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역사2018.07.20 06:33


어떤 사람도 항복 문서의 조항과 또는 미 태평양 방면 총사령관의 권한 아래 내려진 포고, 명령, 지시에 위반하거나, 미국과 그 연합국의 국민 또는 재산의 질서, 생명, 안전, 치안을 해치는 행위, 공공의 안녕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 정의로운 행동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는 행위, 또는 연합국에 대하여 고의로 적대 행위를 하는 자는 점령군의 군사 법정에서 사형을 포함한 기타의 판결에 처해질 것이다.”(97일 맥아더 사령관 포고 제2)


<이미지 출처 : 다음 블로그 망구>

우리 민중들은 미군정기를 어떻게 평가할까? 김주환이 쓴 미국의 세계전략과 한국전쟁을 보면 우리민족의 49%의 국민들은 미국이 가져다 준 해방으로 겪는 고통보다 차라리 일제통치가 더 낫다.”고 썼다. “미군의 통치가 더 낫다는 대답을 한 사람은 단지 2%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다. 일제의 폭압에서 해방된 국민들에게 이 무슨 날벼락일까? 미군정기보다 일제 식민지시대가 더 좋았다니... 이런 기록은 군정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혹은 기록으로 수없이 남아 있다. ‘일제가 패망한 뒤 텅 비어 있던 감옥은 1년이 지나자 정치범들로 꽈 들어차게 되었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해방 1주년이 지난 1946815일 서울 어느 신문은 우리는 이날을 기쁨으로 축하해야 할 것인가?"라고 썼다.

대부분이 친일파 민족반역자였던 <한민당은 국민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주의 집단이요, 민중 스스로의 뜻으로 세운 조선인민공화국을 소련의 조종을 받는 공산주의 집단>이라면 당시의 민중들은 어느 쪽을 지지했을까? 미군정 정치고문 배닝호프가 국무장관 번즈에게 보낸 보고서는 한민당과 조선인민공화국을 이렇게 분석했다. 모든 것을 공산주의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았던 미국에게 자주적인 변혁운동은 단순히 소련의 사주를 받는 불순한 음모일 뿐이었다. 놀랍게도 당시 세계 재패를 실현하려는 미국의 <좌익><우익>이라는 술책이 해방 73년이 지나는 동안 독재와 유신정권 그리고 살인정권을 유지시켜 준 이데올로기가 될 줄 미국이 예상이라도 했을까?

반공을 제 1 목표로 내걸고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지주로 하여 대리정권을 수립하고자 했던 미군정에게 외세를 배격하는 철저한 민족주의자 김구는 적절한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장애물이었다. 당연히 미군이 선택한 인물은 김구가 아닌 매우 교활한 정치모략가인 이승만일 수밖에 없었다. 미군정이 이름만 바뀐 조선총독부라면 대부분이 친일파 민족반역자였던 한민당이 세운 이승만정권은 미군정이 꿈꾸던 대륙전진기지로서 한반도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적격자로 당연히 미국은 김구가 아닌 이승만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38도 이북의 북한의 군정기는 어떠했을까?>

194598일부터 1948815일까지 38선 이남을 통치하던 미군정과는 달리 38도 이북의 북한에서는 해방군으로서 진주한 소련군은 103일 제25군사령부 산하에 소련민정기관이 조직되었다. 50명의 장교들로 구성된 이 기관을 지휘하는 A. A. 로마넨코는 민정 담당 부사령관의 직책을 겸임한 민정기관에서는 행정정치부, 산업부, 재정부, 상업조달부, 농림부, 통신부, 교통부, 보건부, 사법검찰부, 보안검열부 등 모두 10개 부서가 설치되어 지도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 민정기관의 역할은 미군정과는 달리 일제에 의해 파괴된 경제를 복구하고 정상적인 생활 기반을 조성하며 조선 인민 자신의 국가권력 수립에 방조하는 문제 등을 담당하는것이었다.

맥아더 사령관의 포고문 -  맥아더사령관 포고문.hwp

치스차코프사령관 포고문 -  치스차코프 대장의 포고문.hwp


승전국의 점령군이 점령지의 민중에게 예의를 갖추고 인격적으로 대할리는 없다. 점령군의 자잘한 비리와 불법이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이런 현실이 미소군정기의 납북에서 수없이 일어났던 사례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군에 비해 38이북에 진주한 소군정은 놀랍게도 1945815일 인제가 패망한 후 19489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식적 출범하기 까지 38선 이북에 사실상 북한정권이 수립되었다는 사실이다. 소련군이 조선으로 진격한 이유도 조선의 해방 때문이 아니라 만주 작전 당시 만주국을 비롯한 만주지역 내 일본 육군 관동군의 괴멸을 위해서였다. 38이남의 맥아더 사령관의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을 위해서였지만 소련의 치스차코프 사령관의 포고문은 "조선인민들이여, 그대들은 독립과 자유를 회복...’이라는 인민들의 해방군으로 진주했다. 또 한 가지. ‘소련군정은 미군정처럼 직접 통치가 아닌 간접 통치를 표방하였으며 각지에 세워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지부와 인민위원회를 인정한 통치였다’(나무위키 참조)는 사실이었다.

