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교사, 1급정교사, 2급정교사, 교감 자극증, 교장 자격증....!

 

살다보면 이해 안 되는 일이 어디 한 두가지일까만은 학교를 보면 그런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병원장은 의사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데 교장 은 왜자격증이 있어야 할까? 교감이나 교장은 자격증이 있어야 하지만 장학사나 장학관은 왜 자격증이 없어도 될까?

 

 

 

교사라면 당연힌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활동이 주 업무가 되여야 하지만 교수활동보다 담당 업무를 잘 처리하는 사람이 우수한 교사, 유능한 교사로 승진도 하고 대접도 받는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새파란 30대 교사들이 승진을 위해 점수를 모으고 있다는 소리돟 심심찮게 들린다. 

 

모든 교사가 다 그런건 아니지만 교사들 중에 학생들을 가르치기를 기피하고 승진 준비를 하고 있다면 학교 꼴이 뭐가 되겠는가? 교사라면 당연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만족하고 보람과 긍지를 느끼면서 살아야겠지만 기회만 되면 가르치는 일을 기피하고 수업을 하지 않는 교감이나 교장, 혹은 장학사나 장학관이 되고 싶어 한다면 그런 학교에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기나 할까?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사람은 교사다. 교감이나 교장으로 승진하면 그들은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르치는 사람보다 교감이나 교장, 장학사나 장학관이 존경받고 우대받는 게 학교의 현실이다. 교사가 교감이나 교장이 되면 승진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게 가장 중요한 자리여야 하는데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고 행정업무를 맡아 하는 직무를 왜 승진이라고 할까?

 

교사들은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사람들은 교사들이 수업이나 하는 사람인 줄 안다. 과연 그럴까?

‘하루 평균 80건, 한 달 평균 1600~1700건....’

교사들이 처리하는 공문 얘기다. 다인구 학교에서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그런데 학생수 100명이 안되고 교사가 7명밖에 안 된다고 공문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죽하면 ‘일하며 틈틈이 가르친다.’는 말이 나왔을까? 연간 수업시간이 850시간인데, 그 보다 많은 공문을 다루었다니! 하루로 따지면 4시간 수업하고 점심 먹고 나서는 계속 공문처리만 하고 있는 꼴이다.

 

 

 

선생님들이 처리하는 공문이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3월, 새학기가 시작되면 학교교육계획이나 교육과정, 각종 특색사업, 학생 수나 다문화가정, 한부모가정 등 기본적인 상황 조사가 시작된다. 4월부터는 컨설팅장학, 정보공시, 각종 연수 안내, 수업시수보고, 학습부진아보고, 학습부진아지도 목적사업비 지출, 진로교육계획, 수업공개계획...

 

2학기가 시작되는 9월이면 학교평가, 시도교육청 평가 관련 공문이 쏟아진다. 학생, 학부모 설문조사도 교육청 행사, 학교평가, 교원평가 3가지나 진행되고 정보공시도 반복된다. 9월 중순부터 2~3주간은 국정감사관련 예산운영, 교육과정운영, 학교폭력관련 대책... 등 이 많은 자료 중 어떤 항목은 2-3년치를 다 조사해 보고하란다.

 

00교육을 몇 시간 했냐? 성교육 관련은 3-4명의 국회의원에게서 성매매, 성폭력예방 이름으로 5-6가지 종류가 내려오기도 한다. 아침에 공문을 받고 그 날 내라는 것도 많다. 끝나고 나니 행정감사자료수집이 시작되었다.

 

연말이 다가오면 각종 활동에 대한 우수사례, 예산 정산보고, 수업 외에 학교에서 한 특색사업... 학교평가보고서는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몇 달이 걸리고, 12월에 온 성폭력예방교육공문은 증빙자료에 실적까지... (노동과 세계-신은희 ‘틈틈이 가르친 나, 교사가 아니었네’ 참조)

 

<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그림마당>

 

이렇게 공문에 시달리다 보면 정작 교재연구나 수업준비는 뒷전이다. 학교행사와 공문처리, 노인정 방문, 심지어 방과 후 학교 강사들의 입금관리까지 교사들이 담당해야 한다. 초등 일선학교의 경우 일년동안 처리해야 할 공문이 무려 2만 3천여건이나 된다니 교사들의 주 업무가 공문처린지 교수활동인지 구별이 잘 안 된다.

