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는 이야기2018.06.25 06:30


오늘은 6·25전쟁 68주년을 맞는 날이다. 1950625일부터 1953727일까지 31개월 2일 동안 그것도 동족끼리 죽이고 죽어간 전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제 분단 736·25전쟁 68주년 맞는 지금 한반도는 4·13남북정상합의문으로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고 통일의 문을 여는 통일의 시대를 논 앞에 두고 있다. 분단이 필요했던 세력들이 만든 빨갱이, 종북은 국토의 분단뿐만 아니라 남북한의 국민들의 가치관까지 분단시켜 놓았다.


북한은 주적이요, 일본은 우방이라고 한다. 6·25 68주년을 맞는 아침 왜 북한은 주적이 되고 일본은 우방이 됐을까? 북한과 일본 중 우리를 더 못 살게 군 나라는 북한일까, 아니면 일본일까? 저지른 죄로 말하면 일본이 저지른 죄는 북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왜 북한은 주적이었고 일본은 우방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미국이 쥐고 있다. ·오리라 메모가 작성되고 1964년 계엄령이 선포, 국민들이 굴욕외교 한일협정반대시위를 하는 가운데 한일국교 정상협정이 체결 된 이면에는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면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해 보자. 일본이 36년간 우리에게 지은 죄는 필설로 이루다 말하기 어렵다. 그 모든 죄업을 3억 달러로 갚고 앞으로 정신대 얘기는 입 밖에도 꺼내지 않겠다는 합의가 피해 가족들에게 공감대를 얻을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확인된 노동자, 군인, 군속으로 강제 동원되었거나 총알받이로 강제로 끌려 간 한국인 피해자, 강제노역보국대, 보국대, 근로정신대...를 포함한 그 모든 피해를 김종필중앙정보부장이 단독으로 3억을 받고 말았겠는가? 일본강점기 시절, 훔쳐 간 국보급 보물을 가치로 따져도 3억불만 되겠는가?

문화재청과 관련 기관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일본, 미국, 프랑스,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 20개 국에 총 75,000여 점의 우리 문화재가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일본에서 확인된 것이 약 35,000여 점이나 된다. 일제는 경주, 부여, 공주, 평양 등 전국 곳곳에서 고분을 불법 도굴해 갔을 뿐만 아니라 조선총독부가 반출해 간 고분 출토품과 일본인이 개인적으로 약탈 해 간 문화재만 무려 4,479점에 달한다. 밝혀진 것만 해도 이 정도인데 밝혀지지 않은 보물이 얼마인지 추측할 수 있겠는가?

조선총독부가 반출해간 고분 출토품 689(도쿄국립박물관, 도쿄대 소장), 통감 및 총독이 반출해 간 도자기 103, 데라우치 총독이 소장한 서화 245, 불상 8, 통감부 전적 1,015, 일본 국유에 해당하는 분묘 출토품과 체신관련 문화재 758, 오쿠라 컬렉션 80, 기타 개인 소장품 1,581점 등이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만 이 정도인데 알지 못하게 훔쳐간 문화재가 얼마나 되는지 지금으로서는 계산조차 안 된다.

그밖에도 일제는 전쟁 수행을 위해 국가 총동원령을 발표해 그들이 패망할 때까지 우리 민족을 전쟁터로 동원하고, 식량과 각종 물자를 빼앗아 갔다. 침략 전쟁의 규모가 커지자 일제는 금속 회수령, 미곡 국가 관리 실시 요강, 농업 통제령 등을 만들어 쇠붙이와 식량 등을 빼앗아 갔다. 또한, 군수미를 확보하기 위해 중단되었던 산미 증식 계획을 다시 추진하고 강제 송출 제도를 시행하였다. 이와 같은 식량의 수탈로 인해 우리 민족의 식량난은 더욱 나빠져 굶주림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문화재청과 관련 기관의 통계에 따르면 일본, 미국, 프랑스,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 20개 국에 총 75,000여 점의 우리 문화재가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일본에서 확인된 것이 약 35,000여 점이나 된다. 일제는 경주, 부여, 공주, 평양 등 전국 곳곳에서 고분을 불법 도굴해 갔을 뿐만 아니라 조선총독부가 반출해 간 고분 출토품과 일본인이 개인적으로 약탈 해 간 문화재만 무려 4,479점에 달한다.

