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는 이야기2012.07.10 06:30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

 

어버이날 노래 가사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언제 들어도 따뜻함이 가슴에 잔잔하게 전해 오는... 부르면 눈물이 날 것 같은 이름... 그 이름이 바로 어머니가 아닐까?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야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도 있겠지만 희생과 헌신, 그리고 끝없는 사랑을 연상하게 된다.

 

‘요즘 아이들 정말 불상함.

태어 난지 얼마 안 되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할까?

엄마들은 모처럼 육아에서 벗어나 자유 시간을 즐기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극심한 사회생활의 스트레스를 받고 니 쯧쯧...

친구와 선생님과 하루 종일 싸우고 경쟁해야하는 사회생활.

엄마들 제발 자유시간이고 뭐고 어는 정도는 자신의 아이는 자신이 키울 것.

나이에 맞는 적당한 사회생활은 좋으나 6~7사간의 단체생활은 정말 정말 아이들에게 무리임.

1학년은 점심 먹고 집에 오는데...

유치원과 어린이집 아이들은 6학년 보다 더 늦게 집에 옴.

아이들은 아무리 좋은 교육환경이나 장난감 보다 엄마 품이 더 좋은 것임’

 

‘불쌍한 요즘아이들’이라는 네티즌이 올린 댓글이다.

 

‘장시간 보내는 건 문제지만 잠간동안이라도 아이가 친구들과 건강하게 놀이하게 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요

아이도 사회생활은 필요한 거니까요,,,유치원에 9~12시까지 생활하고 집에와서 건강한 밥 먹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유치원, 어린이집 음식,,그렇게들 불안해하면서도...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밥 먹고 오길 바라는 부모님들,, 도시락도 싸주시기 싫어서... 유치원에서 급식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드신 부모님들,,반성 좀 하시면 좋겠어요.’

 

uni 라는 분이 쓴 댓글이다.

 

 

며칠 전 제 블로그에 ‘엄마들은 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좋아할까?’라는 글을 썼다가 위에 예시한 댓글을 보고 한동안 마음이 아팠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맞벌이나 건강 문제 등 특별한 경우야 아이들을 어쩔 수 없이 어린이 집에 보낸다고 치자. 그러나 전업주부이면서 아이를 아침부터 오후 네댓 시까지 보육원에서 보내는 것은 문제가 없을까? 위 댓글에서 볼 수 있듯이 엄마가 ‘자신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혹은 편하기 위해서...’ 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아침에 보육원 차를 타러 온 아이들을 보면 태어난 지 아직 두돌이 채 되지 않는 아이들을 비롯해 6살도 채 안 된 아이들을 보육원 차에 태워 보내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보내야 이유가 뭘까? 똑똑하기 키우기 위해?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서? 노래나 유희도 배우고 남들이 다 보내니까 놀 동무가 없기 때문일까?

6살도 채 안된 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보내는 게 좋기만 할까요?

 

 

어린이 집 교육은 장단점이 있다.

 

어린이 집은 체계적인 보육 시스템에 의한 교육과 국가로부터 보육료를 지원받고 잠재력을 개발하기 위하 노래 부르기, 춤추기, 책 읽기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사회성과 자신감을 길러줄 수 있다.

 

그러나 어린이 집에는 일대일의 지도가 아니라 2~30명의 어린이를 한명의 교사가 담당하게 된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한창 응석을 부릴 나이에 규칙에 따라 정해진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것이 과연 교육적이기만 할까? 특히 전문가의 견해에 따르면 어린이들의 사회성이 길러지는 시기란 출생 후 대략 36개월에서 48개월 사이라고 한다. 오전이나 오후 잠간동안이 아니라 하루 예닐곱 시간을 어린이 집에서 가두어 둔다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아동학대가 아닐까?

 

모든 사랑은 선(善이) 아니다. 방관도 안 되지만 지나친 사랑은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기도 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지나친 간섭은 아이들의 창의성이나 자립심을 망가뜨린다. 자녀가 부모의 분신이라고 생각하고 자녀의 입장이 아닌 부모의 생각대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는 없을까? 세상에서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교육은 없다.

 

- 이미지 출처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사는 이야기2012.07.08 06:28


 

7살 된 외손자를 학원에 보내려고 영유아원 차가 오는 아파트 앞에 나가보면 웬 보육원 차가 그렇게 많은지 놀랍다. 정말 ‘유치원이나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유모차에 태워 데리고 오는 아이에서부터 우리 손자처럼 예닐곱 살 된 어린이들이다. 유치원에 보내는 9시가 지나면 아파트 놀이터에는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젊은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맞벌이 부부의 경우야 어쩔 수 없지만 집에서 살림을 하고 있는 젊은 엄마들도 아이들은 당연히 영유아원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겨우 걸음마를 하기 시작하면 어린이 집은 기본이고 영어학원이나 미술학원, 피아노학원 등 적어도 3~4개의 학원에 보내는 게 대세(?)다.

