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명교사를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노라.

위대한 장군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나,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무명의 병사이다.

유명한 교육자는 새로운 교육학의 체계를 세우나, 젊은이를 건져서 이끄는 자는 무명의 교사로다.

 

그는 청빈 속에 살고 고난 속에 안주하도다.

그를 위하여 부는 나팔 없고, 그를 태우고자 기다리는 황금마차는 없으며, 금빛 찬란한 훈장이 그 가슴을 장식하지 않는 도다.....

'''''''''''''''(중략)

 

공화국을 두루 살피되 무명의 교사보다 예찬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민주사회의 귀족적 반열에 오를 자 그밖에 누구일 것인고 『자신의 임금이요, 인류의 머슴인저!』

 

헨리 반 다이크의 ‘무명교사예찬론’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2세 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교사들의 노고는 칭송은 받아 마땅하고 그들이 역경 속에 일궈낸 업적은 인정해야 하고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오늘의 학교는 교육하는 곳이 아니라 지식을 전달하는 장이요, 개인을 출세시켜주는 곳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이를 두고 교육위기니 학교가 무너졌다고들 한다. 무너진 학교! 이 땅의 40만 가까운 교사들은 실의와 좌절 허탈감에 빠져 힘들어 하고 있다.

 

교사, 그들은 무너진 교육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내가 태봉고등학교라는 대안학교 TF팀장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공립대안학교라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타성에 젖어있는 공립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교육관료들은 대안학교라면 ‘문제아 수용소’를 생각했다. 결국 대안학교의 정체성을 놓고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그 중에 ‘교사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대안 마인드가 없는 교사가 대안교육을 할 수 있느냐는 문제 때문이었다.

 

교육의 성패는 교사들의 손에 달렸다. 물론 정책적인 문제를 덮어뒀을 때 하는 말이다. 지금 태봉고등학교도 그렇지만 진보교육감들이 추진하고 있는 혁신학교 또한 마찬가지다. 대안학교든 혁신학교든 성패의 열쇠는 교사들이 쥐고 있다는 말이다. 반다이크는 ‘유명한 교육자는 새로운 교육학의 체계를 세우나, 젊은이를 건져서 이끄는 자는 무명의 교사’라고 했지만 교사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제자사랑이 없이는 어떤 교육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전교조 교사는 훌륭한 교사다...?

 

그럴까? 한 때 그런 일이 있었다. 유신헌법을 한국적민주주의라고 가르치라고 강요하던 시절.... 윤리라는 교과목은 동족에 적개심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고 학교의 운동장은 연병장으로 바꿔 체육은 사라지고 여고생들에게 제식훈련을 시키는 훈련장이 됐던 시절... 가르치라는 것만 앵무새처럼 제자들에게 가르치던 유신정권시절, 제자들에게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다며 영혼 없는 교사이기를 거부했던 교사들이 떨쳐 일어났다. 전교조의 탄생 경위다.

 

며칠 전 ‘교육과정도 모르는 교사가 어떻게 교육을...?’이라는 기사를 썼다가 혼줄(?)이 난 일이 있다. 교사들을 뭘로 아느냐면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사실 제목이 그렇지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모를 리 있겠는가? 어떤 네티즌의 댓글처럼 교육과정을 달달 외워야 임용고시에 합격하는데....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알고 있는 것과 알면서 실천을 못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교육과정이 소용없는 교실... 그런데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하는 교사가 있는 교실은 바뀔 수 있을까? 무너진 교실, 그 교실에 살고 있는 선생님들의 반응은 어떨까? 부지런히 점수를 따 승진을 해 교장, 교감이 되겠다고 점수를 모으는 사람이 있는 가면 ‘될 대로 되라 나섰다가 다치면 나만 손해’라는 무사안일의 보신주의자도 있다. 그런가 하면 혼신의 노력을 다해 해직까지 감수해가며 온몸으로 교육개혁에 나서는 이들도 있다.

 

 

엊그제 18년 전 바쁜 썼던 교단일기를 블로그에 공개했지만 지금의 교실은 어떨까? 18년 전의 실업계 학교의 모습이 오늘날은 인문계 학교까지 아니 중학교와 초등학교에까지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 현실에 안주하며 강건너 불구경하듯 보고 있는 사람은 진정한 교사일까? 전교조같은 노동조합에 가입해 학교를 바꾸고 싶어도 불이익을 당하기 싫고 욕을 듣기 싫어서 몸 사리면 사는 게 교육자로서의 바른 길일까?