 

왜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열정을 쏟지 않고 승진에 목매는가?

 

학교의 분위기는 평교사보다 부장교사나 수석교사, 교감이나 교장이 더 훌륭한 교사, 높은 사람(?)이다. 머리가 허연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가면 학생들로부터 무능한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공문처리가 조금만 늦으면 여러 선생님 보는 앞에서 젊은 후배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책임추궁을 당할 때면 ‘죽고 싶다’는 중견교사(?)도 있다.

 

요즈음 수업시간은 선생님들에게는 고통(?)의 연속이다. 가르치는 즐거움이란 찾아보기 어렵게 된지 오래다. 교실에는 수업 중,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은 담당교사가 가르치는 과목이 아닌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를 포기하고 졸업장이 필요한 학생들은 끊임없이 수업을 방해하거나 잠을 자기도 한다. 아들 벌 되는 아이들이 성희롱에 가까운 농담을 이죽거리는 소리를 들고 있노라면 소름이 끼친다는 선생님도 있다.

 

이런 수업에서 해방 되는 길은 교감이나 교장으로 승진 하는 수밖에 없다. “교사는 학생들만 없으면 참 좋은 직업이다”이라는 말이 왜 나왔을까?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는 길... 그것은 수업을 하지 않고 학부모나 교사들로부터 존경받는 교감 교장이 되는 길뿐이다.

 

수업의 즐거움이 없는 교실... ?!

끔찍한 수업(?)에서 해방 되는 길... 그 것은 다름 아닌 교감이나 교장으로 승진하는 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는 학생들을 많이 만날수록 서열이 낮다. 시간제 강사, 시간강사와 같은 사람들은 임용되기 바쁘게 수업 폭탄이 쏟아진다. 부장들은 일반 평교사보다 적게 수업을 하고, 교감이나 교장이 되면 아예 수업에서 해방된다.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 사람일수록 높은 사람, 폼 나는 사람으로 존경 받는 학교... 언제쯤이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선생님들을 만나 볼 수 있을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학교의 주인은 학생인가?, 교장인가?

 

「담임 역할도, 보직 교사 업무도, 연구수업 실적도, 심지어 연수시간조차도 승진을 위한 점수로 환산되고, 근무평정이 학교장에 의해 매겨지는 현실에서, 교사들에게 승진이란 일반 기업체의 그것보다, 수험생들의 수능점수 경쟁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소수점 단위로 따져가며 순위를 다퉈야 할 무한 경쟁의 장이 돼버렸다.」

'승진때문에 목숨 끊은 여교사, 욕할 수 없다 ' 오마이뉴스에 서부원 기자가 쓴 기사 제목이다. 교사들은 왜 승진에 목을 매는가?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30년간 점수 계산하며 살아야 하는 교사.... 그들이 승진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보자.

학교사회는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라지만 학생을 주인으로 대접하는 학교는 별로 없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주인인 학생들은 주인으로서 대접하기보다 순치의 대상, 통제의 대상으로 감시감독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교육공무원 승진 평정 참고자료>

 

교사도 그렇다. 학교라면 당연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가장 우대받고 존경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교장이나 교감, 장학사들이 높은 사람이요, 교사들은 그들의 명령에 따라 교육해야 하는 상하관계에 놓인다. 교감이나 교장 그리고 장학사들은 교사보다 교육을 더 잘하는 전문가일까?

