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정시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3.31 가치관에 따라 양분되는 사회, 왜? (8)
  2. 2013.07.03 한국대사관 도청하는 미국, 우방 맞나? (9)
  3. 2011.03.08 역사 속에 숨은 진실 찾기 (41)
정치2015.03.31 06:55


대한민국은 지금 애국자와 종북세력이 살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정부정책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어김없이 종북세력 딱지가 붙는다. KAL858폭파사건이나 천안함사건같은 대형 참사가 터지기만 하면 북한소행이 되고 의문을 제기하거나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사람은 빨갱이가 되기 일쑤였다. 빨갱이라는 말의 색깔이 바래지고 또 빨갱이 색깔로 벤치마킹한 새누리당 때문에 빨갱이는 종북세력이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한반도 반쪽 대한민국에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이미지출처 : 녹나무 블로그에서>

 

빨갱이종북세력이라는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해방정국에서 지지기반이 빈약한 이승만과 미군정의 필요에 의해 등용된 친일세력들이 남한정부를 장악하면서 부터다. 해방정국에서 친일잔재청산이라는 시대적인 요구를 침묵시키고 일제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억압을 당하며 살아온 민초들을 침묵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친미=애국’, '반미=매국'이라는 이데올로기였다. 이런 이데올로기가 분단과정에서 찬탁=매국이요, ‘반탁=애국이라는 논리로 진화한다.

 

일제시대 왜왕의 은혜를 입고 고급인력이 된 친일세력의 후예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각 영역에서 엘리트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심지어 변절한 종교인들까지 가세해 그들과 한통속이 된다. 반면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의 후예들은 어떻게 됐을까? 여기서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들의 후예들은 목숨을 연명하기조차 어려운 비참한 삶을 영위해 오고 있었다. 이들 두 세력 즉 애국세력과 친일세력은 처음부터 개임이 되지 않았다. 잔존하는 양심세력이나 반정부세력은 보도연맹사건이나 제주항쟁과 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철저하게 청소 당한다.

 

그들이 권력을 확고하게 차지할 수 있었던 기회는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이었다. 전쟁을 겪으면서 북한은 물론 민족의 반쪽인 북한 동포들까지 모두가 악의 축이요, 섬멸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친일세력의 정권장악과정은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면서 지배세력으로서 그들의 확고한 기반을 다지게 된다. 북을 호의적으로 표현하거나 민주주의의 금과옥조인 표현의 자유까지도 예외 없이 처벌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이 지키게 된다. 양심의 자유는 허용하면서도 사상의 자유가 없는 대한민국. 그 반쪽 자유가 만든 실상은 어떤가?

 

세상에는 법이 없어도 아무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상의 자유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는 지식인도 있다.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지 못하면 질식할 것 같은 고통을 견디기 어려운 사람도 함께 사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분단의 세상에서 오히려 안심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분단의 비극 앞에 몸부림치는 사람도 있다. 이제 자본주의라는 괴물은 양심도 사상도 이기주의와 상업주의가 스나미처럼 휩쓸어 가고 그 폐허에 열패감이나 허무주의자들이 방황하는 찬란한 쾌락만 남겨 놓았다.

 

 

 

<이미지출처 : 녹나무 블로그에서>

 

이해관계의 늪에 빠진 사람들은 양심이니 민족이니 그런 따위에는 쪼잔(?)하게 관심을 기우리지 않는다. 내개 이익이 되면 선이요 손해가 되면 악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편하고 쉽게 살아간다. 김빠진 맥주같은 머리가 텅빈 사람들에게을 자본은 오히려 선호한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따지는 똑똑한 사람보다 시키면 시키는대로나 하는 머릿속이 빈 사람을 자본은 좋아하기 마련이다. 가난이 불편이 아니라 죄악이라는 현실을 체득한 민초들은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은 포기하고 순종자로 운명론자로 살아남는다.

