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미디어2018.12.22 09:57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어디쯤 있을까? 흔히들 우리나라를 말하면 국민소득이 어떻고 군사적으로 얼마나 힘이 강한나라인가 혹은 올림픽에서 어떤 종목이 세계에서 몇 등인가?... 식으로 자랑을 하기 마련이다. 특히 인공지능시대를 맞으면서 인터넷이 선진국을 앞질렀다느니 세계가 열광하는 K팝이 얼마나 대견스러운가에 대화의 초점이 모아진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모르고 사는 것. 놓치고 있는 것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얼마나 행복한 나라인가에 대해서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세상을 비춰 주는 창, 언론이다. 언론이 어느 분야를 비춰 주느냐에 따라 세상의 눈은 온통 그 분야에 열광 하다가도 아무리 이슈가 되는 기사거리라도 언론이 외면하거나 침묵하면 그것은 관심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세상을 비춰주는 거울, 언론이 얼마나 공정하고 인도적인가에 따라 세상 사람들은 웃고 울며 혹은 분노하기도 한다. 우리의 눈, 대한민국의 언론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2002년 경남도민일보가 교육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 ! !이라는 프로그램을 개설했던 일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1. 3주 월(유아) (교단에서), (초등), (교육개혁) (교육미디어)2, 4주는 월(청소년), (과학세상), (캠퍼스), (평생교육, (이슈진단), 등으로 구성해 재미있고 유익한 기사로 꾸몄던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이 프로그램에 고정필진으로 참여 해 기사를 썼는데. 2002101일에는 당시 이슈가 되었던 권언유착이 안타까워 언론, 권력층부패에 침묵하지 마라」(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라는 기사를 썼던 일이 있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중요한 기사거리라도 중앙지가 보도하면 이슈가 되지만 지역신문이 아무리 톱기사라도 전국적인 이슈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서울민국이라고 하느지는 몰라도 세상을 비춰 주는 창 언론이 어느 쪽을 비춰주느냐에 따라 기사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2002101일자 언론 권력에 침묵하지 마라라는 기사는 지금 읽어도 달라진게 없다. 무엇이 어디가 문제일까? 민주주의를 일컬어 여론정치라고들 한다. 그만큼 여론이 정치를 주도한다는 뜻일게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언론이 자사의 이익이나 특정정당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면 그 사회의 건강성이 유지될까? 실제로 독재 권력은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그 유명한 ‘3S정책으로 주권자들의 눈을 감겨 왔다. 그 후 개량적인 국면, 유사민주주의단계에서는 언론이 스스로 권력에 손을 내밀어 알아서 기는...’보도를 일삼았다. 그래서 실리를 챙기는 더러운 짓거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배를 채워 온 언론이다.

바른 말하는 언론은 권력의 미운살이 박히기 마련이다. 현재 조··동이 거대한 기업이 된데 비해 경향신문이나 한겨레신문이 운영난에 허덕이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가난하게 만들어 놓고 살아남으려면 무릎을 꿇어라? 이것이 돈으로 유혹하는 비겁한 권력의 속성이 아닌가? 이러한 수법은 독재정권이 써먹던 전유물이다. 특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대한민국의 정치구도에서야 집권정당도 권력도 어떻 그런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대표적인 사례로 영화 내부자들이 증명해 주고 있지 않는가?

우리나라 거대 신문들은 정직한가? 객관적인가? ‘공정, 정직, 진실, 불편부당한가? 권력으로부터 권언유착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언론의 사명을 팽개치거나 권력의 시녀가 되지는 않았는가? 자본의 시녀가 되지는 않았는가? 자본의 목소리를 대변해 성을 상품화 하거나 양극화사회를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는 죄는 짓지 않았는가?

자본의 목소리를 대변해 환경오염의 주역을 담당하거나 사교육의 돈벌이를 시켜주거나 스스로 사교육기관을 운영해 돈벌이를 하는 교육파괴의 주범이 되지는 않았는가? 본질을 덮어두고 현상을 과장, 보도해 냄비근성을 드러내지는 않았는가? 부끄러운 언론이여, 제발 왜곡보도로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죄를 언론 소비자들 앞에 석고대죄라도 한번 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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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사는 이야기2018.02.17 06:58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고,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고,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학원 문을 두드리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이게 학부모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여기까지는 이해하자. 그런데 이런 생각이 '돈으로 해결 못하는게 없다'는 고정 관념으로 굳어지고 그 돈(학원비)를 벌기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가정이 파탄으로 이어지는 비극의 악순환이 반복된다면... 이런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 들이는게 옳은 일인가?