1946101일 대구를 비롯한 남한의 전 지역에서 일어난 항쟁은 미군과 남조선국방경비대를 비롯하여 한민당세력, 민족청년단, 서북청년회, 백의사 등 반공주의 우파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진압하는 과정에서 공무원 63, 일반인 73명으로 총 136명의 희생자를 냈다. 항쟁 진압과정에서 예의 빨갱이토벌의 효과가 이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물론 당시 미군보다 토벌에 전면에 나서서 앞잡이가 되었던 친일파를 비롯한 극우 세력들은 미군정에 이어 이승만의 보호와 국가가 주는 훈장을 받는가 하면 죽은 후에 지금도 63명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민족을 위해 조국의 완전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열사들이 편히 눈감을 수 있겠는가? 미군정기를 비롯한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 까지 미국은 우리나라에 혈맹이요, 수호신이기만 했을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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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7.08.15 06:33


친일파 이완용 재산 최초 확인..'여의도 7.7배 땅'

광복 72주년을 맞는 아침 SBS가 친일재산조사위원회의 내부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한 기사다. SBS는 이 기사에서 이완용이 광복 전까지 소유했던 부동산은 알려진 것보다 663더 많은 2234로 드러나 여의도 면적의 7.7배로 친일파 168명을 대상으로 환수 결정한 전체 토지보다도 1.7배 크다고 보도했다. 광복 이후까지 이완용 일가가 가지고 있던 부동산만 무려 166,182. 어디 이완용뿐이겠는가?



일본이 우리민족에 남기고 간 상처는 이완용의 재산뿐만 아니다. 그들이 심어 놓은 식민지 잔재는 한반도를 일본의 영구적인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황국신민화교육으로 해방 72년이 지난 지금도 ‘1945815일을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친일사관의 학자가 있고 일본의 한국식민지배가 축복이며 안중근의사와 김구선생님을 테러리스트라는 자들이 있다.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 없다"느니 독도가 "일본 것이라고 주장할만한 그들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대학교수까지 있다.

나라가 분단된지 72, 죽거나 다친 300만 희생자를 낸 6·25전쟁도 모자라 서로 철천지원수가 되어 분단유지비만 연간 40조원이다. 국방예산 연간 40조도 모자라 미군 주둔비를 연간 1조원씩 부담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군사력 세계 11위를 자랑하면서도 전쟁이 터지면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미군에게 맡기는 전시작전은 시효조차 없다. 이 기막힌 비극의 원인 제공자를 우방이라며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체결한 나라를 진정한 광복이 이루어진 나라라고 봐도 좋은가?

다시 광복절이다. 광복 72년째다. 광복절이란 우리나라의 광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한 국경일을 일컫는 말이다. 1910년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빼앗겼던 나라의 주권을 1945815일 되찾았기 때문에 이날을 광복절로 기념하기 위해 공휴일로 정해 놓고 있는 것이다. 분단의 땅 대한민국은 친일잔재를 청산하고 나라위해 목숨바친 순국열사들이 예우 받고 있는가? 우대하고 친일세력을 제거한 진정한 광복이 이루어 졌는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열사를 테러리스트로 비하하고 나라를 팔아먹은자가 전체 토지의 1.7배의 땅을 가지고 친일후손이 60년이 넘도록 집권한 것도 모자라 정치경제, 사회문화, 학계, 언론계, 종교계까지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에 어떻게 광복을 말할 수 있는가? 친일잔재청산은 지금도 늦지 않다.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이 큰소리치는 현실을 두고 어떻게 진정한 광복을 말할 수 있겠는가?

아래 글은 친일관련 제 블로그에 썼던 글입니다.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 위안부 문제는 한일협정 때 다 끝난 이야기다.
–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을 타박하는 뉴스만 나가서 죄송하다.
– 한일협정은 한국 경제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노무현 정부는 과거사 청산을 정쟁에 이용했고 국익에 피해를 줬다.
– 일 총리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 한국 정부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다.
– 한국에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가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일본왕을 천황으로 호칭하며 네 번이나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다.

한일 국교정상화로 우리나라가 경제재건을 이룬 만큼 일본에 대한 보상 요구는 부적절하다.

일본 정치인의 신사참배는 "내정간섭"이다 

 

 

 

<사진 : 아이엠피터>

 

광복절 앞두고 ‘천황폐하’…박근령, 망언 잔치http://newstapa.org/28118 (클릭하시면 박근령의 대담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박근령의 이러한 발언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이승만 정권당시 국회의원 851명중 338명이 총독부 등에서 부역한 친일파이며장관각료 122명중 57명이 일체 총독부등 통치기관에서 일했던 경력의 소유자였다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역시 고위경찰간부 중 총경계급의 7경위계급의 1.5할이 일제경찰 출신이요역대 육군참모총장 8명 모두가 일본군이나 만주국의 군관 출신이었으니 이런 정부가 어떻게 해방된 나라가 수립한 정부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정부를 이끌어 온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4·19혁명정신을 계승한다면서 4·19혁명정부를 무너뜨린 5·16이 쿠데타가 아니라 구국혁명으로 미화하겠다고 국정교과서를 만들기 작업이 한창이다. 5·16이 혁명이 되면 4·19는 쿠데타인가독립군을 토벌하던 박정희가 애국자가 되면 독립군은 역도가 되는가? ‘일본군보다 더 일본인다웠던..’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인 나라에 해방 70년은 과연 진정한 해방일까?

 

정치경제 사회문화 곳곳에는 아직도 친일의 후손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친일청산을 반대하던 자가 독립기념관장을 지내고친일인사의 손녀가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인 KBS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던 신문이 대한민국 일등신문이다. 친일이 불가피했다는 사람이 청와대 비서관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면 집권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국회의원 149명중 100명이 친일 청산법을 반대하는 나라가 해방 70년 우리의 얼굴이다.

 

 

 

 

 

 

친일청산이 없는 나라에 진정한 해방은 없다. 그것이 물적청산이든 인적청산이든 상관없이 식민지 잔재를 말끔히 청소하지 않는 해방은 구호만 화려한 껍데기일뿐이다. 그것이 태극기를 달고 애국가 4절까지 가사를 외운다다고 애국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위의 글은 배방이 됐으나 해방이 없는 대한민국이 안타까워 썼던 글들이다. 태극기로 물결치는 해방 70년의 대한민국은 진정 해방을 맞이한 것인가를 생각하며 착잡한 마음으로 광복절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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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5.04.05 18:11



며칠 전 삼성이 운영하는 신라 호텔에서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입장을 거부당한 얘기로 네티즌들의 분노를 쌓던 일이 있지만 해방된 지 60년도 훨씬 지난 우리 생활 속에는 아직도 청산 못한 식민지 잔재가 너무나 많다.

