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교육청에서 장학지도가 있을 예정입니다. 선생님들은 지금 즉시 담당구역에 가셔서 청소지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

 

<위 사진은 기사내용과 작접관련이 없습니다.-출처 : 대전교육>

 

교육청에서 장학사가 오는 날은 초비상이다. 아침부터 스피커를 통해 담임선생님의 임장지도를 당부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주번선생님이나 교장선생님까지 학교 구석구석 청소상태를 확인하고 수업시간에 평소 안 하던 학습목표를 흑판에 적는 쇼(?)도 마다하지 않는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자료실에 잠자든 괘도 한 가지라도 걸어놓고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물론 공개 수업을 하는 반에는 학습지도 세안을 작성해 미리 결재를 받아야 한다. 어떤 반에는 수업공개를 하는 전날부터 예행연습까지 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1980년대 까지만 해도 교육청에서 ‘장학지도’를 오는 날에는 선생님들에게 복장까지 정장(?)을 요구한다. 잠바를 입거나 생활복을 입으면 교사답지 못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교사들의 교수용어도 평소 마음 편하게 진행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학생들에게 존댓말로 수업을 진행하는 웃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당연히 학교장의 강력한 주문이 있기 때문이다.

 

평상복에 편하게 입고 출근하는 선생님이 어쩌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출근 하는 날에는 학생들로부터 “선생님 오늘 장학사 오는 날입니까?” 하고 묻는 학생이 있을 정도다. 오전동안 수업이 끝나면 교장, 교감선생님과 식당에서 낮술까지 한잔 걸친 장학진은 오후 수업시자기 되면 학생들을 자습시켜놓고 전체 선생님들은 교무실에 불러 모은다. 장학지도라는 평가를 하기 위해서다. 평가래야 장학사들이 일장 훈시조의 연설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장학이란 ‘학생들을 보다 더 잘 이해하고 교사와 교장을 돕는...’ 게 고전적인 임무다. 그런데 당시의 장학이란 학무를 돕기는커녕 민폐(?)를 끼치는 행사요, 교사들에게 곤욕을 치르게 하는 연중 의례다. 이름은 장학이지만 장학지도는 전혀 장학적이지 못했다. 장학사 앞에서 학생들에게 비굴하게 이중적인 담임선생님의 모습을 보이는 건 또 그렇다 치고 수업시간에 자습까지 시켜놓고 평가회에 참석해야 한다.

 

<위 사진은 기사내용과 작접관련이 없습니다 - 이미지 출처 : 전남함평교육지원청>

 

교육청의 장학지도는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학교는 ‘장학사’는 전문가요, 교사는 장학사가 되다만 장학사의 부하다. 교감, 교장, 장학사, 장학관이라는 계급사회가 그대로 온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학교라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대접받는 학교여야 하지만 교사보다 교감이나 교장이 또 행정관료가 된 장학사가 더 유능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이런 풍토에서 유능한 교사는 교감이나 교장으로 승진하고 무능한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게 학교다.

 

7차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교실은 그야말로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수업이나 학생지도의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연금이 되는 햇수만 채우면 명예퇴직을 신청하거나 일찌감치 교감이나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한 점수따기 준비를 하는 선생님들이 많다. 나이가 들어 승진을 못하면 무능한 교사(?)로 보이는 이유 때문이다.

 

교사를 보는 학부모나 일반인들의 시각도 예외는 아니다. 교사보다는 교감이나 교장이 교장보다는 장학관이나 교육장이 권위가 있고 높은 사람으로 존경 받기 때문이다. 어쩌다 줄타기 능력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승승장구 장학관에서 시군 교육장으로 승진했다가 퇴임 후 교육감과 같은 선출직으로 까지 출세(?)하는 길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희망하는 사람들은 많고 승진의 길은 좁은 게 승진의 길이다. 아무나 원한다고 교장, 교감이 되는 게 아니다. 당연히 희소성의 원칙이 적용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전체 유·초·중등학교 수는 18. 919개교다. 전체 35만 교원 중 교장은 한 학교 한사람뿐이니 승진의 길은 좁고도 험난(?)하다. 우리나라에서 평교사가 교장, 교감으로 승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한 번 살펴보자. (내일 계속해서 쓰겠습니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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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의 하루 평균 대화시간 35초.

혹시 오늘 하루 자녀에게 건넨 말이

“밥 먹어라”

“공부해라”

“학교 가야지” 등이 전부이지는 않으셨는지요?