 

엄마들은 왜 아이들을 영유아원이나 학원에 보내기를 좋아할까? 맞벌이 부부의 경우야 마땅히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으니까 당연하지만 전업주부의 경우도 아이들은 영유아원에 보내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좋은 시설, 어린이들을 자녀처럼 돌보는 유치원 선생님, 그리고 놀이기구까지 골고루 갖춘 영유아원을 어른의 눈으로 보면 참 좋다. 저런 곳에서 사랑하는 아이가 안전하게 뛰놀며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사랑이 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일까?

 

 

그런데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 보자.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이 교육적으로 좋기만 할까?

 

첫째, 어린이 집의 시설이나 놀이기구는 안전이 보장되고 친환경적일까?

둘째, 그들이 먹는 간식이나 음식은 친환경이나 유기농이며 그런 먹거리가 엄마처럼 사랑이 담겨 있을까?

 

셋째, 하루 7~8시간씩 아이들이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에서 과연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그들이 머무는 공간은 즐겁기만 할까?

넷째, 아이들이 배우는 놀이며 교육은 지적 정서적, 신체적 발달단계를 고려한 것일까?

 

다섯째, 아이들이 배우는 게 정말 교육적인 가치가 있다고 믿어도 좋을까?

여섯째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정부나 지자체의 영유어보육지원비를 받으니까 안 보낼 수가 없다거나 남들 다 보내는데 우리아이만 안 보내면 경쟁에서 뒤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은 아닐까?

 

일곱째, ‘영유아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노래나 유희도 잘하고 훨씬 똑똑해 지더라’는 부모의 시각에서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영유아원 교육은 장단점이 많다. 그들이 보육시설에서 머무는 하루 예닐곱 시간은 신체적 정서적인 발달단계에 맞는 것일까? 취학 전 어린이의 집단생활은 규칙적인 생활과 사회성을 기르는 등 많은 장점이 있다. 그러나 영유아원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집에 있는 아이들에 비해 더 많은 세균에 노출되기 때문에 감기나 결막염 등에 쉽게 걸리기도 하고 2~30명의 어린이들을 한 명의 보육교사가 돌본다는 것이 정말 교육적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깊이 생각도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 구글검색에서>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어린 아이들을 한반에 2~30명씩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하루 종일 유희며 노래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게 하지는 않는다. 가르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도록 하는 시간을 말들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교실이 아니라 자연과 친숙해 질 수 있도록 자연과의 만나 자연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들로 산으로 다니면 자연 속에서 바람소리, 새소리 풀벌레소리를 들으며 자연을 듣고 배운다. 우리아이들처럼 서너살만 되면 영유아원에 보내고 텔레비전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고 영어를 배우기 위해 카세트 기계음을 듣고 지내지 않는다. 이러한 생활에서 정서적인 안정감이나 창의성은 제대로 길러지기나 할까?

 

말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영유아원에서 생활하는 게 부담은 되지 않을까? 건강하게 뛰놀고 친구들끼리 놀이를 통해 체화해야할 인간관계나 인내심, 양보와 협동정신은 제대로 배우기나 할까?

 

취학 전 어린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영유아원보다 따뜻한 부모의 사랑이다. 왜 노래와 춤을 배우고 숫자를 배우고 글씨를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할까?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엄마 아빠의 사랑이다. 여건이 된다면 보육시설이 아니라 엄마가 돌보는 교육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위 사진은 본 내용과 직접관련이 없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라디오 선을 목에 휘감은 채 끌려 다니면서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어야 했고, 물로 고문당하고, 단소로 맞아가며 친구들의 온갖 심부름과 숙제를 대신해야했다.’

‘수업시간에는 공부하지 말고, 시험문제 다 찍고, 돈벌라 하고, 물로 고문하고, 모욕을 하고, 단소로 때리고, 우리가족을 욕하고, 문제집을 공부 못하도록 다 가져가고, 학교에서도 몰래 때리고, 온갖 심부름과 숙제를 시키는 등 그런 짓을 했어요.’

인터넷을 떠돌고 있는 자살한 학생의 유서의 일부다. 어쩌다 학교가 이 지경이 됐을까? 이런 자살이나 왕따 기사에 접하면 어떤 사람들은 ‘점수가 나쁘다고 자살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살아남을 학생이 몇 명이나 되겠어?“ 이렇게 자살한 연약한 의지를 탓하거나 ”폭력을 하는 가해자를 잡아 영원히 감옥에서 내놓지 말아야 한다’며 흥분하는 사람이 있다. 오늘은 학생 자살이나 왕따문제를 통해 교육문제를 생각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 우리나라 사람들치고 교육문제에 관한 한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정작 근본적인 문제, 교육이 무엇인지를 물어 보면 예상 외로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혹 교육을 시험점수로 생각하시는 분은 없을까요? 실제로 100점을 받아오면 ‘우리 아들최고...’라며 칭찬해 주시는 부모들이 많지요. 100점이란 학교교육이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뜻일까요?

