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2015.12.25 07:0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6~40)



<이미지 출처 : 당당뉴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2015년 전 오늘 예수님이 이 땅에 탄생한 날이다. 성경을 펴면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치신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그래서 스스로 하나뿐인 자기 몸까지 세상 사람들을 위해 내놓으신분... 이 땅을 하느님의 나라로 만들어달라고 제자들에게 부탁하신분....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건을 말하라면 예수님을 만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어디 나만의 얘기일까?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를 만나면 큰 충격을 받는다. 어떤 이는 예수님의 삶을 쫓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헌신적인 삶으로 바뀌기도 하고....



개인뿐만 아니다. 세계역사에 기독교의 등장만큼 역사를 바꿔놓은 큰 사건도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원수를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는 사랑의 예수가 왜 인류의 평화가 아니라 전쟁과 피의 역사를 불러온 것일까? 성서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10:34)를 실현하기 위해서일까? 세계 역사는 십자군 전쟁을 비롯해 수많은 살륙과 전쟁의 역사다. 예수가 하느님인가 아닌가를 두고 갈라져 수천년동안 전쟁과 피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IS테러 또한 그 뿌리가 기독교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21세기... 이 지구상의 기독교 인구는 21억 명이다. 전 세계 인구의 1/4~1/3을 차지하며 이는 약 38,000개의 기독교 종파를 아우르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로 볼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약 100년에 걸쳐 전 세계 인구의 약 33%를 차지해오고 있다. 이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면 아마 이 땅에 전쟁이란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수가 원하던 이 땅에 천국건설이 이미 이루어졌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엇이 예수의 가르침을 가로 막고 있을까?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케롤과 휘황찬란한 트리로 온통 잔치 분위기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크리스마스 이브는 환락과 소비지향적이고 감각적문화로 예수님이 없는 크리스마스를 맞고 있다. 사랑이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야할 기독교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자본이 벌이는 잔치판이 되고 만다. 예수님이 실종된 크리스마스... 자본주의와 기독교는 어쩌면 처음부터 궁합이 맞지 않는 관계로 출발한다. 이기주의적인 자본주의와 이타주의적인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공존할 수 없는 관계다. 공유사상의 기독교가 어떻게 사유자산제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공생할 수 있겠는가? 엄밀하게 말하면 기독교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이념과 궁합이 맞는 종교다.


변절한 종교는 세상을 더럽히는 사회악의 뿌리다. 일제시대 신사참배로 하느님을 배신한 기독교는 그 후에도 두고 두고 권력의 시녀노릇을 마다하지 않는다. 전두환일당이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수립한 민주정의당정권을 두고 권력은 위로부터 나자 않음이 없다며 조찬기도회를 열어 전두환 일당에게 축복한게 기독교가 아닌가? 오늘날 과세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재벌이 된 대형교회가 내야 할 세금을 가난한이들에게 떠넘기는 파렴치한 행위야말로 전쟁에 나간 부하의 아내를 능욕했다가 나단선지자로부터 봉변을 당한 다윗과 무엇이 다른가?



종교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인하자는 말이 아니다. 예수가 없는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종교가 아니다. 그들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하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면서 예수를 팔아 개인의 배를 채우는 것도 모자라 자기를 따르는 양떼들까지 이리떼들에게 넘겨주는 거짓선지자와 적그리스도가 아닌가? 종교가 저지르는 해악 중에는 빼놓을 수 없는 논리가 결정론적 세계관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감추고 양극화의 세계를 대물림해 주는 현실을 정당화해 주는 결정론적 세계관이야말로 반기독교적이요 반예수적인 배신의 논리다. 그들은 불의한 권력의 편에서 과부와 고아와 불치병에 걸린 병든자를 운명론자로 몰아 하느님의 뜻'이라고 정당화시키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은 지금도 교회의 강대상 앞에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리며 걸려 있다. 그의 고통이 얼마나 계속되어야 그의 가르침이 이 세상에 이루어질까? 자본주의와 결합한 기독교는 지금이야말로 '드로르'를 선포해야 할 때가 아닐까? 예수님을 팔아 재물을 쌓는 거짓선자들이 머리에 재를 뿌리고 참회하는 대회개운동이 일어나지 않는한 자본주의와 기독교의 불편한 공생관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자본의 선은 하느님이 아니라 이윤이다. 환락의 잔치판이 된 크리스마스를 자본이 외면할리 없지 않은가? 어둠이 깊어질수록 새벽은 우리 곁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예수님이 탄생한 날 아침. 온갖 악조건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이 땅의 참 그리스도인들이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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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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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2.04.15 06:30