식민지잔재로 남아 있는 일본말, 식민사관, 이름이 바뀐 지명, 여자이름 뒤에 ~자가 붙은 이름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했던가? 가문이며 제사문화, 남존여비와 같은 공자문화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생활 속에 남아 있는 식민지 잔재는 얼마나 많은가?

 

                         <사진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국민'이라는 말이 ''의 준말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초등학교'로 바꾸었다.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뀌는데 수십년이 필요했지만 아직도 ‘국민’이라는 말은 우리 생활 속에서 바뀔 생각조차 않고 있다. 해방 후 60년도 훨씬 지났지만 노예시대 문화를 청산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은 일본에게 어떻게 보일까?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은 과거 일본 식민지시대의 훌륭한 교육 덕분... 어쩌고 하는 일본 관리들의 망언이며 독도가 자기 땅이니 역사교과서 왜곡은 어느날 우연히기 나타난 일은 아니다.


나라 사랑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부끄러웠던 노예생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서는 민족의 자존도 긍지도 입에 발린 소리다. 생각해 보자. 36년간 민족해방을 위해 고초를 겪었던 애국지사들의 자손은 잔악한 일본의 탄압으로 참혹한 생활을 했지만, 민족을 팔아 부귀영화를 누렸던 반역자들의 자손들은 호의호식하며 고등교육을 받고 해방정국의 주역이 된다. 우리사회의 온갖 모순의 근원이 식민잔재청산을 못해서 그렇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오늘은 생활 속에 남아 있는 식민지 잔재를 찾아보자.

우선 ‘국민 여러분!’ 할 때 국민은 누군가? 한자
사전을 보면 民자는 象形. 즉 ‘눈동자가 없는 눈을 바늘로 찌르는 모양을 본뜸, 눈을 찔러 사물을 볼 수 없게 된 노예를 나타냄’ 이라고 적고 있다.

어원을 보면 '民자는 국가의 주권주체가 아니라 황제 혹은 통치권자에 종속된 노예의 모습'이다. 금문에서부터 등장하는 民은 예리한 칼에 눈이 자해된 모습이다. 옛날 포로나 죄인을 노예로 삼을 때 한 쪽 눈을 자해한 것은 '성인 남성 노예들에게 반항할 능력을 상실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논어에서도 춘추시대 사회의
지배계층을 의미하는 ‘인’과 피지배 계층인 ‘민’이 각각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노예를 뜻하는 '국민'뿐만 아니라 학교 이름 중에는 00동0학교, 00서0학교와 같은 이름이 있다. 일본의 수호신이 태양신이요, 동0학교는은 일본 학생이 서0학교는 조선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라는 걸 생각하면 그런 이름이 왜 해방 후 60년이 지나도록 그대로 불리고 있는 지 이해가 안 된다.
황국신민 정신을 주입하기 위한 하던 애국조례며 학교장 훈화가 그대로요, 일본식 군국주의 교육의 잔재인 ‘차렷, 경례’도 그대로다. 불량선인을 색출하기 위한 교실첩자인 주번제도며 복장위반이나 지각생을 단속하던 교문지도도 식민지 시대 그대로다.

국민학교라는 이름도 1996년에야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유치(幼稚)하다' 즉 ‘수준이 낮거나 미숙하다’는 뜻의 유치원은 아직도 못 바꾸고 있다. 학교장의 ‘회고사(回顧辭)’나 ‘훈화(訓話)’, 학년말 평가를 뜻하는 ‘사정회(査定會)’ 등의 일본식 조어가 사전에도 없는 용어지만 여전히 교육현장에 남아 있고, 식민지 잔재인 순서나 방위가 들어간 교명(校名)도 그대로다.

인권침해라는 끊임없는 지적을 받고 있는 두발·복장 검사며 일본식 교육문화, 군대식 거수경례, 아침조회 같은 문화도 식민지시대 그대로다. 또 식민지시대부터 계속되어 온 수학여행은 얼마나 교육적이기에 바꿀 생각조차 않고 있는가?

법률용어며 경제용어, 건축을 비롯한 일제가 남기고 간 언어문화의 오염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해방후 건국한 나라가 친일매국노들이 주역이 됐듯이 해방조국의 문화는 일제의 잔재로 상처투성이가 되어 지금도 생활속에 남아 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나무라기 전에 우리의 생활 속에 남아 있는 식민지 문화청산은 왜 못하는가?
  
이승만정권 때 정치적기반이 없어서 친일파를 등용하면서 금과옥조로 이용하던 반공 이데올로기는 어떤가? 반공법은 이름만 ‘국가보안법으로 바꿔 진보적인 지식인들의 목줄을 죄는 올가미로 이용되고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다. 지금부터라도 왜곡되고 오염된 민족문화를 복원하고 우리 문화 속에 남아있는 식민지 잔재부터 청산하자. 그것이 역사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일이며 일본으로부터 조롱거리가 되지 않는 민족의 자존과 긍지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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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06.05 07:24


 

 

6월 6일은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현충일’이기도 하지만 일제 치하 36년간 자행된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처벌하기 위하여 제헌국회에 설치되었던 특별기구인 ‘반민 특위가 해체된 날’이기도 하다.

 

흔히 우리역사의 총체적인 모순과 비극을 일제잔재미청산에서 찾는다. 일제잔재 미청산은 배방 후, 친일세력이 한국사회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는 길을 열어준 것은 물론, 한국민족주의의 좌절과 단절을 분단과 6.25민족비극으로 이어지게 하는 원인제공자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역사청산에 대한 민중들의 열망은 해방 전부터 시작됐다.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인 1947년 친일잔재청산을 위하여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민족반역자 ·부일협력자 ·전범 ·간상배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 법안이 미군정의 동맹세력인 친일경찰, 친일관료, 친일정치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준을 거부하였다. 이로써 친일파 청산의 과제는 정부 수립 후로 넘어가게 되었다.

