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운전면허가 없는 주부가 가족을 태우고 운전을 하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아침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 들은 얘기다. 경제를 전공하지 않은 주부가 경제권을 쥐고 가정경제를 운영하고 있다면 살림살이가 좋아지겠느냐는 말이다. 잘살고 싶어 부부가 아이를 유치원에 맡겨놓고 열심히 돈만 벌어온다고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학교교육도 그렇다.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의 열등생이라는 말이 있다. 학교는 원칙만 가르치고 현실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것도 시험용으로 암기하는 교육만 하다 보니 고지식한 인간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대안학교나 혁신학교가 화두다. 외우기만 하는 교육, 그래서 교육의 목표가 서울대학이 된 현실... 골품사회로 진입시키기 위한 피나는 부모들의 경쟁으로 아이들이 학교에서 잠을 자거나 학교폭력으로 혹은 가출로 혹은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기는 안타까운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내 아이를 서울대준비생들의 들러리로 만들 수 없다는 학부모들이 대안학교나 혁신학교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혁신학교는 대안이 아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진보교육감들이 교육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혼신의 노력을 다해 추진하고 있는 혁신학교 김빼기를 한다는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아닌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해 혁신학교로는 무너진 교육을 살리지 못한다.

 

혁신학교와 일반학교가 어떻게 다를까? 제대로 운영되는 혁신학교라면 학생들을 대하는 교사들의 학생관부터가 다르다. 군림하고 지시전달하고 통제로 길들이는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군대와 같은 교칙을 인권을 존중하는 교칙으로 바꿔놓는다. 학교도 1천명이 넘는 학교가 아니라 5학급정도의 작은 학교에 시설도 첨단시설에 교육과정도 국··수 중심에서 다소 여유 있는 다양화 특성화 교육이 가능하다.

 

교육형태도 강의 중심의 일제학습보다 토론학습이나 현장학습을 장려한다. 기존의 입시학원이 된 학교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당연히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은 혁신학교란 이렇게 목표는 거창하지만 현실에서는 엄청남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교육철학이 다른 정부가 태클을 걸고 수능이라는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교육관도 문제다. 지금까지 시험문제풀이로 내 제자 출세시켜 주는 게 교사의 할 일이라고 알고 있던 수많은 교사들이 하루아침에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보살피며 인성교육에 전념할 수 있을까? 교장선생님은 그런 교육관을 가지 분이 얼마나 될까? 부담스러운 수업시수며 수많은 공문폭탄에 교재연구와 아이들을 상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까? 학생들은 하루아침에 혁신학교 교육에 적응해 적극적으로 참여할까?

 

<이미지 출처 : 우리교육-경기도 청학교과서 내용>

 

 

현실의 벽에서 벗어나 교육을 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수능이라는 벽, 혁신학교를 흠집 내기 위해 끊임없이 훼방을 놓는 교육부의 마타도어며 일제고사라는 벽, 그래서 성적으로 서열매기려는 정부의 수요자 중심의 교육의 벽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을까? 학부모들은 어떨까? 점수경쟁에 목을 매던 학부모들이 하루아침에 점수는 필요 없다. 사람만 만들어다오라며 학교를 전적으로 믿어 줄까? 혁신학교는 전국단위 성취도평가며 일제고사는 초연할 수 있을까?

 

엄청난 현실의 벽 앞에 대안이 뭔가? 일제고사니 성취도 평가니 서열을 매기고 학교를 평가해 지원금을 차등화하는 이런 벽앞에 살아남을 수 있는 길, 승산이 있는 싸움이란 수업 내용에 승부를 거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경기도에서는 철학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는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죽기 아니면 살기로 공부해도 내가 누군지, 돈이 무엇인지, 인권이, 행복이 무엇인지... 아이들은 모른다. 내가 커서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을 할 것이며 그 일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우리집 경제사정은 어느 정도인지,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 민주주의란 어떤 것인지 역사는 경제는 왜 배워야 하는지...?

 

내 인생의 차를 운전면허도 없는 내가 운정해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진정한 혁신교육이란 공부를 왜 하는지 목표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서울대나 의사나 판검사가 교육의 목표가 아니라 내가 누군지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친구와 이웃이 왜 소중하고 인권이 왜 필요한지부터 배워야 한다. 교과서를 암기해 경쟁에서 이기는 공부가 옳은 공부가 아니라 나를 아는 공부, 옳고 그른 게 무엇인지, 바르게 사는 게 어떤 것인지, 행복이란 어떤 것인지.. 먼저 아는 철학공부가 진짜 공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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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엄마, 나 이번 기말고사에서 전교에서 1등 했어!”

