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는 이야기2018.04.03 06:32


'4·3에 정의를, 역사에 정명을...’

4.3항쟁 70주년을 맞는 ‘4.3범국민위원회가 내 건 캐치프레이즈다. 오늘은 4·3제주항쟁 70주년을 맞는 날이다.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4.3항쟁의 희생자 수는 25~3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중 사망자만 14232, 행방불명자 3576, 후유장애 164, 수형인 248, 유족은 59426명이다. 전체 희생자 가운데 10살 이하는 5.4%772, 11~20살은 17.3%2464명으로, 전체의 22.7%20살 이하다. 61살 이상은 6.3%900명이다.


<사진출처 : 한겨레신문>

4.3항쟁이란 ‘19473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4843일 발생한 봉기로부터 19549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해방으로 부풀었던 기대감이 점차 무너지면서 미군정에 대한 불만과 우익의 만행에 대한 제주도민의 반감이 적개심으로 비화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날

하늘에서는 정찰기가 살인예고장을 살포하고

바다에서는 함대가 경적을 울리고

육지에서는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던 그날

빨갱이 마을이라 하여 80여 남녀 중학생을

금악벌판으로 몰고가 집단학살하고 수장한 데 이어

정방폭포에서는 발가벗긴 빨치산의 젊은 아내와 딸들을

나무기둥에 묶어두고 표창연습으로 삼다가

마침내 젖가슴을 도려내 폭포속으로 던져버린 그날

한 무리의 정치깡패집단이 열 일곱도 안된

한 여고생을 윤간한 뒤 생매장해 버린 그 가을 숲

서귀포 임시감옥 속에서는 게릴라들의 손톱과 발톱 밑에 못을 박고

몽키 스패너로 혓바닥까지 뽑아버리던 그날,

바로 그날

관덕정 인민광장 앞에는 사지가 갈갈이 찢어져

목이 짤린 얼굴은 얼굴대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전봇대에 따로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소름이 돋고 손발이 저려왔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차마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책장을 덮었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읽기를 반복하며 눈물을 흘리며 읽던 시... 이산하가 쓴 한라산이다.

나는 전두환 살인마의 단말마적인 칼바람이 한반도를 꽁꽁 얼어붙게 하던 그 시절... 1987녹두서평이 발간한 이산하 시인이 쓴 장편 서사시 한라산을 읽으며 받은 충격과 분노는 지금도 잊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살인자 전두환의 공포정치로 온 국민이 숨죽이며 진던 시절. 녹두서평이 민주주의 혁명과 제국주의라는 특집호의 첫 페이지에 이런 시를 올리다니...

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 발가락을 자를 분노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이렇게 시작하는 57쪽 짜리의 장편시 한라산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반도 비극의 역사 드라마다. 이산하시인과 녹두서평의 용기에 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너도나도 이 책을 구해 읽었다. 녹두서평은 민주주의 혁명과 제국주의라는 특집에서 이산하의 한라산외에도 김영민의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는 글을 비롯해 조동희, 윤신면, 정기영...의 우리나라의 현실을 분석한 글을 실었다.’ 나는 그 후 수차례 이사를 다니면서도 지금도 이 책을 보물처럼 고이 간직하고 있다.

한라산 시에서도 지적했듯이 이승만의 명령과 미군정의 무한 살인면허와 토벌대 무기 등 적극지원이 부른 인간 대살육의 아비규환...’ 그 지옥 같은 제주 4.3항쟁이 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까? 정부군과 경찰 그리고 미군에 의해 자행된 이 살상극을 대부분의 국민들이 40년동안을 모르고 살았다니... 그 가족들은 가슴에 묻은 한을 어떻게 삭이며 살아 왔을까 살인마, 악귀가 아니고서는 이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항쟁 7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국가차원의 배,보상 얘기가 나오고 있다. 물론 그동안 명예회복을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도민에 대한 공식사과와 2000년 시행된 제주 4·3특별법이 제정, 공포되고 201579, 대법원의 판결로 유족들에게는 1인당 약 3147만원씩, 944000여만원의 배상금이 지급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미군과 정부군 그리고 경찰에 의해 희생된 유족들의 아픔은 치유되고 있는가?