 

현실이 그렇다보니 교사들은 승진을 꿈꾼다. 승진하는 것이 출세(?)하는 길이요, 교직에서 평생 동안 아이들을 보살피며 평교사로 재직하는 교사는 무능한 교사로 인정받는 게 현실이다. 일선 현장에서 이론과 실천경험을 쌓고 주변에서 훌륭한 교사라고 인정하더라도 저절로 승진되지 않는다. 평교사가 교감이나 교장 혹은 장학사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학교장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공무원법에 의하면 교육공무원은 교원교육전문직원으로 구분되어 있다. 더 세분하면 교육기관에 근무하는 교원과 교육연구기관에 근무하는 교육연구관, 교육연구사 등이 있고 교육행정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은 교육장, 장학관, 장학사, 등이 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교육기관이나 교육연구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교사들을 지원해 보다 양질의 교육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교사가 교감이 되거나 교장이 되는 것을 ‘승진’이라고 한다. 장학사나 장학관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교사란 ‘초ㆍ중ㆍ고등학교 따위에서,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말한다. 교사가 교감이나 교장, 혹은 장학사를 일컬어 전문직이라고 한다. 교사를 제외한 연구기관이나 행정기관에 근무하는 이들은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행정적으로 학생들의 교육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는 게 교감, 교장이요, 장학사다.

 

<사진설명: 장학지도-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관련이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다. 특히 좋은 선생님과 훌륭한 학교장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요, 축복이다. 학교장이 어떤 철학의 소유자인가의 여부에 따라 학교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교장승진제가 좋은 교장을 뽑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되어 있다면 우리교육은 그만 큼 양질의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학교는 유능한 사람이 교장으로 승진하기 좋은 구조인가?’

 

누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교사들은 선뜻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승진의 길은 그만큼 어렵기도 하지만 승진 준비를 하는 동안 과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직무에 전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점수를 모으기 위해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교과나 업무 그리고 학생들이 얼마나 희생되어야 하는지 한 번 살펴보자.

 

교포교사와 안포교사의 차이...?

 

교감이나 교장이 되기 위해서는 소수점 둘째자리까지 점수를 계산해야 한다. 공무원 승진평정체계를 보면 교사가 승진하기 위해서는 경력점수(70점)와 근무성적(100점) 연수성적(교육성적-27점, 연구실적-3점) 그리고 연구학교나 교육기관 파견근무와 같은 가산점(13점)을 합쳐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지 못하면 승진은 꿈도 꾸지 못한다.

 

<임기가 끝나 떠나는 태봉고 여태전 교장-재학생과 졸업생 학부모, 졸업생, 재학생, 지인들의 축하 한마당>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경력평정점수 70점은 15년 기본점수에서 초과 5년이 만점이지만 경력등급이 가, 나, 다 경력이 달라 농어촌이며 벽지를 찾아다니며 점수를 채워야 한다. 연수성적의 경우 교육성적과 연구실적 합계정수 30점 만점에 자격연수 9점, 직무연수 10년이내 60시간 이상의 연수점수와 전국규모 1등급은 1.50점 2등급은 1.25점 3등급은 1.00점 시도규모 1등급 1.00점, 2등급 0.75점, 3등급 0.59점.... 박사학위 취득 3점, 석사 1.5점....

 

가산점은 더 복잡하다. 교육부지정 연구학교 근무 1.25점, 재외국민교육기관 파견근무 0.75점, 직무연수 이수실적 1점 이내, 도서벽지 및 농어촌 학교근무경력... 0.000점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승진 점수, 자신의 승진 점수를 계산하며 철새처럼 근무해야하는 교사는과연 제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을까? 이렇게 복잡한 점수를 다 만점을 받아도 마지막으로 학교장이 평정하는 근무성적이 나쁘면 승진은 끝이다. 그렇다 보니 학교운영에 대한 비판은커녕 ‘교장의 마름(?) 역할을 하지 못하는 한 승진은 꿈도 꾸지 말라’는 농담 아닌 농담도 있다.