조선총독부가 반출해간 고분 출토품 689(도쿄국립박물관, 도쿄대 소장), 통감 및 총독이 반출해 간 도자기 103, 데라우치 총독이 소장한 서화 245, 불상 8, 통감부 전적 1,015, 일본 국유에 해당하는 분묘 출토품과 체신관련 문화재 758, 오쿠라 컬렉션 80, 기타 개인 소장품 1,581점 등이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만 이 정도인데 알지 못하게 훔쳐간 문화재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

1923년 사가미만을 진앙지로 발생한 관동대지진으로 10만 이상의 주민들이 사망하고 흉흉해진 민심을 돌리기 위해 조선인들이 지진으로 인한 혼란을 틈타 봉기한다는 소문을 내어 우물에 독을 타고 지진에서 살아남은 일본인을 살해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66백 명의 한인들이 목숨을 잃었는가 하면 해방이 되자 한국인 피징용자를 태운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마루(浮島丸)호를 폭발사고를 가장해 침몰시켜 배에 타고 있던 조선인 5,000명을 넘는 실종되거나 사망하기도 했다.


어디 그 뿐인가? 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일본이 점령하고 있는 조선을 해방시키는 과정에서 남북이 분단되고 분단으로 인한 6·25 전쟁은 일본의 조선점령이 없었다면 일어났을까? 1948년 해방정국에서 이승만정부의 경찰 중 일제 경찰에 종사한 8,000명중 5,000명이 군정 경찰에 복무하고 있었고, 이들을 핵으로 군정 경찰이 구성되었으며, 경찰 간부의 80%가 일제 경찰 출신이었다. 경찰 간부의 경우 경찰 청장 8명중 5(63%), 국장 10명중 8(80%), 총경 30명중 25(83%), 경감 139명중 104(75%), 경위 965명중 806(83%)이 고등 경찰을 비롯한 일제 경찰 출신었고, 경찰 최고직인 치안감(1)도 일제 경찰 출신이었다.



정부 수립 후 19604월까지 즉 이승만 정권 12년간의 각료는 국무총리 이하 115명이다. 재임 장관들을 제외하면 96명인데 이중 독립 운동가는 단 4, 국내 민족 투사 8명을 합해서 그 비율은 12.5%이다. 반면, 부일 협력 전력자는 34.4%33명이나 된다. 이들이 해방된지 7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들의 이들은 뉴라이트로 똘똘 뭉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언론, 문화, 종교 등 각 분야에서 기득권을 행사하며 지금도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친일세력 미청산은 분단을 고착화하고 독재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으로 살아남아 있다.

일본이 우리민족에 저지른 짓을 다 기록하려면 이 세상에 있는 종이가 모자랄 지경이다. 지금도 뉴라이트들이 일제강점기 시절을 그리워하며 일본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명백한 대응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일본에 은혜를 입은 자들이 해방 후 7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라 곳곳에 독버섯처럼 살아 주도권을 잡고 있는 나라. 일본이 36년간 우리민족에게 저지른 악마와 같은 짓을 덮어두고 일본은 우방이요, 북한은 주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일본이 지은 죄는 용서해 우방이 되고 북한은 지구상에서 존재하면 안 되는 악의 무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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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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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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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잊지 말아야할 우리의 아픈 역사..
    6.25입니다.ㅜ.ㅜ
    절대 우방은 될 수 없지요.

    2018.06.25 09: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아픔은 잊어야 하는게 서로가 생채기를 내며 살아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다로 통일을 앞당겨야겠습니다.

      2018.06.25 10:57 신고 [ ADDR : EDIT/ DEL ]
  2. 주적 일본이 되어도 틀리지 않을것입니다

    2018.06.25 09: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분단이 필요했던 세력들...그들이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희망의 시대 평화의 시대를 기대해 봅니다.