“와, 전교에서 일등~? 우리 아들 최고다! 오늘 축하 파티라도 하자”

 

자녀가 공부를 잘한다는 말만큼 듣기 좋은 소리가 있을까? 유치원 받아쓰기에서부터 학기말 고사, 사생대회, 글짓기 대회에서 1등, 전국체육대회에서 1등, 올림픽에서 금메달....

 

자식이 일등을 했다는데, 우리 선수가 세계에서 1등을 했다는데.... 월드컵대회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들었다는데... 싫어할 국민 있겠는가?

 

그런데 경쟁을 통한 승리 즉 1등이 좋기만 할까? 경쟁의 목적은 효율성의 극대화다. 선의의 경쟁은 발전의 원동력으로 성장을 위한 동기부여며, 자극을 통한 개인의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 데 모든 경쟁이란 좋기만 한 것일까?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무한도전, 골든 벨을 울려라, 1박 2일, 위대한 탄생, 마지막 오디션, 전국 노래자랑, 가족이 부른다..... 인기 있었던, 인기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다. 시청률에 목숨을 거는 상업주의 방송의 생얼을 본다. 오죽하면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적이 되어 모든 적을 섬멸하고 혼자만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까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할까?

 

 

"시험은 치는데, 성적은 매기지 않습니다. 등수라고 하셨나요? 등수가 뭔가요?"

 

프레시안 기자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노동조합회의에 참석한 핀란드노총(SAK) 국제국에서 일하는 페카 리스텔라(Pekka Ristela)와 인터뷰도중에 나온 얘기다.

 

"교육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지, 친구와 비교해 우열을 가리는 경쟁이 아니니까요. 학생들을 서로 비교해 서열을 매기는 것은 올바른 교육이 아니지 않나요.

 

그래가지고 친구들끼리 협동심이나 우정이 제대로 생길 수 있겠습니까?(프레시안-‘"경쟁? 100m 달리기 할 때만 들어본 단어입니다" )

 

핀란드 교육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받아쓰기, 기중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기초학력고사... 고 3의 경우 일년 중 한 달은 시험을 치르는데 시간을 다 보낸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전국단위 일제고사를 치러 개인별, 학급별, 학년별, 학교별, 지역별로 서열을 매긴다. 과정은 무시하고 1등만이 최고가 되는 교육... 그게 과연 교육적일까?

 

 

공정하지 않은 경쟁은 경쟁이 아니라 치고 박는 막싸움이다. 미들급권투선수와 프라이급 선수를 링 위에서 붙이는 시합이 공정한 경기가 아니듯 고전무용과 발레선수, 국악가수와 트로트 가수를 경쟁시켜 서열매기는 경기는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교육을 하는 학교는 어떤가?

 

학교는 지금 일등지상주의에 목매는 경쟁지상주의 사회가 된 지 오래다. 일류대학을 향한 무한질주는 사교육시장에서 누가 더 경제력을 가진 사람인가의 여부에 따라 서열이 가려지고 그 경쟁을 위한 무한질주는 그칠 줄 모른다. 선행학습이라고 했던가? 선행학습이란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할 때 정규 과정보다 시간적으로 앞서 배우는 선행학습을 한 학생이 앉아 있는 교실에 교과담임이 수업진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한 학생이 진도에 맞춰 나가는 교사의 수업을 듣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과정이야 어찌됐던 점수만 잘 받으면... 일등만 하면... SKY에 입학만 하면... 그게 선이 되는 학교는 과연 교육을 하는 곳일까? 소수의 승자를 위해 다수가 피해자가 되는 일등지상주의는 교육이 아니다. 원칙이 무너진 경쟁은 사회정의를 파괴하고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기재(機制)로 작용한다.

 

학교에서 경쟁은 교육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인데 서열을 매겨 모두를 피해자로 만든다는 것은 반교육이다. 교육을 상품으로 만들어 학부모와 학생은 수요자가 되고 교사와 학교는 공급자로 만든 교육 시장화 정책. 막가파식 경쟁, 일등지상주의가 선이 되는 학교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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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를 잘 받기 위해 멀쩡한 학생을 특수교육대상자인 장애아로 보고해 말썽이다. 그것도 교육청이 나서서 허위 보고를 했다면 믿어지겠는가? 그것도 지난해 전국단위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전국 최상위를 기록한 충북옥천교육청이 일반학생을 특수반으로 편성하는 가하면 대구시교육청은 평가를 잘 받겠기 위해 일선중학교에 체력검사 등급비율을 조작할 것을 지시해 말썽이 일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매년 4월1일 기준으로 홈페이지에 공개한 특수교육통계 자료를 보면 지난해 충북 11개 시·군 교육청의 초등학교 6학년 특수교육 대상 학생 수는 173명이다. 이 숫자는 2008년 155명에 비해 무려 18명(10.4%)이 늘어난 숫자다. 중학교 3학년도 지난해 156명이던 특수교육대상자가 2008년 132명에 비해 24명(15.3%)이나 증가했다.