마음을 열고 대화해 주세요. 꼭 안아주세요.」

 

 

안동 MBC 라디오에서 나오던 ‘대화’라는 캠페인 중 일부다. 대화가 단절된 부모와 자녀들...

 

요즈음 부모들은 자기의 자녀가 유치원이나 학교에만 보내면 교육이 된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기본적인 생활습관을 길러 주거나 민주적인 생활훈련부터 생각하는 게 아니라 태어나기 바쁘게 어린이집, 유치원, 영어학원, 피아노학원, 태권도 학원, 미술학원, 음악학원...으로 보내면 부모로서 책임이나 역할을 다 했다고 믿고 있는 부모들도 많다.

 

경쟁시대를 사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놀면 불안하다. 이웃집 아이보다 뒤지는 건 두고 볼 수 없다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00네는 기러기 아빠까지 불사한다는데.... 00네는 원정출산도 마다하지 않는다는데... 00네집 아이는 영어발음을 잘하기 위해 혓바닥 수술도 했다는데....

 

극성 엄마, 치맛바람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들... 100점만 받으면... 일등만 하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성적만 올라간다면... 영재학교에 보낼 수만 있다면, 특목고, 자사고.... 일류 대학에 가야해! 최고가 돼야 해!... 남보다 뒤지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엄마들....

 

경쟁보다는 협동을 배우고, 맘껏 뛰어놀면서 각자가 특성을 찾아주는 교육은 불가능한 일일까? 자녀의 개성이나 소질이나 특기 같은 건 무시하고 서울대학을 나와야 해! 의사가 돼야 해! 판검사가 돼야 해! 하면 윽박지르는 엄마들은 없을까? 열심히 노력했는데... 최선을 다했는데 그래도 따라가지 못해 마음이 아픈데... 아버지 엄마가 어린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까?

 

 

극성 엄마들... 그런 엄마들일수록 자녀들이 학원이나 학교에서 무얼 배우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학생, 교사, 학부모를 일컬어 교육의 3주체라고 한다. 교육의 주체란 교육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을 사는 부모들은 학부모로서 해야 할 일을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동 MBC라디오 캠페인문구에서 볼 수 있듯이 부모가 가정에서 자녀의 교육을 포기한 지 오래다. 아니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지 오래다. 이 나라에 사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을 낳아서 유아원, 유치원, 그리고 학원이나 학교에만 보내면 교육이 저절로 된다고 믿고 있다.

 

학교가 무너졌다고 한다. 학교가 무너졌다는 말은 ‘학교에서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험문제를 잘 풀어 상급학교 그것도 일류학교,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게 목표가 됐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는 부모들이 교육을 하지 못하고 학교에서 교사들은 시험문제풀이를 교육이라고 착각하고, 학생들은 방향감각을 잃고 있다면 학생들은 어디서 사람답게 사는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어른들은... 교육자들은... 부모들은 왜 이런 현실을 계속 모른 채 하고 방관만 하고 있어야 할까?

 

학부모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아이들을 학교에만 보내면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 교육의 주체라면서 학교에는 학부모들이 설 공간이 없다. 아이들을 학교에 맡겨 놓고 살기 바빠 선생님들을 찾아보지 못했다는 미안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학부모들... 자녀교육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내야겠지만 그런 풍토도 분위기도 학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할 일이 정말 없을까?

 

지금까지 교육당국은 물론이요, 지역 교육청이나 학교는 학부모교육을 제대로 한 일이 없다. 이렇다보니 학부모들은 학기 초 학부모 총회라는 모임에 잠간 얼굴만 내밀고 오면 그게 끝이다. 구경꾼이 된 학부모, 교육위기를 보는 학부모들은 한결같이 자신은 그런 일과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학부모가 교육의 한 주체라면서 학부모가 학교에서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가 법제화되면서 학부모위원이나 지역위원으로 학교운영에 참가하는 학부모도 있다. 학교운영위원이 되면 학부모나 지역정서를 대표해야 하지만 여론수렴이나 결과를 공유하는 과정이 없다. 결국 개인의 성향이나 판단에 따라 의견을 발표하고 결정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담임선생님의 부탁으로 아침 등교지도 봉사활동, 학급급식지도를 하거나 혹은 청소도움이를 하는 게 전부다. 그런데 최근 학교와 교육청 연수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가 ‘교육공동체’에 대한 얘기다. ‘우리교육 2013년 가을호’에 소개 된 김정인 학부모는 ‘학교에 첫발 들여놓기’에서 학부모 참가기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학부모는 학교에서 재정적 지원을 하는 활동에만 참여하거나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할당된 일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학부모가 되면서부터 학생, 교사라는 교육주체가 아닌, 학생, 교사, 학부모가 협력하여 교육혁신을 꾀하려는 노력을 시도했다. 학교총회주체도 학교측이 내놓은 안건을 형식적인 통관의례로 끝내지 않고 ‘행복한 학교, 학부모와 함께 합시다’라는 주제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정인인 학부모처럼 학부모가 학교 교육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나 역할은 허다하다. 학교도서관의 도서위원이 되어 도서관 도우미로 활동할 수도 있고, 학교급식 식자재에 대한 원산지 확인과 위생 상태를 점검하는 급식 모니터링을 할 수도 있다. 방과 후 수업의 교육 내실을 키울 수 있는 방과 후 모니터링, 교과 선정위원회, 교원평가위원회 등 학부모의 관심과 요구를 반영하기 위한 학교교육관련 위원회에 참가하는 길도 있다.

