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2017.04.20 06:58


친박 연대체인 대통령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에 나와 막말하는 목사들을 보면 이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들인지 의심이 든다. 불의의 편에서 범법자를 두둔하는 목사와 변호사 그리고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뉴라이트계 기독교인을 보면 그들이 사랑의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인지 믿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진정으로 예수가 전지전능하고 이 땅에 다시 재림할 예수를 믿는다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일까? 2000여년이 지나도 풀이지 않는 수수께끼. 예수는 신인가, 인간인가


2000여년전 이스라엘 땅 나사렛에서 태어난 목수의 아들 예수. 전 인류역사를 통해 이 사람만큼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 사람,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을까? 유럽의 역사는 기독교 역사다 아니 예수의 역사다. 예수가 신인가 인간인가를 놓고 벌이는 전쟁의 역사. 교황권의 확대를 위해 벌이는 십자군전쟁을 비롯해 예수를 못박아 죽인 유대인 박해로 인한 광란의 역사가 바로 유럽의 역사다.



예수 그는 누군가? 인간인가? 아니면 신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2000여년을 두고도 풀리지 못하는 수수께끼다. 예수는 신이다. 그것도 보통 신이 아닌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신이다. 예수를 신이 아닌 인간이라고 하는 순간 그는 바로 적그리스도가 되고 이단이 되고 사탄으로 낙인찍힌다. 의문조차도 입에 올리기 불경스러운 말, 예수는 인간인가? 신인가? 인간인가?


지구상에 사는 사람치고 예수를 만나지 않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성서를 통해 혹은 선교를 통해 천주교로, 개신교로, 그리스정교로, 혹은 이슬람교로... 세계선교통계에 따르면 천주교를 포함한 기독교 총인구는 235452만여 명이며 개신교 인구 43956만여 명까지 합치면 70억 세계인구의 1/4~1/3을 차지하는 숫자다. 기독교 교파가 44000여 개 라는 통계 하나만 보더라도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예수가 신인가 사람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 즉 신관(紳觀)에 관한 문제다. 예수가 하나님이 된 것은 니케아공의회(BC 325)에서 정통신조로 공인된 후 451년 칼케돈공의회에서 추인되어 정식교의로 확정되었다. 삼위일체 교의에 따르면 하나님 안에는 성부 성자 성신의 3()가 존재한다. 예수는 성자다. 고로 예수는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예수=하느님이라는 등식은 여러 가지 이율배반이 따른다. 우선, 성서적으로 볼 때 부활하여 하늘로 올리어진 예수는 하느님과 합쳐져야(일체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 우편에 앉았다’(16:19)거나, 예수가 감람산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십자가 죽음을 면케 해 달라’(22:42)고 애원한 구절 등은 설명할 길이 없다. 이들 구절은 예수와 하나님을 엄연히 구분 짓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 지도자들은 왜 예수를 신으로 만들어 놓은 것일까. 나는 가끔 지옥이란 것이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인면수심의 인간들... 사람이기를 거부하고 인간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못된 짓을 골라가면서 하고도 가장 도덕적인 채 하는 철면피 목회자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기독교인을 잡으면 십자가 형틀에 매달았던 시절,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게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가 신이라면....’ 하는 간절한 소원이 아니었을까?



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모든 종교가 다 그렇듯이 교조는 절대자이거나 완전한 존재다. 계급사회에서 미륵불이 필요했듯이 사람으로서 대접받지 못하는 서민과 노예들은 누군가 그들을 구해 줄 구세주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그래서 난생설화나 정상분만이 아닌 옆구리탄생 혹은 겨드랑이에 날개가 난 장수가 아니었을까? 사실, 예수가 하나님이면 어떻고, 하나님이 아니면 또 어떤가. 불교에서도 중생이 곧 부처라 하고, 천도교도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하지 않은가? 기독교에서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여기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촛불정국에서 탄기국집회에 참석해 중세 유럽 기사의 방패를 본딴 피켓과 창, 투구를 쓴 십자군을 흉내 낸 퍼포먼스를 벌이며 '계엄령 선포가 답이다', '군대여 일어나라', ‘보톡스 안 맞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를 외치며 범법자를 비호하는 개신교 목회자를 보면 그들이 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성직자라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예수가 신이요, 지옥이 있다고 믿는다면 어떻게 그런 행동이며 말을 내 뱉을 수 있겠는가? 자본의 정령당한 예수, 이데올로기가 된 기독교가 아니라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처럼 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그런 기독교라면 신인들 어떻고 인간이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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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경남대 철학과가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학교가 경영의 어려움을 이유로 경쟁력이 없는 철학과를 계속 존치할 수 없다는 방침이다.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경남대학은 ‘신입생 모집 실적이 부진하거나 등록률이 70~80% 미만인 학과는 오래 전부터 학과 폐지를 논의해 왔다고 한다.