난이도라는 게 있습니다. 교과담당선생님이 자신이 가르치는 교과목의 점수가 평균 3~40점이 나오면 창피를 당하니까 평균점수를 7~80점 수준이 나오도록 조정할 수 있다는 얘기지요. 이렇게 어려운 수준을 조절하는 난이도를 고려한 점수가 교육목표를 달성한 수치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출제자가 학생들의 인지도를 파악하기 위해 나타낸 수치 즉 평가 점수를 사회학에서는 ‘개념의 조작적정의’라고 한답니다. 개념 즉 ‘공부를 썩 잘 한다’를 ‘100’이라는 수자로 혹은 ‘보통이다’라는 표현을 ‘50’ 이렇게 나타내는 걸 ‘개념의 조작적 정의’라고 하지요.



옛날에는 교과점수는 ‘수우미양가..’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만 100점, 95점, 87점.. 이렇게 점수급간을 1점 단위로 차등화시켜 수자로 나타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100이라는 수치와 99라는 수치가 담고 있는 의미, 1등이라는 의미와 2등이라는 의미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요? 교육이란 지적인 측면 정의적인 측면 그리고 체력적인 측면 등 여러 영역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치로 환산된 점수라는 건 지식교과일 때만 가능합니다. ‘인내심이 많다. 교우관계가 좋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다...’ 이런 행동발달의 평가는 어떻게 할까요?

인성의 발달을 수치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인내심이 90점, 사회성이 87점, 책임감이 85점... 이렇게... 옛날에는 행동발달을 ‘가나다’로 평가해 성적표나 생활기록부에 기록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가를 하기 어려우니까 학생의 교과 성적이 좋으면 ‘가가가...’로 교과점수가 나쁘면 ‘다다다...’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평가조차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그걸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직 100점이냐, 90점이냐, 1등이냐, 2등이냐? 그것만이 관심의 대상입니다.


‘점수가 나쁘면 인성도 나쁘다?’ 정말 그럴까요? 아마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그 반대라고 하는 학생들이 더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그런 행동발달이라는 평가는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기에 지금은 사라지고 없습니다만 성적만능주의는 점수를 교육, 혹은 인성을 포함한 교육의 결과라고 단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원숭이나 늑대가 사람을 키우면 사람이 될까요? 원숭이가 될까요? 실제로 프랑스의 아비뇽동굴에서 발견된 늑대소년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전혀 사람의 행동을 하지 않는 늑대였습니다. 잃어버린 아이가 늑대 젖을 먹고 사람이 아닌 늑대화된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을 사회학에서는 ‘사회화’라고 합니다.

사회화는 어디서 이루어지는가?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교육, 즉 사회화는 어디서 이루어질까요? 물론 가정과 학교와 그리고 사회에서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회화가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에서 정말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물론 학교에서는 의도적인 교육 즉 커리큘럼을 통해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교육을 하는 곳이요, 가정과 사회는 의도적인 교육기관이 아니라 무의도적인 교육을 하는 곳이라고 보는 게 옳습니다.


오늘날 가정에서 교육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물론 경제력이 있고 부모의 교육관에 따라 양질의 가정교육이 가능한 가정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학교와 학원 그리고 새벽같이 학교에 가 밤늦게라야 돌아오는 가정에서 교육이 가능하다고 믿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교에만 다니면 사람다운 사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게지요. 100점만 받으면 인성도 좋아지고 출세(?)도 하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학교교육은 교육법이나 학교교육목표를 달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상급학교진학을 위한 점수따기 경쟁장이 된 지 오래입니다. 교육이 없는 학교! 그런 학교에 학교폭력이며 왕따가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더불어 사는법을 가르쳐 주지 않고 상대방이 무너져야 내가 살아남는 승자제일주의 교육현장에 어떻게 건강한 아이들이 자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사회는 어떨까요? 오늘날 우리사회는 교육이 아니라 건강한 아이들을 황폐화시키는 장이 된 지 오랩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학교 앞 문방구나 만화방을 한번 보십시오. PC방이며 공공기관 그 어디에 내일의 주인공이 될 학생들을 배려하고 안내하는 그런 교육의 장이 마련해 둔 곳이 있습니까? 교육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는 곳을 찾아 볼 수 있습니까? 돈만 벌 수 있다면 아이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상업주의의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속)


이 기사는 충남도청인터넷신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chungnam.net/news/articleView.html?idxno=76141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놀이를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

어쩌면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년기와 소년기 그리고 청소년기를 놀지 못하고 운명적으로 ‘공부’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야하는 존재가 된다.

