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이후 2016년 현재까지 13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놓친 적이 없는 나라. 대한민국은 하루 평균 36명, 40분 마다 1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자살률)는 25.6명에 달는 오명을 안고 있다. 자살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10대와 20대, 30대 청소년, 청년층 사망원인의 1위가 자살이다. 자살 시도자는 자살 사망자의 10∼40배(청소년은 50∼150배)로 약 52만4천명이나 될 정도로 습니많다.

이러한 자살은 삶의 위기, 정신적 어려움에 부닥쳐있으면서도 사회적 관계 단절로 공적 지원이나 부모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기 전에 자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보다 못한 경남교육청이 학교폭력근절을 위해 컨텐즈 사업의 하나로 주식회사 브레인에 의뢰해 이 웹툰을 만들었습니다.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는 '효인의 일기 - 자살'을 어제와 오늘 여기 소개합니다. 사랑하는 내 아이... 청소년들이 부모와 대화의 부재, 소통부족으로 힘들어 하거나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은 없을까요? 선생님과 부모님들은 이 웹툰소제로 '자살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대화의 시간을 한번 마련 해 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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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사는 이야기2019.05.14 05:33


사회공부가 어렵다는 학생들이 있다. 사회가 왜 사회공부가 어려우냐고 물어보면 외울게 많아서 그렇단다. 암기과목이 된 사회공부. 우리사회는 관념이 지식이 된 사회다. 안다는 것은 화학의 원소기호를 암기하듯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는 것을 사회공부라고 이해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사회선생님들에게 사회공부를 잘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개념을 이해하라’고 한다.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대한민국은 민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 1조의 이 말은 웬만한 사람들은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런데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공화국’이란 무슨 뜻인가? 또 ‘주권’이 무엇이며 ‘권력’이란 무엇인가라고 따져 물으면 명쾌한 대답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안다고 하더라도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데 구별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 사(公, 私)를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지위가 곧 인품이라고 착각 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분들은 지위가 곧 계급이라고 믿고 인격적으로 하대를 하거나 근무시간 외 혹은 직장 밖에서 지위가 낮은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하대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우리사회를 일컬어 계급없는 사회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계층과 계급이 다른 말일까? 정말 계급이 없는 사회일까?

‘세상을 보는 틀 혹은 고착화된 사고방식’인 이 관념은 사회화 과정에서 형성되고 고착화 된다. 특히 미(美)에 대한 관념, 종교에 대한 관념은 부모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2세들에게 관념으로 전수되기도 한다. 계급과 계층도 그렇다. 우리사회는 계급이 무너진 사회라는 관념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계급은 없지만 계층이 있다는 헛소리를 한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일수록 계층과 계급이 어떻게 다른가 설명하라면 제대로 하지 못한다.

노동자와 근로자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육체적인 노동인가 아니면 정신적인 노동인가를 따라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로 구분해 블루칼라는 마치 천한 일꾼처럼 분류하고 있다. 동무와 친구가 그렇듯이 계급과 계층도 그렇다. 사전을 찾아보면 계급이란 ‘재산·부(富)와 같은 경제적 능력, 신분의 고하, 정치적 지배력의 유무에 따라 구분되는 사회적 집단’,이러고 정의하고 계층이란 ‘재산·교육·직업 등의 여러 차원에서 사회적 지위가 거의 비슷한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정의해 놓았다. 우리사회는 이렇게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을 관념적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민주의식이 없는 시민이 사는 사회는 민주주의 국가일까? 시민의식이 없는 국가에 시민들은 민주시민인가? 주권의식이 없는 주인. 헌법에 선언적으로 보장되어 있다고 또 관념적으로 암기한 주권의식을 가진 시민들은 시민으로서 대접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똑같은 돈으로도 소비자주권을 가진 사람과 그것이 없는 사람들은 소비성향이 같지 않다. 자기 수준만큼 누린다고 한다. 소비자주권이 없는 소비자는 자본의 노예나 무엇이 다른가? 돈이 주인인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의 잇속을 알지 못하고 광고에 속아 건강 잃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똑같은 한 평생을 살면서도 그 사람이 가지는 관념, 의식, 주관, 철학에 따라 삶의 질은 물론 직업까지도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성평등세상을 만들겠다고, 어떤 사람은 환경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어떤 이는 내세를 준비하는 종교인이 되기도 하고 교육을 통해 세상을 바구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언론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믿고 언론인으로 평생 살겠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고 정치계 입문해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개념을 명확히 알지 못하고 관념적인 지식을 암기한 지식인들이 만드는 민주주의는 주권자가 주인으로 대접받고 살 수 있을까? 소비자 주권이 없는 사람들이 소비생활을 하는 자본주의에서는 건강한 소비생활이 가능할까? 계급이 없는 사회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자본주의에는 인격적인 만남이 가능한 사회일까? 깨어나지 못하는 주인은 주인이 아니다. 독재자들은 이렇게 민중을 우민화시켜 관념적인 인간으로 키우고 재벌이 소비자를 우민화시켜 돈벌이로 잇속을 챙기다. 그래도 관념적인 지식교육에 목을 맬 것인가? 그래도 철학교육을 하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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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7.01.16 06:50