 

교사로 발령받아 30세 정도가 되면 ‘관리직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평생 교포교사(교장을 포기한 교사)로 정년퇴임을 맞을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62세 정년까지 30년을 준비해야 하는 승진의 길.... 운(?)좋게 모든 점수를 채워 4~5년을 교장이나 장학관으로 혹은 교육장으로 출세(?) 하는 사람도 있지만 퇴임 1, 2년을 남겨 놓고 교장이 되어 시골 100명도 안 되는 학교에서 정년을 맞는 교장도 없지 않다. 승진의 꿈을 꾸다 화려하게 꽃피우지 못하고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는 교사... 이들이 과연 성공한 교직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3.05.25 07:00


 

                      <사진은 글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출처 오마이뉴스에서>

 

교사들은 1년에 한두번씩 공개수업을 한다. 학부모와 장학사 그리고 동료교사들이 참가 해 수업을 공개함으로써 수업에 대한 교사의 자신감 향상 및 학생․학부모․교사의 학교교육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란다. 공개수업을 함으로써 '교원능력개발평가의 지표로 활용하고 수업 전문성과 실천 지식을 공유할 수 있으며 동료교사 간 수업공개를 통하여 수업멘토링제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공개수업을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학부모나 학생들은 이런 행사를 어떻게 생각할까?

 

“수업을 공개하며 조금 더 자기 수업에 대해 학생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며 바람직한 수업모형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다”

 

공개수업을 하고난 어느 담임교사의 변이다.

 

학부모는 공개수업을 참관하고난 후 뭐라고 평가할까?

 

‘선생님 언제나 얼굴엔 미소로 가득하시고, 마음은 부드럽게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언제나 아이들 이야기를 잘 들어 주는 모습이 정말로 부러웠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4반을 칭찬하는 소리(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들이라는)에 마음이 더욱 뿌듯해졌구요. 오늘 완전 감동이었어요~~ ♥’

 

동료교사의 소감을 들어 보자.

 

‘모둠학습에서 간과되기 쉬운 각 학습자별 성취정도의 분석이 필요하였으며 따라서 형성평가 과정에서 수업내용에 대한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성취정도를 분석해 보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 한시간 수업을 위해 그 많은 준비를 한 담임선생님의 노력에 부응하는 효과적인 결과라고 평가해도 좋을까?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담임선생님의 수업을 객관적으로 공정한 잣대로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매일같이 만나는 직장동료의 수업에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는 기록으로 남겨 놓기가 쉬운 일일까? 그것도 참관록을 후에 본인이 모두 볼수 있는 공개된 장부에... 

 

                   <사진은 글의 내용과 직접관련이 없습니다... 출처 : 구글 검색에서...>

 

공개수업은 음악 수업을 음악선생님들만 참관해 평가하는 게 아니다. 미술수업이나 수학수업을 국어선생님도 과학선생님도 국사선생님도 참관하고 평가한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교육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학부모도 있겠지만 학창시절 도 음악을 전공한 학부모가 영어나 물리 공개수업을 참관하고 평가를 할 수 있을까? 결국 위에서 예시한 참관후기처럼 칭찬 일변도 혹은 영양가 없는(?) 일반적은 얘기로 끝나고 만다.

 

그런데 학생들은 이런 행사를 뭐라고 할까?

 

“아빠 웃겨 죽는 줄 알았어요! 있잖아요,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존댓말을 다 쓰고 평소 수업시간에 안하던 자료를 가지고 와서 엄마들 앞에서 수업을 하는 걸 보니 역겨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인터넷에 떠도는 공개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딸이 아버지와 나눈 대화 중 일부다.

 

학부모들은 공개수업 한시간을 준비하기 위해 담임교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 하는 지 알기나 할까? 그것보다 평소 수업을 이렇게 하지 않는다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얘기다.

공개수업이 전혀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새로운 수업모형을 공개하는 것도 아닌 연례행사로 또는 의무적으로 돌아가면서 해야 하는 수업은 학생들에게는 ‘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학교는 이런 행사를 수십년동안 계속해오면서 개선의 여지도 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교사들이 승진을 하기 위해 시행하는 수업연구대회를 비롯한 행사는 또 어떤가? 승진을 꿈꾸는 교사는 평소 학생들과 소통하고 준비하고 자기수업을 성찰하는 기회보다 어떻게 하면 대회에서 1등급을 받을 수 있을까 준비하는 데 더 골몰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평소 교실은 남이 볼까 겁날 정도다. 35명 수업에 불과 4~5명만 수업이 참가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다른 과목 문제를 풀이를 하거나 잠을 자거나 잡담을 수업을 방해한다. 이름하여 무너진 교실....