 

 

1948년 8월, 헌법 제101조에 의거하여 국회에 반민족행위처벌법기초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이어 9월 특별위원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의하면 ‘국권피탈에 적극 협력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제국의회의원이 된 자는 최고 무기징역 최하 5년 이상의 징역, 독립운동가 및 그 가족을 살상 ·박해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징역, 직 ·간접으로 일제에 협력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재산몰수’에 처하도록 하였다.

 

1949년 1월 5일 반민특위는 중앙청 205호실에 사무실을 차리고 8일 박흥식을 체포함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자 이승만은 담화를 통하여 ‘반민특위가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반되며 안보상황이 위급한 때 경찰을 동요시켜서는 안 된다’며 반민족세력을 비호한다. 반민특위는 특위활동이 불법이 아니라는 담화를 발표하고 정부의 협조를 촉구하였지만 이승만은 ‘반민법 법률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는 등 방해활동을 그치지 않았다.

 

 

 

이승만의 노골적인 반대와 방해로 반민 특위는 총682건 중 기소 221건, 재판부의 판결건수 40건으로, 체형은 고작 14명에 그쳤다. 실제 사형집행은 1명도 없었으며, 체형을 받은 사람들도 곧바로 풀려나고 말았다. 반민특위는 국회프락치사건과 6 ·6경찰의 특위습격사건을 겪으면서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친일파 척결의 주도세력이었던 소장파의원들을 간첩혐의로 체포되는 국회프락치사건을 겪으면서 위축되는 등 특위 산하 특경대에 대한 경찰의 습격은 반민특위의 폐기법안을 통과시키게 함으로써 민족반역자에 대한 처벌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다른 나라는 빈민족행위자를 어떻게 청산했을까?

 

프랑스의 경우, 나치협력자들이 감형되거나 피선거권을 얻기도 했지만 약 70%의 구 정치인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드골대통령은 기업인, 출판계, 작가, 지식인, 영화 배우, 가수, 학자, 정치인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 12만 7천 7백 51명이 재판에 회부, 6천 7백 6십여 명이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이 가운데 사형이 집행된 사람은 7백 6십여 명이었다.

중국의 경우, 1945년 11월 23일, <한간(漢奸)처리안건조례>를 공포, 1947년 10월까지 국민당 관할 지역 각 성시(省市)의 고등법원에서 재판한 한간 관련 안건은 약 25,000건이었으며, 그 중 369명이 사형, 979명이 무기징역, 13,570명이 유기징역, 14명이 벌금형에 각각 처해졌다.

 

독읠의 경우, 독일은 지금도 나치전범에 대한 색출과 처단을 그치지 않고 있다. 독일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통해 나치 전범 12명을 사형시켰고, 연합군 점령 종료 후에도 나치 전범을 계속 추적해 10만 건 이상의 용의자를 수사, 6,000건 이상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몇년 전, 93세 나치 전범 용의자가 체포됐다는 뉴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할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지난 1970년 빌리 브란트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에 무릎을 꿇고 헌화하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1998년 헬무트 콜 총리는 “독일은 나치 만행을 잊어서도 안 되고, 잊으려 하지도 않는다.”면서 지속적인 사과의 말을 하기도 했다.

 

네델란드의 경우, 1940년 5월부터 1945년 5월까지 5년간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은 네델란드는 <특별법원>, <인민재판소>에서 맡아 네델란드 괴벨스라 불린 친독언론인 막스 블록쩔 등 154명에 사형을 선고, 이들 중 39명은 사형이 집행되었으며 무기징역 148명, 15 ~ 20년 징역형 578명, 10 ~ 15년 징역형 4,589명 등 중형을 선고하고, 인민재판소도 10년 미만의 징역형 531명 등을 선고하여 반민족행위자들을 엄벌하였다.

 

폴란드는 1942년부터 반역자와 협력자들을 처벌하는 특별군사재판소와 특별민사재판소를 운영하였다. 이들 재판소에서는 약 5,000건의 재판에서 약 3,000건의 사형선고를 내리고, 약 2,500명의 사형을 집행하였다.

 

위에서 예를 든 몇몇 나라들은 일본 지도자들의 매년 야스쿠니신사 참배와는 대조적으로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는 수록하고 투쟁사 교육을 계속하는 가하면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친일잔재청산을 어떻게 했을까?

 

일제시대 반민족행위를 저지른 자를 처벌한다는 것은 무너진 민족정신을 바로 세우고 정의를 확립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친일파 처단에 실패함으로써 친일세력들이 정부수립의 주도권을 장악, 자신들의 반민족행위를 반공이데올로기로 은폐시키고 독재체제에 충성하며 분단체제의 고착화에 앞장섰다.

 

이러한 과정에서 친일파들은 단죄를 받기는커녕 권력의 요직을 장악, 지도층을 형성함으로써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거기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는 상식은 물론 사회 정의가 무너져 가치관을 극도로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친일 경찰이 군과 경찰을 장악하여 한국전쟁 전후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였으며. 각종 선거에 개입하여 부정을 저지르는 등 민주주의 질서를 무너트려 이기주의와 부정부패 등이 만연한 사회를 만들어 놓고 말았다.