      2018.06.25 10:58 신고 [ ADDR : EDIT/ DEL ]
  3. 북한은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죠. 중국 또한 우리나라의 큰 위협이 되는 나라입니다

    2018.06.25 10: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쭉 읽다보니 친일 청산이 요원할 거라는 절망감마저 드네요. 어쩌면 남북이 하루빨리 평화체제로 전환해야만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018.06.25 12:5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어쩌면 영원히 청산 못할 과제 같기도 하고요.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기득권을 어떻게 청산하겠습니까? '친일잔재 미청산' 이 건 하나만 보아도 이승만은 역사의 죄인입니다.

      2018.06.25 16:45 신고 [ ADDR : EDIT/ DEL ]

정치/정치2018.02.28 06:30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1960228일 낮 1255, 대구 경북고 학생부 위원장 이대우 등이 조회단에 올라 외친 선언문이다.



대구하면 보수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대구는 원래 "동양의 모스크바"라 불린 우리나라 진보의 본산이었다. 대구는 박정희 정권 때까지 서울, 부산과 함께 3대 야도(野都)로 불리어 왔다. 그런데 어쩌다 대구하면 박정희를 떠올리게 되지만 박정희가 지역감정을 부추기기 전까지는 대구는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도시였다. 역사적으로 대구는 외침(外侵)이 있을 때마다 의병을 일으키고 국채보상운동, 3·1운동 등 항일운동에 목숨을 바친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된 도시다.

불의에 항거한 저항의 도시 하면 3·15마산의거나 5·18광주항쟁을 떠올리게 되지만 일제강점기 3·1운동과 함께 대구는 대동청년단, 조선국권회복단, 대한광복회 등 독립운동단체가 대구를 무대로 활동했다. 또 유림단(儒林團) 독립청원운동, 신간회 대구지회 활동, 의열단 무력항일운동,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의 항일독립운동, 태극단 활동, 대구 24부대 학병의거 등 수많은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곳이 대구다.

3·15의거와 4·19혁명은 알아도 2·28의거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4·19혁명은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학생의 눈에 미제 최루탄이 박힌 비참한 사진을 보고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의 불의에 저항한 혁명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2·28이 먼저다. 2·28의거는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유세 현장에 학생들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등교 지시를 내린 것이 화근이 되긴 했지만 단순히 학생 몇몇이 주도해 일어난 사건이 아닌 3·15의거와 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불의에 대한 저항이다.

<2·28의거의 시대적 배경>

1945815일 광복 이후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단되었다. 이후 유엔은 한반도의 정부 수립을 위해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하지만 소련이 방북을 거부하였고, 결국 선거가 가능한 남한에서 단독선거를 치르게 된다. 1948510일 드디어 총선거가 치러져 임기 4년의 대통령 간선제의 헌법이 만들어진다. 대통령간선제로 국회가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 19488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유엔은 대한민국 정부를 합법 정부로 승인하게 된다.

권력에 눈이 어두워진 이승만은 1952년 집권이 어려워지자 대통령의 선출 방식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꾸어 재집권에 성공한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승만은 3선에 성공하지만 미국의 무상 원조가 줄어들면서 경제 사정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민심이 흉흉한데다 대통령의 중임이 불가능한 헌법을 개헌하는 과정에서 집권당이 자유당은 무리한 개헌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1960315, 4대 정부통령 선거일을 앞두고 집권당인 자유당은 부통령 후보였던 이기붕을 다시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그의 측근들이 내무부 관료들과 자유당 소속 정치 폭력배를 동원하여 3인조 5인조를 조직하는 등 노골적인 부정 선거, 개표 조작을 시도했다. 5·18이 광주시민만의 분노가 아니라 전두환의 집권야욕이 광주시민의 저항으로 나타났듯이 2·28의거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정부의 부정부패와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대구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정치적인 불신이 저항정신이 강한 야성의 대구라는 도시에서 2·28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2·28의거의 경과>

1960228일 낮 1255, 경북고 학생부 위원장 이대우 등이 조회단에 올라 격앙된 목소리로 백만학도여~!”로 시작하는 결의문으로 시작된 반독재의 횃불은 대구에서 처음 불타올랐다. 대구 경북고등학교는 일요일인 이날 등교 지시를 내린다. 학생들을 일요일에 등교지시를 내린 사연은 3월에 있을 중간고사를 앞당겨 친다는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유세에 학생들이 참여하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현상은 경북고 뿐만 아니라 대구 시내의 국공립 7개 고등학교 마찬가지로 일요일인 228일 등교를 지시한다.