현실이니까, 살아남기 위해... 라는 생각은 가정경제만 파탄으로 몰아가는 게 아니다. 아이들의 삶을, 부모의 가치관을 바꿔 운명론을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논리로 따지자면 이런 현실을 만든 정부의 교육정책을 원망하고 질타하고 항의하는 게 순리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부모들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다. '지면 죽는다'. 살아남기 위해 경쟁의 대열에 참가해 시합 전에 승패가 결전 난 게임에 울며 겨자 멱기식으로 동참할 수밖에 없는 게 오늘날 부모들이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누가 이런 부모들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모든 사회문제가 다 그렇지만 교육문제는 더더욱 그렇다. 정책의 잘잘못을 지적하고 시비를 가리고 정책실패에 저항해야할 장본인은 교육자나 언론의 몫이다. 그러나 '시합 전에 승부가 결정난 게임'에 동참해 침묵하는 교육자는 교육자로서 책무를 다 하고 있는가? 당연히 내가 하고 있는 역할이 잘못 됐으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보다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부터 먼저 해야 하는게 순리가 아닌가?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우리교육현장은 이 기막힌 현실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교사를 양성하는 과정부터 차단하고 있는게 정부정책이다. 교사를 길러내야 하는 양성과정, 즉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이 시비를 가릴 줄 아는 비판능력이 있는 학생보다 암기능력이 좋은 학생을 골라 입학시킨다. 졸업하는 4년간 내내 그런 훈련이다. 일등 지상주의 성적순은 학생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교사양성과정에도 적용해 일등이 우대받는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언론이다. 언론이 비판기능을 못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권력이 내놓은 보도 자료나 베끼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그러나 오랜 군사정권, 독재정권에 길들여진 언론은 이런 현실을 당연시 한다. 그게 살아남는 길이요 개인적으로 승진하고 출세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영악스런 언론 초년생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여기다 자본(광고주)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언론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눈만 감자.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정도의 생각을 하는 교육자나 언론은 그래도 낫다. 대책 없는 지식인들의 한계,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진실이라고 우기는 지식인들의 고정관념을 어쩌랴! 자기 눈으로 보고 듣고 느끼면서 배운게 아니라,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로 내놓은 학설이나 원리, 법칙을 절대적인 진리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대책이 없다. 토론의 대상조차 아니다. 고정관념으로 무장한 이들은 출세의 가도, 상사의 눈치,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데 이력이 나 살아남기가 아닌 신념으로 살아오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터진다고 했던가? 권력을 잡은 사람들, 식민지 종주국의 푸들이 되어 얻은 돈이며, 권력이며...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자들은 2, 3차 이런 인간을 재생산해 이런 질서를 정당화 한다. 이들이 정책을 만들고 그런 인간을 양성해 자신의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풍토를 만들어 비판세력을 제거하고 저항하는 자들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매장 시켜 온 것이다. 이런 전통(?)이 진리가 된 사회에서는 정의로운 사람, 비판의식을 가진 사람, 양심적인 사람이 살아남을 틈새가 없다. 비굴하게 살든지 아니면 굴종의 삶을 살든지...

해직 언론인들이 누군가? 전교조 해직교사가 누군가? 블랙리스트에 명단이 올라간 찍힌 사람들.... 그들이 누구인가? 도둑질을 했는가? 파렴치범인가? 성추행 범인가? 아니 차라리 그런 죄라도 저질렀으면 억울하지는 않겠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이런 힘의 논리, 돈의 논리, 권력의 논리에 길들여진 사회에서는 살아남기가 정당화되고 진리가 된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현실... 착하기만 한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 이런 사람은 결국 희생자가 되어 내 탓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세상. 지식을 암기해 살아남기 위해 승부가 결정난 게임에 희생자가 된 아이들, 순진한 부모들이 불쌍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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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2.03.15 07:00


 

방송 3사 왜 공동 파업...?