 

 

최근 “5.16 쿠데타는 성스러운 혁명이며, 5.18 민주화 운동을 북한 간첩의 사주에 의한 좌경. 빨갱이들의 폭동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정신대는 일제가 강제동원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상업적 매춘이자 공창제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왜곡은 종편을 비롯한 일베저장소와 뉴라이트 그리고 조중동의 역사왜곡이 뉴라이트의 국정교과서 검인정 통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민족을 배신한 과거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는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일제 경찰에 종사한 8,000명중 5,000명이 군정 경찰에 복무하고, 이들을 핵으로 군정 경찰이 구성되었으며, 경찰 간부의 80%가 일제 경찰 출신인 나라가 해방된 대한민국 정부다. 정부 수립 후 1960년 4월까지 즉 이승만 정권 12년간의 전체 각료 115명 중 재임 장관들을 제외하면 96명인데 이중 독립 운동가는 단 4명, 국내 민족 투사 8명을 합해서 그 비율은 12.5%에 불과하다.

 

부일 협력 전력자가 34.4%인 33명으로 구성된 정부, 반민특위는 공소시효 만료까지 조사 건수 6백82건, 체포 3백5건, 미체포 1백73건, 자수 61건, 영장 취소 30건, 검찰에 송치한 건수는 5백59건 이였다. 그러나 그 중 2백21건이 기소되어 재판을 종결한 것은 불과 38건인데 사형1건, 무기징역1건을 포함하여 실형이 선고된 것은 불과 7건뿐이었고 거의가 집행 유예나 무죄로 풀려났다.

 

실형 선고를 받은 7명도 1950년 6.25전쟁까지 감형과 집행 정지 등으로 모두 풀려난 세계에서 유일한 역사청산을 못한 부끄러운 나라가 됐다. 어쩌면 뉴라이트를 비롯한 수구세력들의 발호는 일제잔재청산을 못한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까?

 

-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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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2012.03.27 07:00



"나름대로 존경하시던 분들이 굉장히 상처입고 배신감도 느끼신 걸 이해하고, 모든 분들에게 정말 죄송하기만 하다.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한다."

 '고향의 봄'의 작곡가 이원수 아동문학가가 친일 인명사전에 명단이 올라가자 그의 딸 이정옥씨가 아버지의 친일 행적에 대해 사과한 말이다. ‘아버지의 친일행적이 딸의 사과 한마디로 얼마나 대속이 될지 모르지만 '친일대가로 받은 땅을 되찾겠다고 소송을 제기하는 인간들에 비한다면...'하고 이해 해야 할까?

어제 애국가의 작사자가 친일파의 대부 격이었던 윤치호에 대해 ‘친일파 윤치호 작사 애국가, 부끄럽지 않은가?’라는 포스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댓글이 올라왔다. 윤치호에 대한 그의 행적을 좀더 확인해 보자.


윤치호(尹致昊, 창시명 伊東致昊, 1865~1945)는 일본 귀족으로 입적한 '귀화한 일본인'이다. 1941년 흥아보국단 준비위원회 위원장,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 고문, 1945년 칙선귀족원 의원, 1945년 대화동맹 위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러한 초비상시에 우리의 애국적 열정을 보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윤치호 일기 1941. 8. 5) 총력연맹 주최 결전보국 대강연회에서 '결전체제와 국민의 시련'이라는 제목으로 "이 결전은 제국의 1억 국민뿐만 아니라 동양 전 민족의 운명이 여기에 달려 있다. 이 성스러운 목적 관철에 우리 반도 민중도 한몫을 맡아 협력치 않으면 안 될 것"이라며 조선의 아들들을 '일제의 총알받이'로 내모는 사냥꾼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인물이 윤치호다.

해방 70년이 가까워 오는 나라의 애국가를 이런 인물이 작사한 인물의 작품을 노래해야 하는가? 작사가뿐만 아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또한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는 누구인가? 안익태는 봉선화의 작곡가 홍난파와 무용가 최승희, 소설가 김동인과 시인 서정주 등 문화예술인사와 함께 4천 389명의 행각이 담긴 ‘친일인명사전’에 담긴 인물이다.

안익태(일본 이름 에키타이 안)는 일본왕에 대한 충성을 주제로 한 일본정신이 배어 있어 일본 왕 즉위식에서 축하작품으로 사용되던 일본 관현악 ‘에텐라쿠’를 차용한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에텐라쿠’를 1938년 발표했다. 이어 1939년 로마방송오케스트라 연주회, 1940년 불가리아 소피아 연주회 등에서 이를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그는 또 1942년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경축하는 ‘만주환상곡’을 작곡해 기념음악회에서 지휘하기도 했다.[한겨레신문]

애국가 작곡과  작사뿐만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태극기를  창안 도안한 사람으로 알려진 박영효는 또 어떤가? 개화파의 영수에서 친일파의 거두로 탈바꿈한 박효(朴泳孝, 1861∼1939)는 1910년 후작. 1911년 조선귀족회 회장. 1921년 조선인산업대회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제작한 태극기를 해방된 국가의 국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수치스럽지 않을까?    


민족 분단 60여년. 그리고 친일잔재청산의 불발, 한국전쟁... 5·16쿠데타, 광주민중항쟁, 12·12사태, 전두환, 노태우정권 군사정권의 탄생... 이 모든 민족의 질곡이 36년간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가? 해방과 함께 친일의 후예들이 차지한 나라, 그 친일세력들이 아직도 이 땅의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원조가 그들 아닌가?


