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2013.05.23 07:00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가 원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성폭행을 해도 처벌 받지 않는 방법’

 

‘강간 모의’

 

‘성폭행 당하는 여성 발견시 도와주지 말라’,

 

‘수간 사진’

 

이런 얘기를 친구들 사이끼리 해도 ‘또라이’ 소리를 면치 못할텐데 그것도 만인이 보는 SNS에 버젓이 이런 기사를 올리는 사이트가 있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라는 곳이 그렇다.

 

이들의 하는 짓을 보면 정신병자들이나 할 수 있는 짓을 버젓이 멘얼굴로 버젓이 하고 있다.

한 때 ‘멘붕’이라는 말이 유행되기도 했다. 너무 심한 충격을 받아 자포자기 하거나 막나가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를 일컫는 말로 자주 쓰이곤 했다. 일베를 보면 멘붕이란 이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돌보는 마음, 즉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일컬어 측은지심이라고 한다. 맹자는 선한 마음인 측은지심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 태어난다고 믿었다.

 

일베를 보면 맹자의 가르침이 틀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막말, 막장, 막가파의 상징이 된 일베는 사람이 어디까지 사악해질 수 있는 시험대를 보는 느낌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고 힘겨워하는 사람을 만나면 적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사람을 죽인 사람을 존경하고 우러러 볼 수 있을까? 그것도 한두명이 아니라 수천명을 죽고 다치게 한 장본인, 백주에 국민의 권리를 도적질한 역적을...

 

 

 

실제로 전사모(전두환을 사랑하는 모임)라는 카페가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고 그 회원수가 수만명에 이르고 있다. 그가 졸업했다는 대구공고 홈페이지는 전두환을 민주화의 영웅으로 미화하고 있다.

 

다시 일베 얘기로 돌아가자.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하면 엉뚱한 짓을 하기도 하지만 일베가 하는 짓을 보면 그런 수준이 아니다.

 

1) 윤창중은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다 -> 인턴녀가 꽃뱀이다.

 

2) (5·18 때) 국군이 국민들을 학살했을 리 없다 -> 북한군이 5·18에 개입했을 거다.

 

3) 박근혜 대통령 5·18 기념식 참석 -> 박 대통령 마음은 안 그런데 주변 ‘홍어’(전라도 사람)들이 부추겼다.

 

이런 얘기를 늘어놓고 재미있어 하는 집단이라면 정신병원에 수용해야 할 대상자가 아닐까?

 

‘성폭행을 해도 처벌 받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고 ‘강간 모의’와 ‘성폭행 당하는 여성을 발견하거든 도와주지 말라’는 얘기를 공개된 사이트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은 정신병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짓이다. 더구나 전라도 사람들을 홍어로 비교하고 5.18희생자들의 시신을 일컬어 ‘날씨가 좋은데 홍어를 널어 말리자’는 표현은 정상적인 사람의 정서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일베는 4.19, 6월항쟁,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특정 지역 비하, 여성 혐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조롱, 인종차별주의, 패륜과 엽기...  등 반인륜적 반역사적 반민주적인 쓰레기 저장소다. 

 

언론의 자유를 빙자해 범죄집단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까지 부정하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반인륜적 패륜집단을 언제까지 강건너 불구경하듯 방치할 것인가?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6.27 06:30


 

 

TV조선의 ‘최·박의 시사토크 판’을 보다가 토를 할 뻔 했다. ‘1987년 KAL기 폭파범 김현희’와 대담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저 사람이 115명의 죄 없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이라니...? 김현희를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가 대담하는 자세가 마치 개선장군의 무용담 같은 자세였기 때문이다.

 

나는 종편이라면 아예 채널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MB 시각에서 제작되는 종편이라면 볼 게 뻔하다 판단 때문이다. 그런데 가입한 카페에서 보낸 메일을 보고 들어갔다가 그만 이런 낭패감을 맛보게 된 것이다.

