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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16 버스 안에서 특정 종교방송, 어떻게 생각하세요? (94)
  2. 2010.12.24 손님이 왕이라고...? 천만에요 (29)
정치2011.03.16 23:38



버스에 올라서자말자 급출발하는 바람에 버스 중간까지 가서야 겨우 멈춰 설 수 있었다. 운동신경이 둔한 사람이나 노인이라면 어김없이 한 쪽 구석에 곤두박질이라도 쳤을 정도다. 나는 내가 탈 때만 그렇게 급출발을 한 줄 알았는데 다음 정류소에서 탄 사람도 가까스레 손잡이를 잡고서야 균형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계속 그렇게 급정거, 급출발을 계속하고 있었다. 앉아 있는 사람은 앞사람의 등받이에 부딪힐 정도로 엉덩이를 들었다가 겨우 앉기를 정류소마다 반복하며 가야했다.

난폭운전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내가 탄 버스는 기어조차 오토가 아니라 스틱인 모양이다. 손님들은 운전기사가 기어를 변속할 때마다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불안정감에 시달려야 했다. 의자에 손잡이를 잡고 앉았는데도 안간힘을 쓰고 가느라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방송조차 승차한 후 5분 정도가 지나서야 겨우 들렸다. 그런데 그 방송이 예사 방송이 아니었다. 늘 듣던 방송이 아니라 평소 버스 안에서는 듣지 못하던 찬송가가 울려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운전기사가 독실한 기독교인이구나 생각하며 듣고 가는데 조금 지나니까 찬송 소리가 아니라 “믿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하며 목사님의 특유의 목소리로 바뀌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불특정 다수가 탄 버스 안에서 특정종교방송을 전체 승객이 들을 수 있도록 틀어놓을 수가 있을까? 그것도 통학시간도 아닌 비교적 조용한 차 안에서 개인의 소원을 담은 내용을 한 사람의 목사가 대신해 주는 기도를... 무려 30분동안 계속해 흘러나오는 방송을 말이다. 



‘한 두 사람의 기도를 해 주면 끝나겠지...’ 하고 참고 엉덩방아를 찍고 안간 힘을 쓰고 가는 승객에게 어떻게...? 시간에 쫓기는 막차처럼 급정거, 급출발을 반복하면서 달리는 차 안에서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사람들과 앉아서 안간 힘을 쓰며 가고 있는 사람들의 귀에 기도소리는 고역이었다. 그기다 운전기사는 운행중 핸드폰까지 맏으면서... 이런 기도방송을 정확히 11시에 시작 30분 동안 계속하다. 공무원 연수원 근처에 가서야 겨우 끝났다.

출퇴근 시간 버스 안에서 KBS나 MBC 방송은 흔히 듣는다. 그러나 특정종교 선전 방송인 종교방송을 왜 불특정 다수가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지...? 승객이 왜 운전기사의 성향에 맞춰 강제로 원하지도 않는 방송을 하는지...? 어떤 차를 타면 아침부터 뽕짝을 들으며 갈 때도 하 두번이 아니다. 퇴근 시간에 직장에서 피곤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조용히 쉬고 싶지만 시끄러운 방송으로 인내의 한계를 시험 당하기도 한다. 

억울하면 승용차를 사서 타고 다니라면 할 말이 없다. 서민들의 발인 대종교통이 운전기사의 성향에 맞춰야할 의무가 있을까? 하교 시간이면 학생들은 학교에서 못 다한 말을 버스 안에 한꺼번에 쏟아놓기라고 하려는 듯 시장판을 방불케 한다. 낯선 곳을 찾아가는 손님일 경우 안내 방송조차 듣리지 않는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안내방송이 아니라 문자로 안내를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서비스는 욕심일까?


대중교통수단인 버스 안에서 특정 종교방송은 어디가지 허용되는 것일까? 버스 안에는 기독교신자만 타고 가는 것이 아니다. 불교신자도 있을 수 있고 천주교 신자도 타고 갈 수도 있다. 무신론자들도 타고 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9시 54분에 타서 10시 40분까지 과속으로 다리는 버스에 시달리며 듣는 목사님의 악을 쓰듯 고성으로 올리는 기도소리는 차라리 발악으로 들릴 정도였다. 설사 기독교인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기도가 아닌 남의 개인 소원기도를 30분이나 듣고 감지덕지할 교인이 얼마나 될까?


돈 있고 말발이 서는 사람들은 모두 개인승용차로 다니기 때문에 승객은 아무렇게나 무시해도 좋다는 뜻일까? 버스 회사는 운전기사에게 이런 방송을 승객에게 들려줘도 좋다고 허용한 규정이라도 있을까? 한시간 가까이 거리는 거리는 40분만에 달리는 차 안에서 시달리며 짜증이 나서 온갖 생각을 다 했다. 새해가 되기 바쁘게 수지타산 운운하면서 차비를 올리는 대중교통. 서비스는 둘째 치고 승객을 무시하는 뽕짝이며 특정 종교방송을 손님에게 강제로 듣게 해도 좋은가?

버스회사와 시 당국에 묻고 싶습니다. 2007년 3월 17일 10시 54분 마산 경남데파트 앞에서 11시 40분 경남도청 옆 미술관 앞에서 내리기까지 운행한 122번 10**호 버스에서 방송한 특정 종교방송은 합법적인지요? 손님은 수요자로서 특정방송까지 강제로 들어야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를 답해 주시길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런 경우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0.12.24 22:58



“이번에 내리실 곳은 × × × ×입니다.
다음은 × × × ×입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버스 안에서 안내멘트가 나온다.