 

이러한 학교 측의 방침에 대해 ‘경남대 철학과폐지 비상대책위원회’는 대시민 호소문을 내고 "사람은 힘을 합쳐 '사회'라는 공동체를 만들었고, 사회 안에서 함께 행복하기 위해 수많은 학문이 생겼다"며 "학과 폐지 움직임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999~2011년 사이 인문계열 학과의 수가 평균 20%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폐합의 대상이 된 인문계열 학과들 즉, 철학, 사학, 각종 어학과들이 처한 비관적 상황은 하루 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다. 군대를 갔다 오니 학과가 없어져있었다는 학생의 하소연, 비인기 학과는 학교의 홀대로 “교수 임용을 포기하고 요리사를 하며 책이나 쓰고 싶다”는 인문학 강사도 있다.

 

학문이 시장원리에 휘둘려서는 안된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인문학과 순수 기초과목 폐강 속출, 경영학과 취업 관련 과목 학생 몰림 현상이 최근 신학기마다 각 대학에서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다. 철학은 홀대 받아도 좋은 교양과목일 뿐일까? 취직 관련 전공이나 학과는 날로 그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지만 철학이란 대학에서 교양과목 점수를 채우기 위한 학문정도로 취급받는 현실에서는 취업과 무관한 학문에 학생들의 관심이 멀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관(史觀)없는 역사, 신관(神觀)없는 종교, 철학(哲學)없는 인생은 살맛나는 삶일까? 독재자나 자본에 예속된 종교지도자들은 민중이 각성되는 걸 가장 싫어한다. 실제로 이승만이나 박정희를 비롯한 독재자들은 국민들의 머릿속에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가질까봐 가장 두려워 했다.

 

실제로 그 시절 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기는커녕 윤리과목에 몇몇 철학자 이름을 넣어 ‘너 자신을 알라’느니 ‘눈물 없는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참맛을 모른다’느니 하며 그런 게 마치 철학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르치기도 했다.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체제 수호라는 명분으로 관념론 철학이 철학의 전부라고 호도해 유물철학은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철학 없는 삶은 방황이요, 인생의 황무지다. 목적지 없는 경기에서 우승이 무의미하듯 철학 없는 인생은 무지와 부끄러운 삶을 자초한다. 철학을 가르쳐 주지 않은 사회에서 그 사회구성원들은 이성이 아닌 힘의 논리가, 정의가 아닌 상업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막가파 사회로 바뀐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지도자들의 삶을 보면 그렇다. 국가에서 기장 많은 시혜를 받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성공이 자신이 똑똑해서 출세하고 대접 받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사회적 지위로 얻은 정보를 자신의 사익을 위해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오만과 후안무치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부모와 나, 민족과 나, 역사와 현실을 인식하는 안목도 없이 감각적으로 좋은 것이 선이라는 사고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자본의 논리가 사회지표나 되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민주주의를 배우면서도 민주의식은 없고, 노동자로 살면서도 노동자 의식도 없고, 역사를 배우지만 역사의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본주의에 살면서도 자본주의 윤리도 모르는 사람들로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향락과 감각이 지배하는 황량한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안목도 그렇다. 변화와 연관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지 못하고 감각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로 날이 갈수록 이기적이고 퇴폐적인 독선이 지배하는 사회로 바뀌고 있다. 철학은 정말 배우지 않아도... 몰라도 괜찮은 학문일까?