1960227일 오후 대구 동인동 이대우 경북고등학교 학생부 위원장 집에 경북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학생 8명은 부당한 일요등교 지시에 항의를 하기 위해 시위를 조직해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는 결의문도 작성하게 된다. 228일 오후 1시 학생 800여 명이 대구 반월당을 거쳐 경상북도청으로 가는 과정에서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합류하며 시위대는 점점 늘어나 1,200여명의 참여해 120여명이 경찰에 체포된다. 경찰은 시위의 확산을 우려해 시위를 주도한 학생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을 석방하게 된다.

이승만정부의 관제 데모에 동원되기만 했던 학생들이 처음으로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의사표시를 한 2·28의거는 한 알의 불씨가 되어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다. 3.15마산의거, 4.19대학생시위, 4.26 이승만대통령 하야로 이어져 마침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민권 민주주의 혁명의 도화선이 된게 2·28대구학생 민주의거다. 2·28의거는 가난과 독재, 불의와 부정에 항거한 대구 시민정신이 표출이요, 민주주의의 승리였다. 2·28의거는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자유당 12년 독재를 종식시킨 역사적 사건이다. 2·28의거, 315의거 그리고 4·19혁명은 5·16군사쿠데타로 무너지기는 했지만 불의에 항거한 저항정신은 이후에도 부마항쟁, 5·18광주항쟁 그리고 6월항쟁과 2017년 촛불집회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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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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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의 아픈역사이지요

    잘 보고 가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2018.02.28 06: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대구에선 의미있는 날입니다
    지역감정은 박정희외 김대중 대통령의 참모였던 염창록이라는 사람의 전략이기도
    전샥이기도 했습니다

    2018.02.28 08: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김주열의 죽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죠...
    야도였던 영남이 수구의 소굴이 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2018.02.28 10: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이렇게 역사는 흐른다....

    2018.02.28 20: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문대통령의 말씀처럼 어쩌면 오늘날의 촛불도 228의 도화선 덕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2018.02.28 22: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정치2012.08.16 05:30


 

어제 광복절 관련 포스팅을 하려다 글이 올라가지 않아 서너차례 시도하다 포기하고 다른 글을 썼습니다.

 

내용을 알고 봤더니 티스토리가 읽지 못하는 문자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그 문자를 빼고 다시 올립니다.   

 

이 자료는 졸고 '현대사 자료집(전국역서교사모음-김용택 편저)을 참고했을을 알려드립니다) 

 

해방정국의 역사, 교과서는 상당부분 틀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쓴 사람은 누군가?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사편찬위원회'에 참여하여 한국의 역사를 왜곡, 일제 식민통치에 기여하는 공훈을 세우며 한민족의 혼인 역사를 파괴한 이병도를 비롯한 그 아류들이다.

 

박근혜가 말했지. 박근혜는 말했다. '5.16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라고... 마찬가지로 일제의 은혜를 입은 이병도를 비롯한 친일 사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쓴 한국사는 우리역사를 제대로 기록했을까?

 

이들은 민족사관이 아니라 식민사관에 이해 역사를 기록했다. 그런 역사가 교과서를 통해 2세들의 머리 속에 친일사관의 입각한 왜곡된 역사를 그르치기를 강요해 왔다.  현대사의 경우 미군정시대에서 유신시대, 군사정권 시절의 역사를 아예 제대로 기록조차 하지 않는 무성의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 수립 후 1960년 4월까지 즉 이승만 정권 12년간의 각료는 국무총리 이하 115명이다. 재임 장관들을 제외하면 96명인데 이중 독립 운동가는 단 4명, 국내 민족 투사 8명을 합해서 그 비율은 12.5%이다. 해방정국의 경찰 간부 80%가 일제 경찰 출신이요, 국무총리를 비롯한 육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 공군 참모총장이 일본군 대좌출신이다.

