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는 이야기2017.12.23 06:57


우리나라 정부 수립 후 단 한 번도 종교인들에게 세금을 거둔 일이 없다. 종교인에 대한 과세 얘기는 196872일 국세청이 목사, 신부 등 성직자들에게도 갑종근로소득세를 내게 하겠다고 발표한 게 처음이다. 그 후 여러 차례 종교인과세 주장이 나왔지만 빈번히 그들의 반발에 부딪혀 실패로 끝나고, 2014년 천주교와 불교의 조계종은 스스로 소득세를 납부하고 있지만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 대부분의 종교단체는 과세를 거부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한겨레신문>


필자는 2007923일 오마이뉴스에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공존할 수 없다는 기사를 썼던 일이 있다. ‘공유사상인 기독교와 사유재산제도의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기독교와 자본주의가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변절했거나 아니면 기독교가 변절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공존할 수 없다. 물론 필자가 이 기사에서 기독교를 지칭했지만 해탈을 통한 이상세계를 꿈꾸는 불교나 다른 종교도 예외가 아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이 조세평등주의다. 그러나 과세를 거부하는 종교단체들은 수익사업을 하지 않는 종교단체에 대해 일반적인 사업장과 같은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새로운 제도 시행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하다는 이유를 들어 납세를 거부하고 있다. 정교분리원칙을 지키고 있는 나라에서 종교인 과세는 교회공동체의 재정을 세속의 조세 권력 하에 두는 것은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종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고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정부는 종교활동비를 비과세 소득으로 유지하되, 종교단체가 해마다 그 내역을 관할 세무서에 신고하도록 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됐다. 이 수정안은 22일 차관회의, 26일 국무회의 등을 거쳐 연내 공포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종교인과세 수정발표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소득세법과 그 시행령이 과세의 기본 원칙인 조세형평성을 크게 훼손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수정안이 종교인 과세소득 범위를 종교단체가 자체적으로 정할 수 있어 눈가리고 아웅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가톨릭교회의 사제와 수녀들의 연봉은 1,000만 원도 채 안된다. 현재 전체 근로자의 과반수 이상이 연봉 3,000만 원 이하다. 세계 최대의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조용기 목사는 16475천원을 십일조로 냈으니 연봉이 319425억원이었다는 계산이다. 물론 모든 교회가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조세를 거부하는 교회는 소수의 대형교화다. 한국교회의 90%이상이 연봉 3000만 원이하의 사례비를 받고 있으며 1000만 원이하의 연봉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마가복음) 성서에서 부자난 재물을 많이 가진자다. 여기서 부자란 물질적인 것을 많이 가진자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조세를 거부하는 목회자들은 이런 성경말씀을 부인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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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정치2015.12.26 06:55


"예수 천당, 불신지옥"

"예수믿고 천당 가십시오."


길을 걷다보면 가끔 만날 수 있는 모습이다. 

"지옥 있습니다. 정말 있습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전교인지 협박인지 구별이 안된다. 



내가 가장 듣기 싫어 하는 소리다. 교회에 나가야 지옥에 갈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뜻인가? 교회도 교회 나름이다.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회에만 예수가 없다'는 말이 공연히 나왔을까? 그런데 그들이 믿으라는 예수는 성서에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디 어렵다는 그 예수님이 맞기는 맞을까?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며 협박하는 저 사람들... 불교 사찰을 찾아 다니며 하느님의 땅밟기나 하는 저 사람들이 말하는 천국이란 어떤 곳이며 지옥이란 정말 있기나 한 것이까? 근심과 걱정, 슬픔과 이별도 없는곳.... 능력대로 일하고 필요에 따라 공급받는 천국이란 정말 존재하기나 하는 것일까?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 속에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고통을 받는...그런 곳이 있기나 한 것일까? 그렇다면 왜 저 대형교회 목사님들은 보통사람이 봐도 절대로 천국에 못갈 짓을 하는 것일까? 그들은 지옥이 있다는 것을 정말 믿고 있을까? 