계급아라는 말을 하면 또 그 과격이니 종북이니 빨갱이 소리 듣겠지. 그런데 왜 계급은 안되고 계층은 괜찮을까? 왜 노동은 안되고 근로는 괜찮을까? 왜 동무는 안되고 친구는 괜찮을까? 왜 인민은 안되고 국민은 왜 괜찮을까? 통일방안도 그렇다. 정부가 내놓은 한반도공동체통일방안은 무조건 좋고 북한이 내놓은 연방제 통일방안은 왜 비판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일까? 왜 정전협정은 괜찮고 평화협정으로 바꾸면 왜 안되는가?


<사진출처 : 통일뉴스>


분단이 있어야 유지되는 정권, 분단이 있어야 무기를 팔아먹을 수 있는 세력이 있기에 한반도는 아직도 통일을 말하면 이상한 사람이 된다. 분단이 필요한 사람들 때문에 우리민족이 옛날부터 쓰던 말조차 함께 쓰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분단은 국토만 분단된 게 아니라 사상이며 언어며 사고방식이며 가치관까지 바꿔놓았다. 문화와 역사를 함께해 온 동포가 철천지원수가 되어 상대방을 좋게 말하면 이적찬양고무죄로 처벌 받아야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부자가 국회의원이 되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법을 만들까? 의사가 국회의원이 되면 환자가 필요한 법을 만들까? 자본가가 국회의원이 되면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법을 만들어 줄까? 농사에 관한 한 농민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다. 장사에 관한 한 상인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다. 교육에 관한 한 교사들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다. 왜 농민대표, 상인대표, 교사대표가 국회의원이 되면 안 되는가? 세상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자기 계급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때 진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우스랜드(클릭하시면 에니메이션을 보실 수 있습니다)라는 에니메이션이 있다. 캐나다의 식품 및 유통 노동조합 소속 NDP 회원들이 만든... 이 에니메이션을 보면 마우스랜드는 모든 생쥐들이 태어나서 살고 놀다가 죽는 곳이다. 그런데 마우스랜드에는 우리가 사는 곳처럼 정부가 있고 4년마다 지도자를 뽑는 선거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생쥐들이 자기네들의 지도자를 생쥐가 아닌 고양이를 뽑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뚱뚱한 검은 고양이를 뽑았는데 그들은 생쥐가 아닌 고양이들이 좋은 법을 만들었다. 고양이가 드나들 수 있는 출입구를 만들어 생쥐들이 잡아먹히며 고통을 당하자 다음 선거에는 생쥐구멍을 네모난 생쥐구멍을 만들겠다는 고양이를... 그 다음에는 둥근 출입구를 만들어 고양이들이 더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법을 만들겠다는 고양이를 지도자로 뽑았다.


검은고양이가 쥐들을 잡아먹자 이번에는 흰고양이를, 흰고양이가 더 악랄하게 생쥐들을 잡아먹자 점박이 고양이를 뽑았지만 생쥐들의 잡혀 먹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느날 어떤 생쥐가 나타나 우리는 대체 왜 고양이들을 대표로 뽑느냐고, 왜 생쥐로 이루어진 정부를 만들지 않느냐고 생쥐들을 선동하자 빨갱이가 나타났다며 감옥에 처넣어 버렸다.



