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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14 기도(祈禱)는 주술(呪術)이 아니다 (12)
  2. 2010.11.21 사람은 왜 사는가(인생관)
종교2014.10.14 06:30


'기도(祈禱) 많이 해 주세요'... 교회에서 혹은 성당에서 목사님이나 신부님들이 강조하는 말이 기도다. 기도한 무엇일까? 국어사전을 보면 기도란 신이나 절대적 존재에게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빎. 또는 그 의식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그렇다면 돈을 많이 벌게 해주세요’, ‘우리학교에서 전교 1등 하게 해 주세요?’, 또는 미워하는 사람에게 벌을 내려 주십시오....’ 이런 기도도 들어 주실까?

 

성경에는 기도하라는 말이 참 많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44)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태복음 77~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를 향 하느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카 전서 5:16-18) 때문일까?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21:22)....

 

성서에 나오는 기도하라는 가르침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구하라는 말이 아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혹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그보다 더 큰 사람이 없느니라.’...와 같은 가르침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구하라고 하지 않았다.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 가는데 무릎을 꿇고 하느님 저 사람을 살려 주십시오.’라는 것은 기도가 아니다 진정한 기도는 위험을 무릅쓰고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는 일이다. 그것이 진정한 기도다. 성서에서 기도를 강조한 뜻은 교회나 집에 앉아 기도문이나 외울 것이 아니나 사랑을 실천하라는 뜻이다. 초대교회는 오늘날처럼 거대한 매머드교회에 수천명의 교인들이 목사의 설교를 듣고 주여...주여... 외치고 아멘을 거듭하는 그런 풍경이 아니었다.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들키는 날엔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해야 하는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지하나 다락방에 모여 각오를 다지는 결의가 곧 기도였다.

 

<이미지 출처 : 미디어스>

 

일주일 내내 세상에서 온갖 나쁜 짓을 다하면서 죄를 짓고 살다가 일요일 날 교회에 잠간 나가 내 죄를 씻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 속죄가 되고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새벽에 교회에 나가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다시 죄를 짓고 용서를 빌고 또 짓고 용서를 빌고 이렇게 반복하면 속죄가 되는가? 주변에서는 가난으로 고통 받고 살아가는 이웃이 많은데 더 많은 돈을 벌어 부자가 되도록 기도하는 기독교인들... 자신의 부가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감사하는 사람들... 나의 말과 행동으로 이웃이 상처받든 말든 나를 기독인외 되도록 한 것이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감사할 일인가?

 

이런 모습을 보면 기독교가 언제부터 구복신앙이 됐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마 항상 가톨릭교회에서는 성당 주변에 심지가의 길이라는 걸 만들어 놓고 그 길을 걷도록 권장하는 교회도 있다. 아마 그 길을 걸으면서 예수님의 가신 길을 가겠다는 결의를 하라는 뜻이겠지만 그 길을 걷는 것이 십자가의 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도에 대해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준 기도가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주기도문이라고 하는 기도는 번역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지만 원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 핵심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하라는 기도다. 다시 말하면 이땅에 천국이 이루어지도록 실실천하라는 명령이다. 이런 기도를 하라고 가르친 예수님의 뜻이 무엇일까? 지난 해 세계 인구는 713천만명이다. 이 가운데 기독교인(모든 교파 포함)의 수는 2354백만 명이다.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이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다. 이들이 이 땅이 천국을 만들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면 지금쯤 이땅은 어떻게 됐을까? 주문(呪文)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천을 하고 있다면 지금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이렇게 됐을까?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26)’ 기도는 주문이 아닌 실천이다. 주기도문을 주문처럼 외우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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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0.11.21 19:34



길가는 사람을 잡고 ‘어디를 가느냐?’고 묻어보면 대답 못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당신은 왜 삽니까?’ 이렇게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까?
언젠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그런 질문을 했던 일이 있다.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죽기 않으니까...‘, 먹기 위해서...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서...’ 등등 이런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과연 그럴까?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사는 목적이 겨우 죽지 않으니까,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일까?    