 

맹자는 말하기를 사람이란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과 같은 사단이나 인의예지신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의 도리를 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분노하거나 양심을 속이고 법을 어기는 사람을 보면 의분을 느끼게 된다. 법은 이러한 사람들의 정서를 감안해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을 실현할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는 특정인의 행복이나 쾌락을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그런 사회가 아니다. 건강한 사회란 인정이 넘치는 사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똑똑한 사람, 부족한 사람...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그런데 남을 해코지를 하거나 사기를 치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살인을 한 사람이 우대 받거나 특혜를 누리고 있다면 이는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배반하거나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가 대접받는 사회는 썩은 사회다. 더구나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나 민주주의를 뒤엎은 쿠데타의 주역이 대접받는다는 건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동족의 가슴에 한을 맺히게 한 친일인사나 민주주의를 뒤엎은 쿠데타 주역, 그리고 백주 대낮에 백성을 총칼로 난도질한 살인범 괴수가 대접받고 큰 소리 치는 세상이 됐으니...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사형선고까지 받기도 하고 수 천억 대 비자금 조성 협의로 벌금 28억 원을 선고받았던 전두환이 부활(?)하고 있다. 전두화의 모교인 대구공고에서는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행사를 열고 고향에서는 일해공원을 세워 그를 추앙하고 국군의 동량을 길러내는 육국사관학교에서는 사열을 받는 등 영웅대접을 받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전두환뿐만 아니다. 정부발표대로 믿는다면 승객 115명(한국승객 93명, 외국승객 2명, 승무원 20명)을 태운 KAL기를 폭파해 승객 전원을 숨지게 한 폭파범 김현희는 특사로 풀려났다. 그는 특사로 풀려나 "이젠 여자로 살고 싶다"며 25년째 이 땅에서 아들 딸 낳고 경호원의 보호를 받고 살고 있다니...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를 하기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한다. 그런데 죄를 지은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기회가 오면 다시 그런 죄를 반복할 수 있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라면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을 어떨까? 민족을 배신한 대가로 귀족 대접받고 사는 것도 모자라 2세까지 큰소리치고 쿠데타 주역의 딸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그 뒤를 줄을 서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115명의 목숨쯤이야...’라고 생각할까? TV조선에 출연한 폭파범 김현희의 자세는 부끄럽고 죄스러움임 아니라 전장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친일의 대가로 받은 땅을 되찾겠다고 소송을 하는 사람이 그렇고 광주시민을 학살한 사람이 영웅이 되고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파범이 개선장군이 되는 나라... 사법부의 심판을 받고 죄 값을 치르지 않았느냐고? 맞다 전두환도 김현희도 죄 값을 치른 게 맞다. 그런데 전두환, 노태우의 삶이 죗값을 치른 자의 모습인가? 제 3자인 나의 시각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피해자 가족들이야 오죽할까?

 

죄값...? 사법 판단...? 법이 존립해야 하는 목적이 뭔가? 정의의 실현이 아닌가? 이들이 국민이 낸 세금으로 경호를 받고 영웅 대접받고 사는 게 정의사회일까? 민족을 배신한 반역자, 살인자, 테러범, 쿠데타 세력이 존경받는 세상에 어떻게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가? 이런 세상을 두고 양심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정의를 말할 수 있는가? 아이들 보기가 부끄럽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5.20 06:30


 

세상이 너무 각박(刻薄)하다. 전통사회에서는 울타리도 없이 살았는데... 아파트에 살다보면 옆집에 누가 사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산다. 나와 관련 없는 일이라면 아예 마음을 끊고 산다. 몸이 불편한 노인이 흔들리는 버스 때문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서 있어도 요즈음 젊은이들은 차창 밖으로 얼굴을 돌리고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맹자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불쌍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측은지심 惻隱之心)과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수오지심 羞惡之心)과 양보할 줄 아는 마음(사양지심 辭讓之心), 그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마음(시비지심 是非之心)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다. 즐거워하고(喜), 노여워하고(怒) 슬퍼하고)哀), 두려워하고(懼), 사랑하고(愛), 미워하고(惡), 욕심을 부림(慾)과 함께 인간으로서 동물과 다르게 태어났다는 4단 7정이다.

 

 

 

서양의 문화가 급격히 전래되면서 우리의 전통적 가치는 낡은 것이 되고 서양의 것은 선진문화라는 가치관이 우리의 가치를 송두리째 내다버렸다. 자칭 보수라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전통가치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신의 기준으로 도덕과 윤리를 만들고 서양에서 들어 온 실용주의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게 선’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펴고 있다.