캐나다의 영화배우 키퍼 서덜랜드의 할아버지인 캐나다 전 주지사 토미 더글라스(Tommy Douglas)1962년 연설에서 한 '마우스랜드(Mouseland)' 우화는 지금 우리나라 현실과 무엇이 다를까? 자유당이라는 고양이가 나타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겠다고 국민들을 꼬드겼다. 순진한 국민들은 자유당이라는 고양이를 선택했지만 살기는 더욱 힘들어 쥐들이 힘을 모아 고양이를 쫓아내 버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고양이들이 나타나 정권을 도둑질해갔다. 그러기를 18년 또 다른 고양이가 14... 그러나 고양이들의 마취에 걸린 쥐나라 백성들은 또다시 고양이 지도자 뽑기를 멈추지 않았다.


고양이 쥐생각한다는 속담이 있다. 고양이가 쥐를 생각해 줄리 없다. 대한민국에서 고양이 지도자를 뽑는 투표권 행사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50년 전에 캐나다의 정치인이 한 연설 내용이 현재 한국의 정치 현실과 무엇이 다를까? 정치란 희소가치를 배분하는 행위. 고양이에게 노동자 농민을 위한 법을 만들어 달라고 지도자를 뽑는 생쥐들은 현명한가? 그래서 쥐들은 고양이를 원망하기는커녕 쥐들끼리 서로 헐뜯고 싸우며 도토리 키 재기로 세월을 보내지 않았는가? 언제쯤이면 우리도 고양이가 아닌 쥐가 만든 정부에서 서로 의지하고 사는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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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벚꽃 흐드러진 길에서 교복 입은 두 소녀가 웃고 있다. 다정한 친구 사이로 보인다.

그 왼편, 편지지 바탕에 적힌 11줄짜리 글이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넌 우정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질 거야

 

그럴 때마다

네가 계획한 공부는

하루하루 뒤로 밀리겠지

 

근데 어쩌지?

수능 날짜는 뒤로 밀리지 않아."

 

대형 입시업체 '메가스터디'의 2013년 캠페인 광고는 경고성 메시지로 끝맺는다.

 "벌써부터 흔들리지 마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아."

 

이 광고에 대한 기사가 한겨레신문에 게시되기 바쁘게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겁다.

 

나도 부정하고 싶지만 엄연한 현실이고 나도 그 냉혹한 현실속에서 살았었다. 저걸 욕하기 전에 그렇게 만든 교육 시스템 부터 뜯어고쳐야 한다(chma95)라는 제도적인 한계를 지적한 분이 있는가 하면...

 

‘우정이라는 그럴듯한 명분?

저 광고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친구를 사귀고 있나 보지.(김동건)‘라는 비웃는 네티즌...

 

‘뭐 어때서..왜 오버하는지 모르겠다.

친구가 공부 대신해주나? 친구가 내 삶을 대신 살아주나?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시비네. 교육시스템을 뜯어 거쳐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 많은데 답은 없더라.. 대한민국 교육은 어머니 말만 안들으면 바로 선다(nayawls)라는 메가스터디를 옹호하는 네티즌도 있다.

 

화가난 어떤 네티즌 중에는

 

‘메가스터디 ××놈들’,

‘돈벌레 ××끼들’...하며 원색적인 울분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다.

 

메가스터디가 어떤 곳인가?

 

메가스터디(Megastudy)는 온라인 강의 정보 제공업체로 2000년 7월에 설립돼 2000년 학원 강의를 온라인으로 가지고 들어간 뒤 7년 만에 시가총액 1조원을 돌파한 회사다. 손주은 대표이사는 한때 강사로 활동했었고 '손사탐'이라고 불리던 사람이다. 인터넷상에 고등부 교육서비스를 시작했고 인터넷상에 중등부 교육서비스와 고등부 사립학원 운영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최근에 의치학 및 법학 전문대학원, 초등부 고학년 영역에 진출한 급성장세를 타고 있는 회사다.

 

메가스터니 광고는 우연히 나온게 아니다. 메가스터디는 오랜 전, '시골의사 박경철과의 대화'에서 ‘교육은 시험을 잘 치르게 하는 것’이며 ‘시험 잘 치르게 하는 것이 참교육’이라는 학원경영자 다운 장사꾼 철학에 투철한 사람이다.

 

 

돈이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자본주의 사회일까? 학교도 수요자중심의 교육이라며 능률을 상위가치로 지향하는데 사설 학원이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그 까짓 광고 글이 좀 그렇기로 대순가?' 하고 넘어가도 좋을까?

