도둑질을 하든, 돈만 벌면 존경받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종교의 목적이 교주의 교의대로 살아가기를 포기하고 세상에 재미를 붙이면 변질되듯이 학교가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내지 못하고 일류대학이 목표가 된다면 교육이 무너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지금 학교는 목적전치의 총체적인 멘붕상태다.

 

 

도덕공부는 시비를 가리고 옳고 그름을 분별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5개 지문 중 정답을 골라 점수를 잘 받게 하기 위해서라면 그것이 교육이라고 강변할 수 있을까? 어디 도덕만 그런가? 민주의식을 길러야 할 사회공부가 그렇고 수학문제까지 암기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교육은 병이 들어도 중병 든 상태다. 더더욱 기가 막히는 일은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과학부와 교육청이 이런 현상을 부추기도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학교가 더 교육과정을 더 충실히 이행하는가? 어느 학교가 더 훌륭한 사람을 많이 길러내는가?’가 아니라, ‘어느 학교가 더 만이 특목고에... 어느 학교가 일류대학에 더 많이 입학시키는가?’를 가리는 경쟁을 시켜 줄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재산이 많은 사람이라도 돈을 모르는 사람은 쉬 탕진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첨단의 지식을 습득한 사람이라도 그 지식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어렵다.

 

학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더러운 그릇에 아무리 귀한 물건을 담아둬도 그 가치를 발할 수 없듯이 자신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아무리 귀한 학식을 전수받았다 해도 그것을 유용하게 쓸 수 없다. 자기 생각은 없이 머리 속에 지식만 채워 넣으면 유능한 사람이 되는가? 학교가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학교를 떠나 방황하고 있다.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 내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목적의식도, 방향 감각도 없이 부모가 원하는 아바타가 된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천칭은 무게 중심이 무거운 쪽으로 기운다. 학교가 교육다운 교육을 못하고 목적전치현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무너진 학교로 인해 이익을 보는 집단의 힘이 크기 때문이다.

 

6만명의 10대가 학교를 떠나고 있다. 해마다 쏟아지는 '탈학교' 아이들이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지난 한 해동안 학업 중단 학생은 5만9165명, 전체 초·중·고교 재학생 1000명 중 9명(0.85%)꼴이다. 학업 적령기에 학교 밖을 떠돌고 있는 10대 아이들을 합친 누적 숫자는 한 해 2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학교가 교육하는 곳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입시문제풀이가 아니라 교육과정대로 학사를 운영하면 된다. 왜 학사운영을 제대로 못하는가? 일류대학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일류대학에 가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일류대학을 나와야 사람대접을 받고 좋은 회사에 취업도 하고 좋은 남편, 좋은 아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품이 아니라 ‘일류대학 졸업장’이 사람 가치를 좌우 하는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뛰어난 재능도 인정받기 어렵다. 학교가 목적전치 현상은 바꾸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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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떻게 사람다워 지는가?

 

천진난만하게 맑고 밝고 순수하게 자라야 할 아이들...  그런데 요즈음 청소년들 중에는 표정이 없는 아이들이 있다. 좋아도 그만 싫어도 그만이다. 행복해하고 감사할 줄 모른다. 감사한 일이 있으면 감사하고 기쁜일이 있으면 만족해 할 줄 아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요즈음 아이들에게는 그런 표정이 없다.

 

정서는 어떻게 길러지는가?

 

내 자식은 최고로 키우자.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해주자’

이렇게 부족한 것이 없이 자라는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랄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는데....

 

마마보이, 독불장군으로 자란 아이는 남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고 ‘내게 좋은 것이 좋은 것’이 되는 철학을 체화하면서 자란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할 줄 모른다. 표전이 없고 정서적으로 매말라 있다. 

 

아름답고, 기쁘고, 슬프고, 행복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고마워하고... 이런 정서는 어떻게 길러지는가?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반응하는 동물이다. 성장과정의 아이들은 '환경이 곧 교육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런 경험을 할 기회가 없다. 아니 빼앗겨 버린다고 해야 맞는 말인 것 같다.

 

정서 발달은 또래들과 만남을 통해 길러진다.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갈 곳이 없다.'  학원과 학교, 집을 개미 쳇바퀴 돌듯 하는 아이들, 이들의 정서는 어떻게 길러질까? 놀이문화를 빼앗긴 아이들은 사회성을 비롯한 정서적인 감정이 성숙하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있다.

 

정서교육은 관념적인 학교교육만으로는 어렵다. 귀엽다, 예쁘다.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에게 '이것은 예쁜 것', '저것은 미운 것'...이런식의 정서교육이 가능할까? ‘이러이러한 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이런 경우에는 슬픈 생각을 해야한다'고 외우게 하면 체화되는가? 믿음이니 협동이니 신의니, 정의...니 그런 정서는 학원이나 교실에서 길러지기 어렵다는 말이다.