 

상업주의와 결탁한 실용주의. 그들은 선조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다섯 가지의 도리, 즉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과 같은 가치는 안중에도 없다. 공자, 맹자를 말하면 꼰대소릴 듣겠지만 서양의 가치가 전통가치를 잠식해 나라가 온통 향락주의, 감각주의로 빠져들고 있다. 마치 돈벌이가 삶의 목적이나 되는 듯, 도덕이나 윤리는 뒷전이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 돈이 주인인 사회에는 과정이 무시되고 승자가 선이 되는 막가파식 경쟁이 지배하는 세상이 됐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지든, 정치가 타락하든, 종교가 신비주의로 흐르고 학교가 무너져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일까? 나만 잘 먹고 배부르면...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윤리니 의리니 신념이니 그런 것은 쓰레기통에 버려도 좋을까? 세상을 ‘연관과 변화’라는 변증법적 시각으로 보지 못하면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 선이 된다. 나무는 보고 숲을 보지 못하면... 눈앞의 이익이 장기적으로는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총체적인 시각의 세상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변화하고 서로 연관되어 있다.’ 철학이 실종되고 감각이 지배하는 사회는 윤리나 도덕이란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일 뿐이다. ‘아이들이 왕따당하고 폭력에 시달려도 내 아이만 아니면... 경제가 무너져도 나만 괜찮으면... 방송사가 파업하는 건 나와 상관없다...’ 이런 시각이 만들고 있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과거에도 방관자는 있었다. 3.15부정선거에 항의해 시위를 할 때도... 광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당하고 있을 때도... 로렌츠 (Lorentz, E.)는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 나비이론이다. 자기중심의 세계관도 좋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데...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나와는 직접 연관이 없더라도 간접적으로 무관한 것은 없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말했던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자유도 민주주의도 신이 무상으로 선물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제도를 포함한 우리의 삶이 이 자리까지 있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불의에 맞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정의를 지킨 사람들... 그분들의 인류에 대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헌신과 희생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이다.

 

눈앞에 이익만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역사가 보일 리 없다.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일찍이 신채호선생님은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설파하셨다. 아(我)도, 역사도, 민주주의도, 참여해 함께 투쟁하지 않는다면 방관자나 기회주의자일 뿐이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2.01.23 06:57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성들이 원하는 신랑감 조건의 평균은 '연 소득 4348만원, 자산 1억9193만원, 키 177.51cm'. 신부감 조건의 평균은 '연 소득 3161만원, 자산 1억7193만원, 키 163.63cm'.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대한민국 2030 미혼남녀 결혼 인식‘에 관한 연구조사 보고서에 나오는 자료다.

사람 됨됨이나 인격이 아니라 소득이나 키가 신랑, 신부감의 선택조건이라니 씁쓰레 하다. 조건이 붙은 사랑은 가짜라던데... 저런 조건이 충족되면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텔레비전의 영향 때문일까? 얼짱, 몸짱문화가 젊은이들의 우상이 된 지 오래다. 학교가 길러내겠다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새에서>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 2조는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인류공영의 이상 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학교는 분명히 얼짱이나 몸짱이 존경받는 사람이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 자질을 갖춘 자주적인 인간,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는 ‘홍익인간’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보고 있다.

학교가 정말 이타적인 인간, 홍익인간을 길러내고 있을까? 천만에 말씀이다. 오늘날 출세(?)를 했다는 사람,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보면 분명히 학교가 길러내겠다는 인간상은 아니다. 아니 이타적인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게 선이요. 승자지상주의 가치관의 인간’, 이기적인 인간을 길러내고 있다고 보아야 옳지 않을까?

향락과 퇴폐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이전의 인간적이고 순수성이 남아 있던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이상적인 인간으로 생각했을까? 우리조상들이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여겼던 사람은 몸짱이나 얼짱도 아니요, 반드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도 아니었다. 옛사람들의 이상적인 인간상은 ‘신언서판(身言書判)’ 네 가지 조건을 갖춘 인간이었다. 신수(身)와 말씨(言), 문필(書)과 판단력(判)을 기준으로 사람 됨됨이를 구별했다.