천주교를 포함한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신은 누구인가? 그들은 3위 1체신 즉 성부인 야훼와 예수 그리고 성령이다. 구약시대 전지전능한 야훼라는 모습의 신과 사람의 모습으로 인간세상에 나타난 성자이신 예수. 그리고 우리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와 함께 하는 성령이라는 신.... 그 '삼위일체' 중에서 사람들은 예수를 통해 하느님의 모습을 본다. 사랑의 신이요, 자비의 신인 예수라는 하느님을... 


나는 가끔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지옥이란 게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두껍을 쓰고 차마 못할 짓을 하는 인간들....잔인한 범법자를 보거나 자본주의에서 온갖 못된 짓을 해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의 늪으로 몰아넣고도 뻔뻔스럽게 오히려 당당하게 사는 철면피한 인간을 보면 그렇다. 예수님도 그렇지 않았을까? 노래를 불러도 흥겨워하지 않고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얼마나 답답했을까?  


신이신 하느님이 사람으로 태어나 직접 본 인간의 모습... 그런 모습을 보고 자신이 창조한 인간의 모습에 지으신 것을 후회한 것이 아닐까?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처넣어 영원히 고통받게 하고 싶었던 사람에게 마지막 충고가 지옥이 아닐까? 마치 어른이 아이들에게 겁을 주려고 한 말과 같이 .... 나는 자신의 남은 피 한 방울, 자신의 몸까지 원수들에게 내놓은 사랑의 신이 그런 잔인한 지옥을 만들어 그들의 고통을 보며 즐길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일흔번씩 일곱법을 용서하라시던 예수님이 아닌가? 


사랑의 하느님이 교회에 나가서 중언부언 구복 기도나 하고.. 죄를 짓고 속죄하고 다시 짓고 또 속죄하고.... 교회가 죄를 속죄하는 세탁소쯤으로 알고 사는 사람들이 교회만 열심히 나가고 십일조만 열심히 내면 천당에 갈까? 십일조를 못내고 주일을 지키지 못하면 지옥불에 던져질까? 주일날 교회에 나가면 가족이 굶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겁을 주는 교회에 정말 예수님이 계시기나 한 것일까? 그런 사람을 하느님은 지옥에 보낼까?      

  

시끌벅적한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고요하고 경건해야할 크리스마스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충분히 그들의 입맛에 맞게 각색돼 화려하고 거창하게 잔치를 또 한번 끝냈다. 교회가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며 행사준비에 드는 돈으로 예수가 가르쳐 주신 가난한자들에게 잠시나마 따뜻한 시간을 만들어 줄수도 있었으련만 이미 교회는 예수가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소외된자와 가난한자 그리고 고아와 과부. 병든자들을 외면한채 그들만의 리그를 또 한 번 끝냈다. 


만약 어제 치른 크리스만스 행사를 예수님이 직접 보셨다면 어떻게 평가 하실까? 나를 찬송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칭찬하시며 너희들은 내제자요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칭찬 하실까? 아니면 상업주의가 만든 허례 허식에 예수없는 성탄을 질책 하실까? 부자교회에서 울려퍼진 화려한 찬양을 예수님은 감사하며 축복해 주실까? 아니며 이 회칠한 무덤같은 외식하는 자들이여...하며 따가운 책망을 하실까?


아래 글은 2007년 7월 24일 오마이뉴스에 썼던 글입니다 

 



천국이나 지옥이 정말 있을까?


2007년 7월 24일



[평신도의 눈으로 본 기독교]




개신교에서는 '부흥회'나 '신앙 간증'이라는 걸 가끔 한다. 여기에는 단골손님으로 지옥이나 천국에 갔다 온 사람이 등장해 신자들에게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게 하거나 공포심을 갖게 한다. 


그런데 조금만 주의해서 들어보면 그 사람들이 갔다 왔다는 지옥이 한결같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진짜 이분들이 갔다 온 지옥이 실체적인 곳이라면 목격한 것들이 같아야 할 텐데 모두 다 다르다. 그렇다면 이들이 보고 왔다는 지옥이나 천국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인가?


교인들에게 '왜 교회를 다니느냐?'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천당 가기 위해서'란다. 그렇다. 일반적으로 교인은 '예수를 믿으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기정사실로 한다. 물론 종교란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기독교와 같은 종교 이전에도 종교는 있었다. 자연의 신비나 공포,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힘은 신의 영역으로 알고 신과 통하는 사람(巫)이 우두머리가 되어 다중을 지배하던 제정일치시대도 있었다. 