 

내가 누군지, 왜 소중한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내 부모, 내 이웃, 내 민족이 왜 소중한지, 더불어 살아가면서 내가 지켜야할 것, 해서는 안되는 일, 행복하다는 것은 무엇인지, 왜 사는지.... 이런것을 모르고 감각적으로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내가 좋은 것이,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하고 살면 행복한 삶일까? 

 

과거가 부끄러운 사람들 때문에...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 때문에... 신(神)을 팔아 자신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 종교지도자들 때문에.... 권력을 도둑질한 독재자들 때문에... 나라의 주인이 바보가 되는 철학 없는 사회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이미지출처 :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2.09.24 07:00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는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상인, 인간성 없는 과학, 헌신 없는 종교’를 ‘일곱 가지 사회악’이라고 했지만 철학이 없는 삶은 방황의 연속이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할 얘기가 많다. 그래서 나이든 사람은 꼰대 소리를 듣는가 보다. 오늘은 종교에 대한 얘기를 해 볼까 한다. 오늘 전개하는 얘기는 나의 개인적인 종교관일 뿐 신실한 종교인들을 비하하거나 남의 종교를 비난할 목적이 아니라는 걸 먼저 밝혀둔다.

 

요즈음은 많이 달라졌지만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은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한두 번 절에 가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절에 가면 시주를 하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 돌아오는 것.... 부처님께는 살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정성을 다해 빌면 비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그런 불교신자들이 많다. ‘절에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은 삼신도 모시고 조상신도 모시고 한울님...도 모시면서 산다.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도 그렇다. 초등학교 때 친구를 따라 다녀 본 성경학교나 커서 이성에 호기심을 느낄 나이가 되면 교회나 성당의 따라가다 기독교 신자가 되거나 아니면 부모가 신실한 기독교인이어서 배속에서부터 종교인(?)이었던 사람도 있다. 그런데 불교신자건, 기독교 신자건 종교인들에게 ‘종교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속 시원하게 ‘종교는 이런 것이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종교란 ‘죽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 난 것이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어떤 힘’에 자신이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신이라는 이름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 싱안의 대상이야 시대나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한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가 있다는 것일 믿고 의지하고 숭배하는 것.... 그런게 종교가 아니까?

 

신관(神觀)이 없는 종교란 위헌 천만이다. 기독교의 경우를 보자. 고등학생들에게 ‘기독교가 뭔가?’라고 물으면 정확하게 대답하는 학생들이 없다. 국어사전을 보면 ‘基督’이란 머리에 성유 부음을 받은 자, 곧 왕 또는 구세주라는 뜻으로, ‘예수’를 이르는 말, ‘그리스도’의 음역어‘이라고 풀이한다. 크리스트라는 말의 한자 방음이란 뜻이다. ‘기독=천주=크리스트=구세주=예수’라는 의미다.

 

기독교인이라는 학생 들 중에는 구교와 신교, 천주교, 개신교,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에 대한 정확한 개념도 없다. 종파 얘기를 하자는 말이 아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천주교신자든, 개신교 신자든, 여호와 증인신자든 자신이 믿는 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觀)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라는 분이 사랑의 신인지 권위의 신인지 구별조차 못한다면 옳은 신앙인 아니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종교가 철천지원수가 되어 수천년간 앙숙의 관계로 이어지는 종교란 그 역사만큼이나 복잡하고 어렵다. 그 복잡한 뿌리는 어쩌면 간단하게 정리할 수도 있다.

