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2013.01.18 07:00


 

국회 본회의에서 전국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호봉제 관련 예산 808억 원 전액이 삭감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국회가 삭감한 예산 808억 원은 전국의 학교에 근무하는 무기계약직 11만 명에게 9급 공무원의 1호봉 인상분에 해당하는 월 5만 원의 급여 인상에 적용될 예산이었다.

 

비정규직이 누군가? 학교에는 80여개 직종에 종사하는 15만 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성장기 아이들의 영양을 고려한 식단을 짜고 급식노동자, 교사들의 수업준비와 과도한 행정업무를 분담해주는 회계직노동자, 청결한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한 청소노동자, 장애학생의 학교생활을 돕는 특수교육보조원,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돌봄교실과 방과후학교를 담당하는 강사, 학교생활과 가정을 연결하며 취약계층의 학생들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상담사 및 사회복지사 등이 그들이다.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경남에만 1만 2000명이 있다. 이들은 지난 10년간 월급이 한푼도 인상되지 않은 채 그대로다. 4대 보험을 제외하면 실수령액이 83만 원 정도가 그들 수입의 전부다. 월급만 차별받는 게 아니다. 해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비정규직이다 보니 계약 때마다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정규직과의 보수격차는 근속기간이 오래될수록 심해져 10년차 비정규직은 정규직 임금의 46%에 수준에 불과하다.

 

 

이들은 지금까지 교과부와 시·도교육청을 상대로 ‘호봉제 도입과 임금인상·단체협약 체결, 교육공무직 법안 제정(정규직화) 등을 요구해 왔지만 거부당하자 지난해 11월 9일, 전국 3천443개 학교, 약 1만6천 명이 파업을 하기도 했다. 이들이 파업을 하면 아이들을 담보로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고 비난이 쏟아진다.

 

학생들은 교실수업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만나는 다양한 노동자들을 통해 가치관을 형성한다. 그런데 교육의 장인 학교에서조차 온갖 차별을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 사회적 통합에 필요한 공적 책임감이나 도덕적 양심을 가지라고 교육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차별을 가르치는 학교에 아이들의 미래는 없다. 최근 5년간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교육지원 사업의 확대로 인력수요가 대폭 증가하였으나 교육당국은 비정규직만 확대하였다.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이 있다면 예산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인력운영을 통해 교육행정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교과부는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야할 정부 당국임에도 교육기관의 비정규직을 무자비하게 확대한 것이다.

 

학교비정규직의 호봉제 예산액 808억의 삭감하면서 새누리당 주요당직자들은 지역구 선심성 예산을 변칙 통과시키고,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돼왔던 전직 의원 모임인 헌정회 예산을 통과시키는가 하면 1억5000만원을 들여 중남미와 아프리카로 예산제도 시찰차 외유를 떠났다는 소식이다. 중남미나 아프리카의 예산제도가 얼마나 모범적이어서 배울 게 많은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업무처리로 어떻게 사회통합과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없애겠다는 것이 대선후보들의 공약이었다. 그러나 이번 새해 예산에서 학교비정규직의 호봉제 예산액 808억의 삭감은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차별을 없애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에도 배치되는 일이다.

 

10년간 월급이 한푼도 인상되지 않은 83만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예산 삭감으로 정치선진화를 이룰 수 있다는 건 거짓말이다. 메이저 언론이 외면하는 사실... 누가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것인가? 경남도민일보가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야 하는 절실한 이유다.

 

-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 '독자권익위원칼럼'(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02399)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선생님들은 교실에서 수업을 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수업 중 잠을 자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옆 짝지와 소곤거리기도 하고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받기도 하고, 심지어 수업 중 제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책걸상 사이를 배회하는 아이들조차 있다.

선생님이 꾸중을 하면 눈을 똑바로 뜨고 덤비기도 하고 책가방을 챙겨 집으로 가 버리는 아이들도 있다. 친구들 간에도 작은 일에도 성을 잘 내고 이해하고 참으려고 하지 않는다. 가출이며 자살이며 그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아이들이 왜 이럴까? 교육위기란 학교가 교육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그게 어디 학교만의 탓일까?

