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2011.06.01 05:30



1000만원에 육박하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공부는 뒷전이고 아르바이트도 모자라 휴학과 자퇴를 밥 먹듯이 하는가 하면, 졸업 후에는 등록금 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하는 대학생. 등록금 1000만원에 주거비와 생활비, 취업 준비를 위한 학원비 등을 합치면 연간 2000만~3000만원이 드는 현실을 비관하고 자살하는 대학생을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까?

지난 번
반값 등록금, 근본적인 해법 아니다에 썼던 글이다.

찰청이 교육과학기술부에 제공한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한 해 200~300명의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는 통계다. 물론 자살한 학생 모두가 등록금 때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일 년에 200~300명의 대학생이 자살하다는 통계는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한다. 대학 진학률이 OECD 최고수준인 82%, 입학만하면 전공과는 상관없이 고시나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졸업 후 10명 중 6명은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는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상한 나라가 한국이다.

                                   <이미지 출처 _ 오마이뉴스>

대학이 물가승률을 웃도는 인상을 계속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학과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등록금을 부과하는 제도는 합리적인가? 지난 10년간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36.8% 인상됐는데 등록금은 최고 82%나 올랐다. 국공립대가 443만원, 사립대가 768만원이나 된다. 의학계열은 등록금이 1048만원이나 되는 학교도 있다. 특히 사립학교는 공립에 비해 배 가까이 인상됐다. 말로는 대학이 등록금을 합리적으로 책정하겠다고 하지만 등록금 책정을 대학 총장에게 완전히 위임, 자율화한 것은 교과부다.

대학등록금 인상의 주범은 대학이다. 사립대학은 운영을 재단전입금이 아니라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한다.
재정 수입의 3분의 2 이상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운영수입대비 전입금 비율이 1퍼센트 미만인 대학이 전체 대학의 37.2퍼센트(2005년)수준이다. 대학의 적림금도 문제다. 한나라당 임해규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0년 2조 6,860억 원이었던 적립금은 2007년에는 5조 5,833억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나 7년간 해마다 4,000억 원 가량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오마이뉴스)

                                              <이미지 출처 : 민중의 소리>

견디다 못한 대학생들이 교실을 박차고 거리로 뛰쳐나와 등록금 반값쟁취를 위한 시위를 벌이다 70여명이나 되는 학생이 개처럼 끌려갔다. 뒤늦게 정치권에서 등록금 문제를 논의한다고 생색을 내고 있다. 한나라당 대표로 당선된 항우여대표는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 문제를 제기했지만 정작 정치권에서 반값이 아니라 차등장학제도니, 카이스트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징벌적 장학제’라니 어이가 없다.

왜 다른 나라에서는 공부를 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기회를 제공한다는데 우리는 시혜적인 반값이며 징벌적인 장학제인가? 우리나라 대학의 80%인 사학은 교육자로서 학생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운영을 하고 있는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재단 비자금 조성이나 조성하고 가족 생활비 충당이며 심지어 부동산을 확충하기 위해 투자하는 게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이 할 일인가?

                                         <이미지 출처 : 민중의 소리>

국내 200개 4년제 대학 중 80%인 159개 대학이 사립이다. 사립학교가 길러내겠다는 인간상은 거창하게 ‘자유, 정의, 진리’니 ‘진리, 창의, 봉사’니 하면서 학문탐구가 아니라 취업 시험준비나 하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학문탐구보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전공과 상관없이 시험 준비나 하는 모습을 보면서 물가상승률을 웃도는 등록금 인상에만 관심을 갖는 대학은 학문의 전당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은 답해야한다. 왜 재정의 투명성을 외면한 채 연례행사로 해마다 등록금만 인상하는지..? 학벌주의와 학벌에 따른 임금격차를 외면한채 등록금 반값 논의는 과연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문제를 해결해야할 정부 또한 구조적인 모순을 외면한 채 시장주의로 내몰아 왜곡된 경쟁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 대학등록금문제를 ‘시혜적인 반값등록금’이니 ‘국공립대학의 법인화’로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대학의 반성없는 해결책은 교육주체에 대한 기만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4.12 19:41



'징벌적 등록금' 제도!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아 간 무한 경쟁... 

"징벌적 수업료를 폐지하겠습니다."
카이스트 총장의 사과는 징벌적 등록금제 때문에 학생들이 죽어갔다는 것을 시인한다는 뜻인가? 
피해자는 있어도 가해자는 없는 징벌적 등록금제도란 어떤 내용인가? 
  

카이스트 재학생은 원칙적으로 등록금을 내지 않지만 대학 측은 2007년부터 경쟁력 제고를 위해 직전 두 학기 학점이 기준에 미달할 경우 0.01점당 6만원 가량을 내도록 하는 사실상 징벌적 등록금제도를 도입했다.