이러한 사회 즉 제정일치(祭政一致)시대를 거치면서 범신론을 비롯한 온갖 신을 섬기는 '신인공존'의 시대를 구가하게 된다. 이 중에서 특이한 유대인의 종교가 등장한다. 유일신 사상은 유대인의 민족신앙이다. 아직도 예수가 그리스도인가 아닌가를 좋고 유대교와 기독교를 분리되지만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보는 기독교와 유대교는 각각 제 갈 길로 가고 있다. 


자연발생적인 원시종요인 샤머니즘을 빼고는 종교가 정치에 이용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하지 않은 때가 없다. 불교가 삼국시대를 지배한 이데올로기였음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유교는 엄밀하게 따져 종교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중국사회의 정신적인 지주요, 조선시대 지배이데올로기가 된다. 인도의 힌두교가 그렇고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약소국들에선 불교라는 종교가 체제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 역할을 감당해 왔다. 어떤 종교치고 정치와 무관할 수 없지만 지구상의 종교 중 인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종교가 기독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대인의 민족 종교가 서구의 사상사를 지배한 연유는 메시아사상과 무관하지 않다.


유대인의 민족종교인 기독교가 서양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지배하게 된 연유에는 여러 가지 사연이 있겠지만 메시아사상과 천국, 지옥이라는 교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유대 땅 이스라엘에 탄생한 예수. 그를 두고 구세주인 크리스트냐 아니냐는 논쟁은 지난 시간 정리한 바 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천주교와 개신교에서는 영생과 천국을 믿는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이 믿는 천국이란 객관적으로 실존하는가? 


성경에 보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태 3:2),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가복음 9:1)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와 같은 표현으로 천국이 진술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옥은 어떤가? 성서에 보면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막9:48)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마10:28), "천사들을 보내서 악을 행하는 자들을 불구덩이에 처넣는다."(마13:41-42)와 같은 구절이 있다.


이 세상에 살다보면 함께 하늘을 이고 같이 함께 산다는 게 부끄러울 만큼 철면피한 사람도 없지 않다. 어린 아이를 유괴해 죽이고 부녀자를 납치해 어떻게 하고 무고한 사람을 수백 명이나 죽이고 뻔뻔하게 귀족행세를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죽어서 가는 지옥이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 본다. 짐작하건데 요한계시록과 같은 경은 로마의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의 고통을 신에게 하소연한 게 아닐까? 그런데 그들. 하나같이 똑똑하고 잘난 그들은 그런 지옥에 겁을 먹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아마 예수의 시대 로마의 식민지에서 세리들이 이들과 같은 무리가 아니었을까?


신앙은 '사탕을 주기 때문에 시키는 일을 잘하는 어린이'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 나의 선행이 천국을 가기 위한 아니면 지옥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믿는 행위라면 그건 엄밀한 의미의 종교가 아니다. 영악스럽게도 범법자는 그런 수준의 종교에 겁을 먹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옥이 그 구실을 못하고 오히려 착한 사람의 공포감을 불러오게 한다는 것은 목적전치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종교지도자의 직무유기가 한 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라'는 신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자본과 손잡고 회칠한 무덤이나 돌보는 목회자는 성경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천국에 대한 강조도 예외가 아니다.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하늘나라에 갔더니...' 어쩌고 그래서 '지옥 있습니다. 천당 있습니다'나 강조하면 없는 지옥이나 천국이 존재하게 되는가? 천당을 강조하면 인간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선행조차도 신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객관적 실체로서 지옥과 천국이 존재하느냐의 유무는 그것이 있기 때문에 유인요소는 될망정 그것 때문에 겁이 나서 신의 눈치를 보는 신앙은 건강한 신앙이라고 보기 어렵다. '어릴 때는 단단한 것을 먹지 못하지만 장성한 후에는 그친 음식도 소화시킬 수 있듯이...' 건강한 신앙은 신의 눈치를 보는 차원을 초월해야 한다. 지옥과 천당이 없어도 예수님을 존경할 수 있는 그런 신자일 때 건강한 신앙이 가능한 게 아닐까?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제가 방송에 출연했던 원고, 경남도민일보 사설이나 칼럼, 대학학보사, 일간지, 교육희망, 우리교육, 역사교사모임, 국어교과모임, 우리교육, 오마이뉴스, 그밖의 주간 혹은 일간지에 썼던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007년 07월 24일 (바로가기▶)'천국이나 지옥이 정말 있을까?'라는 주제로 오마이뉴스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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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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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09.04.25 22:55



