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교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6.21 [철학교실] 선생님, 정치가 뭐예요? (12)
  2. 2014.02.26 우리 교육은 얼마나 정치적인가? (14)
정치/철학2016.06.21 06:54


“선생님, 정치가 뭐예요?

철학교실에서 만난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의 질문이다. 주제 설정을 학생들에게 물어서 해보자는 논의 끝에 학생들에게 물었더니 초등학생이 정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정치가 무엇인가? 오늘 주제는 우리 철학교실 수강생인 김영훈(가명) 학생이 궁금해 하는 정치를 철학적인 관점에서 한번 풀어보기로 한다.


선생이 아이들 공부나 가르칠 일이지 데모나 하고...”


전교조교사들이 교육을 살리자고 거리 집회를 하면 어른들이 하는 말이다. 이 사람들의 논리는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기도고농사일은 농민들에게, 장사는 상인들에게 맡기면 되는데 왜 선생이 정치에 간섭을 하느냐는 것이다.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만 될 수 있다면... 그런데 정치를 정치인들에게만 맡겼더니 정치가 잘 돌아가는가? 장사꾼들에게 장사를 맡겼듯이 안심하고 상품을 구입해도 되는가? 교육을 교사들에게 맡겼더니 교육을 제대로 하는가? 정부는 경쟁과 효율이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며 온통 교육까지 상품이라며 시장에 맡겨놓았다. 모든 경쟁이 좋기만 할까?


동영상을 하나 보고 시작할까요? https://youtu.be/9JNyxqlWvdM


자기수준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같은 현상이라도 보는 사람의 시각, 보는 사람의 안목, 보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세월호 문제를 보자. 수학여행을 간다고 들떠서 잠도 제대로 안자고 인사하고 떠난 아이가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그것도 304명이라는 사람이 탄 배가 가라앉았는데 잊을 수 없다며 노란 리본으 달고 있으면 이제 그만 잊자고 한다. 부모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그렇게 갔는데 잊을 수가 있을까?


이명박정부가 정치를 잘못해 189조를 날렸다는데 남의 일처럼 구경꾼이다. 내 주머니에서, 내가 낸 세금에서 나가는 돈인데... 장사를 하다가 현대중공업이 23조원, 대우조선해양 157천억원, 삼성중공업 95천억원의 빚을 졌다. 가정 살림살이가 어려원 빚을 지면 자기가 갚아야 하는데 왜 재벌이 빚을 지면 정부나 은행이 그 빚을 갚아줘야 하나


기업이 진 빚을 정부나 은행이 갚아준다는 말은 결국 국민들 호주머니에서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름도 거창하게 양적완화란다. 돈을 더 찍어내겠다는 말인데 돈을 많이 찍어내 돈 가치가 떨어지면 물가가 올라간다는 것은 초등학생들도 아는 얘기다. 가정에서 살림을 잘못살아 빚을 지면 정부가 나서서 갚아주는가? ‘부실조선·해운업체를 살리기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이 구조조정 자금으로 11조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 지원금을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키로 했다’... 이런 신문기사를 보고도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왜일까?



버스에서 먼저 앉은 자리도 노약자에게 양보해 주지 않는 세상이다. 11조가 아이들 장난감 돈인가? 1조원은 1만원 짜리 지폐가 1억장이다. 1조원을 차에 실으려면 5t 트럭 22대가 필요하다. 가로로 이어 놓는다면 서울-부산 경부고속도로를 열아홉 번 왕복할 수 있는 돈이고, 차곡차곡 쌓는다면 백두산(2744m)4, 에베레스트(8848m)1.26배 높이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다. 그것도 1조도 아니고 11조다.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게 아니라고? 나는 갑종근로소득세가 면제 된다고..? 천만에 말씀이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세금이 어디 직접세만 있는가? 물건값에 붙어있는 세금은 세금이 아닌가? 술값은 생산가보다 세금이 더 많이 붙어 있다. 교통위반 범칙금도 담배도 다 세금이다. 아이들 학용품에도 붙는 세금... 그게 나와 상관없다고...?