징벌적 등록금제란 평점이 3.0 이하로 내려가면 평점에 따라 등록금을 내야하는제도다. 학점에서 0.01점 떨어질 때 6만원씩 내야함으로 2.0 아래로 내려가면 한 학기에 750만원까지 내야한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2008년 등록금을 낸 학생은 302명에서 2009년 611명으로 증가했고, 재학생 7805명 중 1006명이 학점에 따라 1명 당 평균 254만원의 등록금을 납부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재학생 8명중 1명에 징벌적 등록금을 내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천재들만 데려다 놓아도 줄 세우기를 하면 꼴찌가 생긴다. 획일적인 줄 세우기는 창의성을 억압하고 학생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지워준다. 말로는 절대평가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누군가는 C를 받아야 하는 학생이 생기게 되는 실제로는 상대평가나 다름없다.

복지가 빈약한 나라에서 성적이라는 이름의 개념의 조작적 정의란 그 자체가 계층을 반영한 점수일 수밖에 없는데 그 성적으로 징벌하거나 포상한다는 것은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등록금을 더 내라는 예기에 다름 아니다.


카이스트 학생이 네 번째 자살하기 전 ‘등록금 원인으로 학생들이 자살했다며 대자보를 게시한 허모학생은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성적에 따라 수업료를 차등지급하는 미친 등록금정책,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재수강제도와 같은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정책. 카이스트학생의 자살은 지난 2007년부터 도입된 차등등록제도 때문이다. 평점 3.0이상 3.3미만이면 기성회비 150만원, 3.0미만이면 0.01점당 60여만원을 내야하고 학부생이 8학기 내 졸업하지 못하면 다음 학기부터는 1학기에 1500여만원의 수업료를 내야한다.

학점경쟁에서 밀려나면 패배자 소리를 들어야 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서로 고민을 나눌 여유조차 없다. 이 학교에는 행복하지 않다. 숫자 몇 개가 사람을 평가하는데 유일하고 절대적인 잣대가 됐다. 진리의 전당은 여기 없다.’


세 번째 학생이 자살 한 후 서남표총장은

“학생들은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많이 갖고 있겠지만 이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이며 그 무엇도 공짜로 얻을 수는 없다”

“미국의 명문대는 자살률이 더 높다”
고 말해 서총장이 과연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있는 사람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몇 년 전 ‘한국 대학의 개혁을 말한다’라는 책에서

“우리 학생들 압박이 많다. 학점을 B이하로 받으면 수업료를 내야 하니 부담이 크다. 그게 커다란 압박이 되지 않겠냐. 그래서 내가 제일 걱정하는 게 ‘자살’이다.”
라고 예견했다. 그렇다면 서 총장은 ‘징벌적 등록금제’가 시행되면 학생들의 자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제도를 도입했다는 말인가?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은 12일 국회 교과위에서 의원들의 사퇴 촉구를 받고
"학생을 사랑해서 한 것"이며 일을 시작했는데 중간에 그만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며 사퇴요구를 일축했다.

한국사회에 지성은 살아 있는가? 그동안 학생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 대학의 교수님들은 왜 침묵하고만 있었을까? 서울대에서도 2006년부터 최근까지 모두 13명의 학부 및 대학원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지난 한해동안 무려 202명의 초ㆍ중ㆍ고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

'그런 건 사랑이 아니라 변태라고 하는 거야.
가학적 사랑, 새디스트!!!
당장 사퇴해라!!'

"다 학생 사랑해서 한 것, 사퇴 고민 안해" 오마이뉴스 보도에 달린 댓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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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생들이 또 자살했다. 올들어서만 벌써 4명째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카이스트 학생들은 수업료를 면제 받았다. 그러나 서남표총장이 취임하면서 2007년 신입생부터 평정 3.0미만, 2.0초과의 경우 수업료 일부를 부과하고 2.0이하의 학생에게는 수업료전액을 내도록 하고 있다. 학점에 따라 등록금을 다르게 책정하는 제도. 이름하여 "징벌적 등록금제도‘다. 성적이 따라 등록금을 많이 내거나 적게 내도록 한 제도다.


“그깐 성적 때문에 하나뿐인 목숨을 끊어?”

카이스트 학생들은 자살한 학생에 대한 추모 열기와 함께 자살에 이르게 한 원인을 놓고 내부 구성원간 열띤 토론을 벌였다.

"공부밖에 할 수밖에 없는 반 감금된 삶과 지나친 레벨격차로 힘들어하는 삶, 어린 시절부터 꾸어온 꿈을 앗아가는 삶에 문제가 있다"는 학생의 글에서 카이스트 학생의 삶의 모습을 본다.

카이스트만 그럴까? 서울대에서도 매년 학생 1~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서울대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2006년부터 최근까지 모두 13명의 학부 및 대학원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사진자료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지난 한해동안 무려 202명의 초ㆍ중ㆍ고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한 해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 수가 무려 ‘1만5천 4백13명’, 하루 평균 42명, 34분당 1명이 자살하는 꼴이다.