 

 

교육청에서 하는 상담교육의 도우미로 혹은 교복공동구매의 추진 위원으로, 정규수업시간에 논술수업 명예교사로, 토요 방과후활동 체험활동을 기획하고 전통놀이나 요리교실, 원예활동 등 노력하기에 따라 그 역할과 영역은 끝이 없다.

 

2013년 경기도에서는 학부모회 조례가 제정되었다.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가 일체화되어 학부모의견을 수렴하는 민주적인 법제화 기구가 마련 된 것이다. 학부모가 학교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면 학교부모가 봉사자로서 역할뿐만 아니라 교육의 주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학부모회가 학년별, 학급별, 기능별로 조직되어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고 학부모의 조직적인 재능기부가 가능하게 된다. 교육부는 2010년부터 ‘학부모 지원사업 공모’를 통해 재정을 지원하고 지원된 제정은 사교육비 경감과 학교교육 발전을 위한 모니터링, 공교육 내실화와 자녀교육지도를 위한 학부모 연수, 내 아이만 아닌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학부모자원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학부모가 교육의 한 주체로서 참여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이름뿐인 임의기구인 학부모회를 의결기구로 바꿔야 한다. 학교가 처한 교육위기에 대한 학부모의 의견을 제시하고 결정할 수 있는 주체로서 학부모회. 그것은 ‘학부모회의 법제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 지역 교육청 단위에서는 조례를 만들 수도 있고 단위 학교에서는 학부모규약을 제정해 교육과정이나 학교운영에 대한 문제를 놓고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는 민주적인 학부모회로 탈바꿈해야 한다. 교육주체로서 학부모가 교육현장에 참여해 학교를 함께 가꿔가지 않는 한 위기의 학교, 무너진 교육을 살릴 수 없다. 학부모가 언제까지 교육위기를 강건너 불구경하듯 할 것인가?

 

- 이 기사는 '말고 향기롭게 2013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에서.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10점
김용택 지음/생각비행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 인천의 한 중학교는 시험성적이 오른 학생에게 놀이동산 자유 이용권을 주고 또 다른 중학교는 기초학력 미달학생이 한 명도 없는 ‘시험 우수반’에게 현금 3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 경북 포항의 한 초등학교는 '학력인증제'라는 이름으로 6학년 학생들을 세 등급으로 나누어 시험결과에 따라 상품권을 주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 부산의 한 중학교는 일제고사 대상인 3학년학생들이 화·수·목까지 7교시까지 강제 자율학습을 하기 위해 기타와 배드민턴과 같은 동아리 방과 후 활동을 중단했다.

 

☞ 경남의 사천지역 한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은 지난달부터 매주 토요일 학교에 등교하고 있다. 일제고사를 앞두고 시험문제를 풀이하고 있고, 인천의 한 초등학교는 일제고사에 대비해 희망하는 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국어와 수학, 영어 과목을 정규수업이 끝난 오후 3시부터 '학력향상을 위한 6학년 특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명박정부가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이하 일제고사)를 표집에서 전집으로 실시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일제고사는 현재 초등학교6학년과 중학교 3학년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현재는 고등학교 2학년)에서 실시하고 있다.