 

                             <이하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특수교육대상자가 갑자기 늘어 난 이유가 뭘까? 학기 초 진단평가를 통해 단순 학습부진아(학력 미달자)를 학습 장애아로 구분해 특수반에 편성했기 때문이다. 이 기막힌 현실을 보다 못해 충북교육청 소속 교사가 "특수 교육이 필요한 학생이 아닌 단순히 국가수준 평가에서 평균을 깎아 버릴 것이 다분하여 교육청의 지시와 학교 관리자의 지시아래 일어난 일입니다"라며 내부 게시판에 올린 양심고백 글이 올라오면서 밝혀진 사실이다.

공교육과 교육과정 정상화를 지도감독 해야 할 지역 교육청이 학습부진아를 학습장애아로 허위 보고한 이유가 뭘까? 말할 것도 없이 수요자 중심의 교육, 교육을 상품으로 만들어 경쟁과 효율만이 살길이라며 전국단위 일제고사를 시행, 학교별 지역별 서열화를 통해 예산이나 성과급까지 차등화하다 나타난 현상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교육이 수요자인 학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육감을 비롯한 교육관료들의 자랑 만들기, 치적쌓기가 불러 온 반교육적인 행태다.

충북교육청은 지난 10월에 시행한 전국단위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비하여 교육청에서 모의고사 문제를 내려 보내 학교단위에서 모의고사에 대비한 시험문제 풀이로 교육과정운영을 파행으로 몰아간 사례도 있다. 모의고사 성적을 올리기 위해 음악, 미술, 체육 수업은 뒷전이 되고 체육대회도, 학예회도, 소풍도 일제고사 이후로만 미루기는 파행적인 교육... 이를 감시감독해 교육과정 정상화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교육청이 오직 성적지상주의를 강조하자 단위학교에서는 평가관리규정을 고쳐 일제고사 성적을 중간, 기말 고사에 반영하거나 수행평가 점수에 반영하도록 공공연히 변칙 운영하는 학교까지 늘어나고 있다.


점수지상주의 교육은 오직 점수 몇점을 더 올리기 위해 토요일에도 아이들이 등교해 컵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한 채 문제풀이 수업을 하는 학교까지 생겨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모의고사 성적이 낮은 초등학생을 교장실로 불러 전학가라고 호통 치는 교장선생님, 꼴찌하는 아이는 ‘11월까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아, 일제고사 성적에 넣지 말자고 특수교육대상자로 지정하는 학교. 이런 파행적인 교육을 서슴지 않고 했던 게 충북 교육의 현실이다.

충북뿐만 아니다. 대구시교육청 업무담당자는 대구시내 고등학교로, 각 지역교육청 담당자는 중학교의 교장 혹은 담당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학생체력검사 등급 중 4, 5등급 비율을 10%대로 줄이라고 지시를 내려 말썽이 일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은 각 학교로 ‘통계 보고 일을 12월 5일에서 12월 12일로 연장한다’는 내용과 ‘PAPS(학생건강체력평가) ‘기록이 향상된 학생에 대해서는 완료 보고 일까지 계속 수정 입력 요망’이라는 내용의 공문(평생체육건강과-13454, 2011.11.29))을 보냈다. 이 공문을 학교로 보낸 시점에서 대구시교육청과 지역교육청 담당자가 각 학교로 전화로 ‘학생체력검사 등급 중 4, 5등급 비율을 10%대로 줄이라’고 지시한 것이다.

 


대구시교육청이 이렇게 무리하게 조작을 지시한 이유는 무엇인가? 중학생들의 체력검사등급 비율이 학교평가 항목이면서 동시에 각 시도교육청 평가 항목이기 때문에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다. 이런 파행적인 교육사례는 학교평가나 교원평가로 일선 학교에서 교육의 질적향상을 위해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하기는커녕 그간 학교간, 교사간, 학생간 경쟁만 부추긴 결과다.
 

평가 만능주의, 경쟁 지상주의가 만능 교육일 수 없다. 현재 교육현장에서 실시하고 있는 학교평가, 기관평가, 교육청 평가 등 평가 시스템이 우리 교육을 얼마나 심각한 왜곡과 공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는가? 교과부는 지금이라도 공교육정상화를 위해 경쟁만능, 평가 만능의 경쟁교육을 전면 재 점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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