“놀지 말고 공부 좀 해!...”


우리나라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부모나 선생님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다. 놀이는 무엇이고 공부는 무엇일까?

                           
놀이란 '특별한 목적이나 생존 자체에는 직접 관계가 없을지라도 그것 자체로서 흥미가 있는 것을 스스로 느끼는 활동의 총칭이다'(교육학 대사전)

놀이란 인간의 ‘생존 활동’과 ‘일’에 해당되는 활동을 제외한 신체적, 정신적 활동의 모든 것을 말한다. 놀이는 일과 달리 생활에서의 이해관계를 떠나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무목적적 활동으로써 즐거움과 흥겨움을 동반하는 가장 자유롭고 해방된 인간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막연한 휴식은 놀이가 아니다. 일정한 육체적․정신적 활동을 전제로 하며, 정서적 공감력과 정신적 만족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삶의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즐기고자 하는 의지적 활동이 바로 놀이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전국놀이교사모임 놀이자료를 보면 놀이란 :

첫째, 자발적인 참여가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 재미있어야 한다.
셋째, 열린 구조를 이루고 있어야 한다.
넷째,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탈성이 있는 자유스러움과, 생활상의 이해관계를 떠나 있어야 한다.
다섯째,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고 정의하고 있다.


상급학교 진학이 목표가 된 교육에서 부모님들은 일반적으로 ‘노는 것과 공부는 것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며 놀이는 공부를 방해하는 시간 낭비이기에 공부를 위해선 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놀이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공부나 일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첫째, 놀이는 몸을 골고루 잘 자라게 한다.
둘째, 놀이는 사회성을 길러준다
셋째, 놀이는 긍정적인 자아관을 가지게 하고 심리적인 안정을 가져다준다.
넷째, 놀이는 아이들의 창의성을 자극하며 키운다.
다섯째, 놀이는 그 사회의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다.


이제 우리 부모들은 놀이는 공부와는 별개의 것, 공부하는 데 거추장스러운 것, 시간 낭비라고 여기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어른의 입장에서 공부만을 강제하기 위함이 아닌지... 부모의 과욕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억압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민족문화백과사전 - <놀이> 임재해], [전래놀이 101가지, 놀이 중심의 학급운영 연수자료 - 이상호] 의 내용 중 전국놀이교사모임 놀이자료를 제인용한 것이다.

오늘은 이 자료 중에서 '인사놀이'와 '짝찾기 놀이'를 소개한다. 모처럼 만난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한가위 놀이시간을 만들어 보시면 모처럼 만나 서먹서먹한 친척들간의 관계가 보다 빨리 화목한 관계로 바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 인사 놀이 -

- 먼저 인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 말없이 인사하는 방법 : 악수하기, 껴안기, 코비비기, 눈인사, 절 등
   . 몸의 한 부분을 부딪치며 하는 인사 : 엉덩이, 손바닥, 무릎, 종아리 등
   . 악수하면서 인사말을 건네는 인사 : 아침, 점심, 저녁, 잠자리 들기 전, 등교길,
     하교길 등
   . 비슷한 사람과 인사 : 성격, 키, 다리 길이, 눈 크기, 좋아하는 음식 등
   . 인사 방법과 인사말이 사람에 따라 다른 경우 : 기분이 울적할 때, 화가 났을 때,
    기분이 좋을 때, 피하고 싶은 사람을 우연히 만났을 때 등
  - 자유롭게 손뼉 치며 돌아다니다가 선생님이 “인사합시다!” 하면 선생님이 말한 방법대로 최대한 많은 사람과 인사하며 인사말은 간단히 건넨다.
  - 선생님이 “그만”하면 다시 손뼉 치며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 다시 선생님이 새로운 인사법을 제시한다.
  - 선생님이 “인사합시다!” 하면 새로운 방법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과 인사한다.
  - 많은 아이들과 인사할 수 있도록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돌아다녀야 한다.
  - 여러 나라의 다양한 인사법으로 해도 좋다.
   . 필리핀 : 서로 껴안고 두 뺨을 차례로 맞댄다.
   . 인도 : 오른손을 자기 입에  살짝 대었다가 떼면서 “살라 모어” 하며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고 다시 왼손으로 같은 방법으로 “살라 모어” 하고 마지막에 양손을
     떼면서 “오! 살라 모어” 한 뒤 서로 부둥켜 끌어안고 흔든다.
   . 중국 : 양 팔꿈치를 양손으로 감싸 잡고 “쎄쎄 니 하우마!” 하면서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 프랑스 : 악수를 하거나 가볍게 껴안고 볼을 댄다.
   . 일본 : 손을 앞으로 모으고 상체를 90도 가까이 숙이며 인사한다.
   . 독일 : 가슴을 가볍게 좌우로 맞대고 포옹한다.
   . 말레이지아 : 양어깨를 교대로 댄다.
   . 티벳 : 자신의 귀를 잡아당기며 혀를 내민다.
   . 아프리카의 수와히리족 : 서로 엄지손가락을 번갈아 쥔다.
   . 뉴기니 : 서로 깍지를 끼었다가 ‘탁’ 소리 내고 “아마카네”라고 한다.
   . 통가 : 두 눈을 부라리고 위아래로 굴리면서 “마로엘레이”라고 한다.
   . 네팔 : 두 손을 이마에 대고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나마 스테”라고 인사한다.
   . 서로 정열적으로 끌어안으며 아침에는 “부에노스 디아스”, 점심에는 “부에노스
     따르데스”, 저녁에는 “부에노스 노체”라며 인사한다.
   . 에스키모 : 원래 서로 코를 비비면서 인사한다. 그러나 놀이에서는 양손으로 
    코주부 코를 만들고 서로 비비면서 한 사람이 “부댄니” 하면 상대는 “흥흥” 하며
    콧소리를 내며 인사한다.
  - 다양한 방법으로 인사를 나누며 친밀감을 높일 수 있다.