 

사회수업시간에 수학문제를 풀이하는 학생에게 ‘야! 넌 왜 내 수업에 참가하지 않고 문제풀이를 하느냐’고 질책하면 ‘선생님이 제 인생 책임질 수 있습니까?’라는 힐문이 돌아온다.

 

제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럴 때 뭐라고 학생들에게 대답해 줄 수 있을까?

 

‘교육 쇼!’로 표현되는 공개수업이니 수업연구발표대회같은 행사중심의 수업으로 ‘학생․학부모․교사의 학교교육 만족도를 높이고, 수업 전문성과 실천 지식을 공유해 수업멘토링제로 활용할 수 있다'고 믿어도 좋을까?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교사로 만들고 제자를 이중인격자로 키우는 교육 쇼는 중단해야 한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올해부터 교직사회에 계급이 하나 더 생겼다. 이름하여 수석교사제다. 참 듣기 좋은 이름이다. 그런데 그 화려한(?) 이름, 수석만큼 이름값을 할 수 있을까? 수석교사란 '승진하지 않고, 대우 받는 수업전문교사'란다. 교장·교감과 같이 관리직에 오르지 않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면서 자신의 교수 기술을 확산시키는 업무를 맡는 직위, 교직사회에서 그런 게 가능하기나 할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평범한 교사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한 계급 강등된 기분이라고 한다.

수석교사란 어떤 교사인가?


현행 교원의 승진제도를 보면 교감, 교장이 되거나 장학관, 혹은 연구관이 된다. 교사라는 직무는 교수직이 아닌 행정직인 교장 교감의 지위감독을 받는 지휘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올해부터 시행된 수석교사는 행정직이 아닌 교수직이라는 게 다르다면 다르다. 수석교사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업무는 교사들을 멘토링(장학)하는 일이다. 교사들의 멘토링(장학)을 위해 만들어진 장학사를 두고 교사들 중에 유능한 교사(?)를 뽑아 이름만 바꿔 수석교사제로 바꾼 것이다.

왜 교사들은 승진하려 하는가?


가르치는 게 좋아 교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아이들을 사랑하며 그들에게 사는 게 뭔지, 사람답게 사는 게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며 살아가는 것을 보람으로 느끼고 싶어 교직에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 교직사회는 자신이 꿈꾸던 세상이 아니라는 걸 직감하게 된다. 가르치는 일보다 더 많은 잡무에 시달리며 계급사회가 안겨주는 무력감에 빠져 원하는 일보다 강요나 통제에 견디지 못해 탈출구를 찾는 게 승진이다.


연임 가능한 기간에는 승진 신청을 할 수 없고, 임기를 마치면 평교사로 돌아간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일단 수석교사가 되면 임기 4년을 보장받고(1차 연임 가능), 연간 수업시수의 2분의1 경감과 월 40만 원의 연구활동비 보장 등의 혜택을 받는다. 수업을 비롯해 △학교·교육지원청 단위 수업컨설팅 △현장연구 △교육과정 개발 보급 △신임교사 멘토 △교내연수 및 연수기관 강의 등으로 교사들의 학습 조직화 역할을 담당하는 게 수석교사의 임무다.

유능한 교사는 교감이나 교장 혹은 장학사로 승진하는 승진구조에서 무능한 교사가 평교사로 남는 현실에서 수석교사란 꽤 매력이 있는 메리트다. 교과부도 교육에 충실한 교사들에게도 승진의 기회를 늘려주기 위해 수석교사제를 도입했단다. 이제 평교사로서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끼던 교사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져 사회적으로 ‘평교사는 무능한 교사’가 되고 말 것인가?