정신대며 보국대며 2차대전의 총알받이로 끌려가 죽어간 조국의 아들딸들의 원성이 아직 귓가에 맴도는데... 도둑질해 간 조상들의 문화재며, 정신대 할머니들의 문제도 해결하지 않고 있는데.... 행사 때마다 부르고 있는 애국가가 매국노의 작품이어야 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식민지 잔재청산은 친일인명사전 제작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생활 속에 남아 있는 왜색문화 청산이며 친일부일세력에 대한 단죄조차 못하고 있지 않은가? 애국가조차 친일분자들이 작곡, 작사한 노래를 부르고 친일분자가 도안한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는나라를 어떻게 해방된 독립국가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통일도 급하고 민주화도 급하다. 그러나 생활 속에 남아 있는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어떻게 진정한 해방을 말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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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2011.09.26 06:19


                                    <이미지출처: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KBS가 친일파 백선엽 미화에 이여 이승만 특집을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 연속 강행하기로 해 시민단체와 독립운동 유족들의 반발하고 있다. KBS가 강행할 이승만 특집은 1, 2, 3부로 나눠 ‘1부 개화와 독립’은 고종 폐위 사건과 그의 ‘외교독립운동’, ‘2부 건국과 분단’은 남한단독정부 수립과 반민특위 해체, ‘3부 6·25와 4·19’은 그의 전후복구 업적과 부정선거 논란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이승만만큼 극과 극의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인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이화여대 총장을 지냈던 김활란은 이승만을 가리켜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그리고 에이브러햄 링컨을 다 합친 인물’이라고 평가했는가하면
제헌국회의원을 지낸 허정은 이승만을 ‘대한민국의 국부, 아시아의 지도자, 20세기의 영웅’이라고 평가했다.
6·25전쟁 중 주한 미군사령관을 지낸 밴 플리트는  ‘한국의 조지 워싱턴으로 자기 체중만큼의 다이아몬드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닌 인물’이라고 극찬했다.


그런가 하면 독립운동가 장준하선생은 ‘이승만은 희대의 협잡꾼이요 정치적 악한’이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언론인 송건호선생은 ‘독립운동도 제가 대통령을 해먹으려고 또 건국도 제가 대통령 해먹으려고 했던 인물’이라고 혹평한다. 공산권 정부와 언론에서는 ‘이승만은 권력욕에 눈먼 미국의 앞잡이’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영미의 진보적인 언론은 그를 가리켜 ‘무책임하고 잔인한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개인적인 평가를 차치하고라도 이승만은 건국과정에서 친일파를 등용해 친일잔재청산을 무산시킨역사의 오점을 남긴 인물이다.
해방정국에서 정치 경제는 물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미국에 예속시켜놓은 인물이라는 평가도 피할 길이 없다.
친일잔재청산통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고 정적인 김구선생을 비롯한 여운형, 조봉암 등을 제거하는 잔인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국민방위군 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등 수많은 양민학살을 자행했던 인물이 이승만이다.

그는 장기집권을 위해 사사오입개헌과 3·15부정선거를 획책하다 4·19혁명으로 하와이로 쫓겨난 독재자다.

친일파와 이승만을 찬양하는 세력들은 누군가? 이명박정부와 조중동, 자유총연맹과 뉴라이트, KBS가 그들이다.
그들이 친일파 백선엽을 미화하고 독재자 이승만을 찬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시점에서 여러 가지 핑계와 이유를 대며 이승만 방송을 강행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은 자신들이 의도한 대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만들려는 프로그램의 일환임을 드러낸 것”이며 “이승만을 띄워야 박정희와 5·16 미화가 가능하고, 그래야 보수세력 집권 터를 닦을 수 있기 때문”
이라는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의 발언은 저들의 속내를 여과없이 폭로했다.


KBS가 친일파와 독재자를 찬양하는 방송은 이명박정부와 코드를 함께하는 조중동과 자유총연맹 그리고 뉴라이트계열의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친일파라는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세탁하고 그들의 과거를 정당화하겠다는 재집권의 속셈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초·중·고교 역사 교과서조치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고치는가하면 종합편성 채널을 수구세력과 조중동에 몰아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명박정부가 올해 하반기부터 시작될 종합편성채널권을 조중동에 몰아준 이유가 뭘까? 4·19 혁명과 6월 민주항쟁을 평가 절하해 내일의 주인공이 될 청소년들에게 교과서를 통한 편향된 이념을 주입하고 언론을 장악해 시민들의 비판의식을 마비시키겠다는 재집권 시나리오가 아닌가? 이들은 친일세력을 애국자로, 독재자를 건국의 아버지로 둔갑시켜 5.16쿠데타조차 미화함으로써 수구 기득권 세력이 재집권할 길을 닦고 있는 것이다.

시청자들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권력의 나팔수가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KBS 김인규사장은 지금이라도 친일파 백선엽 찬양방송을 사죄하고 28일부터 방송하기로 한 이승만 특집 찬양방송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9.05 05:00



 

                             <이미지 출처 : 아이엠피터님 블로그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 ·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일부다.

4·19민주이념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한민국 백성이 아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국민의 방송’이니 ‘공영방송’이라고 하는 KBS가 3·1운동을 부정하고 친일파를 미화하는가 하면 독립군을 토벌하던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고 4·19 이념을 부정하는 방송을 하고 있어 시청자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KBS는 만주지역의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제의 특수부대 백선엽을 미화하는 내용의 방송도 모자라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라며 영웅으로 만드는 방송을 하겠다고 한다.

KBS는 지난 6월 24~25일에도 ‘백선엽 특집 다큐’를 방송한 바 있다. 백선엽이 누군가? 백선엽이 활약한 간도특설대란 만주지역의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제의 특수부대다.