                              - 짝찾기 놀이 -

-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서로의 손을 만지고 느낌을 확인한다.
  - 그 다음 모두 눈을 감은 상태에서 다치지 않도록 천천히 움직여 자리가 골고루 섞이도록 한다.
  - 그 상태에서 눈을 뜨지 않고 사람들의 손만 잡고 자기 짝을 찾는 것이다.
  - 중간에 눈을 뜨거나 말을 해서 찾지 않도록 하며 손이 아닌 다른 곳을 만지지 않도록 주의를 준다.
  - 짝을 찾았다고 자신하면 밖으로 나와 눈을 뜨고 확인해 본다.
  - 만약 맞지 않으면 다시 눈을 감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자기 짝을 계속 찾는다.
      짝 찾기 - 둘
  -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 제목을 종이에 쓴다.
  - 이것을 다 모아 골고루 섞은 뒤에 다시 하나씩 나눠준다. 이때 자기가 쓴 종이를 받으면 다른 것으로 바꾼다.
  - ‘시작’하면 처음에 자기가 종이에 쓴 노래를 중간에 멈추지 않고 계속 해서 힘껏 부르고 동시에 자기가 들고 있는 종이에 적힌 노래제목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누군지를 잘 듣고 찾아간다.
  - 자기가 들고 있는 종이에 적힌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을 찾으면 자기 종이에다 그 사람의 확인 서명을 받는다. 또 자기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찾아온 사람에게 마찬가지로 확인 서명을 해준다.
  - 이렇게 확인 서명을 해주고 받으면 밖으로 나온다. 하나라도 안 됐다면 나오지 말고 계속 해야 한다.
     짝 찾기 - 셋
  - 먼저 일정한 소리(악기 소리, 비명 소리, 동물 소리, 두레 구호 등)를 정하고 짝끼리 또는 두레끼리 그 소리를 확인해 본다.
  - 확인이 끝나면 모두 눈을 감고 다치지 않도록 천천히 움직여 위치가 골고루 섞이도록 하고 그 상태에서 미리 정한 공통된 소리를 내면서 자기 짝을 찾는다. 중간에 눈을 뜨거나 다른 소리를 내면 안 된다.
  - 두레 구호 같은 경우는 두레 끼리 찾아서 둥그렇게 서서 손을 잡고 서본다.
  -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을 수 있는 집중력에도 도움이 된다.
  - 다른 방법으로는 처음에 다같이 둥그렇게 서서 서로 자기 ‘좌우명’이나 ‘존경하는 인물’ 등을 이야기 하고 자기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무엇을 이야기 했는지 잘 기억한다.
  - 그런 다음 모두 눈을 감고 다치지 않도록 천천히 움직여 위치가 골고루 섞이도록 하고 그 상태에서 자기 ‘좌우명’ 등을 크게 외치고 동시에 자기 왼쪽과 오른쪽에 있었던 사람의 ‘좌우명’ 등을 잘 들어 그 사람들을 찾아 왼손과 오른손으로 서로 손을 잡는다.
  - 먼저 짝을 찾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 짝을 다 찾을 때 까지 그대로 눈을 감고 기다려준다.
  - 모두가 찾았다고 하면 눈을 떠서 확인해 본다.
  - 모두가 정확하게 찾았으면 자연스럽게 둥그렇게 설 수 있다.
      짝 찾기 - 넷
  - 동물의 암수(암소, 황소, 등...) 또는 관련 있는 동물(뱀과 장어, 귀뚜라미와 여치, 등...)이 표시된 쪽지를 한 장씩 나누어 준다. 이때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혼자서만 본다.
  - 각자 확인이 되면 ‘시작’ 소리와 함께 쪽지에 적힌 동물을 몸짓으로 표현하다. 이때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
  - 자신이 표현하는 동물과 같다고 생각되는 사람끼리 암수 서로 짝을 짓는다.
  - 짝이 맞다라고 생각되면 서로 애정표현을 하고 나서 쪽지를 펴서 확인한다.
  - 만약 맞지 않으면 다시 짝을 찾아 나선다.
  - 모두 짝을 찾은 뒤에는 짝끼리 나와서 몸짓을 해보고 다른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복 어떤 동물인지 어떤 동물과 관련된 상황인지를 맞춰 보는 것도 재미있다.
    짝 찾기 - 다섯
  - 두 사람씩 짝을 지어 한 사람은 눈가리개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몸으로 적당한 조각을 만들어 본다.