 

아무리 돈밖에 모르는 장사꾼이라도 해서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아’라니... 학교의 현실은 친구에게 노트를 빌려주지 않는다는 건 오래된 애기다. 하지만 우리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사교육기관이 정말 교육적이지 못한 광고를 한다는 것은 지탄 받아 마땅하다.

 

공교육이 정상화되면 사교육이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일까? 아무리 잘못된 경쟁교육 틈새에서 돈벌이를 하는 장사꾼이라고 하더라도 친구를 적으로 만들어 가면서까지 돈을 벌겠다는 얄팍한 상술이 역겹다. 돈이면 못할 짓이 없는 저질 자본주의에 편성해 돈을 벌고 그 기반위에 더더욱 사회를 타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겠다는 사교육은 반성해야 한다. 친구도 없는 삭막한 사회에서 출세든 돈을 벌어 무엇에 쓰겠다는 것인가? 추악한 자본주의 얼굴에 자만치 오던 봄도 멀리 멀리 도망갈까 두렵다.

 

- 이미지 출처 : 한겨레 신문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사는 이야기2012.07.08 06:28


 

7살 된 외손자를 학원에 보내려고 영유아원 차가 오는 아파트 앞에 나가보면 웬 보육원 차가 그렇게 많은지 놀랍다. 정말 ‘유치원이나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유모차에 태워 데리고 오는 아이에서부터 우리 손자처럼 예닐곱 살 된 어린이들이다. 유치원에 보내는 9시가 지나면 아파트 놀이터에는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젊은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맞벌이 부부의 경우야 어쩔 수 없지만 집에서 살림을 하고 있는 젊은 엄마들도 아이들은 당연히 영유아원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겨우 걸음마를 하기 시작하면 어린이 집은 기본이고 영어학원이나 미술학원, 피아노학원 등 적어도 3~4개의 학원에 보내는 게 대세(?)다.

 

엄마들은 왜 아이들을 영유아원이나 학원에 보내기를 좋아할까? 맞벌이 부부의 경우야 마땅히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으니까 당연하지만 전업주부의 경우도 아이들은 영유아원에 보내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좋은 시설, 어린이들을 자녀처럼 돌보는 유치원 선생님, 그리고 놀이기구까지 골고루 갖춘 영유아원을 어른의 눈으로 보면 참 좋다. 저런 곳에서 사랑하는 아이가 안전하게 뛰놀며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사랑이 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일까?

 

 

그런데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 보자.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이 교육적으로 좋기만 할까?

 

첫째, 어린이 집의 시설이나 놀이기구는 안전이 보장되고 친환경적일까?

둘째, 그들이 먹는 간식이나 음식은 친환경이나 유기농이며 그런 먹거리가 엄마처럼 사랑이 담겨 있을까?

 

셋째, 하루 7~8시간씩 아이들이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에서 과연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그들이 머무는 공간은 즐겁기만 할까?

넷째, 아이들이 배우는 놀이며 교육은 지적 정서적, 신체적 발달단계를 고려한 것일까?

 

다섯째, 아이들이 배우는 게 정말 교육적인 가치가 있다고 믿어도 좋을까?

여섯째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정부나 지자체의 영유어보육지원비를 받으니까 안 보낼 수가 없다거나 남들 다 보내는데 우리아이만 안 보내면 경쟁에서 뒤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은 아닐까?

 

일곱째, ‘영유아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노래나 유희도 잘하고 훨씬 똑똑해 지더라’는 부모의 시각에서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영유아원 교육은 장단점이 많다. 그들이 보육시설에서 머무는 하루 예닐곱 시간은 신체적 정서적인 발달단계에 맞는 것일까? 취학 전 어린이의 집단생활은 규칙적인 생활과 사회성을 기르는 등 많은 장점이 있다. 그러나 영유아원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집에 있는 아이들에 비해 더 많은 세균에 노출되기 때문에 감기나 결막염 등에 쉽게 걸리기도 하고 2~30명의 어린이들을 한 명의 보육교사가 돌본다는 것이 정말 교육적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깊이 생각도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 구글검색에서>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어린 아이들을 한반에 2~30명씩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하루 종일 유희며 노래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게 하지는 않는다. 가르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도록 하는 시간을 말들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교실이 아니라 자연과 친숙해 질 수 있도록 자연과의 만나 자연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들로 산으로 다니면 자연 속에서 바람소리, 새소리 풀벌레소리를 들으며 자연을 듣고 배운다. 우리아이들처럼 서너살만 되면 영유아원에 보내고 텔레비전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고 영어를 배우기 위해 카세트 기계음을 듣고 지내지 않는다. 이러한 생활에서 정서적인 안정감이나 창의성은 제대로 길러지기나 할까?