아내가 수녀 동생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뇌수술을 받고 난 후 나는 개신교 신자에서 천주교로 개종했다. 아내를 쫓아 천주교에 나가면서 기절초풍(?)하게 놀랐던 일(신부님이 예수님 자리를 차지했다는 느낌 때문에...)이 있다. ‘영명축일’이라고 했던가? 영명축일이란 기독교인들이 ‘세례를 받을 때 세속의 이름과 달리 따로 영적인 이름을 받게 되는 기념일이다. 세례명이란 보통 성인의 이름을 따서 지어주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한다.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를 받으면 누구나 세례명을 갖게 되며, 세례명은 ‘그 성인의 덕성을 본받고, 그분의 도움을 전구(轉求)하며, 일생동안 자신의 수호성인(守護聖人)으로 공경하고 보호를 받으며, 그분의 뜻을 기리도록 하기 위해 지어주는 이름이다.

본당 신부님 영명축일 때였던가?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행사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미사가 끝난 후 “지금부터 신부님 영명축일 행사를 하겠습니다.” 하고선 축가를 부르고 꽃다발을 전달하더니 행사 마지막에 “신부님께 물적 선물을 준비한 사람들은 앞으로 나오셔서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안내가 있자 신부님은 강대상 위에 의자를 놓고 앉아 신자들이 가져온 봉투를 차례로 받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내가 기절초풍하게 놀랐다는 이유는 현금봉투를 받는 것도 놀랍지만 나이가 많은 신자들이 내미는 봉투를 높은 자리에서 젊은 신부님이 태연히 받고 있는 모습 때문이었다. 후에 신부님이 받은 봉투는 정말 좋은 일에 씌어 진다는 말을 듣고 다소 마음이 풀리기는 했지만 수십명의 신자들이 바치는 꽃다발도 아닌 현금을 받는 모습에 아연했던 것이다. 뒤에 안 일이지만 ‘세례 때 새로운 이름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라는데 이런 식의 행사가 ‘예수님의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남의 의미를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지워지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어느 한 분야라도 건강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성직자들은 교회는 물론 우리사회가 이지경이 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목회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 땅에 하늘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개인만 도덕적인 인간이 되면 가능할까? 예수님은 분명히 가르치기를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유순하라고 가르치셨다. ’제탓이오, 제탓이오, 제 큰 탓이옵니다‘는 순진한 신자들을 운명론으로 이끄는 이데올로기는 아닐까? 예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뤄지기 위해서는 운명론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불의를 보고 외면하지 말고 싸워서 승리하는...’ 삶이 필요하다고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목회자들은 신자들에게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하느님은 그러나 우리가족의 건강이나 남편의 사업이 잘되게... 아들이 무슨 대학에 합격하게....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가족의 쾌유를 비는.... 이런 기도를 원하실까?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다 알고 계신다고...’ 했는데 불의를 저지르는 정치인들을 위해 ‘조찬기도’를... 사랑의 하느님을 ‘공포의 하느님’으로,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닐까?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구복기도가 아니라 하느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기도, 즉 ‘불의를 보고 참지 않게 하소서... 이웃의 고통을 함께 아파할 수 있게 하소서... 나의 이익을 위해 침묵하는 비겁함에서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교회는 왜 타락하는가? 단언컨대 역사의식이 없이 ‘무오류설’을 가르치는 목회자가 있고 지옥을 강조하는 성직자가 있는 한 이 땅에 하느님 나라 건설은 꿈이다. 제정일치시대 세금제도인 ‘십일조’를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의 재산을 도둑질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성직자가 있고 교회를 ‘죄 세탁소’쯤 해석하는 목회자가 있는 한 이 땅의 천국건설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직자들은 왜 성서를 왜곡하는가? 아직도 많은 목회자들은 성서해석을 성직자만이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기록은 진실일까? 사실(事實)이 아닌 사실(史實)은 객관적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사실(史實)을 사실(事實)이라고 믿고 있다. 가치문제가 담겨진 모든 기록은 그렇다. 그래서 사관(史觀)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서는 어떨까? 성서는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기록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다. 역사란 사관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은 이단이고 전통신학만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해석은 누구의 판단일까? 성서의 진위를 논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성서가 역사라면 역사 속의 기록을 전달하는 사람. 예수라는 분을 대중과 만나게 하고 제사를 집전하는 사람. 이런 직분을 맡은 성직자가 성서를 어떻게 가르치는가에 따라 종교의 교의(敎義)는 신자들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달될 수 있다.