 

대한민국은 분단국이다. 여기서 분단이란 중도를 허용하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양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애국이 아닌 면 종북세력으로 선택을 강요당하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이 극단적인 이분법은 남쪽의 대한민국과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만 분단된 게 아니다. 동쪽과 서쪽으로 분단되고 애국세력과 종북세력으로 분단되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으로 분단되고 정부정책을 지지하는 세력과 비판하는 세력으로 분단됐다.

 

분단현실에서는 노동자들조차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으로, 교육단체도 한국교원단체총연합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으로 분단된다. 여성들은 물론 언론이며 종교까지 양자택일하지 않을 수 없는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정권의 필요에 의해 조각난 한반도남쪽까지 분단을 시키는 세력이 누군지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이제 그들은 자신의 부귀영화뿐만 아니라 자식세대까지고 부와 사회적 지위까지 대물림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가고 있다.

 

깨어나면 안 된다. ‘가만 있어라!’ 그래서 교육을 장악해야하고 목구멍이 포도청이 되도록 노동자는 가난해야 한다. 형식이란 게 갖춰져 있기 하지만 그런 것은 요식행위일 뿐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현실 앞에 유명무실하다. 역사는 변화 발전한다. 분단의 나라 대한민국에도 기울어진 반쪽을 바로세우기 위한 노력은 그치지 않고 계속된다. 아무리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민주화 운동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관련 글 : 현대판 마녀사냥, 종북의 실체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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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3.07.03 07:00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세상을 극과 극으로 보는 국민들이 있을까? 미국에 대한 인식도 그렇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친구니 혈맹이니 우방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철저히 자기나라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을 이용해 먹는 식민지 종주국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똑같은 현상을 놓고 왜 이렇게 보는 시각이 천차만별일까? 미국이 주미 한국대사관을 비롯해 유럽·아시아·중동 등 38개국의 재미 공관을 전방위로 도청해 세상이 시끄럽다. 우방이니 혈맹이라면 남의 집 안방까지 샅샅이 뒤져도 반발도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해야 할까?

 

 

세상 사람들은 미국을 비판하기를 꺼린다.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기도 하지만 미국을 비판하면 종북으로 몰린다.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까지도 미국을 나무라면 NL(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NLPDR:National Liberation People's Democratic Revolution )란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민족해방계열과 민중민주주의계열로 갈라지면서 붙여 진 반미반제(反美反帝)를 주장하는 계열)의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미국은 비판조차 못하는 성역(?)이 됐다.

 

미국에 대해 아무리 호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도 2002년 6월 13일. 소위 ‘효순이·미선이 사건’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효순이·미선이 사건’이란 당시 조양중학교 2학년이던 신효순, 심미선이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소재 국가지원지방도 제56호선에서 갓길을 걷다 주한 미군 미 보병 2사단 대대 전투력 훈련을 위해 이동 중이던 부교 운반용 장갑차에 깔려 현장에서 숨진 사건이다.

 

 

뿐만 아니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 캠프 캐럴 고엽제 매립사건이니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한미 FTA와 한미 SOFA (주한미군 지위협정 Status of Forces Agreement)문제... 등은 우리에게 좋지 않은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교과서로 천사의 나라라고 배운 수준의 사람을 제외하면 미국과 우리의 관계는 결코 우방으로 미화할 수만은 없다.

 

남북을 갈라 남한은 미군정을 북한은 소련의 군정을 받는다는 신탁통치는 어떤가? 해방정국의 미국이 구상했던 신탁통치 안은 ‘미, 중, 소 3국이 향후 20~30년간 한반도를 신탁통치한다’는 구상이었다. 결국 38선은 미국이 제안, 주도하여 소련이 접수함으로써 성립되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미국이 우방이라고 아는 사람들은 국정교과서로 마취된 사람들 정도가 아닐까? 실제로 지금은 서점에서 구할 수도 없는 금서가 된 책, ‘미제 침략사’니 ‘한미관계의 발자취’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미국이 우리에게 결코 우방일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 진다.

