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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2013.04.02 07:00


 

 

 

극적인 슬픔과 극적인 기쁨은 통한다고 했던가?

 

너무 슬퍼도 또 너무 기뻐도 눈물을 흘리는 감정이 그렇다.

‘지슬’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처절하리만큼 잔인한 비극적인 사건을 지고지순의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영화. 보통 영화가 끝나면 ‘만든 사람들’이라는 자막이 나오기 바쁘게 관람객들은 극장 밖을 빠져 나간다.

 

그런데 ‘지슬’은 ‘만든 사람들’이라는 자막이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도 일어서서 나가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듯 그 자리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영화가 주는 감동에 취해 모두들 깨어나지 못하고 넋을 잃고 있는 것일까?

 

1948년 11월, 제주섬 사람들은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을 폭도로 여긴다’는 흉흉한 소문을 듣고 삼삼오오 모여 피난길에 오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어디서부터 일어나고 있는지 영문도 모른 채 산 속으로 피신한 마을 사람들은 곧 돌아갈 생각으로 따뜻한 감자를 나눠먹으며 장가갈 걱정, 집에 두고 온 돼지걱정 등 소소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들...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할까? 예술로 표현된 민족의 비극 4.3항쟁은 처절하리만큼 순박하고 아름다웠다. 무고한 제주도민 3만명이 국가권력에 의해 비참하게 학살당한 이 비극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가의 시각으로 표현한 4․3의 진실... 그 제주의 슬픈 역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지금도 제주를 찾지만 비극의 역사 제주는 아름다움만 간직한 채 오늘도 속으로 슬픔을 삭이고 있다.

 

 

이제 내일이면 4․3항쟁이 일어난 지 66년째를 맞는다.

 

지금으로부터 62년 전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제주도,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슬픔을 간직한 당당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한라산과 오름들 곳곳 마다 학살의 상처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야만의 광풍이 제주도를 뒤덮었다. 국가권력에 의한 처참한 인권유린의 현장이 바로 우리 제주도 4ㆍ3의 역사다.

 

감춰진 역사. 숨겨진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4ㆍ3항쟁’ 역사적 진실은 아직도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감춰진 역사다.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제주도에서 자란 학생들조차 현대사의 비극인 4ㆍ3을 모르고 있다. 입에 담기조차 두려운 제주는 아직도 동굴 속에 감춰져 실체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제주4·3사건의 배경은 극히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이어서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동북아 요충지라는 지리적 특수성이 있는 제주도는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군 6만여 명이 주둔했던 전략기지로 변했고, 종전 직후에는 일본군 철수와 외지에 나가있던 제주인 6만여 명의 귀환으로 급격한 인구변동이 있었다.

 

4.3의 실체적 진실

 

광복에 대한 초기의 기대와는 달리 귀환인구의 실직난, 생필품 부족, 콜레라에 의한 수백 명의 희생, 극심한 흉년 등의 악재가 겹쳤고, 미곡정책의 실패, 일제경찰의 군정경찰로의 변신, 군정 관리의 모리행위 등이 큰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47년 3·1절 발포사건이 터져 민심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에 3·10민관총파업이 일어난다. 바로 이 사건이 4·3사건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됐다. 경찰발포에 항의한 총파업은 관공서 민간기업 등 제주도 전체의 직장 95% 이상이 참여한, 한국에서는 유례가 없었던 민·관 합동 총파업이었다.

 

 

사태를 심각하게 여긴 미군정은 조사단을 제주에 파견, 이 총파업이 경찰발포에 대한 도민의 반감과 이를 증폭시킨 남로당의 선동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사후처리는 ‘경찰의 발포’보다는 ‘남로당의 선동’에 비중을 두고 강공 정책을 추진했다. 도지사를 비롯한 군정 수뇌부들이 전원 외지사람들로 교체됐고, 응원경찰과 서청 단원 등이 대거 제주에 내려가 파업 주모자에 대한 검거작전을 전개했다.

 

무장봉기의 시작

 

검속 한달 만에 500여 명이 체포됐고, ‘4·3’ 발발 직전까지 1년 동안 2,500명이 구금됐다. 테러와 고문이 잇따랐다. 1948년 3월에는 일선 지서에서 잇따라 3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다. 제주사회는 금방 폭발할 것 같은 위기상황으로 변해갔다. 이때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350명의 무장대가 12개 지서와 우익단체들을 공격하면서 무장봉기가 시작됐다.