 

아니면 어렵게 고시(?)까지 합격해 얻은 자린데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면서 사는게 현명한 길이라고 이해 타산하는 것이 현명한 삶일까? 지금도 말없이 교육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분들도 많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헌신적인 사랑으로 온몸으로 아이들을 지키려는 교사들이 있어 아직도 학교가 건재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대학에서 배운 전공지식을 제자들에게 전달하면서 시험문제풀이를 교육이라고 착각하는 교사들.... 그들이 깨어나지 않는 한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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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유롭지 못하지요.
    언제쯤 바뀌어가려는지..쩝..

    잘 보고가요

    2012.08.19 06: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해바라기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무명의 병사이다. 이 뜻깊은 말을 새겨보게 되네요.
    혼신을 다하고 있는 교사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휴일 되세요.^^

    2012.08.19 06:39 [ ADDR : EDIT/ DEL : REPLY ]
  3. 그간 교사책임론에 대해 항변하시던 모습에서 살짝 물러서신것 같습니다. 하긴 모든 책임이 교사에게
    있다거나, 혹은 학생들에게 있다거나, 가정교육에 있다거나 한다는게 말이 안되지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사회전반적으로 총체적인 문제들이 결합돼 나타나는 오늘날 교육붕괴의 모습일겁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 자신은 원인제공이야 보수정권의 구태의연한 사교육 중흥정책에서 비롯됐지만
    학교문제의 가장 큰 책임은 일선교사에게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반발하시는 교사분들이 많으시겠지요.
    단, 제가 지금껏 받아온 교육과 봐온 교사들의 모습에서 비롯된 판단입니다. 그들은 그냥 직장인이지
    선생님은 아니었거든요. 초,중,고 12년간 만나온 선생중에서 스승이라고 부를수 있는 선생은 두어명에
    불과했으니까...

    2012.08.19 08: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음 정말 우리의 교육이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변했으면 좋겠네요
    잘보고 갑니다.

    2012.08.19 10:0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무병병사 만큼이나 치열한 삶을 살아야하는 하는 무명교사를 지지합니다. ^^

    2012.08.19 12: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선생님 다운 선생님을 몇 번 만났습니다. 아직도 그분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12.08.19 15:58 [ ADDR : EDIT/ DEL : REPLY ]
  7. 교육 자체를 다시 생각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 교사, 학생, 부모의 3박자를 바로잡지 않는한 우리의 미래는 없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2012.08.19 16: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교육정책2011.07.08 05:00


'쇠귀에 경읽기'라고 했던가?
국어 사전은 쇠귀에 경읽기를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하거나 효과가 없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 글은 2003년 건대교지 여름호에 기고한 글이다.
 

거의 10년 전 얘기다. 필자만 이런 얘기를 했던 게 아니다. 수많은 교사와 학자들 그리고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한결같이 ㅈ주장했던 얘기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이 얘기를 똑같이 주장 해야 할 말이다.  

그만큼 쇠귀에 대고 독경을 한 셈이다. 분량이 많지만 대충 무슨 주장을 했는가 보면 교과부는 아예 귀를 막고 남의 얘기를 듣지 않았다. 비판을 거부하고 독선과 아집으로 교육을 망친 주범이 교육부라는 게 의심의 여지가 없다.


Ⅰ. 시작하면서


  "선생님, 정말 힘들어서 담임 못하겠습니다. 공부를 잘 하면 뭘 합니까? 어떻게 아이들이 저렇게 영악스러울 수가 있습니까?"
올해 느지막하게 담임을 자원해 맡은 짝지 선생님의 하소연이다. 나이가 들면 담임을 맡지 않는 것이 고참교사(?)에 대한 예우처럼 관행화 된 게 학교 사회다.


그러나 '담임을 하지 않으면 선생 같지 않다'면서 자원해 맡으신 선생님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선생님 제 얘기 한 번 들어보십시오. 애가 자기 당번 차롄데 손가락도 꼼짝 안 합니다. 중학교 때부터 당번을 안 해봐서 당번이 뭘 하는지 모른다나요? 저런 아이가 크면 뭐가 되겠습니까?"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참았는데 화가 많이 나신 모양이다.  