<▲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가 만든 제주4·3 70주년 포스터- 출처 이풍진세상에...>

제주 4.3항쟁뿐만 아니다. 4,3을 전후한 국가권력에 의한 무고한 민중들이 학살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대한민국 국군·헌병·반공 극우단체 등이 국민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 등을 포함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4,934명과, 10만 명에서 최대 120만 명이 희생되었다는 보도연맹사건은 아직도 정부차원에서 공식적인 진상파악이나 공식적인 사과조차 없다. 우리나라 제일 야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그리고 조··동과 종편, 타락한 기독교 집단들은 이런 짓을 저지른 이승만을 국부로 건국대통령으로 추앙하고 그가 세운정부를 대한민국 건국원년이라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로 수학여행을 가던 304명의 단원고 학생의 비극은 아직도 진상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비극의 역사는 언제 끝날까?

과거 사실을 기록으로만 남기는 역사는 역사로서 가치가 없다. 그 아픔을 오늘에 살려 내는 것. 그것이 역사를 배우는 진정한 목적이요, 가치다.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의 단골 수학여행지가 된 제주는 지금 수학이 아닌 관광지가 됐다. 국사교과서는 물론 수학여행에서조차 외면당하고 구경거리가 된 제주는 아직도 아프다. 왜왕에게 충성혈서를 쓴 일본군 장교가 5·16쿠데타를 일으켜 친일세력이 지배하는 나라를 만들고 백주에 살인마 전두환일당이 광주시민을 학살하는 비극의 역사는 왜 반복되고 있는가? 역사청산이 없는 나라에는 4·3의 비극은 반복될 뿐이다


.....................................................................


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쓴 '사료와 함께 보는 한국 현대사 자료집'입니다. 전자책으로 나왔습니다.



구매하러 가기 ==>> 교보문고,  YES 24  알라딘,  반디앤루이스, 리디북스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공교육의 정상화를 꿈꾸다' 


☞. 구매하러 가기... 교보문고yes24, 알라딘,  인터파크



<유모차 밀고 선거 나온 여자>는 지난 6.4 지방선거에 구의원 후보로 출마했다가 꼴등으로 낙마한 두 아이 엄마의 좌충우돌 선거 도전기 


선거에 관련된 모든 자료와 경험을 알차게 담아 놓은 선거준비 사전... 정치를 꿈꾸는 분들의 필독서 구매하러 가기 ▶ 교보문고


바닥헌법책 보급운동에 함께 합시다 - '헌법대로 하라!!! 헌법대로 살자!!!' ==>>동참하러가기


손바닥헌법책 주문하러 가기 ==>> 손바닥헌법책 주문서.mht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8.27 07:54


<하늘에서...>

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
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녹두서평 책머리에서)

그 땅!

제주를 가다.

‘제주!’ 하면 나는 아름다운 땅, 축복의 땅 제주보다 이산하시인의 '서시'가 생각난다.

1992년이었던가? 최루탄 냄새가 온 몸에 베인 채, 내 평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가서 밤새도록 감사일보고 오후에 바로 돌아왔던 기억이 남아 있다. 경찰에 쫓기며 싸우느라고 회계 기록은커녕 종이 쪽지에 아무렇게나 메모를 해 놓던 수준의 회계체계를 바로잡아야겠다고 감사를 하러 갈 때였던 것 같다. 전교조 초대감사위원장 직을 맡아 강원도에서 제주까지 최루탄 가스 냄새가 온 몸에 베인 채로 갔던 제주다. 제주를 갔지만 한라산이 어느 쪽에 붙어 있는지 조차 처다 볼 여유도 없이 다녀 온 후 처음이다.

퇴임한 후 건강을 되찾아야한다는 절박한 이유와 외손자를 봐 줘야한다는 아내의 바가지(?)에 못이겨 야반도주 하다시피 30년도 넘게 살아 온 마산을 떠나 온 지 3년. 청주에 사는 딸과 함께 한더위를 피해 8월 23일부터 3박 4일간의 여행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이었을까 좋아하는 여행조차 차분하게 다니지 못했던 나에게 3박 4일간의 여행은 큰맘 먹고 떠난 들 뜬(?) 기분의 여행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제주란 즐기기 위함보다 한의 땅, 그 현장을 본다는 설렘이 더 컸다고 할까?

남들은 제주를 어떤 목적에서 다녀오는지 몰라도 내겐 제주하면 녹두서평 창잔호에 실린 이산하의 서시가 먼저 떠 오른다.

‘지금부터 어언 120년전

동아시아의 해군기지로서 조선이 결정된지
80년의 모진 세월이 흐른 1945년 불볕여름
....................
.....................

이렇게 사작한 서시다.

나는 그 때 이 시를 읽으며 너무 놀라 몇날며칠 밤잠을 설쳐야했다.
어떻게 대명천지에.. 그것도 학교에서 천사의 나라 미국과 국민의 권리와 재산을 지켜준다는 경찰이...
 