 

한편 9연대장 김익렬 중령은 무장대 측 김달삼과의 ‘4·28 협상’을 통해 평화적인 사태 해결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평화협상은 우익청년단체에 의한 ‘오라리 방화사건’ 등으로 깨졌다. 미군정은 5·10선거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려고 노력하였으나 5월 10일 실시된 총선거에서 전국 200개 선거구 중 제주도 2개 선거구만이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 처리 되었다.

 

그러자 미군정은 강도 높은 진압작전을 전개하며 6월 23일 재선거를 실시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5월 20일에는 경비대원 41명이 탈영해 무장대 측에 가담하는 사건이 생겼고, 6월 18일 신임 연대장 박진경 대령이 부하 대원에 의해 암살당한 사건이 발생, 충격을 주었다.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이에 앞서 9연대 송요찬 연대장은 해안선으로부터 5㎞ 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중산간마을을 초토화시킨 대대적인 강경 진압작전이 전개되었다.

 

이와 관련, 미군 정보보고서는 “9연대는 중산간 지대에 위치한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명백히 게릴라부대에 도움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가정 아래 마을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계획(program of mass slaughter)’을 채택했다”고 적고 있다.

 

30만 제주도민 중 3만여명이 학살당한 4.3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초토화 작전에 의해 1948년 10월말부터 1949년 3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참혹한 집단 학살이 행해졌다. 4·3 전 기간 동안의 사망자 수는 3만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반해 초토화 작전이 시작되기 전인 1948년 9월말까지의 사망자 수는 대략 1,000명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토벌대는 무장대와 민중의 연계를 막기 위해 중산간 마을 주민들을 해안 마을로 강제 소개(疏開)시키고 100여 곳의 중산간 마을을 불 질렀다. 소개령이 내려졌는데도 병자, 노인, 어린이 등을 포함한 일부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나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은 자행되었으며 소개령을 전달하지도 않고 방화와 학살이 이루어진 곳도 많았다. 계엄령 선포 이후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또다시 비극이 찾아왔다. 보도연맹 가입자, 요시찰자 및 입산자 가족 등이 대거 예비검속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또 전국 각지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4·3사건 관련자들도 즉결처분되었다. 예비검속으로 인한 희생자와 형무소 재소자 희생자는 3,000여 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유족들은 아직도 그 시신을 대부분 찾지 못하고 있다.

 

잔여 무장대들의 공세도 있었으나 그 세력은 미미하였다.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禁足)지역이 전면 개방되었다. 이로써 1947년 3·1절 발포사건과 1948년 4·3 무장봉기로 촉발되었던 제주4·3사건은 실로 7년 7개월 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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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제주4·3연구소,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4.3 계기수업 자료가 필요한 선생님은 아래 자료를 다운 받으시기 바랍니다.

 

- 첨부자료 : 4. 3 계기수업자료(교육자료실 홈페이지에서..)

 

2012년4.3항쟁계기수업[2].hwp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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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바라기

    제주 4.3 항쟁에서 무고한 시민들의 학살이 있었군요.
    지슬,이란 영화를 통해서 그 때의 참상을 잘 말해 주고 있네요.
    4,3 항쟁을 다시 한번 새기고 갑니다.^^

    2013.04.02 07:11 [ ADDR : EDIT/ DEL : REPLY ]
  2. 4.3 항쟁에 대해 자세히 아는 기회가 되었어요.
    우리 학생들도 이 날의 의미를 잘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2013.04.02 07: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언제쯤이면 역사가 맨얼굴로 우리 앞에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될까요?

    2013.04.02 07:40 [ ADDR : EDIT/ DEL : REPLY ]
  4. 선생님 맞는 말씀입니다. 4.3항쟁은 진행 중입니다

    2013.04.02 09:02 [ ADDR : EDIT/ DEL : REPLY ]
  5. 이데올로기가 아닌 사람사는 세상의 잣대로 좀 바라봐야 하는데....여전히 이념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4.3항쟁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아픈 역사가 될 것입니다.

    2013.04.02 09: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그렇지 않아도 아이와 제주 4.3 사건에 대한 기사를 찾아서 찬찬히 함께 읽었습니다.
    제주는 4월3일에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다고 하더라구요.
    4.3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후 이 영화를 아이와 함께 볼까 고민 중인데...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장면이 혹시 있을까봐 망설여 지네요.

    2013.04.02 09:25 [ ADDR : EDIT/ DEL : REPLY ]
  7.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요즘 학교에서는 이런 역사를 제대로 배울 수 없더군요.
    일단 영화를 좀 봐야겠습니다.

    2013.04.02 09:31 [ ADDR : EDIT/ DEL : REPLY ]
  8. 딸딸이

    참교육님도 차마 남로당의 선동질임을 부정하지는 않는구료.