 

 

개신교를 포함한 기독교는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를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종교요. 이슬람교는 만인의 신인 알라(야훼, 여호와)를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종교다. 유대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야훼, 여호와)을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민족종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름만 다른 ‘알라’와 ‘야훼’(신은 같은 여호와)라는 차이인 이슬람교와 유대교는 앞으로도 타협이란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원한이 깊고도 복잡하다.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답은 신앙인의 신관(神觀)이다. 신관에 따라 천주교와 개신교, 이슬람교..로 나눠진다. 개신교 만해도 장로교, 침례고, 감리교, 퀘이커교, 기독교 한국루터회,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제 7일 안식재림교회...등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장로교는 다시 고려파 장로회, 기독교 장로회, 통합파와 합동파....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의 기독교는 신관에 따라 분열되었다기 보다 이해관계로 얽혀 분열된 경우가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범한 신자가 ‘어떤 종파가 진짠가’의 여부로 따진다면 신앙도 갖기 전에 실망감으로 신을 믿을 정나미가 떨어지고 말 것이다. 종교의 핵심은 자신이 신앙하는 ‘신이 누군가?’라는 문제다. 기독교의 경우 ‘예수가 누구인가?’라는 문제가 신앙의 핵심이다. 똑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이명박장로, 뉴라이트의 김진홍목사, 서경석목사...같은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문익환목사, 문규헌, 문정현신부, 이태석신부.... 같은 분도 있다. 누가 믿는 예수가 진짜일까?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09.04.22 09:28



하느님은 어떤 분일까? 가톨릭(천주교), 기독교, 그리스정교회, 이슬람교...는 같은 야훼라는 신을 믿는 다른 종파들이다. 가톨릭이 종교개혁 후 갈라진 개신교만 해도 넉넉잡아 50개 종파가 넘을 것이다. 기독교는 왜 이렇게 종파가 많을까? 그 원인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예수라는 분이 하느님인가 아닌가에 따라 나눠진 것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를 하느님으로 믿는 기독교 신자들은 같은 하느님을 믿고 있는 것일까?

                                           <사진 자료 : 오마이뉴스에서>

뉴스위크지가 미 중앙정보국(CIA)과 세계 각국 통계자료를 기초로 해 작성한 종교분포를 보면 세계 인구 64억5300만명 중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그리스도교인은 21억3300만명이다. 아마 확실한 통계치는 알 수 없지만 그리스도교도 2억 수천만명 중 ‘같은 하느님’은 믿는 신자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내가 만난 하느님의 경우의 예를 들어 보자.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나의 신관(神觀)에 따라 하느님은 같은 분이 아니었다. 다른 신자들은 어떨까?

친구 따라 간 교회. 그 교회가 천주굔지, 그리스도굔지 또 그리스도교라면 예수교 장로교인지 기독교장로교인지, 감리굔지, 제7일 안식교인지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알리도 없었다. 목사님을 통해 가끔씩 들은 하느님은 어떨 때는 ‘야훼하느님’이라 했다가 어떨 때는 ‘성자(예수) 하느님‘이라 했다가 어떨 때는 ’성령 하느님‘이라고 표현해 어떤 분인 진짜 하느님인지 알 리가 없었다.

중학교 1학년이 교회에서 처음 만난 하느님은 ‘전지전능하고 우주를 창조하신 무서운 하느님이었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지만 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늘이나 땅이나 땅 속 어디에 있는 사람의 마음 속 생각까지 샅샅이 알고 계시는 분이라고 알았다. 그런데 궁금한 건 ‘전능하신 하느님이시라면 왜 가난하고 병들고 억울한 사람들을 그냥 두실까?‘ 또 ’어떤 사람들은 귀하게 또 어떤 사람들은 천하고 힘들게 살아가도록 버려두실까?’ 그런 생각이 어렴풋이 들긴 했지만 그런 것은 다 ’하느님의 뜻‘이니 사람이 간여할 일이 아니라는 성경 말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중학생 수준의 필자의 신관(神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오늘날 수십년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 치고 똑같은 신관을 가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떤 신자는 ‘권위의 하느님을, 또 어떤 분은 공포의 하느님을, 또 어떤 신자는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으로 알고 믿고 있다. 3위 일체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신자는 몇이나 될까? 사실 신자들 중에는 어떤 분은 야훼를, 어떤 분은 예수를 하느님이라 믿는다. 같은 교회에 나가면서도 어떤 사람은 전통적인 다신교수준인가 하면 신자들 중에는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에 근거한 신자들도 없지 않다.