 

말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영유아원에서 생활하는 게 부담은 되지 않을까? 건강하게 뛰놀고 친구들끼리 놀이를 통해 체화해야할 인간관계나 인내심, 양보와 협동정신은 제대로 배우기나 할까?

 

취학 전 어린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영유아원보다 따뜻한 부모의 사랑이다. 왜 노래와 춤을 배우고 숫자를 배우고 글씨를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할까?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엄마 아빠의 사랑이다. 여건이 된다면 보육시설이 아니라 엄마가 돌보는 교육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위 사진은 본 내용과 직접관련이 없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6.10 06:30


 

 

“나는 빨강색이 좋다!”

“넌 빨갱이구나. 왜 빨강색을 좋아해? 넌 나쁜 놈이구나. 우리와 함께 살 수 없어...!”

“나는 검은 색이 좋아!”

“검은 색..? 파란색만 좋아해야지 왜 그런 더러운 색을 좋아하는 거야? 너 같은 놈은 상종할 수 없어, 다른 나라로 꺼져!”

 

누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면 얼마나 유치하게 들릴까? 지금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북논쟁 수준이 이 정도다. 

 

푸른색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빨강색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아파트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단독주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양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한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민주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자본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계급사회에서는 계급에 따라 옷의 색깔, 집의 크기, 생각이나 가치관, 생활양식까지 규제를 받고 통제를 당하면서 살아야 했다. 그런데 계급사회도 아닌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유라는 가치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사회에서 나와 다르면 이단자 취급하는 논쟁은 참으로 유치하고 저질스럽기까지 하다.

 

 

종북주의 논쟁이 정치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종북주의란 말은 국어대백과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위키백과사전에 겨우 찾아 그 뜻을 보니 ‘종북주의(從北主義) 또는 종북(從北)은 대한민국에서 쓰이는 표현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집권 정당인 조선노동당과 그 지도자인 김일성, 김정일 등의 외교 방침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이라도 적혀있다.

 

대명천지 민주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매카시선풍이 일고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에는 사상의 자유가 없다. 세상 어느 나라에도 찾아보기 어려운 국가보안법이라는 전근대적인 악법이 있어 북한의 좋은 점을 말하거나 북한에서 발행된 책을 읽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만 해도 ‘이적찬양고무죄’로 처벌 받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북한의 모든 것은 다 나쁠까? 부자 세습과 같은 문제는 사회주의 국가에도 없는 북한 특유의 체제로 비판받지만 북한의 제도나 문화 중에 분명히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모든 것은 악이라는 사고방식은 북한의 폐쇄적이고 획일적 사고와 다를 게 없다.

 

 

‘어께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놀아라, 어께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놀아라.’

‘비야 비야 오지마라 우리 누나 시집갈 때 가매꼭지 물들어 가면 비단치마 얼룩진다.’

‘방구 방구 나가신다. 대포방구 나가신다. 먹을 것은 없어도 냄새나 맡아라. 뿌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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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말. 우리생활의 일부이기도 했던 동요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노랫말은 70을 바라보는 나이인 지금 들어도 추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친근감이 드는 말이다. 들길을 내달으며 친구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뛰놀던 추억은 나이 든 사람에게는 고향과 같은 향수를 자아내게 한다.

 

‘동무’라는 말...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북한에서 쓰기 시작하자 남한에서는 ‘동무’라는 말 대신 ‘친구’라는 말로 바뀌어 버렸다. 동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간첩으로 의심받거나 빨갱이들나 쓰는 말이 됐기 때문이다.

 

 

어디 동무라는 말만 그럴까? ‘노동자’는 ‘근로자’로 ‘인민’은 ‘국민’으로 바뀌었다.

분단 60여년... 대한민국은 영토와 언어만 분단된 게 아니다. 문화니 역사니 종교니 사상이니 가치관까지 쪼개지고 또 쪼개져 하나 되기는 날이 갈수록 멀어져 가고 있다. 믿음만 있다면 상처야 쉬이 치료될 수도 있으련만 지금으로서는 그런 조짐을 찾아 보기 어렵다.