    2013.04.02 09:33 [ ADDR : EDIT/ DEL : REPLY ]
  9. 잘은 몰랐어요. 책에서 얼핏 본 기억만 있었지요.
    그런데 영화를 통해... 실체를 조금은 더 본 듯 했습니다. 참 암담해요...
    교과서로 배울땐... 그닥 언급을 안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2013.04.02 11:06 [ ADDR : EDIT/ DEL : REPLY ]
  10. 정말 엄청난 사건이였네요. 이런 사건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지슬이란 영화 기회되면 한번 챙겨보고 싶어요.
    오늘도 화이팅 하십시요~!

    2013.04.02 11:0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
    알찬 하루를 보내세요~

    2013.04.02 12: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2. 전교조선동이갑

    4.3이 항쟁이라... 남로당놈들이 일으킨 반란이 항쟁이고 무장봉기면 우린 민주정을 부정하고 공산정권을 설립해야 맞다는 얘기냐? 공산당놈들의 게릴라 공격과 우파민간인을 학살한 것에 대항하다 좌우민간인들이 많이 희생한 것은 비통할 일이지만 공산정권 수립하자는 놈들의 반란이 근간인 걸 항쟁이라고 하고 싶으면 북쪽에 공산정권이라고 우기는 놈들한테 가시던가. 남로당의 무장반란이라는 말은 쏙 빼고 그저 350명의 무장대라고 슬쩍 써놨네? 누가 전교조아니랄까봐 이념 들어나는 것보소. 이번에 전교조 빨치산 사건에 대해서는 뭐라 할말이 없으신가? 그러고도 전교조가 이념문제가 없나?

    2013.04.02 12:12 [ ADDR : EDIT/ DEL : REPLY ]
    • 지나가다뭐좀묻자

      선동질을 제일 잘해먹는 남로당 군사총책 추종자들이 할말은 아닌거 같은데?
      글 제대로 읽고 오길바란다. 누가 남로당 무장봉기를 지지했는가?
      허접한 학력 셀프인증하지마라.
      5 18은 뭐다? 4 3사건은 뭐다? 시대와 역사의 정의에 반하는 답은 원하지 않으므로 올인코리아같은 극우 단체에서나 싸지르시라..ㅉㅉ

      2013.04.02 23:05 [ ADDR : EDIT/ DEL ]
  13. 제 고향도 중산간마을 이었고
    제 고향 바로 윗 마을이 어머니 고향이었는데
    제주도의 중산간 마을은 대부분 전체가 피바다였다고 합니다
    그때 외조부모님께서도 그들의 죽창에 찔려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 11살때셨다고 합니다.
    빨리 대나무숲에 숨으라고 하여 숨었고.
    일이 다 끝나고 나와보니 마을 전체가 시신으로 가득하였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니도 마찬가지로 변을 당하셨다고 합니다.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순박한 농민들이었는데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런 엄청난 일을 겪으셔야 했는지
    그때당시에 너무도 어렸던 어머니와 이모님들은 당체
    영문도 모르셨다 하더군요.
    하나밖에 없던 남동생과도 헤어져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도 모르다가 몇해전 상봉하셨고.
    4.3사건 그 이후의 삶들은 차마 입에도 담기 힘든
    고난의 연속이었다합니다.


    아직 이 영화 보지를 못하였는데 안그래도 꼭 보려고 합니다
    순수 제주독립의 영화이고 실화였기에 더욱 기대감이 큽니다.
    아직도 그때 이야기 들려 달하고 하면 어머니께선
    긴 한숨과 눈물부터 흘립니다.

    겉으로 보기엔 아름다운 제주
    그러나 제주도민들의 깊은 가슴속에 한과 아픔의 역사가 말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더 강인하게 삶을 이겨내며
    사는지도 모릅니다.나눠주기 좋아하고, 마음주기 좋아하는
    제주도민들....엄청난 역사적 아픔을 치유해 나가는
    과정의 모습일수도 있습니다.
    4.3항쟁은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2013.04.02 12: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4. 노을이두 영화 챙겨보고 싶네요.
    잊지 말아야할 4.3...항쟁이군요

    2013.04.02 14: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5. 암요. 43항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2013.04.02 16:5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6. 다시 한번 어두웠던 과거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영화로군요..
    제주섬이 지닌 슬픈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2013.04.02 18: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7. 제주 4.3사건에 대한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2013.04.02 22:0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8. 생시켜 주고 있 The average American worker has fifty interruptions a day, of which seventy percent have nothing to do with work. I want to know where to find shingles in the eye, do you?

    2013.04.03 00:30 [ ADDR : EDIT/ DEL : REPLY ]
  19.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그리고 담아가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요..

    2013.04.03 22:30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