 

 

 

예수님은 오른 쪽일까 왼쪽일까? 예수님은 소외된 자, 과부, 중풍 걸린자, 문둥병자, 고아, 죄인, 이방인을 아끼고 죄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신 분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기독교인이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일까?

 

마태복음 산상수훈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한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천국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한 것 보면 예수님이 추구하는 가치는 분명이 오른 쪽이 아닌 왼쪽이다.

 

가난하고 소외 받고 사는 자와 병든자와 고아와 과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한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이 천국의 주인이라고 했다. 그런데 기독교 교인들 중에는 왜 오른쪽이 많을까?

 

<가톨릭 뉴스>가 전한 바에 의하면 18대 국회 천주교 신자 수는 62명이다.(19대 지역구 당선자, 가톨릭 58명)  평등과 복지라는 왼쪽 가치를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는 천주교 신자는 통합진보당의 강기갑의원과 권영길의원 2명 뿐이다. 그런 반면 자유라는 가치, 경쟁과 효율이라는 부자들 손을 들어주는 한나라당 천주교 신자 국회의원은 무려 32명이다.

 

 

 

강승규, 고흥길, 권영세, 김세연, 김소남, 김영우, 나경원 , 박대해, 백성운, 손숙미, 신상진, 심재철, 안상수, 원유철, 원희목, 유정복, 유재중, 이애주, 이종혁, 이주형, 이학재, 이한구, 임해규, 장관근, 전여옥, 전재희, 정병국, 정진섭, 차명진, 한선교, 홍일표, 황진하의원 등 32명은 예수님의 추구하는 왼쪽의 가치가 아닌 오른쪽 가치다. 한나라당보다 더 오른쪽인 자유선진당 소속 국회의원은 김낙청, 김창수, 박선영, 이명수, 이상민, 이영애, 임명호, 심대평의원 등 8명이나 된다.

 

왼쪽도 오른 쪽도 아닌 중산층의 편을 들어주는 민주당 신자 국회의원 수도 20명이다. 김우남 김재균, 김재윤, 김춘진, 노영민, 문희상, 박지원, 백원우, 백재현 신학원, 신건, 오제세, 우윤근, 이강래, 이미경, 이석현, 이종걸, 장세황, 정동영, 조영택의원 등이 바로 그들이다.

 

 

국회의원 수만 그럴까? 통계가 없어 알 수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이명박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와 사법부를 비롯해 사회 지도층 인사 중 기독교인 수는 엄청나게 많다. ‘한국천주교통계2010’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천주교 신자 수만 무려 520만 5589명이다. 전체 인구대비 10.1%다. 개신교인 수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어림잡아 1천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기독교인은 어떤 사람인가? 예수를 믿는자는 거듭난자(중생)이고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했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네가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기독교인 중에는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부자가 되는 걸 축복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불의를 쫒는 자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쫒는 제자들이 1천 5백만명이 넘는데 왜 나라는 이 모양일까? 우리나라 기독교는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게 분열돼 있다. 개신교만 해도 장로교, 침례고, 감리교, 퀘이커교, 기독교 한국루터회,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제 7일 안식재림교회...등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장로교는 다시 고려파 장로회, 기독교 장로회, 통합파와 합동파....이렇게 복잡하게 갈라져 있다.

 

 

 

 

 

예수님이 변절한 것일까? 아니면 기독교가 변절했을까?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예수님과 동거할 수 없는 권력 지향적, 부자지향적인 가치를 선호해왔다. 평등이라는 가치보다 자유라는가치, 효율이나 경쟁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추구한 게 기독교다. 왼쪽가치를 추구하는 민중교회나 해방신학, 민중신학을 믿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빨갱이로 내몰기 일쑤였다.