신(身)이란 사람의 풍채와 용모를 뜻하는 말이다. 신은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첫째 평가기준이 되는 것으로, 아무리 신분이 높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몸가짐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말이다. 오늘날처럼 소신 없이 내게 이익이 되는 일이면 신의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둘째, 언(言)이란 사람의 언변을 이르는 말이다. 이 역시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아무리 뜻이 깊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말에 조리가 없고, 말이 분명하지 못했을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셋째, 서(書)는 글씨(필적)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로부터 글씨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 주는 것이라 하여 매우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인물을 평가하는데, 글씨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글씨에 능하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넷째, 판(判)이란 사람의 문리(文理), 곧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판단력을 뜻하는 말이다. 사람이 아무리 체모(體貌)가 뛰어나고, 말을 잘하고, 글씨에 능해도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능력이 없으면, 그 인물됨이 출중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성현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표현의 차이는 없었을지 몰라도 궁극적인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자는 '군자'를 가장 인상적인 사람을 군자라고 보았다. 군자란 ‘학문적으로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걸어야할 길을 찾는 사람, 도덕적으로는 원만한 인격을 이룬 사람’을 말한다. 군자는 자기의 입장보다는 남의 입장을 먼저 고려할 줄 알고, 자기의 심성 계발과 인격도야에 부단히 노력하고 인덕(仁德)을 갖추고  도(道)를 품어 행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자세를 지닌 사람을 말한다.

기독교의 이상적 인간상도 그렇다.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고 타인의 구원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할 수 있는 헌신적인 인간이 이상적인 인간으로 보았다. 불교의 이상적 인간은 진리를 깨달아 붓다처럼, 사법인(四法印)과 사정제(四聖諦)를 통해 진리를 깨달아 지혜와 자비를 누리는 사람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보았다. 비록 표현을 달랐지만 오늘날처럼 얼짱, 몸짱도 아니요 돈이나 사회적 지위가 사람됨됨이의 기준이 되지는 않았다. 


자신의 생각은 없고 남의 생각으로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돈많은 사람, 잘생긴 사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이상적인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회. 얼짱이나 몸짱처럼 외모로 사람 됨됨이를 판단하는 사고방식은 건강한 사람의 생각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자식이 신의도 분별력도 없는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념도 철학도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고 존경받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학교는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자주적인 생활능력을 갖춘 사람? 민주시민으로서 자질을 갖춘 합리적인 사람?  민주의식과 역사의식을 갖춘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시민?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아는 정의롭고 용기 있는시민.....을 길러내고 있는가? 


새해 아침에 생각해 보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공허해 보이는 이유는 그런 사회가 요원하기 때문만 일까? 윤동주님의 서시가 생각나는 새해 아침에.....

민족의 대명절 설날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소원하시는 일 모두 이루십시오.
새해에는 여러분의 가정에 화평과 사랑이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9.23 06:00



                                       <선플운동본부 홈페이지 켑쳐>

‘좋은 게 좋다.’
‘남의 말을 좋게 합시다.’
‘부정적으로 보지 말라’


이런 말은 얼핏 들으면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대충대충 적당히 살자는 주문이다. 이방원이 정몽주에게 읊어준 하여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시비지심(是非之心)이란 ‘옳음과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으로 맹자의 사단설(四端說 또는 성선설(性善說이라고도 함)에 나오는 말이다

‘선플운동’이 대통령 글에 선플달기를 하면 학생들의 봉사점수를 준다는 글을 읽다가 생각난 구절이다.



‘선플' 40개 달면 봉사활동 2시간 인정’한다는 학교의 방침에 따라 병원이나 양로원등에 봉사활동을 나가던 학생들이 컴퓨터에 앉아 댓글 달기에 열심이란다.


한상대 검찰총장 취임사에서 종북 좌익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한다는 내용의 기사에
“멋진 검찰 힘내세요. 우리나라를 잘 지켜주세요”

이 대통령 부부의 야구장 키스 사진 기사에 달린

“좋은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정말 인간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이런 댓글이 학생들의 봉사활동 점수로 인정받았다.


‘옳음과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 즉 시비지심이란 사물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면서 나타나는 가치관의 성숙이다.

