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논설위원실장'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1.28 한겨레신문, 정말 왜 이러나? (20)
  2. 2013.12.14 한겨레신문도 이제 찌라시가 되고 싶은가? (14)
정치/미디어2014.01.28 07:02


아침마다 만나는 신문. 우리세대들은 신문의 그 잉크 냄새를 맡으며 기사를 보고 울고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며 살아 왔다.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시절,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입이 있어도 할 말을 못하고 얼울한 일이 있어도 하소연할 곳도 없이 무시당하면서 살아왔다. 약자의 편이 되겠다는 한겨레신문이 창간 될 당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어찌 그 감동을 말로 다 표현하겠는가?

 

 

 

약자의 힘이 된 신문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신문, 당시 한겨레신문은 약자의 희망이요, 삶의 보람이기도 했다. 진실을 보도해주는 신문이 있다는 것은 언론이 통제당하며 인권이 유린되던 시절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간절함을 모른다. 그래서 한겨레신문을 본다는 것만으로 빨갱이 취급당했지만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구독운동에 앞장서기도 하고 무료배달을 자원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어찌 잊겠는가?

 

그런데 요즈음 한겨레신문을 보면 짜증이 난다. 아니 짜증이 아니라 이런 신문을 계속 보아야 할지 회의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제 한겨레신문을 끊을 때도 됐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지난 연말 정석구논설위원실장이 쓴 ‘12·19 부정선거와 박근혜 사퇴론’을 읽다 하도 화가 나서 ‘한겨레신문도 이제 찌라시가 되고 싶은가?' (바로가기→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21127.html)라는 글을 썼던 일이 있지만 어제 아침에도 한겨레신문을 보고 화가 나서 신문을 덮어 버렸다.

 

 

내가 한겨레신문을 읽고 화가 난 이유는 김의겸 논설위원이 쓴 '애국가와 난지도'(바로가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21127.html‘애국가와 난지도’ 라는 칼럼 때문이다. 기사내용을 보면 애국가 노랫말 가사를 누가 썼느냐를 놓고 작곡가는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안익태가 그리고 지금 논란 중인 작사는 친일파 윤치호가 쓴 게 맞느냐는 문제를 놓고 자신의 생각을 적은 글 때문이다.

 

부끄럽고 황당한 얘기지만 우리가 부르고 있는 애국가가 친일인명 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는 안익태라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데 애국가 노랫말을 쓴 작사자마저 친일파 윤치호가 맞느냐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칼럼을 기고 한 것이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보자. 해방된 나라의 애국가가 작곡가는 물론 작사자조차 친일 인사라면 당연히 새로운 애국가를 만들어 폐기처분해야 옳지 않은가? 이참에 더 멋지고 아름다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애국가를 다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부끄럽게도 양심을 팔아 동족의 피를 빨아먹던 매국노가 쓴 노래를 애국가라고 부른 다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김의겸의원은 이 문제를 어떻게 정리했을까? 그는 ‘애국가와 난지도’라는 칼럼에서 두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하나는 애국가를 국가의 지위에서 끌어내리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윤치호의 고뇌를 감싸 그대로 인정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런 주장은 둘 다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의겸논설의원은 ‘작사자의 훼절이 당혹스럽고 친일과 독재라는 생채기가 있지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자’는 주장이다.

 

 

김의겸 논설위원에게 묻고 싶다. 친일파 윤치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자는 게 어떻게 다른지를...? 김논설위원은 착각해도 뭘 한참 착각하고 있다. ‘임시정부 국무원들은 매일 아침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합창‘했기 때문에 혹은 ‘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신촌에서 시청까지 백만 인파가 목이 터져라 불렀고... 그래서 윤치호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그의 변절에 아파할 필요도 없이... ’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김논설 위원은 답해야 한다. 몸속에 암이 생겼는데 ‘모른 채 하는 것도 나쁘고 수술도 하지 말고 말자는 것도 나쁜데, 암 덩어리가 있어도 걱정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면 문제가 될게 없다는 말인가? 정말 그래도 괜찮은가? 환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병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환자를 진정으로 살리겠다면 수술도 해보고 항암제도 투여 해 살릴 길을 찾아 보는게 환자를 살리는 길이다. 그런데 더럽더라도 개의치 말고 살면 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지난번 장석구논설실장도 그랬지만 김의겸 논설위원은 한겨레신문이 지향하는 이념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나 한가?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 평범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 한겨레신문이 지향하는 가치다. ‘애국가와 난지도’의 논조처럼 힘겹게 살았던 과거가 소중하기에 그런 상처까지도 함께 덮고 살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

 

 

우리사히가 왜 이 모양이 됐는가? 사회정의가 실종되고 정치판이 ×판이 된 이유가 무엇인가?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로 승자를 가리는 막가파 세상, 부모의 경제력으로 자녀의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대물림되는 현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희망이 없는 사회가 됐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는 말인가?

 

왜 학생들이, 노동자와 시민,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가 안녕하지 못한 사회가 됐는지를... 이런 모순의 근원이 해방정국에서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지지기반이 부족해 친일세력을 끌어들여 정권을 장악하려했던 이승만의 야망이 오늘날 우리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김의겸논설의원은 모를 리 없다. 그러면서 지난일은 덮고 현실에 충실하게 살자고...? 그러면 살기 좋은 사회, 안녕한 사회가 될 수 있는가?