하느님의 모습뿐만 아니다. 신자들의 기도도 가지각색이다. 어떤 신자는 하느님을 ‘우는 아이가 젖 준다’는 우리 속담처럼 내가 필요한 것을 부지런히 빌기만(祈福)하면 다 들어주신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런 기복적인 혹은 구복적인 신앙을 가지 신자들은 신앙의 대상만 바뀌었지 천지신명에게 빌던 전통 신앙과 전혀 다른 게 없다. 입시철이 되면 수능시험에 ‘내 아들, 딸이 합격하게 해 달라(다른 집 아들딸이야 떨어지든 말든...)고 기도하는 신자가 있는가 하면 자녀들의 취업을 위해 철야기도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느님이 어떤 분(神觀)인가에 따라 종교의 본질에 얼마나 접근했는지의 여부가 결정된다. 도올 김용옥 교수가 요한복음 강의에서 "구약 성경을 믿는 것은 성황당을 믿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말해, 기독교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일이 있다. 나는 이 논쟁에 말려들 수준의 성서학자도 아니거니와 그럴 생각도 없다. 그러나 평신도의 눈에 비친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하느님은 전혀 다른 분이다. 복수의 하느님. 형식과 권위의 하느님인가 아니면 사랑의 하느님, 자비의 하느님인가에 따라 ‘하느님의 뜻(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이 달라진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만약 토마스 뮌쯔가 승리하고 마르틴 루터가 죽임을 당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늘날 기독교가 살아남은 이유는 신의 뜻을 저버렸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가 아닐까? 기독교와 자본주의는 코드가 맞을 수 없다. 자본주의가 변질했든지 아니면 기독교가 변질해야 공존이 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와 기독교의 공존은 기독교의 변질 즉 정교분리가 아니라 정교공존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밝혔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이러한 명제는 오늘날 부자교회들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예수의 정신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다음은 ‘내가 만난 성직자’로 이어가겠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09.03.16 07:41



 "선생님! 연세가 쉰이 넘은 선생님께서 교회에 나가신다고요?"
 법(신) 없이도 사실 분이 '왜 갑자기 하나님이 필요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언젠가 저와 함께 교회 다니시던 분이 제게 하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대통령탄핵반대 집회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15년도 훨씬 지난 옛날, 교회에 함께 다니던 H권사님이 길에서 어깨띠를 하고 "예수 믿읍시다" "예수 믿고 구원받읍시다"하며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저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선생님은 노인이 다되셨네요. 이제 연세도 있고 한데 준비 하셔야지요. 교회에 다시 나오십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본지 10년 정도 세월이 더 지났으니 머리카락이 하얗게 된 걸보고 '노인이 다됐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제 죽을 때가 다 됐으니 회개하고 죽을 준비를 하라'는 말은 기분 좋게 들리지 않았답니다. 


 교회 얘기가 나왔으니 필자의 지난 얘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1989년 전교조결성으로 나라 안이 온통 시끌벅적했을 때입니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던 학교(사립)의 교장이 필자가 다니는 교회에 장로이기도 했습니다. (필자의 당시 교회직분은 초등부부장을 맡은 권사였다) 대부분의 학교가 그랬지만 전교조 출범 당시 사립학교의 경우 학교비리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했고 필자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전교조도 미운데 자기 학교 비리까지 문제제기를 했으니 교회에서인들 예쁘게 보일 리 있었겠습니까. 필자도 교장의 뜻은 아니지만 전교조 교사 5명이나 해직시킨 교장이 고울 리 없어 한달 정도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뒤에 들리는 말에 의하면 총회를 열어 저를 제명처분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30년이 넘게 교회에 다닌 중진(?) 권사(감리교회의 권사는 장로교회의 장립집사 정도 될까?)를 본인의 소명기회도 주지 않고 징계처분을 했다는 것이 못내 서운하고 못마땅했습니다. '죽을 준비나 하라'던 그 권사는 당시 필자와 같은 권사였는데 예의 그 교장과 같은 입장에 서서 우리를 참 괴롭게 했던 장본인이었습니다. 특히 전교조에 대해 악의적인 선전을 한 장본인이었고, 징계(?)과정에서 '전교조는 빨갱이다'라는 주장을 하고 다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는 일,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가 동료교인을 징계하면서 본인도 출석하지 않은 상황에서 징계한 것도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대통령시절 군사정권을 축복하는 조찬기도를 자청하고 최근에는 국가보안법철폐반대를 하는 모습이 예수님의 정신을 실천하는 길인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문익환목사님이나 문규현신부님과 같은 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에수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만의 생각이겠습니까?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군에 갔다 오면 사람된다'는 속설에 대한 오해와 같은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선생님처럼 착하신 분이 오히려 멀쩡한 아이를 군대 보내 '권력에 복종하는 순종적인 인간'을 만들듯이 법 없이 살 수 있는 선생님 같으신 분이 '하나님이 두려워 눈치를 보면서 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돼서 말입니다.