그런데 시비지심을 가릴 줄 모르는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선플로 봉사점수를 받아 상급학교진학이나 대학에 가는데 유리한 인센티브를 준다는 게 이치에 맞을까?

전북 고창의 한 초등학교 교장이 지난해 봄에 한 학생이 시청각실에서
현 대통령을 ‘명박이’라 부르자 주먹으로 때리고 귀를 잡아당기며
“대한민국에서 꺼지라”고 말해 말썽이 되고 있다. 초등학생이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는 이유다.


초등학생이 이병박대통령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구별할 수 있는 판단 능력이 제대로 있을 리 없다.
주변 사람들이 한 말을 듣고 대통령 이름을 그냥 불렀다고 ‘대한민국에서 꺼져야할 만큼 중죄를 범했을까? 

이런 수준의 아이들에게 남의 글을 보고 선플을 달라면 어떤 글을 쓸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짐의 극치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라고 했다.

맹장의 <공손추편(公孫丑篇)〉[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에 나오는 얘기다.


시험문제를 풀이하는 학교.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점수따기로 전락한 학교에서 초중학생들이 측은지심이나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라는 가치관이 확립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아이들에게 어떤 글에 선플을, 어떤 글에 악플을 달아야 하는 지 구별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거기다 대통령 글에 선플을 달면 봉사활동점수라니....?

<선플운동본부 팝업창:이 팝업창에는 봉사활동점수주기가 근거없는 비방이라며 명예를 훼손이라고 적고 있다> 

말이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고 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다. 말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숨기고 미사어귀로 상대방에게 하는 말은 진실성이 없는 말이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한다.

학교교훈이나 급훈으로 많이 인용되는 말 중에 ‘근면이니 성실, 정직’과 같은 말이 그렇다. 근면한 인간, 정직한 인간을 키운다는 데 무엇이 문제인가 라고 할지 모르지만 ‘근면하기만 한 사람’ ‘정직하기만 한 사람‘은 문제가 많다.

성실한 사람이 마피아 집단에서, 혹은 갱집단에서 살아간다면... 근면하기만 한 사람이 평생 노동자로 살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까? 악플이란 사이버시대 견디기 어려운 인간 심성을 좀먹는 바이러스다. 블로그나 카페를 운영해 본 사람이라면 악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다 안다.

그런 악플을 달지 말고 선플을 달자는데 반대할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사회현상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선플이라는 유혹은 객관적으로 세상을 볼 수 없게 만드는 마취제다.


‘악성(惡性) 댓글 또는 악성 리플(惡性reply, 악플)이란 상대방에게 모욕감이나 치욕감을 줄 목적으로 인터넷 상에서 상대방이 올린 글에 대한 비방이나 험담을 하는 악의적인 댓글을 말한다. 악플에 시달리다 목숨까지 끊는 사람이나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선플운동을 쌍수로 환영해야겠지만 최근 학생들에게 ’대통령 글에 선플을 달면 봉사활동점수를 주겠다는 비교육적인 선플달기운동본부의 변절(?)에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선플달기운동본부 민병철 이사장(사)은 ‘악플 때문에 고통 받는 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칭찬과 격려의 선플로 밝고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했다'고 하지만 미성숙한 어린 아이들에게 비판의식을 마비시키는 선플운동은 본의와 다르게 왜곡될 소지가 높다. 뒤가 깨끗지 못한 사람. 허물이 많은 사람들이 ‘좋은 게 좋다‘거나 ‘부정적으로 세상을 보지 말라’는 말을 좋아한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시작한 운동일지라도 권력의 비위를 맞추거나 철없는 청소년들에게 비판의식을 마비시키는 운동은 사회운동이 아니라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이데올로기다. 선플운동본부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맹자의 ‘사단설’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4.23 22:30



헌책방에 들렸다가 뜻밖의 좋은 책을 구했을 때 기분이 어떠한가는 경험해 보신 분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런 기분을 만끽한 책이 ‘동양철학 에세이’(김교빈, 이헌구지음 동녘출판사)라는 책입니다. 우리가 보통 ‘동양철학’하면 사주, 관상과 같은 것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길거리에 붙어 있는 간판 때문이기도 하고 어쩌면 동양철학 연구자들 탓도 있을 것입니다. 요즈음은 ‘명상술’이다 ‘기공’이다 하는 유행 덕분에 동양철학이 더욱 신비하게 사람들에게 뇌리에 각인 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동양철학은 그런 환상이나 인기에 영합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우선 목차부터 소개해 보겠습니다. 