인도를 걷다보면 보도블록 사이에 이름 모르는 잡초가 뚫고 올라오는 생명의 신비를 본 일이 있다.

누가 씨앗을 뿌린 일도 없고 돌보는 이도 없는데, 더구나 여름 그 뜨거운 열기를 이기고 앙징스런 작은 꽃을 피운 모습을 보면 생명의 신비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름 모르는 들꽃에서 태풍과 폭우를 보면서 ‘사람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왜 사는 것일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2억분의 일(정자 수)이라는 경쟁을 뚫고 탄생한 존재. 지구상에 탄생한 6,882,639,202명(2010.11.20일 현재) 중의 하나인 나! 우연히 지구상에 태어났다가 먹고 자고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세월이 지나면 늙어 흙에 묻히고 마는 그런 존재가 인간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세월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삶의 전부일까?

르네상스 거장, 독일의 괴테는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구름 속을 아무리 보아도 거기에 인생은 없다. 반듯하게 서서 자기 주위를 보라! 자기가 인정한 것을 모두 붙들 수가 있다. 귀신이 나오든 말든 나의 길을 가는데 인생이 있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데는 고통도 있고, 즐거움도 있으리라. 어떤 경우에도 인생은 완전한 만족이란 없는 것이다. 자기가 인정한 것을 힘차게 찾아 헤매는 하루하루가 인생인 것이다.' 결국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 것, 자기 몫만큼의 인생을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리라.」고 설파했다.

어떤이는 인생의 허무를, 또 어떤이는 사랑의 위대함을 노래한다. 인생이란 끝없이 행복하기만 하다는 사람. 부족함이 없이 모두 갖추고 불편없이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또는 일신상의 병마와 평생동안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자기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나 지구상에 던져진 하나의 생명. 그 귀한 목숨이 왜 살아야 하는지 궁구하다 종교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 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본다. 전지전능한 신의 피조물인 인간은 신의 뜻에 따르고 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 삶으 ㅣ목적이며 영원한 삶을 찾는 길이라고 믿는다. 불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업인(業因)으로 3도 육계를 윤회하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四苦)에서 헤어날 길이 없는 존재라는 것이 불교의 인간관이다. 인생이 고통이라는 것을 깨닫고 3법인 사성제 8정도를 통해 해탈의 길을 찾는 것. 그게 인생으로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구상에 태어난 68억8천만명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가지 각색이다. '돈을 벌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돈을 버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의 한평생은 길어야 100년인데 ’먹고 마시고 즐기자, 조금이라도 더 늙기 전에 즐기며 살자'는 사람도 있다. '출세를 위해, 명예를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워 죽지 못해 사는 사람'도 없지 않다. 목적 없이 달리는 선수는 하루 종일 달려도 우승할 수 없다. 사람으로 태어나 ‘왜 사는 지’, ‘살아야 할 이유도 없이 죽지 않기 때문에 살아도’ 좋은가?

사람은 왜 사는가? 삶의 목적을 말하라면 개인의 가치관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의미 없이 죽지 않으니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을 모으는 재미로, 혹은 자식을 위해 나의 모든 걸 희생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명예욕을 채우기 위해, 또는 예술에 심취해 사는 사람도 있다. 내 한 몸 사라지면 그만이라며 먹고 마시고 즐겁게 살다 세상을 하직 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태어난 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런 문제는 자연과학이 밝힐 문제니까 여기서 거론하지 말자.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나는 세상에서 내가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내가 가진 것, 내가 알고 있는 것, 그걸 세상에서 필요한 사람에 게 나눠주며 살 수 없을까? 내가 힘든 것은 다른사람도 힘들고 내가 행복한 것은 다른 사람도 행복하다. 나 아닌 다른 나에게 작은 사랑을 나누며 삶의 허무를 극복할 수는 없을까? 훗날 그런 사람 덕분에 우리는 행복하게 사고 있노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도록....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