  - 눈가리개를 한 사람은 자기 짝의 몸 조각을 손으로 충분히 만지고 나서 똑같은 모습으로 하고 그 옆에 서 본다.
  - 다 되었다고 생각하면 눈을 뜨고 비교해 보고 역할을 바꿔서도 해본다. 
  - 또 다른 방법으로는 5명씩 두레를 만들고 그 중에서 두 사람만 짝을 짓고 다른 사람은 잠깐 기다리고 있는다. 짝을 지은 두 사람은 앞에 했던 같은 방법으로 한 사람은 몸 조각을 만들고 또 한 사람은 눈가리개를 하고 나서 자기 짝의 몸 조각을 확인한 다음 잠깐 기다린다. 그러고 나면 기다리고 있던 다른 세 사람이 앞에서 몸 조각을 만든 사람과 최대한 비슷하게 몸 조각을 만들어 그 옆에 선다. 그 다음에 다시 눈가리개를 한 사람은 여러 몸 조각을 확인해 보고 자기 짝의 몸 조각을 찾아 똑같은 모습으로 하고 그 앞에 서 본다. 다 되었다고 생각하면 눈을 뜨고 비교해 보고 역할을 바꿔서도 해본다.
     짝 찾기 - 여섯
  -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동요나 가요 중에서 인원수의 반만큼의 노래 제목을 두 장씩 적은 쪽지를 준비하고 이를 각각 다른 종이상자에 넣어둔다.
  - 인원을 반으로 나눠서 한 쪽은 한 상자에서 쪽지를 하나씩 뽑고, 나머지 사람들도 다른 상자에서 쪽지를 하나씩 뽑는다.
  - 이렇게 되면 각각 한 사람씩 같은 노래 제목을 가지게 된다. 이때 쪽지를 펴서 자기만 보고, 이를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
  - 그러면 불을 끄고 깜깜해진 곳에서 “자, 이제 여러분은 같은 노래를 가진 짝을 찾아야 하는데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오직 콧노래로만 자기 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짝은 찾은 사람들은 자기 짝과 손을 잡고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기 바랍니다. 그러면 시작하세요!”하고 알려준다.
  - 콧노래 대신 휘파람을 불어서 찾도록 할 수 있다.
     짝 찾기 - 일곱
  - 각자 노래(동요, 만화, 가요, 트로트, 락 등) 한 소절(5~10자 내외)을 정해 불러보고 그 노래에 맞는 간단하면서도 재미난 몸짓을 넣어 다시 불러본다.
  - 이젠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다른 사람과 만나 인사를 나눈 후 노래와 몸짓을 보여주고 나서 서로의 노래와 몸짓을 바꾼다. 즉 자신의 노래를 버리고 새로 만난 상대방의 노래와 몸짓을 하면 된다.
  - 위와 같은 방법으로 여러 사람(3~4번 정도가 적당)과 만나 노래도 바꾸고 새로운 몸짓도 익혀본다.
  - 어느 정도 했으면 이젠 원래 자기 노래와 몸짓을 찾아본다. 즉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과 만나 인사를 나눈 후 노래와 몸짓을 보여주는데 이때 상대방이 자신의 노래와 몸짓을 하고 있으면 제대로 찾은 것이다. 그러면 찾은 사람은 제자리에 앉고 상대방은 다시 새로운 노래와 몸짓을 받아서 다른 사람을 찾아간다.
  - 중간에 노래가 사라지거나 동작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끝까지 찾지 못하는 사람도 생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추적할 필요는 없으며 노래와 몸짓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만난다는 점을 중심에 두면 된다.
  - 같은 방법으로 노래 대신 자신의 기본 신상(이름과 나이, 소속, 취미, 성격 등의 몇 가지 정보)으로 해도 괜찮다.

 [민족문화백과사전 - <놀이> 임재해], [전래놀이 101가지, 놀이 중심의 학급운영 연수자료 - 이상호] 의 내용 중 전국놀이교사모임 놀이자료를 제인용한 것이다.

http://chamsil.eduhope.net/bbs/index.php?board=noli

 
민족의 아름다운 명절, 가족과함께 넉넉하고 행복한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1.02.20 20:58



장면 #. 1 

너댓 살과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남자 아이가 목욕탕 안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 바가지로 물을 퍼서 서로 껴 얹기를 하면서 고함을 지르고 목욕탕 안을 뛰어 다니고 있다.