뒤에 들은 얘기지만 이 학생은 학급에서 성적이 꽤 좋은 학생이라고 한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최고'가 되는 분위기에서 이런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공부만 잘하면...' 부모님이 그렇고 대부분의 선생님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윤리성적이 좋으면 도덕적인 사람으로 평가받는 학교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당번이 됐는데 흑판정리도 하고, 음료수도 떠다 놓아 친구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하는 것은 초등학생들이라도 아는 일이다. 내가 할 일, 나의 수고로 다른 사람이 편해질 수 있다는 배려 따위는 시험 점수에 비해 그렇게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일도 없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 온 것이다. 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그것도 성적이 좋은 학생이 왜 예의나 인성에 관한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이 문제의 해법이 곧 교육의 위기를 해결할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Ⅱ. 중심 글


1. 인성교육에 대하여

1)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을 보는 관점은 학자에 따라 다양하게 정리되지만 일반적으로 '교육이란 한 인간이 주위 세계와 상호 작용을 하면서 이에 적응하고 학습하는 과정' 즉 '사회화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회화과정은 어느 한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일생동안 지속되는 것이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정에서 부모님의 가치관을 따라 배우게 된다. 일류대학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아이들은 학원으로 내몰리고 학원에서는 인성이 아닌 지식이나 기능을 배우게 된다. 교육의 내용이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나 피아노와 같은 기능이 뛰어난 사람, 영어회화나 수학문제를 잘 풀이하면 '최고'가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이어진다. 교육부에서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2003년 2학기부터 '예체능과목을 평가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세워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한다. 초·중등학교의 교육목표가 전인교육이 아니라 일류대학입학이 되어 있는 현실을 교육부가 인정한 셈이다.

학교가 교육의 본질적인 기능 즉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지 못하고 도구적인 지식이나 기능을 전수하는 '줄 세우기'를 하면 사회는 거꾸로 갈 수밖에 없다. 남을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가슴 따뜻한 사람이 대접받고 출세하는 사회가 아니라 힘의 논리가 정당화되는 사회가 된다.

2. 학교가 교육의 기능을 상실하면

"선생님, 정치과목 시간에도 공통사회문제를 풀이하면 안 됩니까?"
필자가 3학년 자연반 정치과목시간에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한 학생이 의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자연반은 정치가 수능의 선택과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과목은 교육과정에 주당 몇 시간을 하라는 법인데 어기면 범법자가 되는 게 아니냐?" 라는 필자의 대답에 "선생님, 다른 과목은 다 그렇게 하는데요"란다.


"다른 과목은 어떻게 하는데..?" 했더니 '세계사는 수능과목이 아니니까 처음부터 국사과목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험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예 국사를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문제로 출제해 세계사 점수에 올린다는 것이다.

하기는 국사과목뿐만 아니다. 생활경제라는 과목은 수능과목이 아니기 때문에 책을 구입하기는 해놓고 단 한 쪽도 열어보지 않고 수능과목을 문제풀이를 하고 있다. 특정학교의 얘기가 아니다. 특정 과목의 얘기는 더더구나 아니다. 지, 덕, 체를 겸비한 전인교육'이라는 교육목표는 구호로 그칠 뿐 학교에는 그런 교육이란 없다. 이 정도라면 기타과목(수능출제 이외의 과목)은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만하다.

수능시험일이 가까워지면 아예 자신 있는 과목 시간에는 선생님의 수업은 외면하고 혼자서 문제 풀이를 하고 있다. 자신의 수업을 듣지 않고 문제풀이를 하고 있는 학생을 제재하기는커녕 모른 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입시를 앞둔 인문계 학교의 수업모습이다. 심지어 독서실에서 밤을 세우고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도 많다.  

교육이 실종된 학교에는 겉으로는 딴판이다. 교문에는 '창의적인 인간양성'이니 '지덕체를 겸비한 조화로운 인간육성'이라는 거창한 구호가 붙어 있다. 아침마다 교문에는 지각을 하거나 명찰을 달지 않고 등교하는 학생이 있으면 학생생활기록부에 벌점을 기록하거나 운동장돌기 기합을 받기도 한다.

교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입학식 날 학생대표가 '나는 교칙을 준수하고...'라는 선서를 했기 때문에 단 한번도 읽어 본 일이 없는 교칙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교칙을 정해 지키려는 민주적인 절차 같은 건 고려할 필요가 없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하는 것이 범생이(?)의 생활태도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소수의 타락 가능한 학생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다수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두발단속과 같은 문제도 그렇다. 통제와 단속 규제일변도의 생활지도는 세상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준법의 생활화'라는 명분으로 단속하는 교문지도는 일관성도 원칙도 없다. 진짜 교칙을 위반한 학생들은 단속시간 이전에 등교하거나 단속시간이 끝난 후에 등교하면 그만이다.