 

남북정부간에 믿음은커녕 상대방을 헐뜯고 잘되면 배가 아파 못 견디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북에서는 ‘자본주의’라면 미제국주의의 앞잡이... 상종 못할 인종들이 사는 곳, 남에서는 빨갱이’라면 마귀나 악마를 연상케 하는 그런 관계, 그런 원수지간이 되어 있다.

 

종북주의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태가 빌미를 준 ‘종북주의’ 논란이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의 탈북자 폄훼 발언으로 불을 붙이고 급기야는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까지 사상검증이니 자격심사를 해야 한다면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기호의원은 “십자가 밟게 해 천주교 신자여부를 가린 것처럼 북한에 관한 질문으로 종북국회의원들을 가려낼 수 있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종북주의 논쟁으로 덕을 보는 사람은 누굴까? 역사적으로 빨갱이 타령은 해방 이후 정통성이 결여된 친일세력들이 상해입시정부를 부정하고 집권 시나리오로 시작된 이데올로기다. 이후 반민특위과정에서 혹은 여순사건이나 제주항쟁, 거창양민학살사건 그리고 보도연맹에 이르기까지 혹은 빨갱이를 만들고 혹은 빨갱이로 몰아 적대세력을 축출하고 매도하고 죽였다.

 

보도연맹 사건으로 학살당한 사람만 무려 30만명이 넘는다. 지배세력이 외세를 엎고 몸서리치는 살육전이 종북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목적이야 친일세력의 후예, 유신잔당의 후예, 쿠데타의 후예, 군사정권과 이들에게 은혜를 입은 세력, 이들을 키워 낸 수구언론, 그리고 반공교육으로 세뇌를 당한 사람들이 자기네 세상을 만들기 위한 꼼수겠지만... 

 

중북논쟁은 새누리당의 재집권 시나리오에 야당이 휘말려 논리도 이성도 없는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종북주의 논쟁 속에는 진정한 이념은 없다. 오직 대선 새누리당의 정구너 재창출을 위한 상대방의 정치생명을 매장시키기 위한 음모가 숨겨 있을 뿐이다.

 

겉으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면서 속으로는 분단의 유지가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유리하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어 추억이 담긴 동요도 말도, 역사도 사라져가고 있다. 종북주의, 빨갱이, 색깔논쟁, 메카시선풍이 거셀수록 정의도 민주주의도 찾아보기 어렵다. 서민들에게 지금 당장 시급한 일은 종북논쟁이 아니라 서민들의 복지요, 민주주의다. 사상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 어떻게 민주며 복지를 말할 수 있는가? 내 생각이 아니면 다 틀린 생각이라는 광기어린 종북주의, 색깔논쟁은 이제 그칠 때도 되지 않았을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옆집에 사는 00는 벌써 영어학원에 다닌다는데....’

‘00는 피아노를 배운다는데....’

‘00는 미술학원에 다닌다는데....’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불안한 어머니들, 사랑일까? 아니면 욕심일까? 이제 겨우 재롱을 피우며 말을 하기 시작한 서너살짜리 아이를 학원부터 보낼 걱정을 하는 어머니가 있다.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으니 학원으로 보내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내 아이가 영어에 취미가 있어서 일까? 아니면 아이가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기 때문일까? 기저귀를 찬 아이에게 영어 공부를 시키는 어머니는 내 아이가 다른 집 아이보다 뒤지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판단 때문이 아닐까?

 

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에 영어도 배우고 피아노도 배우고 미술학원에 보내 기능도 익히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입학한 후 학교에서 경쟁에서 뒤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껴서일까?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어머니라면 학교에 입학하기 전 영어학원이나 미술학원으로 등 떠밀기 전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초생활 습관부터 지도해야 한다. 자고 일어나면 자기 방을 정리하고, 화장실에 가고, 세수를 하고, 스스로 자기 주변의 정리와 이빨을 닦고... 학원에 보내기보다 평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활습관을 체화시키는 게 영어나 피아노 학원에 보내는 거 보다 중요하다는 걸 엄마들은 모르고 있을까?