 

황국신민화를 외치던 인물들이 만든 제 1공화국, 그들이 쓴 역사는 우리 조상들의 문화와 역사와 혼을 후손들에게 제대로 알려 주는 역사였을까? 다시 광복절을 맞습니다. 올해가 일제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지 67주년째를 맞지만 아직도 식민지잔재청산은 친일인명사전에는 있을지 몰라도 현실은 아직도 요원하다.

 

그 역사의 왜곡현장을 저의 졸고 ‘한국현대사자료집’(전국역사교사모음)을 인용해 살펴보겠습니다.

 

식민지 잔재청산 못한 정부

 

경찰의 경우

 

일제 경찰에 종사한 8,000명중 5,000명이 군정 경찰에 복무하고 있었고, 이들을 핵으로 군정 경찰이 구성되었으며, 경찰 간부의 80%가 일제 경찰 출신이었다. 경찰 간부의 경우 경찰 청장 8명중 5명(63%), 국장 10명중 8명(80%), 총경 30명중 25명(83%), 경감 139명중 104명(75%), 경위 965명중 806명(83%)이 고등 경찰을 비롯한 일제 경찰 출신었고, 경찰 최고직인 치안감(1명)도 일제 경찰 출신이었다.(우리 역사 이야기3, 돌베개, p.59~60)

 

군인의 경우

 

군인의 경우

 

 

 

【제 1공화국 친일 인맥】

(해방전후사의 인식2, 한길사, p.146)

 

 

정부 수립 후 1960년 4월까지 즉 이승만 정권 12년간의 각료는 국무총리 이하 115명이다. 재임 장관들을 제외하면 96명인데 이중 독립 운동가는 단 4명, 국내 민족 투사 8명을 합해서 그 비율은 12.5%이다. 반면, 부일 협력 전력자는 34.4%인 33명이나 된다.

 

반민족 행위자 처벌법(반민법)과 반민특위의 와해

 

반민족 행위자 처벌은 해방 정국의 민족적 과제이기도 하였다. 제헌국회는 1948년 10월 23일 조사위원 10명을 선출하여 임정 요인 출신 김상덕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중앙에 중앙 사무국 각도에 조사부, 각 시, 군에 조사 지부를 설치하였다.

 

반민특위는 조사 업무를 개시하여 반민족 행위자 7000여명을 파악하고 49년 1월 9일부터 검거 활동에 들어가 친일 실업가 박흥식, 일제 기관의 고등 밀정 이종형, 중추원 부의장 최린, 강우규 이사를 체포 처형케 한 고등 경찰 김태석, 도지사를 지내고 총독부 기관지 매일 신문 사장이던 이성근, 일제 헌병 출신의 전직 경찰 간부 유철, 친일 문인 이광수와 사학자 최남선, 군용기 헌납에 광분한 문명기 등 드러난 친일파들을 계속 체포했다.

 

국민 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특위 활동이 계속되는 동안 자수자도 61명이나 됐다. 그러나 친일 세력들은 반민법이 공포된 9월 23일 대한일보사장 이종형이 주동이 되어 ‘반공구국총궐기대회 및 정권 이양 축하 국민대회’란 군중 집회를 열어 반민법을 성토하고 주동 국회의원들을 공산당의 주구라고 몰아친다. 반민법안의 국회 심의 때부터 반대 의사를 표명해 오던 대통령 이승만은 노덕술을 석방하라는 요구를 하기도 하고 특위를 비난하고 반민법 개정안을 제출했다는 담화를 발표하기도 한다.