'낙하산 사장퇴출, 해직 언론인복직, 공정방송 사수!'

3월 8일 3개 방송사 노동조합이 공동파업에 들어가면서 발표한 파업 이유다. 어떻게 3개 방송사의 노동조합이 파업이유가 똑같을까?

공정성과 신뢰성, 창의성과 전문가 정신을 통한 고객만족이라는 핵심가치를 세우겠다는 MBC, 사회 환경 감시 및 비판, 민족문화를 창달하겠다는 KBS, 살아있는 뉴스, 깨어있는 방송을 하겠다는 YTN…, 과연 이들이 자사의 사시나 철학에 맞는 공정한 방송, 신뢰받을 방송을 실천해 왔을까?



권언유착, 유신찬양, 친재벌, 친독재... 부그러운 언론의 역사


우리나라 언론은 권언유착과 유신찬양, 친재벌의 친독재의 씻을 수 없는 과오로 점철되어 왔다. 5·16쿠데타를 혁명으로, 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광주민중항쟁을 북괴의 난동으로 보도하고 '땡전 뉴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던 공중파 방송국이다. 약자의 목소리에는 침묵하고 권력자의 비리나 재벌의 횡포에 눈감은 부끄러운 역사다.

신문은 또 어떤가? 정의옹호(正義擁護)와 문화건설(文化建設)을 한다는 조선일보는 어떻고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를 표방한 동아일보는 그들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가? "사회정의에 입각한 보도와 정론 환기, 사회복지 증진을 위한 사회공기로서 언론의 책임을 완수"하겠다는 중앙일보는 그들의 사시(社是)를 실천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가?

사시(社是) 따로, 정권의 나팔 수 마다않았던 언론


민주적이고 투명한 정부라면 굳이 언론에 감출 것도 국민들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할 것도 없어야겠지만 감출 것이 많은 이명박정부는 낙하산 인사로 언론사를 장악,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강요해 왔다. 이번 방송 3사의 파업은 조합원들의 임금이나 근로시간, 복지나 근로조건개선이 아니다. 방송 3사가 권력의 시녀가 되기를 거부하고 공정방송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4·11총선을 앞두고 방송 3사 노조가 파업한 것은 시기적으로 의미가 크다. 이명박 정부는 언론을 장악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지금은 SNS시대다. 공중파를 넘어 트위터나 페이스북, 뉴스타파, 나꼼수와 같은 매체가 공중파 빅뱅시대를 선도하기 때문이다. 사실이 이런데도 MB정권은 낙하산 인사로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 이에 한 술 더 떠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언론과 종편방송은 권력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선거 때마다 친정권, 친여당 편들기를 마다치 않고 있다.


편파왜곡 보도로 여당선거 운동? 지역감정 조장까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조중동 방송은 '박정희 기념관 건립과 관련해 박근혜 띄우기'를 하는가 하면 '격전지역' 총선 판세 보도를 하면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텃밭"이라는 표현을 남발하고 있다. 대권 유력 주자들에 대한 일일 여론조사 결과를 뉴스 첫 머리에 다루며 경마식 보도를 일삼고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조선일보는 공영방송 파업사태를 "민주당과의 합작(품)"이라며 야당의 선거 전략이라 호도하고 있다.

MBC파업 46일째다. 지난 8일부터는 KBS, YTN도 이명박 정부의 언론탄압과 낙하산 인사에 반발, 공정방송을 쟁취하겠다는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요구조건에 차이는 있겠지만 국민일보나 CBS와 한국일보. 서울신문도 심상치 않다. 정작 부끄러운 과거를 속죄하고 독자들에게 무릎 꿇어야 할 조중동은 왜 침묵할까?