‘나물을 뜯는 이들을 잡아다 불태워 죽이고, 전사한 항일부대원의 내장을 꺼내 자기들 충혼비에 제사를 지내고, 포로로 잡힌 항일부대원을 일본도로 참수하여 잘린 머리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항일부대원을 숨겨준 마을 원로를 살해해 그의 머리를 삶은 후 두개골을 장식으로 만드는 등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만행을 저지른 게 그들이었다.’(한겨레신문)

                                                  <이미지 출처 : 아이엠피터님 블로그>

이승만은 또 누군가? 4·19혁명으로 쫓겨난 독재자다. 민주주의와 부정부패에 항거하는 청년학생들을 수백명이나 살상하고 수많은 양민들을 학살한 자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KBS가 중단했던 광복절 기념특집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이승만’ 편 다큐멘터리를 이달 중하순께 방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KBS만 그런게 아니다.
<조선> “이승만은 부정선거 몰라” “이승만과 4.19는 같다” 주장 부각
<중앙> “이승만과 4.19의 화해”, “이승만 재평가 움직임 활발”
<동아> <이승만 유족, 51년만의 ‘4.19 사죄’>
<조선> “아버지 이승만, 불의에 항거한 학생들 장하다 했다”
<‘이승만-4.19’ 역사적 화해 모색>(중앙, 1면)
<내일 4.19 51주년 - 활발해진 이승만 재평가>(중앙, 2면)
<건국과 이승만, 그리고 4.19>(중앙, 칼럼)
<이승만 유족, 51년만의 ‘4.19 사죄’>(동아, 2면)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을 애국단체들이 반발하는 이승만 특집에 혈안이 되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역사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친일인명사전을 만들기도 하고 현대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아직도 우리사회의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당 수의 사람들은 친일 인사의 후손들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이명박 대통령의 가계를 보자


조중동은 또 어떤가? 혈맥 또는 인맥으로 연결된 그들은 MB정권시절 언론을 장악하고 그 힘으로 역사 거꾸로 세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나라를 팔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일제에 빌붙어 우리의 젊은이를 학병으로 혹은 정신대로 내몰고 나이든 사람들은 징용으로 보국대로 내몰아 죽인 장본인들. 만주에서 혹은 간도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애국지사를 잡아 잔인하게 죽이던 반민족 친일 인사들이 해방 정국에 주역으로 애국자로 변신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영역에서 권력을 장악했다. 그들은 역사의 고비마나 혹은 독재에 혹은 군사정권에 빌붙어 시혜를 받고 혼맥을 엮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나만의 창고' 블로그에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보수언론, 뉴라이트 등 보수로 위장한 세력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설 곳이 좁아지자 민주세력을 빨갱이로 색깔 칠을 하고 보도연맹 사건으로 혹은 간첩사건을 조작해 수십만명을 학살했던 것이다. 이들이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는 있는 종북 좌익이니 빨갱이란 이렇게 만들어져 선거 때마다 혹은 정적 제거용을 써 먹었던 것이다. 이제 MB 정권의 임기가 끝나기 전 ‘건국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서울 광화문 ~ 용산을 잇는 '역사 상징거리'에 동상을 세우자고 기염을 토하고 있는 것이다.

애국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KBS가 백선엽을 미화하고 이승만을 찬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들은 내년 선거를 앞두고 수구세력의 재집권을 돕고자 우리 역사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지워 수구세력들의 어두운 과거를 세탁하려는 의도다. 뉴라이트를 비롯한  한나라당과 조중동 그리고 KBS는 수구세력들의 재집권을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헌법정신마저 부정하는 정치 쿠데타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수구세력들의 쿠데타를 구경만 하고 있어야할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8.20 04:55



  <아래 모든 이미지 출처 : 다음검색에서>

교육과학기술부가 2009개정교육과정을 개정 고시한 내용이 이명박 정부의 개발주의, 자본 편향 논리의 이데올로기로 얼룩져 있다며 시민사회단체와 전교조가 반발하고 있다. 교육과정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야단일까? 2008년 금성출판사가 만든 교과서가 수구언론의 몰매를 맞고 사라졌던 사건을 예를 들어 교육과정이 왜 중요한 지 살펴보자.

“금성출판사에서 발행한 근현대사 교과서와 북한 역사교과서들을 비교·분석한 결과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북한 교과서를 베꼈다”
“국민적 열망과 여러 정치세력들의 반대 속에 1948년 5월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기 위한 총선거가 실시됐다…친일파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으며 민족정신에 토대를 둔 새로운 나라의 출발은 수포로 돌아갔다…”

한나라당 정두언의원이 교육과학기술위 국정감사를 위해 배포한 보도 자료에서 금성출판사를 비판한 글 중 일부다.


정두언의원은 “좌파세력들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교과서의 편향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폐해와 해악은 나라의 존망까지 위협할 정도이기 때문에 연내에 교과서 개정 절차를 밟아 당장 내년 역사교과서부터 새로운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정두언 의원이 금성풀판사가 발행한 교과서를 비판한 이유는 금성출판사의 사관이 자신의 사관과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다. 도대체 사관이 무엇이기에 현대사 교과서 문제가 ‘나라의 존망까지 위협할 정도’라며 길길이 뛰는 것일까?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사건은 역사가 되는가? 역사는 지나간 일(事件)을 모아둔 게 아니다. 지나가 일 중에서 후세 사람들이 알아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가치 있는 事實도 있고 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쓰레기 같은 事實도 있다. 여기서 가치로운 事實이란 학자의 견해나 기준, 해석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모든 事實이 史實이 아닌 바에야 그걸 구별하기 위해 필요한 게 역사관(歷史觀)이라고도 하는 사관(史觀)이다.

‘역사가가 과거의 사실을 볼 때 역사가 자신의 고유의 입장, 과거의 사실 가운데서 어떤 사실을 선택할 때의 기준, 그것을 해석할 때의 해석 원리, 그 사실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가치관 등,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을 역사관이라고 정의하고 있다.(네이버 백과사전)

사실(事實)과 사실(史實)도 구별할 줄 모르는 학생들이 역사학자의 사관의 도움 없이는 어떤  事實이 중요한지 그게 史實이 되는지 구별하기 어렵다. 그래서 전문가의 눈으로 역사를 해석한 게 사관(史觀)이다. 그런데 사관이란 순수한 객관적 진실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서술한 학자의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어 어떤 사관에 따라 집필했는가에 따라 2세들의 역사관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친일세력들이 역사교과서를 만들면 어떤 모습의 교과서가 나올까? 불교신자나 기독교인들이 현대사를 집필하면 어떤 모습일까? 유신세력들이 현대사를 집필하면 어떤 교과서가 될까? 뉴라이트 계열들이 만든 현대사는 어떤 모습일까?