 

인내심이나 용기, 감사와 만족, 행복....도 마찬가지다. 이런 정서는 교실에서 관념적인 암기가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체화된다. 놀이를 빼앗긴 아이들... 친구간의 우정도 모르고 양보와 타협, 인내와 협동, 우정도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은 어떻게 정서발달이 가능할까? 놀이라는 중요한 학습기회를 빼앗긴 아이들에게 교실에서 지식만 주입한다고 그런 정서가 길러지지 않는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부터 가르쳐야 한다.

 

교육의 핵심은 자아존중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빠진 삶, 주인이 없는 인간은 자신이 아닌 남의 삶을 대신 산다. 유치원에서부터 '100점이 최고요, 일등이 최고'라고 알면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랄 수 잇을까? 나를 상실하고 남을 이겨야 살아남는 훈련으로 어떻게 나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내가 실종된 교육으로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여위어 가고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 자아 존중감을 모르고 자란 아이는 친구를 소중하게 여기고 대인고나계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할 수 있겠는가? 체험을 통한 교육이 아닌 관념적인 학교 교육은 아이들로 하여금 정서적인 불구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소중함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

 

가정이나 사회에서 가르쳐야 할 교육의 핵심은 자신이 소중하다는 걸 일깨워 주는 일이다. 나를 찾는 훈련... 어쩌면 인생은 평생 자신과 싸우며 자신을 찾는 과정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정에서 ‘아이를 최고 어른'으로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밖에 모르는 아이는 오만하고 안하무인의 정신적인 불구자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100점만 받으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교육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보모의 과보호나 내가 못다 이룬 꿈을 실현시켜줄 대상으로 보는 자녀관이 아이들로 하여금 정상적인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 집에서 유치원으로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경쟁교육은 모든 아이들에게 열패감을 맛보게 한다.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 방황하는 아이들....

 

지식교육중심의 학교교육은 시비를 가리거나 선악에 대한 판단기준도 없이 암기한 지식의 양으로 사람을 서열화시킨다. 시험과 시험 그리고 서열매기기를 반복하는 청소년기에는 소수의 학생을 제외하고는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 찍혀 가능성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성폭력범의 대부분이 청소년기에 음란비디오와 만난다. 청소년들은 마음만 먹으면 PC방에서 혹은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음란물과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한시민단체가 설문조사한 야동을 본 청소년의 비율이 2009년 78%, 2010년 73%, 2011년 77%로 과반수 이상 이었으며 야동을 본 학생들의 평균 나이는 2008년 14.5세 2009년 15.07세 2010년 14.98세, 2011년 13.5세로 점점 낮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병든 문화가 청소년들을 병들게 한다

 

청소년의 문화가 실종된 사회, 어른이 만든 가치관, 상업중의가 만든 병든 문화를 아이들은 경험하면서 그런 문화를 습득하고 체화되어 간다. 철학과 정서교육이 실종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음란물의 접근은 또 다른 유혹이다.

 

 최근 성폭력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개인의 도덕성도 문제이기도 하지만 돈벌이를 위해 청소년들을 유혹하는 상업주의가 만든 결과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왕따와 학교폭력 그리고 음란물에 무방비한 상태에 노출돼 있는 청소년들에게 일방적으로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친 책임전가는 아닐까? 

 

 

유전과 환경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할까?

 

환경이 유전보다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교육이 성립한다. 그런데 학교가 교육의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고등학생의 48.6%, 중학생의 40.9%, 초등학생의 28.8%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연간 10만명의 학생들이 학교를 포기하고 있다. 학교가 싫은 아이들... 교육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성장해 어른이 됐을 때 그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 법이 아니라 힘의 논리가 정당화되는 세상,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은  묻지마 범죄와 폭력과 보이스피싱과 같은 반인륜적인 범법자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세집증후군에서 먹거리의 오염, 소음과 공해, 성적 스트레스 등 온갖 오염에 찌들린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뼈 포기를 뽑아 올린다고 벼가 빨리 자라는 게 아니다.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교육자라면 감각주의 문화, 상업주의 오염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주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 사랑하는 제자들이 건강하게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게 안내해 주는 것이 단어 몇 개 더 암기시켜 일류대학 더 많이 보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아닐까?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2.02.28 07:00



경남도교육청(교육감 고영진)이 ‘꿈키움교실’을 운영한다. 도교육청은 ‘2012 경남교육정책개발 T/F팀 보고회’에 따르면 중도학생들의 탈락을 막고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 ‘꿈키움교실’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경남도교육청이 밝힌 ‘꿈키움교실’은 다음 달부터 경남지역 모든 초∙중∙고에 대안교실로 운영할 계획이다.

