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손님이 왕이라고...? 천만에요

by 참교육 2010. 12. 24.
반응형

“이번에 내리실 곳은 × × × ×입니다.
다음은 × × × ×입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버스 안에서 안내멘트가 나온다.

그런데 그 안내멘트 듣고 내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왜냐하면 낯선 지명을 그것도 조용한 곳도 아닌 시끌벅적한 버스 안에서 안내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더구나 학생들이 등하교라도 하는 시간이면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에 묻혀 안내멘트 자체가 들리지도 않는다.


지리를 잘 아는 곳이라면 몰라도 낯선 곳을 찾아 가는 승객이라면 안내멘트가 아니라 운전기사에게 부탁하거나 손님들에게 일일이 물어야 한다. 경남도 서울의 지하철이나 다른 시도 버스처럼 안내멘트가 아니라 자막으로 안내하면 안 될까? 예산이 얼마나 많이 드는 지 몰라도 버스요금은 철철이 올리면서 손님의 불편을 고려하는 서비스란 찾아 보기 어렵다.  

승하차 안내멘트만 불편한 게 아니다. 승객들은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 출입구로 가서 기다려야 한다. 혹여 뒷좌석에라도 앉아 있다가 버스가 멈춘 후 내리려면 기사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미리미리 내릴 준비를 왜 안하느냐?’는 것이다. 시간에 쫒겨 과속을 하는 시내버스 안에서 정류소에 도착하기 전에 출구로 걸어 간다는 것은 운동신경이 여간 발달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어렵다. 출퇴근 시간이라도 되면 승객은 빈번이 짐짝취급 당한다. 버스운행 회수를 늘리면 왜 안되는 지... 요금은 왜 올려야 하는지... ?
 

친절문제만 해도 그렇다. 처음 준공영제가 시행 되면서 기사님들이 '어서오십시오'라는 인사가 왜 그렇게 어색하게 들리든지... 그런 입에 발린 인사조차 한달도 채 못돼 언제그랬느냐는 듯 사라지고 말았다. 

인사는 둘째치고 시간에 쫒겨 급출발, 급정거 하는 차를 만나면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면 진땀이 다 난다. 곡예운전에 화가 난 승객이 "좀 천전히 운전할 수 없느냐?"고 항의라도 할라치면 기사님의 인상이 금방 험악해진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버스를 타면 젊은이가 앉아 있는 곳이 아니라 노인이 옆에 가 선다. 양보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요즈음 시내버스 풍속도는 학생이나 젊은이들이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안내판을 찢어서 보이지 않아 불편한 안내판> 

어쩌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젊은이를 보면 '요즈음도 저런 청년이 있나?" 싶다. 오히려 나이가 든 사람들이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어른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경우가 많다. 

하교 시간 버스 안에서 학생들은 '광야의 무버법자다. 버스에 올라타기 무섭게 떠든다. 어떻게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버스에서 말하려고 참기라도 한 듯 하다. 옆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목청껏 웃고 떠들고 휴대폰을 걸고 받고.... 대화의 내용도 옆 사람이 듣기 거북하기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자친구와 대화를 버스 안에서 그렇게 희희락락해야 하느지... 학교선생님에 대한 흉을 보는 소리는 차마 듣기가 거북하다.

요즈음 학생들은 빈 책가방을 메고 다닌다. 사물함이 있어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책가방도 없이 의자에 앉아 휴대폰으로 채팅을 하는 지 문자를 보내는지 혼자서 낄낄거리는 모습이 썩 좋지 않다. 경로석에 앉아 옆에 손잡이를 잡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노인들은 안중에도 없다. 버스 안에서 한께 탄 승객이 불편해 하지 않는 지, 노약자석은 노약자에게 양보해야 하는 지, 그 정도 개념도 없는 학생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교육이란 청소년들이 어른으로서 살아가는 길을 배우는 것이다. 나만 편하면...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면 ...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을 길러 어떻게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선생님들이 가르치지 않아도 고등학생 정도면 스스로 버스 '안에서 정숙하기, 노약자에게 자리 양보하기' 캠페인이라도 벌일 수는 없을까? 선생님들이 대부분 승용차를 타고 다니니까 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무법천지(?)를 알 턱이 없겠지. 교복을 입은 채 노약자를 옆에 세워놓고 다리를 꼬고 앉아서 ‘내 권린데... 누가 왜?...’ 이렇게 사는 모습은 보는 사람이 힘든다. 교육이 무너진 피해는 버스 안에서는 고스란히 노약자 몫이다.  


옛날보다 좋아지긴 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목적지가 다른 정류소에 방향표시도 없지만, 버스가 다니는 노선도가 언제 찢겼는지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

새로 도입한 버스정보시스템은 버스가 도착할 시간을 정확하게 안내하지 못한다. 아니 아예 예고도 없이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믿을 수도 없는 정보사스템은 왜 설치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태봉에서 마산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허허 벌판에 서서 3~40분을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기네들끼리 손님을 많이 태우려고 과속을 하다보니 한꺼번에 두서너대가 몰려다니기 때문이다. 

정류소를 지나면서 서행도 하지 않고 달리는 버스. 덕분에 기다리던 승객은 닭 쫒던 개 지붕쳐다 보기 일쑤다. 버스 운전기사나 버스업자들은 승객의 이런 불편을 알기나 한지.... 그러면서도 새해부터 또 요금을 올린단다. 왜 버스 요금을 올려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해가 바뀔 때마다 인상하는 요금에 승객은 이래저래 짐짝 취급이다. 돈벌이에 눈이 어두워 손님은 안중에도 없는 버스회사. 언제쯤이면 승객이 고객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을 지, 아직도 시내버스 서비스는 한 밤중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