교육위기란 따지고 보면 가정교육이 무너지고 아이들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어른들의 공동작품(?)이다.

‘누구 책임이 더 큰가’ 시비를 가리자는 게 아니다. 오늘은 다른 차원에서 한 번 살펴보자.

아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며칠 전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보았다. 그 내용은 콜라를 한 잔 마시면 약 50mg의 카페인이 들어 있어 몸 안에 공격형 호르몬을 분비시켜 아이들을 산만하고 공격적인 성격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콜라만 그럴까? 얼마 전 과기부, 식품의약품안전청, 교육인적자원부 등에서 아이들의 식중독을 막기 위해 급식 식자재에 방사선을 조사(照射)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아 논란이 됐던 일이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쌀에서부터 반찬이며 간식류에 얼마만한 농약이며 방부제가 포함되어 있는지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조차 없다. 농약이며 방부제며 유해색소며 항생제며 그런 것들이 구체적으로 인체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또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말이다.

언젠가 ‘과자의 공포’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의 아토피성 피부질환이 간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보도한 바 있다. 아이들이 먹는 과자류가 아토피를 일으킨다는 사례를 제시하면서 그 심각성을 지적했다. 과자류만 그런게 아니다. 아이들이 즐겨먹는 고기종류는 안심하고 먹어도 좋을까?

아이들이 좋아하는 닭고기는 어떤가? 정상적인 어미닭이 되려면 일년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닭을 빨리 키워서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는 닭장에 가둬놓고 밤에도 불을 켜놓고 키워 석달이면 어미닭으로 만든다. 빨리 알을 낳아야 돈이 되고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못할 짓이 없다.

밤낮을 구별 못하고 운동이라고는 전혀 시키지 않고 자라게 한 닭이 밥상에 오르면 그게 정상적으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품이 되는가? 어디 닭만 그럴까? 돼지며 소며 심지어 생선류까지 성장촉진제를 먹여 강제로 키운다.

공중전화 박스며 인적이 드문 공공건물이 말짱한 게 없다. 학교의 구석진 곳을 보면 낙서며 부서진 곳이 여기 저기 눈에 띈다. 그게 자기가 낸 세금으로 만든다는 걸 모를 사람이 없으면서 말이다. 스트레스를 받고 성장한 고기를 먹고 자란 아이들이 화풀이를 할 곳이 어딜까?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와 서울시는 초중고교 19개교를 무작위로 선정해 2,672명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한 결과 약 40%인 958명이 정신장애를 겪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일이 있다.

 

                                         <이미지 출처 : KBS 학교 2013드라마에서..>


이 중 2가지 이상의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학생은 354명(13.2%)나 된다고 한다.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앓고 있는 정신장애는 높은 장소, 천둥, 어두움, 주사, 벌레, 개 등 특정 대상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특정공포증’(15.57%)과 지나치게 부주의하고 학업에 몰두하지 못하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수전노 노릇을 해가며 알뜰하게 저축해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하루아침에 병원비로 다 쏟아 붓고 고통과 후회만 남는다. 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 짐까지 안겨주는 몹쓸 부모가 되고 만다. 신자유주의가 지고지선이라는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로 이제 아이들이 건강하게 태어나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뛰는 사람들. 이 모순투성이의 악순환을 언제까지 방치하고 있어야 하나?

초식을 하는 소에게 육식을 시켜 광우병을 막는 비법을 찾아 낸 학자님들. 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성장 촉진제와 더 많은 방부제와 항생제를 먹여 키우는 생산자들. 자기 식구들에게는 먹이지 않겠다면서 땟깔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농약을 거침없이 쏟아 붓는 농민들. 보기 좋은 것이 먹기도 좋다며 아이들에게 병든 식품을 먹이는 환경의식이 없는 부모님들! 이들부터 정신과 치료를 먼저 받아야 하지 않을까?(따지고 보면 이 분들의 죄가 아니라 제도의 모순이 원인 제공자다)

아이들이 공격적이고 산만한 것이 이유없이 나타나는 현대병이 아니다. 가정에서 혹은 학교급식에서, 간식류에서 그들이 먹고 사는 먹거리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살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병들어 가고 있는데 수출액이, 국민총생산이, 높다고 삶의 질이 높아지는가?