요령이 더 뛰어난 학생은 휴대폰으로 친구를 불러 담 너머에서 남의 이름표를 받아 달고 들어가면 모범생이 되고 순진하게 그냥 들어가면 벌을 받는 범법자가 되는 이중인격자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가 규칙을 만들고 스스로 지키는 훈련을 통해 민주주의의 생활양식을 배우도록 하는 교육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3. 인성교육을 가로막는 요인

인성교육이란 학교교육의 본질이요 핵심이다. '사람다운 사람' 즉 인성교육은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교육이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육이란 가정과 사회와 학교가 삼위일체가 될 때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교육이 계층상승의 수단이 되면서 가정은 교육이 불가능한 곳이 되고 학교는 인성교육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학교교육 계층상승의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일류학교 입학을 위한 준비기관으로 전락하게 된다. 교육의 위기는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교육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이른바 '공교육의 정상화'뿐이다.

1) 교육과정의 정상화 없는 인성교육이란 없다.    

모든 개혁이 그렇듯이 교육개혁도 '제도와 의식이 병행'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교육개혁이 개혁의 사각지대가 된 이유는 교육수요자인 학부모의 이해관계와 천문학적인 사교육시장의 확대, 교원들의 자질, 그리고 개혁을 주도하는 교육관료들의 개혁마인드 부족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학교가 교육의 본질적인 기능인 인성교육을 하기 위해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는 지 살펴보자.

(1) 학벌문제해결이 교육정화의 첫걸음이다.

학교가 교육의 본질적인 기능인 인성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사회적인 여건을 바꾸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창의성이 무시되고 일류대학을 졸업한 졸업장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학벌이 지배하는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교육다운 교육은 불가능하다. 일류대학이 있고 그 대학을 입학하기 위해 한 줄로 세우는 현실에서는 인성교육이란 불가능하다.

성이 상품화되면 상품(여성)을 사기 위한 구조적인 부정과 부패가 뿌리내릴 수밖에 없듯이 학벌이 존재하는 한 교육의 위기란 필연이다. 천문학적인 사교육비의 증가, 학교폭력, 교원의 승진제도, 연수제도, 보충수업...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은 학벌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2) 교원의 승진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현행 교원의 승진제도는 학교를 개혁의 치외법권지대로 만든 주범이다. 학교가 민주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첫째 토론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장이 교사들의 '근무평가권'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토론문화의 정착이란 불가능하다. 교장에게 '찍히면' 절대로 승진이 불가능한 승진제도를 두고서는 내부의 모순을 개선할 수 없다.
 학교가 개혁의 치외법권지대에서 벗어나가 위해서는 점수에 의한 승진이 아니라 교육에 대한 철학과 신념을 가진 봉사정신이 투철한 교원 중에서 교원들이 선출하는 방안도 있다,. 물론 지금과 같은 교원에 근무평가권과 같은 절대권이 최소화하면 교장이 되기 위해 일생을 거는 도박(?)은 없어질 것이다.    

교육부는 그동안 '토론문화의 정착'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제시했지만 이를 가로막고 있는 원인이 바로 승진제도의 모순에 있다. 교직원회의에서 학교운영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교운영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예, 결산에 대한 개선을 위한 노력이 무산되는 이유도 바로 승진제도의 모순에 있다.

(3) 학교운영위원회를 의결기구화해야 한다.
'95. 5 31 교육개혁 중 그래도 성공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학교운영위원회다. 지역의 여건에 맞는 특색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학교운영위원회가 의결기구화되고 학생대표가 운영위원회에 참가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운영위원회 설립당시 사학재단과 교장단의 로비에 의해 학교운영위원회(공립은 심의 기구, 사립은 자문기구)는 기형적인 모습으로 탄생했다.

태생적인 한계를 가진 학교운영위원회가 그 설립취지를 살리려면 학교장의 민주적인 의지와 구성원의 자질향상이 선결과제다. 설립된 지 8년이 지난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단 한 차례의 교원위원에 대한 연수도 실시하지 않은 시·도가 있는데 운영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될 리 가 없다. 특히 자문위원회로 운영되는 사립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란 유명무실한 기구가 될 수밖에 없다.