누가 잊었는가
누가 잊을 것을 강요하는 가
동상으로 썩어 문들어진 발가락을 자르며
뼈를 각는 모진 고문에 여성전사들의 생리마저 얼어붙는 밤
그들은 기어이 갔다
.............................
.............................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 쏘았지만
글은 보지 않고 쏘았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

하늘에서는 정찰기가 살인예고장을 살포하고
바다에서 함대가 경적을 울리고
육지에서는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던 그날
빨갱이 마을이라 하여 80여 남녀 중학생들을
금악벌판으로 몰고가 집단몰살하고 수장한데 이어
정방폭포에서는 발가벗긴 빨치산의 젊은 아내와 딸들을 나무기둥에
묶어두고 표창연습으로 삼다가
마침내 젖가슴을 두려내 폭포속으로 던져버린 그날

한 무리의 정치깡패단이 열 일곱도 안된

한 여고생을 윤간한 뒤 생매장해버린 그 가을 숲
서귀포 임시감옥 속에서는 게릴라들의 손톱과 발톱 밑에 못을 박고
몽키스패너로 헛바닥까지 봅아버리던 그날, 바로 그날
관덕정 인민광장 앞에는  사지가 갈갈이 찢어져
목이 짤린 얼굴은 얼굴대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전봇대에 전시되어 있었다

..........................................
..........................................

비행기에서 제주땅을 밟는 순간 나는 주문처럼 이 시가 떠올라 잠시 묵념을 올렸다.
가는 곳곳마다 폭력으로 얼룩진 민중의 피와 한이 서려 있는 땅.
시리도록 아름다운 땅 이 제주에 살상이 자행되던 일이 1948년 4월 3일부터 5월 11일까지....  
이름하여 4. 3항쟁....

정방폭폭포에서 그리고 아름다운 성산 일출봉에서.....
발길이 닿는 곳곳마다 내내 이산하의 시가 문득문득 떠올랐던 이유는 나의 과민한 성격 탓 만일까? 
........................(계속)

<정방폭포: 피비릿내나는 한이 스린 폭포가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곳으로 바뀌었다. 이들 중 과연 멏명이나 4.3의 제주를 생각할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4.02 15:23



우리나라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대부분 한번쯤은 제주도 여행을 하고 돌아온다.
여행에서 돌아온 학생들에게
“제주 4·3항쟁에 대해 공부 많이 했느냐?”고 물어보면
“제주 4·3항쟁요? 4·3항쟁이 뭔데요?”라고 반문한다.

“그럼 제주도에 가서 뭘 배우고 왔니?”
“도깨비도로도 구경하고, 한라산에도 가보고.....!”
“그럼 수학여행이 아니라 관광여행을 갔다 온 게로구나”
“........?”
경치구경을 할라치면 서울이나 지리산이 더 낫지 않을까?

오늘은 63년째 맞는 4·3항쟁일이다.

                                            <사진출처 : 제민일보>

4·3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4·3 폭동..?, 4·3 반란...?, 4·3 사건...?, 4·3 항쟁... ?...
나이가 4~50 이상 된 사람들은 역사 교과서를 통해 ‘제주폭동’이라고 배웠다.
1947년~48년 제주 인구의 약 ⅓이상이 희생됐다는(인구의 10분의 1이라는 설도 있고 희생자 수도 10~8만, 최소 2만, 최대 8만이라는 설도 있다) 역사의 비극이 있었던 4·3 항쟁이 있었던 날이다.
그것도 적군이 아닌 경찰과 국군, 그리고 혈맹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미군에 의해 처참하게 살육당한 사건.

‘이산하’라는 시인은 한라산이라는 시에서 4·3을 절규했다.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 쏘았지만
그들은 보지 않고 쏘았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했다.

그날
하늘에서는 정찰기가 살인예고장을 살포하고
바다에서는 함대가 경적을 울리고
육지에서는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전두지휘하고 있었던 그날
빨갱이 마을이라 하여 80 여 남녀 중학생을
금악벌판으로 몰고가 집단학살하고 수장한데 이어

정방폭포에서는 발가벗긴 빨치산의 아내와 딸들을 나무기둥에 묶어두고 표창연습으로 삼다가
마침내 젖가슴을 도려내 폭포속으로 던져버린 그날
한 무리의 정치깡패집단이 열 일곱도 안된
한 여고생을 윤간한 뒤 생매장해버린 그 가을 숲
서귀포 임시감옥 속에서는 게릴라들의 손톱과 발톱 밑에 못을 박고
몽키 스패너로 혓바닥까지 뽑아버리던 그날, 바로 그날

관덕정 인민광장 앞에는 사지가 갈갈이 찢어져
목이 짤린 얼굴은 얼굴대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전봇대에 전시되어 있었다(이산하의 시 '한라산' 일부 )

                                           <사진 자료 : 아이엠피터님 블로그에서>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0년 0월 0일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식으로 사건의 원인, 경과, 결과를 암기해 서열을 매기는 것이 역사공부일까?
역사공부를 한다는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지식의 암기뿐만 아니라 '역사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의식이란 무엇인가?