수석교사제를 도입한 이유


학교에는 지금도 교장, 교감이라는 직급 외에도 사실상 계급이 되어버린 부장교사, 원로교사들도 있다. 여기다 다시 수석교사라는 또 다른 상관을 모셔야 하는 평교사. 승진도 수석교사도 되지 못한 그들은 오직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으며 살아 갈 수 있을까?


수석교사제는 1981년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원인사행정제도의 개선 방향 탐색’ 세미나에서 처음으로 제안되었다. 당시 전교조가 교장 승진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교장 선출 보직제를 주장하자 교총은 이에 대한 대응 논리로 수석 교사제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정치와 정치지향적인 교총의 타협? 교총이 만든 작품, 수석교사제 시대가 드디어 열렸다. 지난 6월 수석교사제 실시 내용을 담은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2012년 새 학기부터 전면 시행된다.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에서 초등 150명, 중등 145명의 교사가 시·도교육청별로 서류심사, 수업능력 심사 및 심층면접, 동료교원 면담 등 3단계 전형을 거쳐 295명의 수석교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수석교사제 무엇이 문제인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수석교사는 수업지도와 교수학습 그리고 신임교사 지도 등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한 학교당, 적게는 한명정도 배정되는 수석교사. 초등은 몰라도 중고등학교에서 가능한 일일까? 사회학을 전공한 수석교사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역사, 지리, 음악, 미술 수업을 지도할 수 있을까? 엄연히 전공과목이 다른데 타 과목 수업에 대한 멘토링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또 한 가지, 수석교사가 되면 연간 수업시수의 2분의1을 줄여 준다. 교원 티오를 늘이지 않고 수석교사의 수업시수만 줄인다면 나머지 수업은 평교사가 감당해야한다. 교총이 전국 251개 중학교를 대상으로 교사들의 수업시수를 조사했더니 영어수업시수가 평균 71.3%가 늘어 난 28.7~34.6시간씩 늘어났다고 한다. 여기다 수석교사가 하지 않은 수업까지 맡는다면 평교사는 수업시수는 얼마나 늘어날까?


교과부는 수석교사제를 도입하면 교직의 전문성이 향상되고 승진경쟁의 폐해해소 그리고 교원의 사기진작이라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선전한다. 과연 그럴까? 수백억의 예산은 물론 교장, 교감과의 지위서열조차 정리하지 않고 도입되는 수석교사제로는 교육의 질도 교원에게 성취감도 줄 수 없다.

교사들에게 진정한 보람과 긍지를 느끼게 하려면 교장이나 교감과 같은 행정직이 승진으로 간주되는 승진제도가 아니라 덕망과 학식이 있는 유능한 교사가 승진하는 교수직 승진 체계로 바꿔야 한다. 층층시하를 만들어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과 긍지는 느끼는 교사를 무능한 교사로 취급하는 수석교사제는 학교를 계급사회로 만드는 또 다른 억압에 다름 아니다.

- 위의 이미지는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가져온 자료입니다. -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1.07.01 05:00


 

시험 감독을 들어가 답지를 먼저 나눠주고 문제지를 나눠주는데 엎드려 있는 학생이 있다. “야! 넌 시험도 안치고 자니?”하고 물으면 귀찮다는 듯이 “다 했는데요” 하면서 답지를 내 보인다. 문제지도 보지 않고 OMR카드에 답을 다 적었단다. “너는 문제지도 안보고 답을 다 아는 귀신이냐?” 했더니... “문제지요? 보나 안보나 마찬가집니다!” OMR카드를 보니 1번에서 20번까지 같은 번호에 답을 마킹해 놓았다.

시작종이 치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아이들이 있는가하면 첫 시간부터 하루 종일 열심히 잠만 자는 아이들도 있다. 수업은 들을 생각도 않고 한 시간 내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노는 아이들... 차라리 잠을 자는 아이들은 나은 편이다. 수업에는 관심도 없고 짝지와 끊임없이 잡담을 하고 있어 복도에 보내놓으면 장난치며 더 크게 떠드는 아이들, 수업을 시작한지 10여분이 지나면 삼분의 일이, 20여분이 지나면 반 가까이... 수업이 끝날 시간이면 몇몇 아이들만 듣고 나머지는 취침시간이다.