아버지는 두 아이의 이러한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제지하지 않고 있다. 한쪽에서는 역시 그만한 또래 아이가 아버지가 몸을 씻고 있는 동안 물을 바가지에 가득 받아 쏟아버리고 또 받아 쏟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이가 하는 행동을 보면서도 제지하려 하지 않는다. 
   

                                     <그림 : '상우일기(SangwooDiary.com )'에서>
장면 #.2

학생들의 통학로에 승용차가 가로막고 있다. 몇 년 전 고등학교 통학로 옆에 카센터가 들어서면서부터 인도가 수리 차를 대기시켜놓는 장소가 됐다. 대형차 쓰레기 청소차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가는 밤 10기가 넘은 시간까지 인도를 차지하고 있다. 가끔씩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내닫다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기도 한다.

장면 #. 3

‘빵빵~!’ 걸어가는 사람 뒤에서 갑자기 택시기사가 경적을 눌러댄다. 택시를 타지 않겠느냐는 신호지만 너무 가까이서 갑자기 듣고는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다. 외출복 차림을 하고 길을 걸으면 하루에도 수없이 이런 일을 당하곤 한다. 

                                                       <사진 : 학벌없는 사회 광주모임에서>
장면 #.4

수학능력고사가 끝나면 ‘축 김00, 최00 서울대학 00학과 합격!“이라고 쓴 플래카드가 교문에 걸린다. 때로는 “본교 제 0회 졸업생 000 사법고시 합격!”이라는 플래카드도 교문에 걸리곤 한다. “우리학교는 이렇게 일류대학일 입학시킨 훌륭한 학교입니다” 그런 뜻인가? 혹은 ’이렇게 출세한 사람이 너희들의 선배이니 긍지를 가지고 공부해라!” 그런 뜻인가?

아이가 차도를 무단횡단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구경만 하고 있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목욕탕에서 고함을 지르고 물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고도 아버지라는 사람은 “목욕탕에서는 장난치는 곳이 아니야!”라고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어른의 도리가 아니다. 물을 낭비하고 있는 아이를 보고는 당연히 ‘물을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줘야 한다. 부모라면 아이가 위험에 처하는 것을 막아야 하듯이 잘잘못을 가릴 수 있도록 깨우쳐 주는 게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내가 필요하다면... 내가 좋다면... 내게 이익만 된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내게 이익이 되더라도 상대방에게 불편을 주거나 불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참는 것이 도리다. 이러한 사회성은 가르쳐 주지 않으면 저절로 알 수 없다. 사회란 개인과 개인이 모여서 만든 집단이다. 그렇다면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협조하지 않으면 공동체가 유지 될 리 없다. 학생들의 통학로에 차를 세워 놓거나 무심코 걸어가는 사람 뒤통수에 경적을 울리는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 같은 가치를 무시한 반민주적인 행동이다.

학교의 교육목표가 일류대학 입학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범상한(?) 인물만 길러내는 게 아니라 건강한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일 또한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한 두 사람의 성취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수가 들러리를 서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보다 성숙한 사회란 자신의 작은 양보를 통해 다수가 함께 행복해 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다. 부모도 교사도 교육을 포기하면 2세들은 어떤 형의 인간으로 자랄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분류없음2011.02.19 05:52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이름 어머니~!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있다면 그건 ‘어머니’가 아닐런지요?
사랑의 대명사, 헌신과 희생의 대명사이기도 한 이 땅의 어머니!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도 더 많은 것을 못해 줘 안타까워하시는 사랑의 샘. 어머니! 가장 어려운 여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사랑과 행복을 만드는 사람.

자식과 남편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주고 자신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 그런 어머니가 언제부터인지 옛날 어머니의 모습을 잃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사진 : 막걸리 (makgulry) 블로그에서 >

옛날의 어머니는 자녀들을 어떻게 길렀을까요? 한석봉의 어머니 상에서 볼 수 있는 어머니 상과 오늘날 마마보이로 키우는 어머니상은 양육 방식에서 크게 다른 모습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세워이 지났다고 달라질 리 있겠습니까? 자식을 사랑하는 본질적인 마음이야 마찬가지지만 양육방법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귀한 자식일수록 매로 키워야 한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머니들은 어떻습니까? 놓으면 꺼질새라 불면 날아갈새라’ 오냐오냐 하고 키우는 것이 요즈음 어머니들이 아닐까요?