비판과 감시의 기능을 해야 할 언론이 권력의 편에서 편향보도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존립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다. 방송노조의 파업이 권언유착과 유신찬양, 친재벌의 친독재의 오명을 씻고 진실을 말하는 공영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73987

- 위의 이미지들은 다음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검색에서>

‘우리가 지켜야할 성벽(The Ramparts We Guard-매키버(R. M Meclver)

                       ’민주주의의 참과 거짓을 가리는 기준‘


1. 사람들이 정부시책에 반대해도 이전과 다름없이 심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

2. 정부의 시책에 반대되는 정책을 표방하는 자유롭게 조직할 수 있는가?
3. 집권당에 대해서 자유롭게 반대투표를 할 수 있는가?
4. 집권당에 반대하는 투표가 다수일 경우 정부를 권력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는가?
5. 이와 같은 문제를 결정하는 선거가 일정기간 또는 일정 조건 하에서 실시될 수 있는 입헌적인 조치가 되어 있어 있는가?
이상의 물음 중에서 하나라도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오면 그 나라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매키버의 ’민주주의의 참과 거짓을 가리는 기준‘이다.

교과부가 2013년부터 사용될 초, 중, 고등학교 한국사 부분에 그동안 민주주의라고만 표시되어 있던 것을 자유민주주의로 바꾼데 대해 학계는 물론 정치계까지 시끄럽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초·중·고교 역사 교육과정의 교과서집필 기준을 만들기 위해서 꾸려졌던 교과부 산하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 민간 위원 8명이 집단 사퇴를 하는가 하면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교육 관련 12개 기관 국정감사가 시작도 하기 전에 파행을 겪고 있다.

 매키버의 기준에 비추어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일까?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의원이 있다면 사임해야 한다"
"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북한에 가서 국회의원 하라"고  했다. 


매키버는 ‘정부시책에 반대해도 이전과 다름없이 심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했다.

국정감사를 하는 국회의원들이 민주주의 개념을 자유민주주의로 왜곡한데 항의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북한에 가서 국회의원을 하라’니... 

고등학교 수업에 들어가 보면 학생들의 이념에 대한 이해 수준은 한심할 정도다.

민주주의란 자유민주주의도 있고 인민민주주의도 있고 사회민주주의도 있다고 말하면 놀란다.

 


정치개념인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를 구별 못하고 경제개념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민주주의니 사회주의니 자본주의와 같은 이념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다루는 교과서는 없다. 정치나 사회, 도덕교과서에 민주주의를 가르칠 기회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민감한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룰 교사는 없다.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겠다는 사람들의 저의가 무엇일까? 일류대학을 나오고 박사학위를 받거나 또는 그 분야 전문가들도 많은데 그들은 왜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있을까? 민주주의란 ‘한사람이나 소수의 지배가 아니라 다수의 민중이 지배하는 정치형태’라는 걸 몰라서일까? 민주주의가 인간의 기본적 인권,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리, 법치주의 따위를 그 기본 원리로 한다는 것은 중학생정도면 다 안다.


어린이, 청소년, 청년, 장년, 노인... 이런 모든 개념을 포함해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이라는 말 대신 ‘어린이’로 표현하면 사람의 개념을 포괄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란 자유민주주의도 있지만 프롤레타리아가 주권을 가진 국가에서는 인민 민주주의,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자는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민주주의, 유럽의 선진국처럼 국민들의 복지를 우선으로 하는 나라에서는 사회민주주의로 표현한다. 그밖에도 민주주의란 평화민주주의, 자본민주주의, 대중민주주의.. 등 40여 가지나 있다.

민주주의란 말은 수많은 민주주의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런 다의적인 개념을 지닌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자유민주주의’로 한정하겠다는 저의가 무엇일까? 최근 KBS가 독립군을 토벌하던 백선엽을 영웅으로 미화하고 이승만 동상을 세우겠다는 시도에서 볼 수 있듯이 친일세력이나 친독재세력의 부활을 꿈꾸는 기득권세력의 시각 아닌가?

정부와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 그리고 조중동과 같은 수구세력들은 '자유민주주의'는 '6·25 전쟁에서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를 수호했다'는 개념으로 해석해 '자본주의 시장경제'만을 강조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고치면 4·19 혁명과 6월 민주항쟁 등 시민운동은 평가 절하되고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로, 박정희는 근대화의 공로자로 가르쳐야 한다. 