전국최초의 기숙형 대안학교인 태봉고등학교를 설립한 바 있는 경남교육청은 이밖에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치료와 상담이 필요한 학생들이 머물며 교육과 치료를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중학교 과정의 기숙형 장기위탁교육 기관인 '위스쿨'(Wee School)을 내년 9월1일 개교한다.

경남도교육청이 추진하겠다는 ‘꿈키움교실’이나 중학교 과정의 ‘위스쿨’의 정체성이 무엇일까? ‘꿈키움교실’이나  ‘위스쿨’이란 학교부적응 학생을 교육하기 위한 대안개념의 학교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교실이나 학교에서 감당 못하는 학생들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학교다. 학급에서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꿈키움교실에, 학교가 감당 못하는 학생을 ‘위스쿨’에 수용,  격리하겠다는 것이다.



공부에 취미가 없는 학생들을 모아두는 ‘꿈키움교실’이나 ‘위스쿨’은 어떤 모습일까? 말이 좋아 꿈키움이요, 위스쿨이지 직설적으로 말하면 예비범죄자 수용소다. 명분이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니까 따로 분리수용하자는 뜻이지만 치료를 요하는 학생들을 모아 어떻게 꿈을 키우고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학교가 입시교육을 하느라 나타난 부적응 학생을 문제아로 취급, 격리수용한다는 것은 공급자의 폭력이다. 

‘꿈키움교실’ 출신이나 ‘위스쿨’ 조업생들이 정상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교육을 할 것이라고 믿어도 좋을까? 범법자를 선도해 사회에 적응시키겠다는 교도소는 사회적응을 위한 재활의 교도효과를 얻고 있는가? 이름이 좋아 교도소지 사실은 건강한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용소다.

교도소가 범법자를 교도하기 보다는 범죄를 학습하는 학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이 없다. 간혹 개과천선해 재활의 새 삶을 사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교도소를 나온 사람이 사회에 적응하기 얼마나 어렵다는 것은 현실이 증명하고 있다.


‘꿈키움교실’ 출신이나 ‘앞으로 운영될 ’위스쿨‘ 출신 학생들은 어떨까? 교육과학기술부 교육통계서비스를 보면, 고교생 가운데 학업을 중단한 학생은 2007년 1만2616명, 2008년 1만5477명, 2009년 1만6145명, 2010년 1만7419명으로 매년 늘어나 2007년 이후 4년 동안 6만1657명이나 된다. 날마다 42명꼴로 학교를 그만두고 있는 셈이다. 이들을 그대로 계속 방치한다는 것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립 대안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설립되고 있다. 경기도의 대명학교를 시작으로 경남마산의 태봉고등학교, 2014년 목표로 설립 중인 '울산희망학교',  ‘대전자유학교’, 서울지역 국제다솜학교, 전남의 한울학교, 인천의 해밀학교... 등이 그것이다. 그밖에도 경남·울산·강원 교육청도 2014년까지 공립 대안학교를 설립할 계획을 세워 추진 중이다. 2002년 경기도 수원의 경기대명고가 처음 개교한 후 2014년까지 전국에 모두 10개의 공립대안학교가 설립될 예정이다.

무너진 학교. 우후죽순격으로 설립되고 있는 공립대안학교는 무너진 교육을 살리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대안이라는 ‘꿈키움교실’이나 ‘위스쿨’에서 현재 경남의 태봉고등학교처럼 경쟁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예술감성교육, 배움의 공동체, LTI 프로젝트(Learning Through Internship), 나눔활동, 친환경교육과 같은 교육이 가능할까? 

경남도교육청이 추진하겠다는 ‘꿈키움교실’이나 ‘위스쿨’은 대안학교가 아니라 문제아 수용소다. 경남도교육청은 전국에서 유일한 대안교육을 추진하고 있는 태봉고등학교조차 위탁생을 수용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어떤 이유로 부적응이라는 낙인이 찍혀 ‘꿈키움교실’이나 ‘위스쿨’에 위탁, 수용될지 몰라도 ‘문제학교 출신’이라는 낙인을 찍힌 이들이 건강한 사회생활로 복귀할 수 있을까? 준비된 교사도 없이 치료차원의 학생들을 모아 문제아라는 낙인을 찍는 ‘꿈키움교실’이나 ‘위스쿨’ 은 교육을 살리는 길이 아니다.


 - 위의 이미지는 다음 검색에서 가져온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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