어머니 역할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할 수 있을까요? 독수리는 둥지를 꼭 절벽 위 높은 곳에 짓는다고 합니다. 새끼들을 하늘의 왕자로 키우기 위해 알에서 깨어나 일정 정도 시기가 지나면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 낸다고 합니다. 그 새끼가 살기위해 날개 짓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늘의 왕자로 키우기 위해 어미는 잔인할 만큼 강한 새끼로 키우는 동물은 독수리뿐이 아닙니다. 옛날 우리 부모님들이 자녀들이 훌륭하게 자라게 하기 위해 이와 비슷한 훈련을 시켰다는 것은 읽히 알고 있는 예깁니다. 옛 어른들은 ‘귀한 자식일수록 엄하게 길러라’라고 하셨습니다. 옛 어른들이라고 왜 자식을 품에 안고 키우기를 싫어했겠습니까?

                                          <사진 자료 : 아름다운 음악여행 카페에서>

그런데 요즈음 어머니는 어떻습니까? 놓으면 꺼질새라 불면 날아갈새라 오냐오냐.. 1등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해주고... 영어학원, 미술학원, 컴퓨터 학원... 5~6군데 학원에 보내야 안심이 되고.... 이러한 어머니들로 학원에 가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다는 것이 요즈음 아이들입니다.

어머니가 아름답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정을 위해 자식을 위해서라며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야겠다는 일념이 아닐런지요? 그렇다면 지금처럼 놀 친구도 없을 만큼 학원으로 학원으로 내몰면 과연 내 자녀가 훌륭한 인재로 자랄 수 있을까요?

지금처럼 5~6군데 학원을 개미 쳇바퀴 돌듯이 내 몰면 우리 '아이가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혹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식이 성공한 후 고생고생해서 키운 어머니까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오만불손한 그런 인간이 되기를 원하시는 건 아니시겠지요?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우습게 아는 그런 인간이기를 원하시는 건 더더욱 아니시겠지요? 지금처럼 우리아이를 키우시면 장차 ’어떤 모습의 사람으로 자라 있을까?’를 예상해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어머님들 중에는 우리 아니가 놀고 있으면 불안해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혹 놀이가 공부보다 낫다는 말을 들어보신 일은 있으신지요? 요즈음은 학원이며 텔레비전 앞에 시간을 뺏기면서 옛날 아이들처럼 딱지 따 먹기나 말타기, 고무줄 놀이, 공기돌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 졌습니다. 아니,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는 세상이 됐습니다. 산업화되기 전만 하더라도 날이면 날마다 동네마다 골목마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로 늘 시끌벅적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동네 아이들과 모여 해가 지는 줄도,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놀다 “00아! 고만 놀고 밥 먹어라~!” 라는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서야 “우리 내일 또 놀자”며 하나 둘 뿔뿔이 흩어지곤 했습니다. 봄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감꽃을 주우러 가고 여름이면 구슬치기, 딱지 따먹기로, 밥 먹을 시간도 잊고 놀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겨울에는 삼촌이나 형이 만들어 준 썰매를 타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던 재미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얼음판에서 넘어지고 물에 빠져 양말이며 옷이 다 젖어 발이 어는 줄도 모르고 얼음지치기를 하던 기억은 60이 넘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옷이 젖으면 꾸중이라도 들을 새라 젖은 채로 신고 다녔던 일이며 소먹이는 친구 따라 강변에서 씨름도 하고 이름 모르는 풀꽃을 따던 일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겨울이면 양지바른 곳에 모여 말 타기며 숨바꼭질이며 하루해가 언제 지는 줄도얄보와 타협 몰랐고 여름이면 냇가에 서 물놀이며 고기잡이며, 비가 오는 날이면 옷이 냇가에서 고기를 잡고, 가을이면 벼가 누렇게 익은 논둑사이로 메뚜기를 잡느라 어둠살이가 들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지요. 제기차기며 딱지 따먹기, 구슬치기, 말 타기, 술래잡기는 놀아도 놀아도 신나고 재미있었습니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사립문 밖에서 “00야! 노올자~!” 하고 부르면 잠도 깨지 않은 눈을 비비고 나가 배고픈 줄도 모르고 놀이에 빠졌던 재미를 잊지 못하는 어른들도 많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논다는 것은 교육적으로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요?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아이들이 논다는 것은 그냥 재미를 위해 시간만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놀이를 통해 규칙도 배우고 질서며 협동심, 인내심, 상대방에 대한 배려, 양보와 타협의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이러한 놀이를 통해 배우는 친구 간의 우정이나 사회성은 학원이나 교실에서 교과서를 통해 배울 수 없는 중요한 학습입니다. 인간관계며 사회성은 학원이나 교실에서는 배울 수 없는 귀한 경험이지요. 교실에서 배우는 우정이나 인간관계는 놀이를 통해 배우는 체험과는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인내심을, 규칙과 질서를. 양보와 타협을, 점수로''' 가치 내면화 시킬 수 있겠습니까? ...(계속)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