공자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노자: 인생의 보배를 간직하라
묵자 : 약자를 지키는 방패
장자 : 광활한 정신 세계의 끝없는 이야기
맹자 : 유가의 파수꾼
순자 : 동양의 프로메테우스
법가 : 인간을 조직하고 인간을 활용한다.
명가 : 상식을 부순 사람들
주역 : 점쟁이와 철학자

이런 얘기가 담겨 있는 책입니다. 
공자 편만 약간 소개해 볼까요?

어느날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죽음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삶도 아직 다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말하겠느냐?”
자로가 다시 물었다.

“귀신 섬기는 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사람도 다 못섬기는데 어찌 귀신을 말하겠느냐?”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근엄하고 위엄에 찬 공자의 모습은 이 책에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책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공자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진리를 찾고 매우 친근한 사람... 위대한 공자의 모습보다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 공자를 만날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불과 11쪽에 소개된 공자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와 다른 모습의 공자를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을 것입니다.

노자도 그렇습니다.

백조는 매일 목욕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매일 물들이지 않아도 검다. 하늘은 저절로 높고 땅은 저절로 두껍고, 해와 달은 저절로 삧나고, 별은 저절로 늘어서 있고, 초목은 본래 종류가 여럿이다.....

어떻습니까? 노자의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유교가 지배층의 통치이념으로 자리잡았다면 노자의 도교는 민중의식 속에 ‘잡초와 같은 철학’으로 살아남아 있습니다. 왜 노장사상이 유교처럼 빛을 보지 못했는지 이유를 알 만하지 않습니까?

마치 요즈음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이 기독교와 천주교로 부터 이단취급을 받듯이 말입니다. 계급사회에서 민중의 사상, 민중의 편을 들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이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기는 토마스 뮌쯔가 왜 루터처럼 살아남지 못했는가를 이해 한다면 노장사상이 유교사상에 밀려난 이유를 알만 하지 않습니까?

최근 동녘출판사에서 증보판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좋은 책은 마음을 살지운다는 걸 새삼스럽게 얘기하지 않아도 좋은 책.. 저는 이 책을 1500원에 사서 150만원 이상의 가치로 읽었답니다. 헌책을 구입하셔서 읽어도 좋겠지만 새로나온 책을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구해서 본 책은 어떤 동양철학도가 공부하던 손 때가 묻은... 낙서를 구석구석 해 놓은 책이라 더 정겹게 읽고 보관하고 있답니다.

얘기를 마치면서 이 책에서 소개한 재미 있는 수수께끼 하나 소게하겠습니다.
정답을 아시는 분! 댓글에 달아 주세요.
   


세 사람의 나그네가 밤늦게 여인숙을 찾았습니다.
이 여인숙 하루밤 숙박비는 30,000원이어서 한사람이
10.000씩 냈습니다.
너무 늦게 도착한 이들은 이 여인숙에서 제일 나쁜 방에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숙박비 30,000원 받고 아무래도 미안한 생각이 든 주인은 심부름 하는 아이를 시켜 5,000원을 손님들에게 되돌려주기로 했습니다. 방값을 깎아준 것입니다.

하지만 심부름 하는 아이는 ‘손님이 셋인데 5,000원을 돌려주면 똑같이 나눠주기가 힘들잖아’ 하면서 2,000원은 자기가 슬쩍하고 3,000원만 돌려주었습니다.
나그네는 주인의 착한 마음을 칭찬하면 1,000원씩 나누어 가졌습니다.
처음에 10,000씩 내고 1,000씩 돌려받았으니 나그네들은 한 사람당 9,000씩 숙박비를 부담한 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9,000원씩 셋을 합하면 2,700원이고 거기에 중간에 심부름하는 아이가 슬쩍한 2,000원을 합쳐도 29,000원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처음의 30,000에서 1,000원은 어디로 갔을까요?

댓글로 1,000원 행방을 찾아주세요.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