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도 행복한 교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9.03 언론 믿지 말라고 가르치는 학교 왜? (16)
  2. 2010.12.22 행복을 찾으신다고요? (16)
  3. 2010.05.14 꼴찌도 행복한 교실은 꿈일까? (6)


「동네사람들이 모여 앉아 피자를 시켰다. 피자가 도착하자 동네 사람들이 서로 먹으려고 법석을 떨다 힘센 사람이 반 이상 가져가고 몇 조각을 남을 것을 가지고 그것도 힘 센 사람 순으로 차지해 몇몇 사람은 겨우 입맛 다실 정도였다. 결국 노약자나 어린이는 맛도 보지 못하고 만 것이다. 힘센 사람은 싫도록 먹고 남아 주체를 못하고 어린이와 노약자는 배가 고파 견디지 어려웠지만 힘이 센 사람은 작은 조각까지 뺏으려고 기회를 보고 있었다.」

 

 


자본주의 양극화, 시자유주의를 이렇게 표현해 보았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고 있는 언론은 사실을 어떻게 보도해야 할까? 사회적 소수자, 약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안전판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힘센 사람이 피자를 독식하고 있는 현상을 정당하게 보도한다면... 이 기사를 보는 독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우리나라의 언론의 보도 자세가 대부분 이렇다. 그런데 우리는 놀랍게도 공중파나 신문과 같은 미디어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시청자나 독자들이 믿고 있는 미디어.. 언론에 대한 신뢰... 이대로 좋은가?


언론의 기능이란 '사건을 보도하고 정보를 제공하며, 나아가 사회 현상을 해석·선별해 의제를 설정하기도 하기도 하고  권력에 대한 비판을 담당하기도 한다, 또 기존의 정보를 재생산하거나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해 오락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기능을 제대로 감당하는 언론이 얼마나 될까? 일제 강점기 시절 ‘천황폐하 만세’를 부른 신문은 제쳐두고서라도 5·16을 혁명이라고 부르고 정치군인들이 광주시민을 학살하는 모습을 북한의 특수부대가 침투했다며 광주시민을 학살하는 군인을 공비토벌 중이라고 보도했다.


 

언론의 곡필사는 여기서 거론조차 하기 싫다. 박성숙씨가 쓴 꼴찌도 행복한 교실, 독일교육이야기(두번째)’를 보면 독일 사람들은 교양서든 신문이든 미디어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독일에서는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언론을 믿지 말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치에 의해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 영향일까?

 

 

‘히틀러의 뒤에는 그의 독재를 정당화하고 대국민선전 선동에 앞장섰던 파울 괴벨스가 있었다. 독일 국민들은 괴벨스에 장악당한 언론을 철저하게 믿었다. 독재의 나팔수가 된 언론은 도덕과 정의, 관용, 애국심에 호소하며 지식인들을 설득하고 국민들을 세뇌했던 뼈아픈 과거를 잊지 않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 독일인들은 미디어를 통한 우민화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교육을 통해 국민들을 각성 시키고 있다.


우민화교육을 말하면 펄쩍 뛸 사람들이 있다. 민주주의 학교에서 그 무슨 정신 나간 소린가라고 반발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학교는 학생들에게 우리사회의 모순을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지 않는다. 그것은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언론분야든 마찬가지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몇 조각의 지식이라도 더 많이 아는 것이 능력이라고 가르치는 학교에는 원칙만 배울 뿐 현실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진실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 현실을 눈감기고 있는 우민화교육의 피해자는 당연히 피교육자인 학생들일 수밖에 없다.

 
이제 신문은 가면을 벗고 자신의 모습을 정정당당하게 공개해야 한다. ‘우리 신문은 재벌을 편이다’ ‘우리 방송은 새누리당을 지지한다.’ 우리 신문은 ‘약자의 힘이다’라고 당당히 밝혀야 한다. 겉으로는 ‘불편부당 공정보도’를 말하면서 신자유주의 시각으로 재벌을 두둔한다. 공평보도를 한다면서 여당을 지지하고 야당을 공격한다. 왜 경향신문이나 한겨레신문처럼 ‘사회적 소수자, 약자들의 권익을 보호’한다고 당당하게 선언하지 못하는가? 공정보도라면서 왜곡편파보도를 일삼는 언론은 시청자나 독자들에 대한 기만이요 폭력이다.