 

박세길의 ‘다시쓰는 한국현대사(1). (2), (3)이니 리영희선생님의 ‘우상과 이성’ 혹은 ‘한국현대사 연구 Ⅰ’ 정도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미국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케 한다.

 

 

나는 미국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전교조관련으로 구속돼 손에는 수갑을 채우고 포승줄에 묶여 검사실에서 조사를 받을 때의 일이다. 당시 노태우정권은 노동탄압을 위해 국가보안법을 활용했고 노동운동을 하던 제자가 미끼에 걸려 나와 같은 방에서 조사를 받아야 하는 참혹한 현장이었다.

 

그 제자의 죄목이란 다름 아닌 ‘미제 침략사’라는 책 한권을 소지했다가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되어 조사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이름도 잊을 수 없는 공안검사 김용진(?)의 방에 타이피스트로 근무하던 제자와 노동운동을 하다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잡혀온 제자, 그리고 전교조운동으로 잡혀 온 선생이 검사의 희롱(?)을 받아야 했던 아픈 기억을 말이다.

 

1945년부터 48년까지 3년간의 군정 시대를 모르면 미국을 말하지 말라. 미국의 은혜로 살아남은 친일파가 해방조국의 귀족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이 있다는 사실과 박정희정권이 자주경제를 포기하고 미국의 경제에 우리경제를 예속시킨 사실을 덮어두고 어떻게 미국을 말할 수 있겠는가?

 

해방 70년이 다 된 나라에서 집 안방까지 도청을 당했다는데 침묵하는 정권은 정말 자주독립 국가인가? 한미 FTA와 SOFA가 지배하는 현실, 국가보안법이 미국의 이익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모르고 어떻게 우방이니 혈맹 운운 할 수 있는가? 겉으로는 천사의 말을 하면서 속으로는 이권을 챙겨가는 파렴치한 무엇을 더 기대할 것인가? 

 

-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3.08 22:03



창원시 마산 합포구 3.15탑 옆을 지나다 보면 '몽고정'이란 사적(史蹟)이 남아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단정하게 치장을 하고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몽고정을 안내 하려면 "몇년에 만들었는지...?" 보다, 몽고정을 "왜 만들었는지" 그것을 만들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필요하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사적으로서의 가치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그 사적을 통하여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안목을 길러 주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완성된 연도보다도 그것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인 배경과 사건을 오늘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제가 없는 오늘이 없듯이 오늘은 지난 역사의 산물"이다.흔히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사실(事實)을 안다"는 의미보다는 "사실(史實)을 안다"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은 역사를 지킨 사람들에 대한 부채의식 즉 역사의식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사진 출처 :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단순한 역사적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역사가 객관적인 실체로서 살아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역사가 가치 없다고 생각한다든지, 역사적인 안목이 부족하여 나와 역사는 독립적으로 생각하여 역사를 두려워 할 줄 모르는 것도 문제이다.

오늘날 지식인들, 특히 제도 교육을 통하여 역사공부를 한 사람들은 '역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백주에 양민을 학살하고 대통령이 되어 주인 행세를 하고, 퇴직 후에도 특권 귀족으로 보호받고 사는 사람이 그렇고, "성공한 쿠데타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결정을 내린 검찰이 그렇다.

역사란 특정인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지우기도 하고 고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때 죽고 다친 사람이나 그 증인이 아직도 살아 있는데 가해자가 권력의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은 정의나 법의 형평성이 무시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역사적으로 최영장군은 역적이 되고 이성계를 비롯한 권력을 장악한 세력들은  공신이 되어 부귀영화를 자자손손 누리는 문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지조를 생명같이 여기고 양심을 지켰다는 이유만으로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후손들은 혹은 죽임을, 혹은 노예가 되어 대대로 죽음보다 비참한 삶을 살아온 사실은 그 사건 속에 살아 있는 '정신'을 무시하고서 역사를 말할 수 없다.