 종교란 무엇인가? 까마득한 옛날, 자연에 대한 신비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신)가 있을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무서운 병으로 고통을 받거나 죽음의 공포는 신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고 그 보이지 않는 절대자가 죽음의 문제까지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은 신의 영역이고, 죽음의 문제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종교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거라고 봐야겠지요. 다시 말하면 종교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신의 도움이 필요해 생긴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절대자를 믿고 따라야 하는 데 그 '절대자의 실체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그게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생사길흉화복을 좌우하는 '신(神)이란 어떤 존재일까? 아니 그러한 신이란 과연 있기나 한 것일가? 하는 문제를 놓고 '유신론이니 무신론이니 또는 삼위일체 신이 진짜 신이니 예수는 신이다. 아니다 선지자일뿐이다... 신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인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부처가 되는 길밖에 없다..... 내가 믿는 종교만이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느니... 하는 논쟁이 지금도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쟁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식의 끝없는 논쟁으로 결론이 쉽게 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나 마호메트나 부처나 공자나...어떤 신앙의 대상도 마찬가지지만 그걸 본 사람, 그러니까 전한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 신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거지요. 공자의 가르침을 놓고 주자만이 해석할 능력이 있다고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자학이니 성리학이라 하고 왕양명이 해석한 걸 양명학이라 하지 않습니까? 불교도 참선을 중시하는 선종과 경전을 중시하는 교종, 그리고 선교종(선종+교종)도 있고 조계종, 천태종, 일붕선교종, 진각종, 여래종, 일승종, 미타종, 미륵종, 원효종, 태고종, 정토종 등...이 있지 않습니까?

 폐일언하고 선생님이 믿기로 했다('교회에 나간다'와 '예수가 하나님이다'하고 믿는 것은 다른 뜻이지요)는 그 신. 그 기독교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우선 기독교를 말하기 전 제 얘기를 잠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지요. 성경을 처음 읽어 본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일이지만 그 감동을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목격한 저로서는 인간의 허무함을 뼈 속 깊이 느끼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목사가 되는 길을 몰랐기 때문에 그 길을 가지 못했지만 성직자가 돼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던 일이 있었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다른 종교도 그렇지만 기독교는 종교자체가 곧 권력이었던 과거가 말해주듯 상당부분 이데올로기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이 어때서요?'할지 모르지만 그건 순진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돈이나 권력은 인간의 신념까지 바꿔놓을 수 있는 마력을 가지고 있더군요. 옛날 저와 함께 시민운동을 함께 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 중에는 지금 청와대에도 있고 정부쪽 고위직에도 있는 걸 봤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옛날 하던 말과 지금 하는 소리는 같은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변절을 했더군요. 그거지요. 권력의 맛. 돈의 맛을 알면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기독교도 초기에는 처절한 탄압을 받았지만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제정일치시대를 거치면서 초기의 정신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예수의 뒤를 따라 십자가에 그것도 거꾸로 매달려 죽지만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후 교황(베드로의 후계자=교황)은 곧 왕 중의 왕이 되지 않았습니까? 유럽 제국의 왕을 임면할 수 있는... 권력이 장기간 집권을 하면 부패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중세의 기독교가 얼마나 타락했으면(면죄부를 팔아먹는...) 루터나 쯔빙글리 같은 이들, 토마스 뮌쯔 같은 이들이 목숨을 건 저항을 시작했겠습니까?