 


1994년부터 우리나라 언론사들은 이상한 미디어 교육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를 시작으로 자기 신문을 교재로 세상을 보여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름하여 NIE교육. 한국 언론 협회에서 주관한 'NIE 세미나'에서 처음으로 NIE라는 용어가 소개되면서 현재는 대부분의 수구언론들이 정기적으로 NIE면을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조중동이라는 안경으로 세상을 보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길러낼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친재벌, 친독재, 친일의 시각으로 2세들에게 수구적인 세계관을 각인시킨다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언론들로 인해 우리 사회는 반동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왜 이런 기막힌 현실을 두고 지식인들은 침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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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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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살다가 좋은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특히 나이가 들어 찾아오는 사람이 없이 늙는다는 건 불행 중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빈고(貧苦), 고독고(孤獨苦), 무위고(無爲苦), 병고(病苦)를 노인의 4고라 했는가 보다. 

"이부장님! 날 좀 도와주이소. 블로그를 하면서 트랙백이 뭔지도 모른답니다. 사진도 좀 예쁘게 넣고 싶고... 한번 찾아 갈테니..."
"선생님 그럴 필요없이 제가 찾아 가겠습니다. 학교도 구경할 겸 해서요." 

YMCA 에 근무하는 이윤기부장이다. 이부장님은 YMCA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보다 '책읽기, 책읽기, 사람살이' 블로거로 더 유명한 사람이다. 미안해서 어쩌나 해도 막무가네다. 찾아와서 너무 쉽고 간단하게 몇가지 프로그램을 깔아주고
"이렇게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몇 시간 동안 이것 저것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갔지만 가고 나서 혼자 해 보면 또 안 된다. 전화를 해도 귀찮은 기색이 없다. 덕분에 포토스케어라는 프로그램으로 내 블로그가 환해 졌다. 


둘째 친구는 최근에 새롭게 일하면서 만난 친구다. 친구라고 하기는 좀 그런 필자가 고등학교 재직시절 제자다. 한 동안 잊고 살다가 어느날 느닷없이 스승의 날 찾아 와 "선생님..." 하면서 다시 만난 친구다. 
어려울 때 친구라고 했던가? 내가 몸이 아파 힘들어 했을 때 
"선생님은 아프시면 안 되는데..."
걱정하면서 이제 여유가 있으니까 어려운 친구들을 돕자며 함께 일하고 있다.  

"돈 걱정은 하지 마시고 어려운 아이들 우리가 도와 줍시다."
있는 채도 아는 채도 않는 친구다. 망서림도 가식도 없다. 
'교실을 세 얻고 꾸미고 학교에 필요한 집기며, 알아서 혼자 다 한다...'

창동에 야학을 세우면서 함께 하는 친구다.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는 걸 마다하고 한사코 실명을 거부한다.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건 당연히 자기가 해야할 일이란다. 이 친구와 여러선생님 덕분에 마산 창동에 야학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 12명에 교사 10명의 행복한 가족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최근에는 상근자도 필요하고 사무실도 좀 따뜻한 곳으로 옮기자면 법인 준비에 한창이다. 

또 다른 친구 한 사람. 이름만 대면 블로그를 하는 사람이라면 '아, 그사람!...' 할 친구다. '꼴찌도 행복한 교실과 독일교육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하고 '독일교육이야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무터킨더 박성숙씨가 그 사람이다. 


"여보세요, 김용택선생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만... 

난 또 선진강 시인 김용택씨를 찾는 전화가 잘 못 걸려 온 줄 알았다. 가끔 김시인에게 강의 요청을 하면서 동명이인 내게 그런 전화가 걸려 오기 때문이다.

"저는 독일교육이야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무터킨더 박성숙이라고 합니다."
"아니, 선생님께서 어떻게...?"


전에도 가끔 그분이 운영하던 블로그에 가서 좋은 글 가끔 보기도 했기에 뜻밖이다.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꼴찌도 행복한 교실 출판관계로 한국에 온 김에 시간이 있어 태봉고등학교에 한 번 가 볼까 하고요"

이렇게 만난 사람이다. 덕분에 태봉고 학생은 물론 경남도민일보 가족과 오랫만에 참 좋은 시간을 갖기도 했지만...
사실은 이윤기 부장님이나 익명을 요구하는 제자나 또 무터킨더님이나 나이로 보면 내 친구뻘이 아니다. 그러나 친구란 무엇인가? 말이 통하고 맘이 통하면 그게 친구 아닌가? 나는 친구라는 말보다 동지라는 말이 더 정겹고 좋다. 

친구 하면 함석헌 선생님의'그 사람을 가졌는가'가 생각난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운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탓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를 서로 사양하며
'너 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 만은 살려 두어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난 일을 하면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전교조를하면서 노동이 좋은 거라며 민주의식을 가진 사람과 대학교수님들이 노동자라며 전교조 분회를 결성해 함께하기도 하고, 경남 지부장을 맡으면서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맘이 통하는 좋은 사람들과 만나기도 했다. 