정치 예기 하자고 해놓고 왜 엉뚱한 세금 얘기는 왜 하느냐고...? 글쎄다. 정치란 그 나라 국민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거다. 부자나 잘난사람, 똑똑한 사람만 잘살도록 하는게 아니라 모든 국민이 골고루 잘살게 하자는게 정치다. 대통령,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이 왜 필요한가? 힘센사람,능력있는 사람이 약한사람 못살게 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이 필요하고 국회가 필요하고 못된 사람 벌주는 사법기관이 필요하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라고..? 정치는 어려운 거라고..? 정치란 길을 걷는 것도 정치요, 밥 먹는 것도 정치다. 정치는 어린아이라고 안하고 늙은이라고 못하라는게 아니다. 밥 안 먹고 갈로 다니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 옷을 입고 잠을 자고 학교에 다니고... 이 모든 행위가 다 정치다. 도로를 닦고 시장에서 옷을 사 입고 잠을 자는 집도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없이는 하루도 실기 어렵다. 그런데 선생은 아이들이나 가르치라고...? 정치는 밥이요, 생활이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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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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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4.02.26 07:03


 

◆. 데올로기 교육의 시대를 지나오며

 

박정희 정권 시기, 나는 군복무를 마치고 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 학교에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칠판 옆에 붙여놓고서 국민소득 1천불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한 교육을 해야 했다. 칠판 위에는 박대통령 사진과 함께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걸려 있었고, 나는 평생 노동자로 살아갈 제자들에게 ‘노동이 천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했다.

 

 

그 당시 내가 경험한 교실 풍경은 이렇다. 미술시간이면 어김없이 북한의 남침야욕을 상징하는 마귀의 손이 남한을 움켜쥐는 모습의 포스터를 그리고 반공표어를 만들어 교실을 꾸몄다. 윤리 교과서에는 온통 가짜 김일성의 가계며 친인척을 폄훼하는 내용으로 도배질되어 있었으며, 가난에서 해방시켜준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국가가 필요한 인간을 만드는 교육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오전수업을 마치고 오후에는 가정방문을 하겠습니다. 교육청에서 공문이 내려와 이번 주 안으로 전 가정을 방문해 유신헌법에 대한 홍보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있습니다. 나가시기 전에 반드시 회람하는 공문을 숙지하시고 홍보물을 꼭 지참하시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1972년. 교사의 정체성도 교육의 방향감각도 제대로 잡지 못하던 신임교사 시절, 그러니까 교사 발령을 받은 지 3년차 되던 해였다. 그 때 교무회의에서 교무부장이 한 말이다. 아직도 초보교사 딱지를 떼지 못하던 시절,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교육청이나 교장의 지시가 법이요, 그것을 어긴다는 것은 초보교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업 단축 같은 건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교육과정도 교육청의 지시가 떨어지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었고 실제로 그런 일이 수없이 많았다. 퍽 하면 반공궐기대회에 학생들을 동원해야 했다.

 

<이미지 출처 : 아이엠피터>

 

그 오래 전의 이데올로기 교육이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 반복되고 있으니, 참 놀라운 일이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인간을 만드는 교육. 그 반동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국사교육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교학사 교과서가 채택률 영 퍼센트라는 비참한 결과가 나오자 다시 국정으로 가겠다고 교육부가 팔을 걷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한 때 ‘전교조 교사는 6·25가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고 가르치고 있다’며 붉은 색칠을 당했던 일이 있다. 6·25를 놓고 남침설, 북침설, 유도설이 있다는 사례조차 들지 못하는 단세포적인 흑백논리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 역사교육은 사관을 가르치지 않는다. 영웅사관, 식민사관의 범주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역사교육. 현대사는 거두절미 당하고 고대사에서 근대사까지 원인, 경과, 결과를 앵무새처럼 암기해야 하는 학생들.... 해방 과정에서 역사 청산을 못한 결과가 대한민국을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 정치적 교육, 국사교육의 강화