 

교원단체를 비롯한 많은 학부모들이 반대하는 일제고사는 실시 결과 성적은 공개했다. 지자체는 드러난 성적을 두고 책임자를 불러 학력향상 대책을 닦달하고 교육청은 일제고사 성적을 학교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학교가 교육과정을 무시하고 초등학교까지 고 3수험생들 교실을 방불케 된 이유다. 오는 26일 일제고사를 앞두고 위에서 예시한 사례에서 보듯 초등학생들까지 방과 후 문제풀이만 하루 대여섯시간씩 밤늦게 까지 학교에 잡혀 있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전국단위 학력고사는 오는 26일로 다섯번째다. 일제고사를 앞두고 학교가 시험공화국으로 바뀌고 있다. 현재 자율학습을 실시하고 있는 학교 중 "자율학습 실시 전에 자율학습 동의여부는커녕 '자율학습의 결석이나 조퇴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을 정도다. 학습부진아라는 이유로 친구들이 하교한 교실에 잡혀 문제풀이를 하는 학생들은 교육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문제풀이 기계로 만들고 있다.

 

말로는 수요자중심의 교육이라면서 거의 대부분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학습선택권은 안중에도 없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 학교들은 학생들에게 야간자율학습과 방과후 학교, 보충수업 등 정규교육과정이 아닌 학습에 대해 강제로 동의서를 써오게 하는 등 파행적인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학교에 따라서는 생활기록부를 나쁘게 써 주겠다고 협박하고, 시험 범위 진도를 나가는 등 정규수업 이외 학습을 하지 않는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학교가 이지경인데 이를 감시·감독해야 할 교육청은 무얼 하고 있을까? 지난 연말 충북의 한 장학사는 이메일을 통해 문제지를 학교에 비공식적으로 전달하고, 어느 장학사는 교육장이 야간 학습학교를 불시 방문할 예정이니 참고하라며 협박과 위법을 자행하고 있다. 경북 교육청은 일제고사 성적 향상 유공교사에게 10만원권 상품권과 해외연수를 미끼로 성적향상을 독려하는 등 교육청이 나서서 오히려 비교육적 행위를 조장했던 일도 있다.

 

일제고사는 교육이 아니다. 교육은 없고 문제풀이만 하는 학교. 6월 일제고사가 가까워지면 학교는 교육은 뒷전이고 점수 올리기에 혈안이 돼 정규교육과정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학력을 알기 위해서라면 전수조사가 아닌 표집검사로도 충분하다. 

 

수요자중심의 교육이라면 당연히 시험에 응하지 않는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하고 대체 프로그램과 체험학습도 허용해야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암기한 지식이 아니라 창의적인 사고력과 정보·기술을 이용하는 능력이다. 지역 간, 학교 간, 교사 간, 학생 간의 서열을 매기는 일제고사로 어떻게 21세기를 살아 갈 창의적인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 

 

 이미지 출처 : 전교조 홈페이지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1.12.08 06:29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인터넷포털사이트에 ‘여교사를 놀리는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을 찍은 영상’이 유포되기 바쁘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뉴스보도에 따르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4분 25초 분량의 문제의 동영상은 2년 전 부천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촬영된 것으로 선생님이 학생을 혼내자 꼬박꼬박 말대꾸하며 교사를 놀리는 장면이 담겨있다.
문제의 동영상은 여교사가 남고생 A군을 혼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교사 : “내가 언제 쳤어”
학생 : “선생님이 저 여기 싸대기 쳤죠. 얘들아 싸대기 쳤어 그렇지?”

교사 : (복도로 나가라고 지시)
학생 : “저 틀린 말 한 적 없죠? 근데 뭘 잘못했기에 나가야 돼요?”

교사 : “한심하다”

학생 : “선생님도요”(학생들은 함께 웃고 있다)

교사 : "선생님도 처벌 받을게. 너도 벌을 받아야 돼. 나와 학생부 가자고!"

학생 : "왜요. 제가 뭘 잘못 했는데요. 제가"

교사 : (화를 참지 못하고...) "개**..." (욕을 한다)

학생 : (반 아이들은 "오∼"하며 환호성)

교사 : (환호한 다른 학생을 지적하자...)


다른 학생 : "하던 일이나 하세요"

대충 이런 내용이다.

이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오자 네티즌과 언론의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여교사 농락 동영상 충격... 무너진 교권....’
‘여교사 농락 동영상‥'더듬이 체벌인가?'’
‘무너진 교권? 여교사 농락 동영상 충격! ’
종이신문의 뉴스들도 비슷한 논조다.
‘여교사 농락 동영상에 “체벌 부활-체벌 불가” 의견 분분’
'여교사 농락' 동영상 유포…땅에 떨어진 교권 '충격'
‘여교사 농락 동영상 충격...교실은 이미 죽었다.’
‘여교사 농락 동영상 '충격', "교권이 바닥을 쳤구나…"’
이런 논조다. 언론의 시각은 교권이 무너진 교실을 개탄하거나 "요즘 애들 진짜 무섭다", "저렇게 개념없는 학생들이 있다니 문제다"... 이런 투다.