 무터킨더님을 알게 되면서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런 사람들만 있다면 우리교육이 얼마나 좋아질까?' 그러면서 블로그에 글도 남기고 했다.

그 뒤 그분이 낸 '꼴찌도 행복한 교실'과 '독일교육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에게 눈을 뜨게 해 준 소중한 분이다. 

태봉고등학교에서 또 경남도민일보 독자모임 가족들과 만남을 통해 그분이 지향하는 세계가이 어떤 것인가도 알게 되기도 했다 .     

독일로 돌아 가신 후 자신의 블로그에 날 소개하는 포스팅을 해 깜짝 놀랐다. 
박성숙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그는 여전히 이땅에 살고 있다’는 글로 소개하기도 하고 (http://blog.daum.net/pssyyt/8934585) 얼마 전에는 ‘다음 뷰 얼린편집자님들께 부탁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를 소개합니다.’라는 글을 올린 일도(http://blog.daum.net/pssyyt/8934751) 있다.  


지금은 가끔 블로그의 멘토역할도 해 주신다. 
"선생님! 이 글 제목은 이게 좀 더 좋지 않을까요?"

무터킨더님이
필자에 대한 관심은 '우리나라 교육이 하루라도 빨리 바뀌어 감옥과 같은 곳에서 고생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구하고 싶다는 애정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교육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열정이 없었다면 아까운 시간을 쪼개 내게 어려운 조언을 해 줄리 없다. 잘못된 교육을 바꿔야 겠다는 신념, 그래서 소외나 억압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나의 부족한 글까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리라.


블로그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나를 깨우쳐 하루 2000명이 넘는 네티즌들도 방문하는 블로그로 바뀌게 한 것은 이분들의 덕분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충고는 블로그를 바꿔놓을 수 있게 만들기도 하는구나. 뒤늦게 깨우친게 많다. 
산다는 것은 사람과의 만남이다.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에 따라 행복의 여부가 결정되기도 하고 삶의 질이 바뀔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다. 더구나 열정과 신념을 가진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분류없음2010.05.14 07:29



‘꼴찌도 행복한 교실’은 꿈일까?

실력이 아니라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의 여부로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나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자율학습, 정규수업, 보충수업, 또 자율학습... 으로 이어지는 시험문제 풀이로 날밤을 세우는 학교. 사람 사는 얘기를 10분만 하면 ‘선생님, 공부합시다’는 얘기가 제자들의 입에서 그침 없이 나오는 교실. 전국단위 학력고사 점수로 개인별, 학급별, 학교별, 지역별로 서열을 매기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파행적인 고등학교 교육도 모자라 초·중학교까지 방학도 반납하고 선수학습, 보충수업, 자율학습으로 교육을 팽개친 나라. 삶의 지혜가 아니라 점수 몇 점을 위해, 일류대학 입학을 위해, 취업을 위해 스팩쌓기에 시험준비에 대학이 몸살을 앓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다. 인격도야가 아니라 SKY가 교육의 목표가 되고 원하는 대학에 입학만 하면 졸업이 가능한 나라. 대학의 졸업장이 개인의 인품을 결정하는 나라에서 교육이 가능하기나 할까?

 

초·중·고등학교는 의무교육으로 전액무상이고 대학에 안가도 사람대접 받는 나라가 있다.

대학진학률 36%, 대학 졸업 50% 그러니까 18% 정도가 대학을 졸업해도 선진국의 자리를 당당하게 지키는 나라가 독일이라는 나라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저임금이나 비정규직노동자로 살지 않아도 되는가 하면 노동자도 존경받는다. 페인트공도 지역에서 존경받고, 그 페인트공이 시장이 되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 순위를 매기지 않은 교육, 경쟁이 우선하지 않는 교육, 그러기에 1등과 꼴찌가 다정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교실이 된다.

‘독일교육이야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최성숙씨가 낸 책. ‘꼴찌도 행복한 교실’에 나오는 얘기다. ‘어느 대학을 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인생을 즐길 것인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가?’가 중요하고, 점수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학교가 안내자 역할을 한다. 이것이 '꼴찌가 없는 교실' 독일학교의 현주소다.

핀란드를 비롯해 유럽선진국이 하는 교육을 우리는 왜 못할까? 무너진 교육, 위기의 학교를 우리는 왜 살리지 못할까? 가르치라는 것만 가르치는데 만족하는 교사가 있고 자식을 ‘인격체’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는 학부모가 있는 한 그리고 교육을 상품이라고 우기는 정책을 고수하는 정부가 있는 한 ‘꼴찌도 행복한 교실’은 우리에게 영원한 꿈이다.

이 글은 김용택과 함께하는 참교육이야기(http://chamstory.net/)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