 

국사교과서는 현대사를 별로 다루지 않는다. 고대사와 중세사 그리고 근대사에 비해 현대사는 비중이 적다. 국사교과서를 필수가 아니라 선택으로 바꾸는 등 현대사를 기피했던 이유가 뭘까? 이유는 해방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 수립 과정에서 친일세력 청산을 못한 정부는 교육에서도 그 한계를 드러냈다. 희소가치를 배분해야 할 권력이 객관적인 입장에 서지 못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쓰인다면 그 결과는 심각하다.

 

친일세력이나 독재정권, 혹은 군사정권이 교육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거세하는 행위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이승만 정권 시대 교과서가 친일인사들의 작품으로 덧칠되거나, 유신시대 유신악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포장해 정당화시킨 것은 중립적이어야 할 교사들로 하여금 위법 행위를 하도록 강요한 것이다. 교사가 권력의 의지에 따라 왜곡된 지식을 주입한다는 것은 교육이 아닌 순치다.

 

<이미지 출처 : 새날이 올거야>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역점 사업의 하나가 국사교육 강화다. 학생들이 선조들의 삶을 통해 현실을 보고 나의 소중함을 찾아가는 국사교육을 강화한다는데 누가 이의를 달 것인가? 그런데 그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국사교육을 강화한다면서 국사과목을 사회교과에서 독립시키고 수업시수를 늘리고 수학능력시험에 필수과목으로 치르게 했다.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현재 학생들이 배우는 국사교과서가 좌현향이거나 자본의 입장을 경시하고 있다며 교학사 교과서를 만들어 놓았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내세우며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5·16 군사쿠데타를 ‘5월혁명’으로 보는 극우단체가 ‘뉴라이트’다. 이런 친일사관의 뉴라이트계 학자들이 만든 교과서가 교학사 교과서다. 교육부는 사실 오류와 편파 해석, 부적절한 표현, 글ㆍ사진 등 자료를 무단 전재하거나 사실을 왜곡한 내용이 무려 6백여 건이나 되는 교학사 교과서를 승인하고, 문제제기를 한 교과서 집필진이 낸 ‘수정명령 취소 및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법원까지 나서서 기각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맞는 얘긴가? 일선학교 교사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이 금과옥조로 믿고 있는 이 말은 원론적으로는 맞는 얘기지만, 교육 위기의 책임을 교원들에게 전가하기 위해 정부가 끊임없이 국민들을 세뇌시켜왔던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가격이란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룰 때 정해지며,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가격이 오르고 적으면 가격이 내려간다는 이론이다. 이 말은 ‘다른 조건이 불변일 때’에 맞는 말이다. 만약 공급자가 상품생산을 독점해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다면 이 법칙은 맞지 않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국정교과서와 입시위주 교육으로 교실이 단지 지식전달의 장이 됐을 때 교원의 자질은 피교육자인 학생들에게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영어, 수학과 같은 도구교과는 몰라도 윤리나 국사처럼 이념이 담긴 교과서를 국정으로 한다는 것은 정권이 필요로 하는 인간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국정교과서를 가르치는 학교의 교사는 자신의 자질과 무관하게 정권이 원하는 인간을 양성할 수밖에 없다.

 

◆. 교육의 중립성이란...?

 

우리나라 역사의 흐름 속에는 교육이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한 아픈 기억들이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식민지 시대에 교육은 정치이념을 전달하는 주요 역할을 했다. 그 시대의 교육은 식민지 백성을 일본 천황의 신민, 곧 황국신민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역사를, 독재 시대에는 독재정권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역사를 배워야만 했다. 이승만 정권 시대에 교육받은 사람들은 이승만을 영웅이자 독립운동가로 이해했고, 미국은 천사의 나라,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나라로 배웠다. 통일은 북진통일이 유일한 방법이고, ‘반미는 매국이요, 친미는 애국’이라고 배웠다.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지 않는 교육은 정권이 필요한 인간을 양성하게 된다. 정치란 ‘희소가치를 배분하는 행위’다. ‘누구나 선호하는 가치를 배분하는 일’이 정치라면 정치가 중립적이지 못할 때 교육은 정권의 아바타가 된다. 중립적이지 못한 교육을 받은 교사들은 민주시민으로 살아 갈 제자들에게 노예의식을, 노동자가 될 제자에게 자본가의 생각을 갖게’ 하는 역기능을 하게 된다.