 

 

기초가 부실한 집은 쉬이 무너진다. 건강이 소중하다는 것, 편식을 하지 않는 것, 남의 얘기를 잘 들을 수 있는 자세며,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법, 인내하고 용서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한다. 영어 단어 한두 개 배우는 것보다 지금 가르치지 않으면 평생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리는 생활습관을 체화하도록 가르치는 게 더 소중하지 않을까?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우리나라 학교 교육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 가르치는 경향이 있다. 구구단을 가르치는데 2×1=2, 2×2=4, 2×3=6... 이렇게 암시시키는 걸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2’라는 것이 무엇을 상징하는 개념인지.. 왜 그런 상징으로 ‘2’라는 모양으로 표시하는지.... ‘사람’이라는 글자는 왜 ‘ㅅ’과 'ㅏ’ 그리고 ‘ㄹ', ’ㅏ', ‘ㅁ'이 합해 만들어졌는지...

 

상징으로 표현되는 언어나 문자는 개념의 조작적 정의다. 개념을 가르치기 전에 주입하는 지식은 시험을 치기 위한 답을 암기하는 것일 뿐이다. 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중요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과정이 생략된 교육.... 그런 지식의 주입으로 서열을 매기는 것을 교육이라고 해도 좋은가? 점수 몇 점으로 아이의 운명을 바꿔놓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이 입학하기 전 절대로 글자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들조차 교실에 붙잡아 답을 암기시키는 게 아니라 자연에 풀어놓고 스스로 의문을 갖게 하고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18평 교실에 40여명을 몰아넣고 답을 외워 점수를 내고 서열을 매기는 그런 야만적인 교육을 어떻게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부모들은 왜 경쟁에 매몰되는가? 어차피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하기 때문일까?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녀들이 경쟁에서 이기는 공부보다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옳고 그른 것을 분별도 못하고 시비를 가릴 줄도 모르고 100점만 받으면, 일등만 하면 커서 다 알아서 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부모들... 어려서 잘못된 습관은 어른이 된다고 바뀌지 않는다.

 

교육이란 지식을 암기해 시험 친 결과, 그 점수로 서열을 매기는 게 아니다. 교육이란 나를 찾는 과정이요, 옳고 그른 걸 분별할 줄 알게 하는 것이요,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가릴 줄 알게 하는 일이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내 부모가, 내 형제와 이웃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하는 과정이다. 내가 사는 고장, 나의 조상, 내 민족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를 찾는 과정이다. 사랑과 과욕을 혼동하는 부모는 자신의 욕심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 기사는 충남인터넷신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chungnam.net/news/articleView.html?idxno=80867

- 위의 이미지는 다음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분류없음2011.02.19 05:52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이름 어머니~!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있다면 그건 ‘어머니’가 아닐런지요?
사랑의 대명사, 헌신과 희생의 대명사이기도 한 이 땅의 어머니!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도 더 많은 것을 못해 줘 안타까워하시는 사랑의 샘. 어머니! 가장 어려운 여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사랑과 행복을 만드는 사람.

자식과 남편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주고 자신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 그런 어머니가 언제부터인지 옛날 어머니의 모습을 잃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사진 : 막걸리 (makgulry) 블로그에서 >

옛날의 어머니는 자녀들을 어떻게 길렀을까요? 한석봉의 어머니 상에서 볼 수 있는 어머니 상과 오늘날 마마보이로 키우는 어머니상은 양육 방식에서 크게 다른 모습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세워이 지났다고 달라질 리 있겠습니까? 자식을 사랑하는 본질적인 마음이야 마찬가지지만 양육방법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귀한 자식일수록 매로 키워야 한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머니들은 어떻습니까? 놓으면 꺼질새라 불면 날아갈새라’ 오냐오냐 하고 키우는 것이 요즈음 어머니들이 아닐까요?

어머니 역할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할 수 있을까요? 독수리는 둥지를 꼭 절벽 위 높은 곳에 짓는다고 합니다. 새끼들을 하늘의 왕자로 키우기 위해 알에서 깨어나 일정 정도 시기가 지나면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 낸다고 합니다. 그 새끼가 살기위해 날개 짓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늘의 왕자로 키우기 위해 어미는 잔인할 만큼 강한 새끼로 키우는 동물은 독수리뿐이 아닙니다. 옛날 우리 부모님들이 자녀들이 훌륭하게 자라게 하기 위해 이와 비슷한 훈련을 시켰다는 것은 읽히 알고 있는 예깁니다. 옛 어른들은 ‘귀한 자식일수록 엄하게 길러라’라고 하셨습니다. 옛 어른들이라고 왜 자식을 품에 안고 키우기를 싫어했겠습니까?