몽고족의 침략이 있었을 때 재빨리 원의 앞잡이가 되어 몽고의 약탈을 도와주며 한 발 앞서 동족 살상과 수탈의 첨병 역할을 하던 무리들은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지만 지조를 지킨 사람들은 비참하게 죽어야했다.


역사란 배신자와 지조를 지키면 산 사람을 통하여 배신과 반역에 대한 교훈을 배운다. 역사는 죽은 것은 아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도, 미군정 시대에도, 이승만독재,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정권 하에서도 권력의 양지로 찾아다니며 혹은 권력으로, 혹은 재산으로, 지도자로, 유명인사로, 명예와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살아오던 사람든은 역사가 죽었다고 믿고 싶겠지만 역사는 죽은 것이 아니라 다만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권력의 비호를 받으면서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양심 때문에 하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무시당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당하면서 살아 온 것이다.

 <사진 출처 :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결과에서>

"총구 앞에서 죽음과 삶의 선택을 강요받았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두고 누가 침을 뱉을 수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살아남기 위하여..."라며 합리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사는 게 옳은가? 무릎 꿇지 못하고 온갖 고초를 당하다 이름 모르는 산천에서 감옥에서 죽어 간 사람은 역사(歷史)가 보상해 주었는가?신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役事) 하신다."라고 했다. 이 말은 "하나님 혼자서는 스스로 역사(役事)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람이란 곧 "나" 자신이다.내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되지 못하면 역사는 없다. 이때 내가 하나님이 되지 못하면 하나님도 없다. 반만년 역사의 종착역, 귀결점은 바로"나"자신이다. 내가 역사 속의 총화로써 내가 아닐 때, 역사는 없는 것이다. 이 "나"와 "나"의 총화가 역사를 만들 때 비로소 역사는 살아나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역사를 두려워 할 줄 모르는 오만(傲慢)과 역사를 모르는 무지(無知)를 다함께 경계해야 한다. 역사는 살아 있고 또 역사는 정의의 편이라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이완용과 그 무리들, 전두환과 그 무리들, 노태우와 그 무리들, 배신자! 살인자! 그리고 역사의 파괴자! 그들과 그 후손, 불의에 동참했던 무리들은 역사가 살아 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부끄러운 과거를! 역사의 고비마다 "과거를 잊고, 용서하고,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고 역사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다.

2차대전 후 프랑스는 나치 점령하의 대독 협력자에 대해 사형 2,071건, 징역 3만 9천 2건을 선고했고 벨기에는 5만 5천건, 네델란드는 5만건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패전국인 일본의 경우에는 1946년 1월 과거의 군국주의자들에 대한 공직 추방령을 공포함으로써 민주 발전에 장애가 될 21만 287명이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36년간 민족을 배신하고 적의 편에서 동족을 배신한 대가로 귀족대접을 받던 이들은 해방과 함께 혹은 정치가로 혹은 법관으로 혹은 경찰로 애국자가 되고 재수 없어(?) 단 7명만 감옥에 갔다가 6.25사변으로 모두 석방되는 행운을 얻었다.

"성공한 도둑은 사법 심사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과 검찰의 "성공한 쿠데타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 공소권 없음의 결정'과 무엇이 다른가?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이 저지른 고의 또는 과실은 법의 엄정한 심판을 받는다. 역사 앞에서 큰 잘못을 저지르고 세월만 지나면 기득권으로 불가침의 영역이 되고 합리화된다면 법의 논리는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폭행을 저지르고 살인과 도둑질도 불사하는 무리들이 애국자가 되고 주인이 되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정의는 승리한다"는 역사의 진리가 진실임을 확인하는 것, 그런 소박한 꿈이 있을 때 역사는 살아 있는 것이다. 역사를 감추고 왜곡하려는 무리에게 역사를 맡겨 두고서 역사를 살려 낼 수는 없는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