 

내세보다 현세의 복을 위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헌신짝처럼 버린 교회, 권력과 손잡고 혹은 스스로 재벌이 되어 오외된자, 약자를 억압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가롯유다만 예수를 판게 아니다. 오늘날 예수의 이름을 팔아 배를 불리는 사람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이다.  오늘 날 '교회에만 예수가 없다'는 말은 불신자들이 기독교를 비난하기 위해 하는 소리일까?

 

*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1.29 15:14



-성경을 처음 만난 충격-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던 일이지만 필자가 성경을 처음 읽으면서 받은 충격(?)은 '경이로움' 바로 그것이었다. '책에 씌어진 모든 것은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중학교시절, 신학이니 그런 게 있다는 것도 모르고 개신교 장로교회의 고려신학파 목사님이 가르쳐 준 성경은 나의 삶의 모든 것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나에게는 '죽음'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는 열쇠로 받아 들였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은 후에 그 무시무시한 지옥에 갈 수도 있는데 왜 하느님을 믿고 천당에 가려하지 않느냐? '무서운 하느님, 공포의 하느님. 이게 내가 처음 만난 하느님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걸 믿지 않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독학을 하던 나는 하루종일 일에 지친 몸으로 새벽기도와 아르바이트, 그리고 야간 공부를 계속했다. 순진하기도 하고 단순할 수밖에 없었는 청소년기의 나는 '성서가 나의 삶의 모든 것'이었고 '성서대로 사는 것'이 나의 전부였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나이가 들면서 험한 일, 억울한 일도 만나면서 '이게 아닌데...' 하는 회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세상은 혼자서 사는 게 아닌데... 나만 행복할 수 있는가? 나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는 어려움과 힘든 일도 만나야한다는 것,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로 인해 상처를 받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기주의는 나쁘고 개인주의는 좋은 것'이라는 논리는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라는 것을 이해 하면서 뭔가 잘못된 이론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이다.

-종교의 이데올로기성-

착하게 사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으로 덮어버리기에는 이해가 안 되는 일도 보게 된 것이다. 전두환이 광주항쟁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대통령이 됐을 때 '권력은 위로부터 나지 않은 게 없다'면서 목사님들이 그를 위해 조찬 기도회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몸서리를 쳤다. 종교가 본질적인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종교가 권력과 결탁할 수 있다는 사실과 종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능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훨씬 뒤에나 알았다. 또한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이 왜 독재권력 사회에서 뿌리내릴 수 없는 가를 알지 않고 믿는 종교는 맹신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1995년 현재 한국사회에서 종교를 갖고 있는 인구의 비율은 무려 50.72%나 된다고 한다. 한국인 2명중 1명은 어떤 신이든지 간에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인구중 45.67%는 불교를 믿고 있다. 개신교와 천주교 신도의 비율은 각각 38.77%와 13.06% 였다. 한국사회의 종교인구의 절대 다수가 이 세 종교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땅에 천국'을 세우겠다는 신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날이 갈수록 흉악 범죄가 늘어나고 돈이 되는 일라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다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감각주의 향락문화가 비뚤어진 소비문화를 주도하고 그 가운 데 깊숙이 종교인들이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추수감사절이면 칠면조를 특별사면 해주면서 죄 없는 이라크 국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미국대통령을 보면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를 생각한다. 박홍신부의 모습과 보안법폐지를 결사적으로 막겠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성경에서 사랑을 가르치는 하나님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한 손으로는 군수산업으로 돈벌이를 하면서 한 손으로 사랑을 말하는 종교인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다. 물론 문익환 목사님이나 문규현신부님과 같은 분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도 예수라는 분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약자의 아픔을 나누어 지겠다는 가장 사람답게 살다 가신 의로운 분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아 그것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끊임없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거룩하게 폼나게 살기 위하여 가롯 유다처럼 돈과 예수를 바꾸면서 겉으로는 가장 선한 채, 회칠한 무덤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만 예수가 없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예수님이 가장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좋아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과 돈을 사랑하든지 예수님을 사랑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세상을 사랑하면서 예수의친구가 되겠다는 것은 예수를 십자가에 다시 못박는 일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