                                          <사진 자료 : 아름다운 음악여행 카페에서>

그런데 요즈음 어머니는 어떻습니까? 놓으면 꺼질새라 불면 날아갈새라 오냐오냐.. 1등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해주고... 영어학원, 미술학원, 컴퓨터 학원... 5~6군데 학원에 보내야 안심이 되고.... 이러한 어머니들로 학원에 가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다는 것이 요즈음 아이들입니다.

어머니가 아름답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정을 위해 자식을 위해서라며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야겠다는 일념이 아닐런지요? 그렇다면 지금처럼 놀 친구도 없을 만큼 학원으로 학원으로 내몰면 과연 내 자녀가 훌륭한 인재로 자랄 수 있을까요?

지금처럼 5~6군데 학원을 개미 쳇바퀴 돌듯이 내 몰면 우리 '아이가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혹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식이 성공한 후 고생고생해서 키운 어머니까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오만불손한 그런 인간이 되기를 원하시는 건 아니시겠지요?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우습게 아는 그런 인간이기를 원하시는 건 더더욱 아니시겠지요? 지금처럼 우리아이를 키우시면 장차 ’어떤 모습의 사람으로 자라 있을까?’를 예상해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어머님들 중에는 우리 아니가 놀고 있으면 불안해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혹 놀이가 공부보다 낫다는 말을 들어보신 일은 있으신지요? 요즈음은 학원이며 텔레비전 앞에 시간을 뺏기면서 옛날 아이들처럼 딱지 따 먹기나 말타기, 고무줄 놀이, 공기돌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 졌습니다. 아니,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는 세상이 됐습니다. 산업화되기 전만 하더라도 날이면 날마다 동네마다 골목마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로 늘 시끌벅적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동네 아이들과 모여 해가 지는 줄도,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놀다 “00아! 고만 놀고 밥 먹어라~!” 라는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서야 “우리 내일 또 놀자”며 하나 둘 뿔뿔이 흩어지곤 했습니다. 봄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감꽃을 주우러 가고 여름이면 구슬치기, 딱지 따먹기로, 밥 먹을 시간도 잊고 놀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겨울에는 삼촌이나 형이 만들어 준 썰매를 타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던 재미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얼음판에서 넘어지고 물에 빠져 양말이며 옷이 다 젖어 발이 어는 줄도 모르고 얼음지치기를 하던 기억은 60이 넘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옷이 젖으면 꾸중이라도 들을 새라 젖은 채로 신고 다녔던 일이며 소먹이는 친구 따라 강변에서 씨름도 하고 이름 모르는 풀꽃을 따던 일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겨울이면 양지바른 곳에 모여 말 타기며 숨바꼭질이며 하루해가 언제 지는 줄도얄보와 타협 몰랐고 여름이면 냇가에 서 물놀이며 고기잡이며, 비가 오는 날이면 옷이 냇가에서 고기를 잡고, 가을이면 벼가 누렇게 익은 논둑사이로 메뚜기를 잡느라 어둠살이가 들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지요. 제기차기며 딱지 따먹기, 구슬치기, 말 타기, 술래잡기는 놀아도 놀아도 신나고 재미있었습니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사립문 밖에서 “00야! 노올자~!” 하고 부르면 잠도 깨지 않은 눈을 비비고 나가 배고픈 줄도 모르고 놀이에 빠졌던 재미를 잊지 못하는 어른들도 많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논다는 것은 교육적으로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요?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아이들이 논다는 것은 그냥 재미를 위해 시간만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놀이를 통해 규칙도 배우고 질서며 협동심, 인내심, 상대방에 대한 배려, 양보와 타협의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이러한 놀이를 통해 배우는 친구 간의 우정이나 사회성은 학원이나 교실에서 교과서를 통해 배울 수 없는 중요한 학습입니다. 인간관계며 사회성은 학원이나 교실에서는 배울 수 없는 귀한 경험이지요. 교실에서 배우는 우정이나 인간관계는 놀이를 통해 배우는 체험과는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인내심을, 규칙과 질서를. 양보와 타협을, 점수로''' 가치 내면화 시킬 수 있겠습니까? ...(계속)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