전쟁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전쟁에서 ‘죽음의 공포나 배고픔’과 같은 아픔은 증발되고 ‘스릴과 서스펜스’만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교가 전쟁영화처럼 관념화 되면 교의(敎義)는 실종되고 형식만 남는다. 교의는 실종되고 형식만 남은 교회. 모든 집단이 그렇치만 과정은 필요 없고 결과만 평가되는 집단은 건강할 수 없다. 더구나 목자가 무지하거나 이기심에 눈이 어두워 양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 올까? 오늘날 교회가 또 사회가 막가파식으로 치닫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성직자들의 책임은 아닐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성직자들은 몇 명이나 예수의 모습으로 살까?

(다음은 ‘내가 만난 기독교인’을 이어 쓰겠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09.03.19 15:06



몇 년전 퇴근길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께 띠를 두른 교인들이 행인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예수 믿고 천당가십시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런 구호와 함께. 그런데 홍보지를 받아 지나가려는 데 건장한 남자 한 분이 필자를 보는 순간 “아! 선생님!”하고 아는 채를 했다. 필자도 몇 십년만에 만난 옛 교우(?)가 반가워 “아이구 오랜만입니다”라고 악수를 했다. 십여년동안 같은 감리교에서 권사직을 맡아 일했던 분이다. 그런데 이분, 다음 말씀이 “선생님도 이제 교회 나와 천당 갈 준비나 하셔야지요?” 그랬다. 신호가 바뀌어 급히 인사를 하고 건너오기는 했지만 말을 어떻게 저렇게 할까 섭섭한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당신도 이제 나이께나 먹었으니 죽을 준비나 하라’는 뜻인가?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어떻게 60도 안 된 사람에게...


 필자와 기독교는 묘한 인연이 있다. 사립학교에 근무하다보니 학교설립자인 교장이 장로였었고, 어쩌다 같은 교회에 다니게 됐다. 주일학교부장까지 맡아 일하던 필자는 그 뒤 전교조 관련으로 해직되면서 몰라도 될 여러 가지를 알게 되고 개인적인 존경심이 바뀌어 감정적인 앙금까지 남은 채 직권 면직 당한다. 순진하게도 평소 존경하던 교장선생님(장로님)은 우리가 요구하는 ‘참교육의 열정을 이해해 주시고 오히려 함께 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평소 존경해 왔다. 그러나 결국은 참교육이라는 갈림길에서 서로 각각의 길을 걷게 됐다. 그 후 기독교에 대한 상처는 쉬 회복되지 못하고 그 때의 감정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개인적인 감정 때문만이 아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전혀 민족적이지도 못하고 민주적이지도 못하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 한 종파는 군수산업을 해 돈벌이를 하고 있지만 여기선 그 얘긴 덮어 두자. 그 외에도 최근 사립학교법이며 기독교인이 경영하는 이랜드의 파업사태를 보면서 기독교가 이렇게 막나가도 될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멀지 않은 지난 역사에 황사영의 백서사건을 보자. 1801년 천주교 신자였던 황사영(1775-1801)이 신유박해를 피해 충북 제천의 한 토굴에 숨어 지내던 중 한국 천주교의 위기와 이 땅을 천주교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청나라와 서구 열강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장문의 편지를 작성한다.