 

6월 6일 새벽 중부 서장 윤기병이 지휘하는 40명의 무장 경찰대가 특위를 습격하여 무기와 장비를 압수하고 특경대원 35명을 연행하는 사태를 일으킨다. 이 사건에 격분한 국회는 대통령 이하 전국무위원 출석을 요구하고 정부를 규탄했다.

 

6월 21일 국회 프락치 사건 2차 검거로 김약수 등 7명의 국회의원이 추가 구속되고 26일에는 김구 선생이 암살 당한다.

 

반민특위는 공소시효 만료까지 조사 건수 6백82건, 체포 3백5건, 미체포 1백73건, 자수 61건, 영장 취소 30건, 검찰에 송치한 건수는 5백59건 이였다. 그러나 그 중 2백21건이 기소되어 재판을 종결한 것은 불과 38건인데 사형1건, 무기징역1건을 포함하여 실형이 선고된 것은 불과 7건뿐이었고 거의가 집행 유예나 무죄로 풀려났다. 실형 선고를 받은 7명도 1950년 본까지 감형과 집행 정지 등으로 모두 풀려났다.

 

 

 

 

끓어 오르는 한라산

 

(우리 역사 이야기, 조성오, 돌베개, p.10~53)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 쏘았지만

그들은 보지 않고 쏘았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날

하늘에서는 정찰기가 살인 예고장을 살포하고

바다에서는 함대가 정적을 울리고

육지에서는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진두 지휘하고 있었던 그날

빨갱이 마을이라 하여 80여 남녀 중학생들을

금악벌판으로 몰고 가 집단 몰살하고 수장한데 이어

정방 폭포에서는 빨가벗긴 빨지산의 젊은 아내와 딸들을 나무 기둥에 묶어 두고 표창 연습으로 삼다가

마침내 젖가슴을 도려내 폭포 속으로 던져 버린 그날

한 무리의 정치 깡패단이 열 일곱도 안된

한 여고생을 윤간한 뒤 생매장해 버린 그 가을 숲

서귀포 임시 감옥 속에서는 게릴라들의 손톱과 발톱 밑에 못을 박고

몽키 스패너로 혓바닥까지 뽑아 버리던 그날, 바로 그날

관덕정 인민 광장 앞에서는 사지가 갈갈이 찢어져

목이 짤린 얼굴은 얼굴대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전봇대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하 생략.............

이산하 “한라산” 에서

 

4․3 사 건

 

 

기미독립운동 28주년이 되는 1947년 3월 1일, 제주 도민 3만 여명(당시 제주도 총인구 27만명)이 3.1절 기념식(미군이 불법으로 인정)을 열고 애국가와 3.1절 노래를 부르며 “3.1혁명 정신으로 한국통일독립을 쟁취하자”, “미국은 남한에서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기념식이 끝난 후 가두시위에서 7명의 시민이 사망하자 제주도 총파업 위원회가 3월 9일 총파업을 선언하면서 강력한 저항이 시작된다.

 

4월 초순경에는 2,000여명의 도민이 체포되고 시위대와 미군, 경찰, 서북 청년회, 대동 청년 당 등의 대치 상황에서 처절한 살육 극이 자행되었다. 1949년 3월 25일 정부의 1,667명 인명 손실 발표와는 달리 한국 편람(1956)에 4만명, 1960년 국회의원 김성숙이 제출한 「제주도 양민 학살 조사 건의안」에 5만명, 그리고 1963년 제주도 당국이 발행한 「제주도」8월 호에는 8만65명의 희생자를 냈다고 기록되고 있다.