말로는 교육의 중립성을 말하면서 정치가 교육을 장악해 권력의 시녀로 만들겠다는 의도다. 정권의 시각으로 미래의 주인공이 될 청소년들에게 편향된 의식을 심겠다는 음모는 중단되어야 한다.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 민간 위원 8명이 집단 사퇴까지 한 가운데 만들어진 '2009 개정 교육과정'은 수정되어 마땅하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종교2011.05.21 05:00



예수님의 동생이자 초대 교회의 유력한 지도자였던 야고보는 교인들에게,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라고 경고했습니다. 지도자가 되지 말라고 한 뜻은 지도자가 받을 더 큰 심판보다 지도자 때문에 발생할지도 모를 교회 공동체의 엄청난 피해를 더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면, 지도자를 잘못 만났거나 잘못 선택한 바람에 불안과 공포에 떨고, 끔찍한 비극을 겪어야 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물욕과 권력욕과 명예욕에 취한 교회 지도자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소금이어야 할 교회가 병들어 가는 이유가 무엇일가요? 교회는 늘어나는데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은 왜 날이 갈수록 심해질까요?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성서에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마태복음 5:3)’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목회자들은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헌금을 강요하세요? 제정일치(祭政一致)시대 십일조관행을 제정(祭政)이 분리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바꾸지 않고 있습니까? 세금은 세무서에서 따로 내는데 소득의 십분의 일을 내는 게 맞나요? 그리고 시민들이나 기업들은 세금을 다 내는데 왜 교회는 세금을 내지 않는지요? 교회가 세금을 내지 않는 대신 가난한 사람들이 조세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양심적이지 못한 일이 아닌가요? 십일조 안내면 왜 하나님 재물을 훔치는 도둑이라고 강조하시나요?

성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기도는 하느님이 다 들어주신다고 했는데 기도(祈禱)를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야고보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예배는 강조하고 실천을 강조하지 않는지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절) 하지 않았나요?

교회는 권력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일제시대는 황국신민화에 앞장서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거치면서 왜 ‘권력은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며 불의한 권력을 두둔하던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왜 독재자를 두둔하고 살인자를 비호해야 할까요? 하느님은 가난한 자, 소외된 자, 병들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과 아픔을 함께 하셨던 분이 아닌가요?


정의보다 순종을 강요하는 게 하느님의 뜻인가요? 야훼를 강조하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강조하는가 아니면 성령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하느님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는 건 상식입니다.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도 아는 상식을 목회자는 왜 역사의 고비마다 신자들에게 정의보다 순종을 강요해 불의에 침묵하도록 가르쳐 왔습니까?

교회가 하느님보다 소중한가요?
교회란 무엇입니까? 초대교회를 생각해보세요. 초대교회 예수님의 제자들은 선교를 하다 잡히면 십자가에 달리는 희생을 당해야 하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순교를 각오하는 모임이 교회의 시작이 아니었던가요? 죽음의 결의를 다지는 장소, 실천의 각오를 다지는 장소가 교회 아니었나요? 그런데 그런 교회가 하느님이 바라는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나요?


유다인들의 과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인자하시고 순한 양 같으신 예수님이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금상 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금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상을 둘러엎으셨습니다. 그리고 비둘기 장수들에게 "이것들을 거두어 가라.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꾸짖으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장하는 사람들의 집으로 예수님의 꾸중을 듣지는 않을 런지요?

교회는 죄를 씻어주는 세탁소가 아닙니다.
누구나 회개만 하면 다 용서해 주신다고요? 전두환처럼 수많은 광주시민을 죽여 놓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면 속죄가 되는 걸까요? 진정한 회개란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는 것’(요나서 3장 8절)이라고 했습니다. ‘강포’란 히브리어로 ‘하마스’ 즉 ‘모든 형태의 사회적 불의를 뜻하는 말로 ‘억압과 착취와 박해 등 인간에게 저질러지는 사회적 폭력’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사회에서 행하던 일상적 폭력에서 떠나 정의와 공평의 삶을 살 때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교황이 허락한 성직자들 외에는 성경을 읽을 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성경을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오직 신부들이 전하는 것만 신자들은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교황의 생각이 그들의 신앙과 행위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어떨까요? 성서를 가르치는 신부님. 목사님. 그분들의 시각에 따라 강론이 달라지고 신자들의 신앙관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향한 ‘교회에만 하느님이 없다’는 비판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그 것은 교인들과 교회지도자가 만든 자업자득이라는 사실을 겸허하지 받아들일 때 교회는 소금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