신앙의 자유도 좋고 천주교선교도 좋다. 그러나 백서에 담은 내용을 보면 '청이 조선 조정에 압력을 가하거나 조선을 아예 한 성으로 편입시켜 천주교를 공인하거나, 프랑스 등 서양의 천주교 국가들에게 호소하여 군사 수만과 군함으로 조선을 협박하거나 정복해서 천주의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를 위해 나라를 외국에 바치는 행위를 어떻게 봐야 할까? 백성들이야 전장에서 죽든 말든 천주교만 전파된다면 나라고 역사고 필요 없다는 종교는 제정신이 있는 사람일까?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사립학교 부정과 비리를 두둔하기 위해 '사학법 개악을 막자'는 사람들을 마귀로 규정하는 기독교인들은 천사인가 악마인가? 부패한 사학 편에 서서 사학을 바로 세우자는 시민들을 마귀로 단정할 권리는 진정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일까? 식민지시대에는 또 무슨 짓을 했는가? 1936년 6월 감리교 총리사 양주삼 목사는 총독부에서 신사 참배에 응할 것을 밝히자 성결교 구세군 성공회 등이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장로교도 이에 뒤질세라 1938년 9월 제27차 총회(총회장:홍택기 목사)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했다.

『신사가 종교가 아니요 …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이 에 신사참배를 솔선 여행(勵行)하고 추히 국민정신 동원에 참가하여 비상 시국하에서 총후(銃後) 황국신민으로서 적성(赤 誠 )을 다하기로 함』 십계명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저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도 십계명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진정한 예수의 제자일까?  

황국신민화정책을 실시하기 위해 조선여성을 동원했을 때 고황경, 김활란, 이숙종, 조기홍 등 대표적인 기독교 여성 지도자들은 ‘대세순응론’을 들고 나와 미나미 총독이 추진하는 어용단체에 협력해 동족을 내선일체, 황국신민을 만드는데 앞장섰다.

일제 때만 아니다. 광주시민들이 전두환 부하들의 총칼에 무참히 난도질당할 때, 전두환을 위한 용비어천가를 불렀던 목사님들은 아직도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1980년 8월6일 원한을 품고 죽어간 무고한 시민들의 피도 채 마르기 전, 롯데호텔에서 기독교 지도자라는 분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 기도회」를 열었다. 이 기도회에서 문만필 목사가 사회를 맡고 설교에 한경직 목사, 기도에 정진경 조향록 김지길 목사와 김인득 장로가 맡았다. 이들이 하나님께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 기도했다. 이 조찬기도회는 KBS와 MBC를 통해 현장 중계됐으며 다음날 두 번에 걸쳐 녹화 중계 했다.

한경직목사는 박정희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에서 '박정희 = 모세'라고 찬양했던 바로 그분이다. 양의 탈을 쓴 종교지도자들은 회개해야 한다. 교회지도층의  카멜레온 같은 삶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1972년에는 「대한기독 교연합회」 등에서 유신헌법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가보안법수호 국민대회를 열고, 2001.부터 연이어 3년동안 세 차례에 걸친 미군철수반대와 숭미집회를 열기도 했다.

1년간 약 1억1300여만원의 십일조를 내는 조모목사의 경우 연간 약 11억3000만원의 소득있다는 말이다. 이 목사에게 국가는 세금 한 푼도 매기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현대판 골품제를 적용하겠다는 것인가? '종교법인법 제정 추진 시민연대' 이드(52) 사무처장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종교인이 세금을 내지 않는 나라가 한국"뿐이라며 "한국 종교계는 헌법 11조 국민평등권을 위배하고 있고 헌법 38조에 납세의 의무까지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오마이뉴스 2007년 7월 11일)

종교와 자본, 종교와 권력이 손잡으면 종교가 교의를 따라갈까? 멀쩡한 사람도 권력의 맛을 보면 ‘맛이 간다’(?)고들 한다. 역사적으로 불교가 권력 화됐던 지난날을 우리는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물론 사람이나 종교도 시행착오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인이나 단체가 개인이나 국민앞에 저지른 죄악을 회개할 줄 모르고서 어떻게 신자들을 천국으로 안내할 것이며 본인은 천국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2000년 전에 예수님은 말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회개없는 천국은 없다. 한국교회가 살 수 있는 길은 회개를 통한 양심회복부터 해야 한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