 

제주 항쟁은 ‘식민지 예속을 거부하고 민족 분단을 저지하기 위해 일어선 우리 민중의 영웅적이고도 처절한 투쟁’이라고 정의하는 학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여수 순천 사건】 ― 1948.10.19~

 

(우리는 결코 둘일 수 없다, 남풍 신서, p.44~45)

 

 

여수 순천 사건은 극우나 극좌가 결탁하여 발생한 쿠데타나 혹은 제주 4.3사건 진압 차 출동 명령을 받은 14연대 내의 소수의 좌익계 사병 집단에 의해 주도된 군부 반란 사건이라기 보다는 1공화국 출범 당시 사회, 경제적 조건 및 정치적 상황과 해방 이후 건국에 이르기까지의 전남 지방 정치의 과정에서 발생된 제 조건이 결합하여 폭발한 보다 근본적인 성격의 사건이다.(해방 전후사의 인식, 한길사, p.414)

 

1948.10.19 여수 순천의 14연대 장병 3천여 명이 ‘경찰 타도, 제주도 출동 거부, 남북통일을 위하여 인민군으로 행동하자’라는 구호를 내세워 일어난 여수 순천 사건은 9천4백5명이 학살당하고 2만3천명의 체포로 끝난다.

 

14연대가 제주 사건 진압을 위한 차출 명령을 받자 연대 인사계인 지창수 상사는 연대 내 핵심 세포 40여명에게 무기고와 화약고를 점령하게 하고 출동 계획 일시인 19일 저녁 9시가 되기 한시간 전 비상 나팔을 불어 출동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1개 대대 병력 이외에 부대 주변에 있던 남로당원 23명과 나머지 2개 대대를 합류시켜 3천명을 집결, 20일 1시경 지창수 지휘하에 여수 경찰서를 점거하고 학생과 지하 단체 6백여 명이 합세 무기 탄약을 지급 받고 관공서가 이들의 치하에 들어갔다.

 

이날 여수 시내는 약 3만 명의 군중들이 모여 인민 대회를 개최하고 ‘여수 인민 위원회에 의한 정권 장악’을 선언하고 “무상 몰수 무상 분배의 토지개혁을 즉시 실시한다”고 주장하고 이승만 정권에 대한 도전을 시작하였다.

 

이들 중 2개 대대 병력 약 2천명은 철도편을 이용하여 순천에 도착하여 홍순석 중위가 지휘하는 제14연대 2개 중대 병력과 합류하여 오후 5시경에는 순천을 완전 장악한다.

 

 

이들은 3개 부대를 재편하여 학구, 구례, 남원 방면으로, 한 부대는 광양 방면으로, 다른 부대는 벌교 보성 방면으로 진격하여 여수, 순천, 보성, 광양의 거의 전 지역과 하동, 남원, 구례, 곡성의 일부 지역까지 이르렀다.

 

 

UN의 조선 문제에 관한 결의안 및 총선거에 대한 하지 중장의 견해 발표

 

(1947.11.20)

 

 

본관은 유엔총회에서 43대 0으로 총선거 실시를 감시하기 위하여 통일된 조선 정부의 수립 및 조선 독립의 달성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불원간 來朝할 유엔 조선 위원회의 설치안을 가결하였다는 보도를 접하여 기쁘게 생각하였습니다.

 

동 위원회는 9개국 대표로 구성된 것이며 그 중 4개국은 태평양 및 극동 방면에 있는 중국, 인도, 필리핀 및 호주의 제국이 임명된 것입니다.

 

본관은 본국 정부로부터 유엔 조선 위원회의 감시 하에 총선거를 실시할 것을 포함한 조선에 관한 결의안의 각 조를 미국 정부가 필히 준수할 것이라는 것을 조선 국민 및 지도자에게 전달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미국 정부의 대표자로서 본관은 조선 국민에게 유엔 조선 위원회가 설치된 목적을 완수하기 위하여 전력을 하여 원조할 것을 보장하는 바입니다.

 

이 계획안에 의한 제일 단계의 조치는 결의안에 의하여 1948년 3월 31일 이내에 총선거를 실시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선 국민은 동 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총선거에 대대적으로 응하게 될 것입니다.

 

본관은 방금 본 문제에 관하여 워싱톤 당국과 교섭 중에 있으므로 총선거에 대한 조치를 불원간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발표가 있을 때까지는 전 조선 국민은 본 문제에 관한 정식 발표를 기다려야 됩니다. 취중 조선 국민 악선전에 속지 말 것이며 또 총선거에 관한 승인을 받지 않는 비공식 보도에도 현혹되지 않아야 됩니다.