                        <아래 모든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학교별, 남여학교별 교과별 차이는 있지만 이게 오늘날 교실의 모습이다. 도대체 교실에서 이런 현상이 언제부터였을까? 필자가 전교조관련으로 해직됐다가 실업계 학교에 복직한 1994년 3월. 윗글과 너무나 흡사한 현상을 보고 기겁을 했던 일이 있다. 해직기간이 약 5년이었으니까, 5년 전인 1989년과는 너무나 다른 교실 모습에 황당해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교실붕괴의 현장, 교실에서 급우들끼리 폭력이 일어나고, 왕따시키고, 교실 밖에서 금품갈취나 절도와 같은 비행으로 담임교사가 경찰서를 드나들고... 이런 현실을 두고 교실붕괴니 학교가 무너졌다는 표현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벌써 옛날이야기요, 교실의 일반적인 현실을 왜 갑자기 수구 언론이 교실이 무너졌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을까? 교실이 이 지경이 된 현실을 경영자인 학교장이나 장학을 한다는 장학사님, 교육 관료들, 교육학자들, 언론인들, 정치인들은 정말 몰랐을까? 알고도 모른채 했을까? 진짜 모르고 있었을까? 교육자들이 이런 현상을 모르고 있었다면 교육자로서 자격이 없고, 알면서 모른채 했다면 직무유기다. 그런데 교실붕괴현상이 시작된 지 20년이 가까워 오는데 왜 언론에서 갑자기 교실붕괴 타령인가? 물론 전보다 더 세련되게(?) 지능적으로, 더 잔인하게(?) 달라진 점이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갑자기 나타난 일도 아닌데 언론이 학교붕괴를 들고 나온 이유는 따로 있다.

언론이 교실붕괴를 새삼스럽게 들고 나온 이유는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무상급식이며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자 교육개혁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교육개혁이 이루어지면 입시교육으로 돈벌이를 해 오던 학원과 이해관계에 있는 세력들이 생존권 지키기(?)에 나선 것이다. 진보교육감들이 학생인권 조례를 제정하자 교총은 ‘체벌 전면금지와 학생인권조례시행 후 학교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이는 등 교육관료와 수구언론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4월에도 교총은 서울·경기지역 초·중·고 교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학생을 적극적으로 지도하는 교사가 줄어드는 등 교사의 열정과 사명감이 사라지고 있다’고 호도하고 있다.


교실붕괴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신기루가 아니다. 교실붕괴는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교육정책과 입시위주의 교육, 그리고 일류대학이라는 학벌이 만들어 놓은 결과다. 전국단위 일제고사로 개인은 물론 학급, 학교, 지역사회까지 서열화하는 성적지상주의의 교육이 교실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교실붕괴는 개인의 소질이나 개성을 무시하고 일류대학 진학을 위한 입시교육이 만든 결과가 아니라고 강변할 수 있는가? 수학문제까지 외워야 살아남는 교실에서 하루 15~6시간씩 앉아 견디는 학생들에게 인내심을 강요하는 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까지 포기하라는 폭거다.


교권문제만 해도 그렇다. 교권은 문제 학생을 체벌해 복종을 강요하거나 벌점으로 세워지는 게 아니다, 사람을 짐승처럼 두들겨 길들이겠다는 발상을 교육자가 할 일이 아니다. 인간의 행동은 가치내면화를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건 교육학의 기초상식이다. 놀이문화도 가정교육도 실종된 아이들이 사회의 모순과 위선, 폭력, 상업주의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가? 교권이나 교실붕괴는 사회적인 병리현상과 환경, 입시위주교육정책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막을 수 없다. 사회가 병들었는데 교실붕괴만 막겠다는 '교실붕괴타령'은 저질 코미디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