학업성적에 대한 부담감으로 방황하는 학생에게 가슴을 열고 호소할 친구도, 스승도 찾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학생을 두고 카이스트 서남표총장은
“학생들은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많이 갖고 있겠지만 이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이며 그 무엇도 공짜로 얻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수재들을 모아 나라의 동량을 길러내는 대학 총장의 인간관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성경에 나오는 말씀이다.

우리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 10조)고 명시하고 있다.


지식이란 무엇인가? 카이스트를 비롯해 청소년들이 공부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출세를 하기 위해서..? 과학이며 도덕이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어떤 것들도 사람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을 수단가치로 보는 인간관이나 존엄성을 무시하는 그 어떤 가치도 민주사회의 적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교육은 서바이벌 게임이 아니다. 1등을 위해서... 상대를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경쟁...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목적도 없이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 학교다.

1등을 해야 하고, 일류대학에 가야하고, 일류직장에서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끝없이 뛰어야하는 삶. 그 모든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경쟁에 내몰려야 하는 삶. 그렇게 사는 게 행복이라고 강변할 수 있는가?


행복이란 무엇일까? 경제적인 풍요? 높은 사회적 지위?, 명예?.....? 국민소득과 삶의 질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소득이 높은 게 행복이라면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제일의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 233개 나라 가운데 207위인 빈곤국. 178개국 중 1위인 바누아투가 가장 행복한 나라란다. "공부만 할 수밖에 없는 반 감금된 삶과 지나친 레벨격차로 힘들어하는 삶, 어린 시절부터 꾸어온 꿈을 앗아가는 삶”을 사는 대학생도 분명히 사람이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인간적인 삶을 포기하게 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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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수재들의 집합소인 카이스트(KAIST)에서 최근 3개월 사이 1, 2, 4학년생 3명이 잇따라 자살해 충격을 주고 있다. 대학생뿐만 아니다. 지난해 초ㆍ중ㆍ고생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은 지난해보다 50% 가까이 급증하면서 처음으로 200명이 넘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김춘진 의원(민주당)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목숨을 끊은 초ㆍ중ㆍ고생은 총 202명으로 전년(137명)에 비해 47% 증가했다. 학생 자살자는 2005년 135명, 2006년 108명, 2007년 142명, 2008년 137명 등 100~140명 수준에서 증감을 반복했으나 작년에는 크게 늘어 처음으로 2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최근 5년간 무려 724명의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1만5천 4백13명’

우리나라 한해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 수다. 34분당 1명이 자살하는 꼴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아 '자살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자살한 학생을 학교급별로 보면 고등학생이 140명(69%)으로 가장 많고 중학생 56명(28%), 초등학생이 6명(3%)이었다. 학생들이 왜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했을까?
 
교과부가 발표한 자살 원인을 보면 가정불화ㆍ가정문제 34%(69명), 우울증ㆍ비관 13%(27명), 성적비관 11%(23명), 이성관계 6%(12명), 신체결함ㆍ질병 3%(7명), 폭력ㆍ집단 괴롭힘 2%(4명) 등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29%(59명)가 왜 자살을 했는지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살하는 청소년을 두고 사람들은 말한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무슨 짓인들 못해!’ 과연 그럴까? 자살을 하기 직전상황까지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남의 얘기라고 그렇게 쉽게 단정적으로 말해도 좋을까? 카이스트대학총장은 연이은 학생들의 자살에 대해 “학생들은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많이 갖고 있겠지만 이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이며 그 무엇도 공짜로 얻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목숨을 지불하고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카이스트 총장에게 묻고 싶다. '목숨보다 귀한 가치가 무엇인지..?' 총장님은 자기 가족이 그런 변을 당해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 목숨보다 귀한 것이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살인적인 입시위주의 교육을 두고 해마다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학생들을 두고 개인의 의지부족으로 책임을 전가해도 좋을까?

등록금과 성적을 연동한 징벌적 등록금 제도를 두고 개인의 의지부족으로 책임을 돌린다는 것은 지식인으로서 잔인한 판단이 아닐까?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학생을 두고 ‘성적 때문이라면 안 죽을 학생이 하나도 없다’는 빈정거림이 인간적인 진단인가? 제도란 사람이 잘 살기 위해 만든 장치다. 그런 제도가 소수가 행복하기 위해 다수의 목을 옥죄는 것이라면 자살을 방조한 것이 아닐까? 

해마다 늘어나는 청소년들의 자살을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예체능을 지망하는 아이들도 예외 없이 참가해야 하는 강제자율학습, 시내통학이 가능한 거리임에도 대부분 사립학교에 일반화 되어있는 기숙사 생활,

심지어 정규수업까지 편법으로 운영하며 성적 올리기에 열을 올리는 미친 입시위주의 교육을 두고 자살하는 아이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내일의 어느 날을 위해 모든 날의 희생을 강요하는 교육은 참교육이 아니다. 불안한 오늘이 계속되는 내일의 행복이란 있을 수도 없는 기만이요, 사기다. 지금은 자녀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이 함께 고민해야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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