 

본관도 조선 국민이 과거 2년간이나 실망과 낙담에 빠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즉 조선 독립을 제래하기 위하여 미국 정부 및 그 대표자들의 부단의 노력(첫째로 1946년 및 1947년에 각각 채택된 二國회의 미, 소 공동 위원회를 통하여, 둘째로 모스크바 협정에 서명한 4개국 회의를 통하여, 셋째로 미국 정부가 제의한 최근의 유엔의 조치를 통하여)에도 불구하고 2년간이나 지연되어 왔습니다.

 

본관은 유엔의 여러분의 문제에 대한 금반의 신 단계는 세계의 독립 제국가가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여러분의 오랫동안의 꿈이 실현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유엔 결의안의 내용에 대한 여러분의 연구에 資하고자 다음의 결의안 원문을 인용합니다.

 

 

이완용의 질손 이병도와 친일 사학자들이 쓴 역사 교과서... 

이병도를 비롯한 식민사관 학자들에 의해 기록된 국정교과서를 배운 우리는 우리민족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알고 있을까?

 

황국신민화를 외치던 입으로 우리의 역사를 가르치던 그들은 해방 70년이 가까운 지금도 훌륭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아침 신문을 읽다가 장준하선생님이 박정희에게 했다는 말씀이 잊혀지지 않네요.

 

"일제가 그냥 계속됐다면 너는 만주군 장교로서 독립투사들에 대한 살륙을 계속했을 것이 아닌가?"

 

이명박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놓고 네티즌들이 이명박대통령 독립운동하는 중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울고 싶은 사람에게 뺨때려 준 독도 방문... 일본은 각본에 따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다고 분주합니다.

 

해방 67주년, 아직도 우리는 진정한 해방을 맞지 못하고 있습니다.

친일세력들이 득세하고 그들이 애국자가 되는 한 진정한 해방은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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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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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친일청산 못한 것이 두고두고 대한민국 발목을 잡았습니다.

    2012.08.16 07:41 [ ADDR : EDIT/ DEL : REPLY ]
  2. 그렇군요. 게다가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국민들도 여전히 많겠지요.
    다 눈 감아버리고 언론을 조작하고.. 우리가 배웠던 교과서 마저도..
    정말 시간만이 약일지.. 답답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12.08.16 08: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역사에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존재하나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생각할 거리들이 많아지네요.

    2012.08.16 08: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좌우간, 일본과 친일파는 너무 싫습니다~

    2012.08.16 08: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참 창피한 근대사입니다...

    2012.08.16 09: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그렇군요 ㅠ
    덕분에 잘알고 갑니다

    2012.08.16 09: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프랑스 혁명처럼 제대로 청산을 했어야 햇는데 ㅠㅠ

    2012.08.16 12: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당신글은 진실이라고 믿어도 될까 ?

    2012.08.16 14:22 [ ADDR : EDIT/ DEL : REPLY ]
    • Jane

      네 믿으세요. 정 의심스러우시면 해방이후관련사료를 한 번 보시던가요.

      2012.08.16 14:53 [ ADDR : EDIT/ DEL ]
  9. Jane

    고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친일역사청산 관련해 많은 지식 얻고 갑니다. 제가 감히 하나 덧붙인다면 이병도같은 친일인사들과 그 후손들이 아직도 기득권실세를 행세하는대는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겁니다. 전 지금 해방후 미국쪽에서 파악한 '친미' 인사명단을 보는데 거긴 아니나 다를까 위에 언급하신 인사들의 이름들이 올라와있군요. '친일'이 청산이 안되는 것은 '친미'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기때문인것 같아 마음이 착잡합니다.

    2012.08.16 14:59 [ ADDR : EDIT/ DEL : REPLY ]
  10. 그러니 답답하고 분통이 터집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부터 친일적이니 말이죠.
    이번 대선은 반드시 역사를 제대로 알고 투표했으면 좋겠습니다. T.T

    2012.08.16 16: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이병도가 친일사학자라고요? 증거는 있습니까?

    2012.08.20 23: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