 

2011년,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전교조 교사를 두고 ‘교원의 정치적 중립을 위배했다’며 정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 134명을 파면·해임키로 하고 징계를 추진하고 있다. 전교조는 이에 항의, 지금도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1500여명에 가까운 교사들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현재 1심에서는 전교조교사에 대해 벌금 10만원에서 50만원 까지 벌금형을 선고받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전교조>

정부는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교사들을 “특정 정당에 당비를 냈거나 후원금을 낸 사실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한 중대한 위법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전교조는 ‘교사는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교사이기 전에 헌법의 보호를 받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정치적인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교원의 정치적 중립이 공적인 업무수행이 아닌 교사 개인의 정치적인 성향에 따른 권리행사인가의 여부를 사법부가 판단할 수 있을까? 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만들어 정부의 시각에 맞는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정부를 두고 교사들의 개인적 성향까지 제동을 거는 것이 민주정부가 할 일인지에 대해서는 역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닐까?

 

교사는 학생들에게 “새누리당이 정권을 재창출해야 나라 살림살이가 좋아진다.” 혹은 “민주정의당이 집권하면 사회복지가 실현되고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가 된다”고 가르칠 수 있을까?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정당에 대해 가르치면서 새누리당의 정체성이나 민주정의당의 정체성을 말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은 교사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일이다.

 

교육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일이다. 옳고 그른 일을 분별할 수 있고,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분별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 그래서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일깨워주고 더불어 행복하게 살도록 안내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다.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아는 사람, 고통을 당하는 이웃을 보면 측은지심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이다.

<이미지 출처 : 교육희망>

우리 헌법 제 34조 ④항에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교육기본법 제 6조에는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ㆍ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된다’고 못박고 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한 것은 권력의 힘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런데 실제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이를 지켜줘야 할 정부에 의해 훼손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까지 국가는 자신이 원하는 ‘국민’을 길러낼 수 있는 방향으로 국가가 주도하여 교육과정을 만들고 교과서 제도를 정비해 학교의 운영이나 교원 양성에도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이는 무척 정치적인 행동이다.

 

교원들의 정당 후원금을 내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위배라 하고, 시국선언을 하면 좌편향이라고 한다. 교육의 중립성은 실제로 가능한 얘기일까? '교육이 목표로 하는 인간상'의 구현은 교육이 특정한 입장에 설 때 비로소 가능하다. 군국주의 교육인가, 평화주의 교육인가? 봉건주의 교육인가, 민주주의 교육인가에 따라 교육의 방향이 달라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입장의 포기를 뜻하는 중립성이란 곧 교육의 포기다.

 

진정한 의미의 교육 중립성은 권력의 지배에서 배제되었을 때 가능한 얘기다. 교육 내용의 중립성과 함께 제도상의(교육행정, 예산의 독립 등) 독립이나 교사의 중립성이 먼저 보장되어야 한다. 교육이 교사의 인격적인 활동이라고 볼 때, 교사의 가치관과 인간성이 교육의 질을 결정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교원 임용고시제 같은 교원채용제도는 교육의 내용뿐만 아니라 교사를 권력의 지배하에 두려는 권력의 의지로 볼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겠다고 한다. 국가가 개입해 헌법에 보장된 교육의 중립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한, 교육목적이 지향하는 인간을 길러내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교육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권력의 의지로부터 교육의 중립성을 지켜내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교육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가 아닐까?

 

- 이 기사는 '민들레 Vol 91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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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