뉴라이트계 사람들이 쓴 현대사가 어떤 모습일지 가상해보자. 뉴라이트계열의 학자는 <유관순>열사를 ‘체제를 부정한 불순분자’로 <김좌진>장군은 ‘체제를 부정한 악질 테러분자’로 <일제 강점기의 종군위안부>는 ‘자발적인 경제단체, 성매매업자’로 기술할 것이다.

불교나 기독교 신자는 부처님이나 하느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가 부흥 발전한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으로 기술할 것이고, 유신세력의 잔당인 학자들은 10월 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기술할 것이다.

경성제국대학 교수, 서울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장, 학술원 회장, 진단학회 이사장, 민족문화추진회 이사장, 국방부 전사편찬위원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문교부 장관 등을 역임한 이병도와 같은 실증주의(이완용의 후손으로 식민지사관의 학자) 사학자들은 역사를 어떻게 기술할까? 해방 후 우리나라 역사는 ‘일선동조론, 타율성론, 정체성론‘에 입각한 식민사관에 에 의한 역사를 기록했고 그 기준에 따라 만든 교과서를 학생들이 지금까지 배워 온 것이다.


실증주의로 위장한 식민사관학자들은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에 지배당해 왔고 스스로 자립할 능력이 없는 정체된 민족으로서 일본의 한국 병합을 정당하다’는 사관을 가진 학파다. '일한동조론'(日韓同祖論), '동조동근론'(同祖同根論)을 바탕을 둔 사학자들이 만든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은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까? 이들은 일본 제국 쇼와 천황의 한국 식민 지배가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금과옥조로 믿고 있어 학생들일본 제국 쇼와 천황에게 일본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게 만든다.

사관(史觀)을 무시하고 지엽적인 역사적 지식(事實)만 암기하는 역사공부는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공부다. 노예들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양방의 사고(思考)를 하도록 만들면 누가 이익이 되는 가? 노동자들의 머릿속에 자본가의 생각(價値觀)을 갖도록 하면 노동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해방 후 실증주의 사학자들은 식민사관에 의한 역사적인 지식을 암기시켜 역사의식을 마비시켜왔다.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영웅사관이나 식민사관의 역사를 암기시켜 현실감각을 마비시키고 친일세력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존경받는 풍토를 만드는데 기여해 왔다.

정두언을 비롯한 수구세력들은 왜 금성사가 만든 현대사 교과서를 못마땅해 하는가? 기득권 세력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노동자들이 똑똑해져 김진숙위원처럼 노동자의식과 역사의식, 권리의식을 가진 민주시민으로 나타나는 걸 가장 두려워한다. 전교조를 비롯한 시민단체나 양심적인 학자들을 친북세력으로 매도하는 이유가 그렇다. 자신의 과거가 부끄러운 세력들은 학생들이 객관적인 역사의식을 가지고 비판적인 안목과 민주시민의식을 갖춘다면 자신들의 설 공간이 없어지는 게 두려운 것이다.

 


역사교과서만 문제가 아니다. 2009교육과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는 교과부를 보면 이성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교과부는 단 4개월 만에 초ㆍ중등 12년간의 교과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초·중학교 9년간의 교과서 개발을 6개월 만에 끝내려 하고 있다. 게다가 사회과 교육과정 개발진의 경우, 초등 지리 교육과정 개발에 교수 1명, 초등 일반사회 1명, 중학교 지리 1명, 중학교 일반사회 1명, 고교 경제 1명 식으로 각 영역별 1명씩으로 구성, 사실상 정상적인 교과 교육과정을 만들어 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수학과의 경우 공청회 일정을 학교 공문이나 홈페이지에 공지도 하지 않고, 교과 교육과정 개발에 참여한 관계자 몇 명만으로 도둑 공청회를 하였고, 역사과의 경우는 6월 29일 공지를 하고서 바로 다음날인 6월 30일 역사과 공청회를 열었다. 사회과의 경우는 초·중·고 12년간의 일반사회, 지리 영역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전문계 교과까지를 포함한 내용을 한꺼번에 몰아서 진행하기도 했다.

역사과에서는 현대사 비중을 축소하여, 역사학계의 반발을 샀고, 도덕과에서는 개념상 어불성설인 ‘녹색성장’ 교육을 강제하고, 다문화ㆍ세계시민교육 대신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동안 통일 교육을 했던 고 1 도덕 교과까지 폐지하였다. 사회과에서는 ‘자본 중시, 노동 천시’의 편향성을 강화하여 친자본적인 정권의 속셈을 노골화하고.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 고1 사회 교과는 폐지하고 말았다.

20대 80사회, 부모의 사회·경제력이 자식들에게 대물림되는 현실에서 자본가와 기득권 세력 친일분자들의 시각을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 교육을 많이 주입한다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가? 어차피 수능이라는 과정에서 교과서가 요구하는 정답을 말하지 않으면 이단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지만 그런 교육으로 망가지는 아이들을 방치하고 침묵하는 게 양심적인 교사들이 할 일일까?

기득권 세력의 이데올로기가 담긴 교과서를 열심히만 가르치면 훌륭한 교사인가? 이런 현실을 두고 수구언론이나 기득권 세력들은 ‘교사는 공부나 열심히 가르치라’고 한다. 왜곡된 역사를 배워 평생을 노동자로 살아야할 제자들 머릿속에 자본가의 시각을 갖도록 만드는 게 올바른 교육일까? 이명박 정부의 개발주의, 자본 편향 논리를 정당화시켜 시장지상주의 가치관을 갖도록 만드는 교육은 삶을 황폐화 시키는 교육이다. 정두언 의원을 비롯한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방정을 떠는 이유를 알만하지 않은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