 종교개혁을 성공한 마르틴 루터는 민중을 배신한 대가(?)로 오늘날 개신교의 종주가 되지만 예수의 뜻을 따르겠다고 권력과 타협을 거부한 토마스 뮌쯔는 처형을 당하지 않습니까? 천주교에서 아니 유대교에 뿌리를 둔 기독교는 천주교에서 그리스 정교회, 국공회,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여호와의 증인 등 엄청난 파벌이 만들어지고 각 종파들은 전쟁을 치르듯이 숫자를 늘려 세력 확장해 나갔습니다. 공유사상인 기독교가 자본주의와 타협을 신의 뜻이라고 호도하면서 권력의 맛. 세상의 맛을 알고 스스로 권력이 되기를 거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교회를 나가면 됐지. 뭘 그리 복잡하게 따지고 드느냐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나의 삶을 맡긴다(신앙)는 것은 그렇게 함부로 그리고 단순하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 온 삶을 부인하고 신이 가르쳐 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말씀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을 한다' 또는 '신자'란 어떤 의미를 다고 있는가? 진정한 신앙인은 중생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중생(거듭난다)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건방지게 앞으로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을 쉽게 자세히 배우실 기회가 있는데 왜 제가 이런 얘길 하는가 하면 목사님이 가르쳐 주실 한느님과 제가 말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다르게 느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40년이 넘게 기독교에 몸담고 있는(?) 저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지금부터 그 얘길 하려고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대부분의 '신부님들이나 목사님들이 가르쳐 주는 그런 하나님은 처음의 예수님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에 따라 기독교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안경(신관)으로 예수를 보느냐에 따라 전통신학과 민중신학 또는 해방신학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처음 현재의 성서가 전부이고 그런 시각에서 예수를 해석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외경이라는 것도 있고 예수님이 절대권력을 가진 무시무시한 분이 아니라 나의 육신의 아버지 보다 더 사랑이 많으시고 인자하신 분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모습의 예수를 가르쳐 주느냐에 따라 신자들의 신앙을 전혀 다른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목사님이나 신부님은 현실보다 내세를 더욱 강조하고 인자하신 하나님보다 권위의 하나님, 절대자 하나님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의 모습을 보는 사람에 따라 예수님의 모습이 다르게 보이듯이 성경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집니다. 물론 기록된 사실도요. 예를 들면 신약의 5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성서는 마가 복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베드로의 수행원이 그것도 예수님이 죽은 후 60년이 지나 기록한 것이 최초의 신약성서인 마가복음입니다. 마가복음의 산상보훈에는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라고 기록돼 있지만 다른 복음서 그러니까 마태나 누가, 요한복음에는 '그 산상보훈 앞에 '마음이'라는 말이 더 추가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 성경은 성령의 인도에 따라 일점 일획도 보태거나 빼서도 안 된다는 사람들(無誤說)이 그걸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겁니다. 이것만 보아도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들의 종교에서 부와 권력과 손잡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지요.

 이제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봅시다.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 예수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신앙생활은 헛수고일 뿐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구세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천주교, 개신교...) 선지자일 뿐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보는 사람(유대교, 이슬람교)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다니시기로 한 교회(개신교)는 예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다'라고 믿음으로서 성립한 종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삼위일체'(성부인 야훼와 성자인 예수 그리고 성신인 성령)이신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성부는 무엇이고 성자는 뭔가 그리고 성령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건 절대자 야훼=예수=성령이라는 다른 이름 같은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신. 삼위일체의 신을 어떤 모습을 믿어야 하는가?'
 자비의 신인 예수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복수의 신인 구약의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 구약성서에 나타난 신은 복수의 신, 위엄의 신으로 나타나고,. 신약성서의 신은 죄를 지은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주시는 자비스런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공포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엄부(嚴父) 아래서 자란 자녀처럼 권위에 복종하는 순종적인 신앙인이 되거나 이중인격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비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발 하니님이 무서워 마음에도 없는 자선을 베푸는 그런 신앙인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두서 없는 글을 마치겠습니다. 제발 제 좁은 신관(神觀)이 선생님의 신앙생활에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