그런데 그 안내멘트 듣고 내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왜냐하면 낯선 지명을 그것도 조용한 곳도 아닌 시끌벅적한 버스 안에서 안내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더구나 학생들이 등하교라도 하는 시간이면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에 묻혀 안내멘트 자체가 들리지도 않는다.


지리를 잘 아는 곳이라면 몰라도 낯선 곳을 찾아 가는 승객이라면 안내멘트가 아니라 운전기사에게 부탁하거나 손님들에게 일일이 물어야 한다. 경남도 서울의 지하철이나 다른 시도 버스처럼 안내멘트가 아니라 자막으로 안내하면 안 될까? 예산이 얼마나 많이 드는 지 몰라도 버스요금은 철철이 올리면서 손님의 불편을 고려하는 서비스란 찾아 보기 어렵다.  

승하차 안내멘트만 불편한 게 아니다. 승객들은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 출입구로 가서 기다려야 한다. 혹여 뒷좌석에라도 앉아 있다가 버스가 멈춘 후 내리려면 기사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미리미리 내릴 준비를 왜 안하느냐?’는 것이다. 시간에 쫒겨 과속을 하는 시내버스 안에서 정류소에 도착하기 전에 출구로 걸어 간다는 것은 운동신경이 여간 발달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어렵다. 출퇴근 시간이라도 되면 승객은 빈번이 짐짝취급 당한다. 버스운행 회수를 늘리면 왜 안되는 지... 요금은 왜 올려야 하는지... ?
 

친절문제만 해도 그렇다. 처음 준공영제가 시행 되면서 기사님들이 '어서오십시오'라는 인사가 왜 그렇게 어색하게 들리든지... 그런 입에 발린 인사조차 한달도 채 못돼 언제그랬느냐는 듯 사라지고 말았다. 

인사는 둘째치고 시간에 쫒겨 급출발, 급정거 하는 차를 만나면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면 진땀이 다 난다. 곡예운전에 화가 난 승객이 "좀 천전히 운전할 수 없느냐?"고 항의라도 할라치면 기사님의 인상이 금방 험악해진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버스를 타면 젊은이가 앉아 있는 곳이 아니라 노인이 옆에 가 선다. 양보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요즈음 시내버스 풍속도는 학생이나 젊은이들이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안내판을 찢어서 보이지 않아 불편한 안내판> 

어쩌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젊은이를 보면 '요즈음도 저런 청년이 있나?" 싶다. 오히려 나이가 든 사람들이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어른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경우가 많다. 

하교 시간 버스 안에서 학생들은 '광야의 무버법자다. 버스에 올라타기 무섭게 떠든다. 어떻게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버스에서 말하려고 참기라도 한 듯 하다. 옆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목청껏 웃고 떠들고 휴대폰을 걸고 받고.... 대화의 내용도 옆 사람이 듣기 거북하기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자친구와 대화를 버스 안에서 그렇게 희희락락해야 하느지... 학교선생님에 대한 흉을 보는 소리는 차마 듣기가 거북하다.

요즈음 학생들은 빈 책가방을 메고 다닌다. 사물함이 있어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책가방도 없이 의자에 앉아 휴대폰으로 채팅을 하는 지 문자를 보내는지 혼자서 낄낄거리는 모습이 썩 좋지 않다. 경로석에 앉아 옆에 손잡이를 잡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노인들은 안중에도 없다. 버스 안에서 한께 탄 승객이 불편해 하지 않는 지, 노약자석은 노약자에게 양보해야 하는 지, 그 정도 개념도 없는 학생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교육이란 청소년들이 어른으로서 살아가는 길을 배우는 것이다. 나만 편하면...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면 ...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을 길러 어떻게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선생님들이 가르치지 않아도 고등학생 정도면 스스로 버스 '안에서 정숙하기, 노약자에게 자리 양보하기' 캠페인이라도 벌일 수는 없을까? 선생님들이 대부분 승용차를 타고 다니니까 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무법천지(?)를 알 턱이 없겠지. 교복을 입은 채 노약자를 옆에 세워놓고 다리를 꼬고 앉아서 ‘내 권린데... 누가 왜?...’ 이렇게 사는 모습은 보는 사람이 힘든다. 교육이 무너진 피해는 버스 안에서는 고스란히 노약자 몫이다.  


옛날보다 좋아지긴 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목적지가 다른 정류소에 방향표시도 없지만, 버스가 다니는 노선도가 언제 찢겼는지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

새로 도입한 버스정보시스템은 버스가 도착할 시간을 정확하게 안내하지 못한다. 아니 아예 예고도 없이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믿을 수도 없는 정보사스템은 왜 설치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태봉에서 마산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허허 벌판에 서서 3~40분을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기네들끼리 손님을 많이 태우려고 과속을 하다보니 한꺼번에 두서너대가 몰려다니기 때문이다. 

정류소를 지나면서 서행도 하지 않고 달리는 버스. 덕분에 기다리던 승객은 닭 쫒던 개 지붕쳐다 보기 일쑤다. 버스 운전기사나 버스업자들은 승객의 이런 불편을 알기나 한지.... 그러면서도 새해부터 또 요금을 올린단다. 왜 버스 요금을 올려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해가 바뀔 때마다 인상하는 요금에 승객은 이래저래 짐짝 취급이다. 돈벌이에 눈이 어두워 손님은 안중에도 없는 버스회사. 언제쯤이면 승객이 고객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을 지, 아직도 시내버스 서비스는 한 밤중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