사전을 찾아보며 ‘역사의식’이란
‘어떠한 사회 현상을 역사적 관점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악하고, 그 변화 과정에 주체적으로 관계를 가지려는 의식’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역사를 전공한 선생님들도 현대사를 잘 모른다고 한다. 현재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는 좀 나아졌지만 7차교육과정 점만해도 현대사는 4~5쪽 정도 뿐이었다. 그것도 5·16을 혁명으로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왜곡한 교과서를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학교에서는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까?

지식은 가르치지만 사관(史觀)을 가르치지 않는 역사교육은 역사의식을 깨우치기 어렵다. 고조선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이렇게 연대순으로, 사건을 원인, 경과, 결과로 따져 기전체니 편년체가 하며 어떻고 하며 지겹도록 지식을 암기시키는 역사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진절머리가 나는 암기과목으로 기억에 남을 뿐이다.

역사교육은 사관에서 시작해야한다. 사실(事實)을 암기하는 게 아니라 사실(史實)을 해석하는 것이 역사공부다. 史實이란 史觀이 없이는 곤란하다. 史觀없는 事實은 史實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렇게 중요한 사관이란 어떤 것인가? 사관은 민주의 입장에서 보는 역사도 있고 양반이나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보는 사관도 있다. 입중의 입장에서 본 事實은 민중사관(民衆史觀)이요,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본 事實은 영웅사관(英雄史觀)이다.

평생 노동자로 살아갈 학생들에게 영웅사관에 입각한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은 노예의 머리에 주인의 생각을 갖도록 만드는 일이다. 지난 금성교과서 파동 때 조중동과 재벌 등 수구세력들이 금성출판사가 만든 역사교과서가 빨갱이들이 만든 책이라면 목소리를 높인 이유는 민중사관의 냄새 때문이다. 노동자 머리에 주인의 가치관을 심어 주는 교육. 그것이 국정교과서를 고집하는 이유요, 학교 교육을 통해 내일의 주인공이 될 학생들에게 세뇌시키는 교육이다.

얘기가 옆으로 흘렀지만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관을 통한 역사인식 즉 역사를 보는 안목을 체화하는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못하면 차라리 민중사관이니 영웅사관이니 식민사관이니 기독교사관이니 불교사관...과 같은 역사인식의 안목을 키워주기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 교육현장에는 민중사관은 빨갱이 사관이요 식민지사관에 가까운 역사를 전통사관정도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식이란
‘오늘의 내가 살아 있을 수 있도록 한 선조들에 대한 빚(부채)‘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이만큼 민주화된 세상에서, 문화적인 여건에서, 지식을 전수해 준... 선조들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이 역사의식이다. 역사의식이 없으면 어떤 모습의 인간이 되는가? 자본주의가치 , 신자유주의라는 가치관에서 보면 '내가 이정도의 지식을... 이 정도의 자유를.. 이 정도의 민주주의를 누리는... 이 정도의 인권이니 복지를 향유하는 것은 저절로 온 것으로 알거나, 돈의 반대급부로 받는다고 생각한다. 자유니 인권이니... 그런 것들은 앞서간 선배들의 투쟁으로 쟁취한 피눈물로 얻게 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백성들이 집단살상을 당한 사건. 그것도 수만명이 경찰과 군인들에 의해 재판도 없이 빨갱이로 몰려 무참하게 살해된 사건이 4·3제주항쟁이다. 역사의식이 거세당한 국민들은 아직도 4·3항쟁은 빨갱이가 저지른 폭동으로 알고 있다. 반세기도 훨씬 더 지난 세월동안 희생자들을 범죄자 취급당하며 살아 왔다. `제주 4 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까지 제정됐지만 아직도 진상규명도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학살의 섬. 제주도는 영원히 한의 섬으로 남을 것인가? 63주년을 맞는 제주도민이 맞는 봄은 아직도 봄이 아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