(4) 교육주체에게 교육권을 돌려줘야
교육을 하나의 상품으로 보고 공공성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출발한 것이 7차교육과정이다. 7차 교육과정은 '능력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수월성을 바탕으로 짜여져 있다. 수요자중심의 7차 교육과정은 교육의 공공성보다 효율성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의 논리가 숨겨진 7차교육과정의 시행은 교육이 지향하는 '전인교육'의 가치를 실현시키기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공사립 고등학교 진학에 대한 학교 선택권마저 허용되지 않는 기형적인 7차교육과정은 이렇게 인격적인 인간양성보다 우수한 기능인을 양성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교육의 시행착오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7차교육과정의 시행은 또 다른 교육위기를 배태하고 있는 셈이다.

(5)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강조하고 있는 철학교육은 우리는 못하고 있다. 철학을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제외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철학이란 철학자가 한 말이나 철학자의 이름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인식이나 시비를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지혜를 가르치는 일이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암기하고 있어도 그 지식이 어떻게 씌어지는 지에 대한 판단능력이 없으면 올바른 삶을 살기 어렵다. 이를 위해 청소년들에게 필수적인 과정으로 도입해야하는 것이 철학임에도 불구하고 독재권력은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비판정신을 길러주는 철학을 가르칠 필요를 애써 외면해 왔던 것이다.

교육의 목적을 전인교육에 두고 있으면서 일류대학에 입학시킨 숫자로 일류고등학교 여부를 판단하면 학교에서는 교육은 없고 시험문제를 풀이하는 학원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학교에서는 교육이 지향하는 교육과정은 선언적으로 존재하고 일류대학의 전형요강이 교육과정보다 우선한다.

국어, 영어, 수학의 점수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면 학교는 기형적인 인간을 키울 수밖에 없다. 시험을 위한 지식과 기능을 숙달시키는 교육은 진학이나 취업을 위한 관문의 통과용일 수밖에 없다. 지식을 암기하고 암기한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되는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는 교육의 위기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6) 교육주체들의 의식개혁부터  

오늘날 교육개혁의 저해요인 중의 하나는 학부모의 가족이기주의다. 필자가 학교운영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학부모위원이 무조건 학교장의 의지대로 끌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내 자식이 손해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모든 학부모들의 대표이기를 포기하고 교장의 눈치를 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탓할 수는 없지만 모든 학생들의 이익이 아닌 가족이기주의가 교육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도 예외가 아니다. 학생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 승진을 위해 현실의 모순을 외면하고 점수는 모으기에 여념이 없는 교사도 있고 교육이 당면하고 있는 모순을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애써 외면'하는 교사도 있다.

학교 안에는 아직도 바꿔 내야할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학교운영의 비민주성을 비롯해 학생의 인권 그리고 회의기구의 민주적인 운영 등 봉건성과 식민지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다. 무조건 가르치라는 것만 열심히 가르친다고 양질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지는 것이 아니다. 양질의 교육을 위해서는 교육환경이나 교육여건의 개선은 물론 교사들의 의식개혁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Ⅲ. 마치면서


우리는 군사정권시절, 5·16이 '쿠데타가 아니라 혁명'이라고 가르친 뼈아픈 경험을 잊지 않고 있다.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가르치기를 강요하던 군사정권은 교육의 본질적인 기능을 강조하기보다 정권의 정당성을 홍보하기에 바빴다.

교육권이 교육수요자인 학부모나 학생에게 있지 않고 식민지 종주국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교육은 교육이 본질적인 기능보다 '황국신민화'를 강요하는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군사정권에서의 교육은 피교육자에게 비판의식이나 합리적인 정신을 가르치기보다 순종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게 된다.


사춘기의 청소년과 부모가 함께 보는 텔레비전이 폭력과 음란한 내용으로 채워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의 극대화'라는 자본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진실을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서의 교육권이 수요자가 아닌 자본에 종속되면 인성교육은 실종될 수밖에 없게 된다.

국가가 복지사회건설 보다 자본의 이익에 복무해야 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교육철학이 되면 인성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 위기의 교육을 살리는 길은 교육의 주체인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가 교육주권을 회복할 때 가능한 일이다. (2003년 5월 26일)

- 이 기사는
건국대학교 교지(건대 2003. 여름. 71호)에 실려 있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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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학교의 가장 큰 목적이 인성교육이 아닌가 합니다.
    공부야 학교 아니고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학교는 건전한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가장 기본이 돼야 하는데
    우리 교육에는 뭔가 주객이 전도되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2011.07.08 06: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인성교육은 학교, 부모 그리고 사회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이 바로 이 인성교육인 것 같은데
    아직도 이 문제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해요.