 

‘불의와 부정에 대한 비판자로서 봉사하며 정치권력 등에 의한 인권침해를 파헤친다.’는 게 한겨레신문이 지향하는 가치다. 그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힘들었던 과거이기에 청산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한겨레신문은 설마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창간 당시의 세상과 달라진 게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론의 사회적 책무에 따르는 언론인 자신의 도덕적 결단과 실천’을 통해 언론 본연의 역할을 하겠다’면서 적당히 비판하고 적당히 타협하면 한겨레가 지향하는 이념을 실천할 수 있는가? 그런 세상이 오는가? 모두들 거꾸로 가고 있으니까 한겨레신문도 조금씩 타협하고 눈감고 거꾸로 가는 것쯤이야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정말 한겨레신문을 끊고 싶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책 보러 가-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12.14 07:00


「천주교 사제단 등 종교계의 사퇴 요구는 종교적 신념에서 나온 것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헌법기관인 현역 국회의원의 대통령 사퇴 주장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할 수 있다고는 보지만 현실적으로 다수 국민의 공감을 얻긴 어렵다....

 

그렇더라도 지금 시점에선 대통령 사퇴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국정원 등의 대선 개입이 당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는지를 객관적으로 계량하기 힘들고, 또 대통령을 사퇴시킬 합법적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대통령 사퇴 요구가 잦아들 것 같지도 않다. 박 대통령까지 나서 ‘국론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고 도를 넘는 발언을 하는 것’이라고 몰아치는...」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엊그제 한겨레신문을 잃다가 나는 내가 ‘잘못 읽은 게 아닌가’ 하고 내 눈을 의심했다.

 

정석구논설위원실장이 쓴 ‘12·19 부정선거와 박근혜 사퇴론’ 얘기다. 찌라시도 아니고 그것도 외부 필진도 아닌 논설위원실장이라는 사람이... ‘지금 시점에선 대통령 사퇴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럼 언제 사퇴를 주장해야 옳은가? ‘대통령을 사퇴시킬 합법적인 수단도 마땅치 않다...?’니 합법?, 국정원이 합법적으로 한 짓인가?

 

도대체 언론이 할 일이 무엇인가? 명백하게 잘못한 일, 그것도 나라를 경영하는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했다는데.. 가짜 대통령이라는데... ‘사퇴하라’는 얘기를 거론하지 말자..? 사퇴시킬 합법적인 방법도 마땅찮아..? 그럼 4. 19혁명은 혁명이 일어날 적당한 시기여서 일어났는가? 5.18광주항쟁은 저항할 수 있는 적당한 시기여서 일어났는가?

 

혁명을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제대론 된 언론이라면 마땅히 틀린 것은 틀렸고 맞는 건 맞다고 해야 하지 않는가? 조중동이나 종편도 아닌 한겨레신문이 양시양비론도 아니고 아예 찌라시들이나 할 수 있는 아니 그보다 더 노골적인 헛소리(?)를 하고 있다니...? 세상이 하도 흉흉하니 이딴 소리에 신경 쓸 기력도 의지도 없지만 이건 아니다.

 

한겨레가 어떤 신문인가? 정석구 개인이 언제부터 논설위원실장이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옛날 생각 좀 해보자. 한겨레신문은 1987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25년 전,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눈이 있어도 진실을 보지 못하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우리도 우리의 눈, 우리 귀로 세상을 바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신문 하나 만들자’고 어린 초등학생에서부터 노동자, 농민, 장애인들까지 7만여명이 눈물겨운 성금으로 만든 신문이 아닌가?

 

                                     <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양상우 대표이사의 말처럼 ‘양극화가 심화되고 개인이 파편화된 한국사회에서 진실 앞에 엄정하고 권력 앞에 용감하며, 약자에게 따뜻한 신문’이 되겠다는 게 한겨레신문이 지향하는 가치 아닌가? 한겨레신문이 스스로 주장하듯 ‘한겨레신문이 탄생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제도권 언론은 20여년 동안 군사독재 정권의 시녀로 전락해왔으며, 스스로 권력과 야합해 권언유착의 풍토 속에 기자는 한낱 언론사주의 충실한 월급쟁이로 변신한 부끄러운 역사’가 있었기에 탄생이 가능했던 게 한겨레신문이다.

 

나는 아직도 한겨레신문의 창간당시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있다. 사립학교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10년이 지나서야 1급정교사 연수를 받고 있던 때의 일이다. 아침 연수가 시작되기 전에 한 뭉치치씩 들고 간 한겨레신문을 연수를 받으러 오신 선생님들에게 나누어 주는 게 즐거움이었다. 연수장에 갈 때뿐만 아니라 수업에 들어갈 때도 한겨레신문을 들고 들어가 학생들에게 읽어주기도 하곤 했었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 학생들은 한겨레 신문을 자원해서 배달해 주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만 그랬을까?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입이 있어도 할 말을 못하고 살던 사람들은 한겨레 신문은 우리들에게 희망이요, 자랑이었다. 가난한 사람이 어쩌단 생긴 돈이 주머니에 두둑하게 들어 있을때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천병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약자으 목소리를 내 주는 신문이 있단느 것 만으로 힘이나고 기분이 좋았다. 그 때 그랬다. 그런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어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공짜로 볼 수 있는 신문을 돈을 내고 구독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은 믿었다. 세상이 다 변절해도 한겨레만은 아닐 것이라고.... 그러나 처음의 신문과는 조금씩 논조가 바뀌고 적당히 타협하는 기사 같은 게 보여도 ‘경영의 어려움 때문이려니...’하고 이해하려고 했다. 그런데 정석구실장의 글은 그게 아니다. 완전히 변절을 했거나 권력의 비위를 맞추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기사를 쓸 수 있는가? 한겨레를 아끼고 사랑하는 독자로서 분명히 말하고 싶다. 정석구실장은 이 기사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하라. 앞으로 그런 기사를 쓰려면 논설위원을 사퇴하라. 독자들은 그런 기사나 읽자고 한겨레신문을 구독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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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