이 동영상은 2년 전 있었던 일로 학생은 이미 졸업을 한 생태이고, 교사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사건이다.

이 동영상은 처음 인터넷에 올라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난 기분은 착잡했다. 누구나 그런생각이 들겠지만 '어떻게 이럴수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건 교육을 하는 교사가 아이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의 관계가 아니라 시장판에서나 볼 수 있는 쌈질 수준이다. 교육을 하는 교사의 수준이나 가르침을 받아야하는 학생의 태도가 아니다. 
 
교사에게 덤비는 학생의 태도도 그렇지만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의 태도 또한 인권이나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같지 않다. 찌라시 언론의 논평같은 그런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하면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지금 학교의 교실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비슷한 일들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처녀선생님을 보고 " 선생님 가슴이 왜 절벽이예요?"

엄마뻘 되는 여선생님에게 농담 따먹기를 하자는 학생이 있는가하면 아버지뻘 되는 선생님에게
 

"쌤 Sex가 뭐예요?"   

이런 질문까지하는 겁없는 학생도 있다.
지금 수능 끝난 3학년 교실은 정말 교육하는 곳인가? 

기말고사가 끝난 교실은 차마 교육하는 곳이라고 믿겨지지 않는 현상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분명히 앞에서는 교사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시간 내내 잠을 자는 학생이 수두록하고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보내거나 거울을 꺼내 얼굴을 다듬고 있는 학생도 있다.

이런 학생 못봐주는 성질 고약한 선생님(?)이 지도라도 하겠다고 나섰다가는 문제의 동영상과 비슷한 현상이 연출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런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이런 현상이 어제 오늘의 얘긴가? 아니 갑자기 못된 학생 한 둘이 나타나 연출하는 현상인가?


동영상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찌라시 언론들의 보도 태도를 보면 조용한 교실에거 어느날 문제학생이 나타나 교권이 무너지는 장면이니 버릇없는 학생의 태도에 경악한다느니 하는 논조로 몰아가고 있다. 교실은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그런 평가가 옳게 보인다. 학생에 대한 저주 섞인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인민재판이다.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학생이 교사에게 막말을 하거나 머리채까지 잡는 현상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사건이 터지기만 하면 네티즌이나 찌라시 언론들은 난리 법석이다. 문제의 본질은 덮어두고 현상을 보고 십고 또 십는다. 문제의 본질을 분석해 대안을 제시하거나 재발을 막기 위한 처방을 내놓는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건의 본질은 학교가 교육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과부를 비롯한 지역 교육청에서서는 전국단위 일제고사를 치른 후 어는 시도가 몇등이라며 일제고사 점수가 높은 지역이나 학교가 교육을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도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수치로 나타난 점수는 지식교육이요, 숫자로 나타내지 못하는 교육의 한 축은 인성교육은 따로 있다. 점수를 마치 교육의 결과로 호도하는 건 교과부나 언론들의 무지의 소치거나 고의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인성교육이 없는 교실은 교육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지식교육 평과결과로 서열을 매기다보니 저런 학생은 언제든지 나왔고 얼마든지 나올 개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놓고 마치 새로운 사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드는 언론은 상업주의로 포장되었거나 문제의 본질도 파악 못하는 한심한 언론들이다.

학교가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을 제대로 해 교육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고 있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다. 물론 사소한 문제.. 예를 들면 이 동영상에서 나타나는 여교사는 학생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부족한 초보교사라는 느낌이 든다든지, 학생의 언행이 예의가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 같은 문제는 개인의 잘못도 문제지만 교육정책이나 우리사회가 함께 만들어 놓은 결과가 아닐까?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문제가 이지경이 된 원인은 무엇일까? 분명한 사실은 학생개인의 부도덕성, 교사의 무능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가정에서 기초 생활지도의 부재에서부터 사회적 환경... 다시 말하면 상업주의에 찌든 만화방, 게임방, 텔레비전이며, 영화며... 점수를 교육으로 착각하는  교육에 대한 교과부의 무지, 입시위주의 교육, 교사양성과정에서 교사의 인권에 대한 교육부재.. 등 복합적인 요인이 이런 ‘여교사 농락사건’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반성해야 할 당사자는 학생뿐일까?

이 사건의 원인제공을 한 사람... 학부모는 물론, 교사와 교과부 그리고 학생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세상이 함께 저지른 사건이지 학생 개인이나 교사만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교육의 공급자인 교과부와 학교, 교사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제 2, 제 3의 ‘교사 농락사건’은 언제든지 제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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