    2011.07.08 07:27 [ ADDR : EDIT/ DEL : REPLY ]
  3. 공부도 당연 중요하겠지만 인성교육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훌룡한 사람이 된다고해도 사람같지 않게 행동한다면
    그것보다 안타까운건 없을꺼라고 생각들어요
    수학공식 하나 외우는것도 중요하지만, 도덕 윤리를 조금 더 배웠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1.07.08 07:27 [ ADDR : EDIT/ DEL : REPLY ]
  4. 저는 요새 학교보다 집에서 큰 아이의 인성교육을 어떻게 할지 고민입니다.
    특히 TV 좋아하는 아이와 아내 때문에 큰 일입니디ㅏ.
    선생님 모 좋은 방법 없을까요? ㅠㅠ

    2011.07.08 08: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자본주의 사회의 안타까운 면인거 같아요 ㅠ.ㅠ 그저 경쟁에 휩쓸려..

    그래도 아직까지 인성을 중요시하는 선생님들이 많이 남아있죠

    2011.07.08 08: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그냥 학교가 아니라 수능학원으로 이름을 바꾸면 그게 더 양심있다고 생각합니다.

    2011.07.08 08:24 [ ADDR : EDIT/ DEL : REPLY ]
  7. 저라면 그아이와 함께 당번을 하겠습니다.
    실제 제가 교사로 있을 때 점심시간에 교실부터 가서 단정하게 밥을 먹는 것을 보고
    저도 밥을 먹었습니다.중2 남학생들 참 별랐거든요.

    쉬는 시간에 두세번 교실에 가서 둘어봤더니 아이들이 확 달라졌습니다.
    교사가 공부잘하는 아이들을 편애 하는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자기가 맡은 반 아이들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고등 학교에서는 수능을 안보는 과목시간에 자습을 시켰던 것 같습니다.
    국사와 세계사를 모르고 어떻게 살라는건지 모르겠어요.

    2011.07.08 13:57 [ ADDR : EDIT/ DEL : REPLY ]
  8.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댓글을 달지 못한 이유는 4일날 마산에 있는 경남도민일보 지면평가위원회 모임에 착석하러 갔다가 어제 늦게서야 돌아왔답니다. 한번씩 다녀 오면 블로그 원고도 그렇고 한달에 한 번씩 쓰는 독자권익위원으로서 맡겨진 원고며 여러가지 일이 산적해 있답니다.
    어제 댓글을 쓴다는 게 또 다른 일이 있어서 차분하게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이 없었답니다.
    내일 쯤 시간내 댓글에 대한 제 소견을 쓸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죄송합니다. 소중한 글 주셨는데 무성의하게 바로 댓글 드리지 못해서...
    고맙습니다.

    2011.07.08 20: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비밀댓글입니다

    2011.07.08 21:49 [ ADDR : EDIT/ DEL : REPLY ]
  10. 빈배

    토론할 수 없는 학교, 그 부분에서 심하게 공감을 하였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업무경감과 관련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하더군요. 그것도 길게...
    업무가 더 늘어나서 혼났습니다. 그런데, 어디에다 말할까요?ㅎ.

    2011.07.12 23:45 [ ADDR : EDIT/ DEL : REPLY ]
  11. 이진희

    인성교육이야말로 이 세상이 바뀌는첫길입니다. 절실한 때입니다.

    2012.01.13 20:48 [ ADDR : EDIT/ DEL : REPLY ]
  12. 들국화처럼~

    여기에서 6년 하는 동안 6학년을 3번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올해 정말 최악입니다. 첫날빼고 그 다음날부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하나,,, 하루하루가 힘이 드네요.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없는걸까>.. 도대체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하나,,, 책을 보고,,사람을 찾아가 자문해보아도 별방법이 나오질 않습니다. 교사가 힘이 있는 존재임을 아이들이 알아야하는데,,, 안타까운현실입니다.
    유일한것,,생기부에 기록할 수 있는 것으로 아이들한테 협박아닌 협박을 하는데,,,아이들은 크게 느끼지 못하는것도 같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없어서일까요?
    사실을 사실로 기록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면, 교사도 아이들을 더 잘 파악하고 연속해서 지도해 나갈 수가 있는데,, 생기부를 보고는 아이들이 전혀 파악되지 않습니다.
    크게 사건을 겪고나서 추적하는 과정을 겪어야 그 아이가 그때 파악이 됩니다.
    학교폭력이 일어나도 , 가해자가 오히려 더 큰소리 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피해자는 여전히 주눅들어 있어야하고,,, 정말이지 답답합니다. 좋은 조언 주실분,,, 힘을 구합니다.

    2013.06.27 11:31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