장래를 보장받은 소수의 학생들을 제하면 앞날을 보장받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는 없을까? 경쟁에서 이기는 길밖에 없다며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 경쟁에서 모든 아이들이 다 승자가 될 수 있는가? 건강한 사회란 나만 행복하고 배부르게 사는 사회가 아니다.

방황하며 불만에 찬 아이들이 늘어나는데 내 아이만 살리겠다며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아니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어른들의 삶을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블로거 대상 후보 투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관심이 블로그의 질을 높이고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2012 view 블로거대상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소중한 한 표 행사를 당부드립니다.


추천은 아래 주소로 가시면 할 수 있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고등학교 사회교과서를 보면 사회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무엇인지, 사실문제인지, 가치문제인지 그리고 개념과 용어를 명확히’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개념과 용어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서로 다른 기준으로 논쟁’을 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인지 ‘시비를 가린다’는 것을 좋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옳은 건 옳고 그른 건 그르다고 명확하게 가리는 사람을 ’까다로운 사람으로 취급‘하고 ’좋은 게 좋다‘는 두루뭉술한 문화가 우리국민들의 정서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개념과 용어를 명확하게 가리지 않으면 한 쪽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요즈음같이 복잡한 세상을 살다보면 정치든 경제든 사회문화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시비를 가리거나 개념과 용어를 명확하게 할 필요를 느끼곤 합니다.

요즈음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공기업 민영화’니 ‘법인세 인하’니 ‘교육이 상품이다’라는 말만 해도 그렇습니다. 의료보험을 민영화 한다, 수도나 전기를 민영화한다...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교육조차도 교육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수요자인 학부모들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된다느니, 고교 선택제를 허용해야 한다느니 또 영리학교를 세우는게 옳은가 하는 말들이 자주 전파를 타고 있습니다.

<모든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한 이러한 정부정책에 대해서 정작 이해 당사자인 소비자나 학부모들은 ‘우리 같은 서민들이 그런 복잡한 걸 알아서 뭘 해...’라든지 ‘그런 건 정치하는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해줄 건데 뭘...’하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가 버리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어떻습니까? 통계청과 교육인적자원부가 전국 초·중·고 272개교의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사교육비 규모가 총 20조 9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한해 국가 예산 235조 4000억원의 10분의1에 육박하는 돈입니다.

이 엄청난 사교육비는 우리나라 초·중·고 공교육 예산의 76%에 해당하는 액수입니다. 그러니까 학생 10명 중 8명 이상이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1인당 월 평균 28만 8000원을 사교육비로 지출했다는 결과입니다. 자녀를 초등학교에 입학시켜 고등학교를 졸업시키는 동안 한사람이 평균 4,370만 원의 교육비가 들어간다’는 계산입니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 ‘공교육을 살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아무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학교교육 만족 두 배, 사교육비 절반, 가난의 대물림을 교육으로 끊겠다’고 약속했지만 임기를 1년 남짓 남겨놓은 현재까지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2008년도 우리나라 가정에서 지출한 교육비가 사상 최고인 40조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금액 중에서 사교육비는 19조원에 거의 육박하고 있고 8년 만에 6조원 대에서 18조원대로 증가하면서 3배나 뛰었다고 합니다.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교육비지출이 전체 가계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입니다.


도대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약속은 아무도 지킬 수 없는 영원한 공약(空約)일까요? 분명한 사실은 역대대통령들이 사교육비를 잡지 못한 이유는 ‘아랫돌 빼 위돌 괘기식’의 땜질처방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사교육비를 잡겠다면서 국어와 국사를 빼고 영어로 공부하는 몰입교육을 도입하고 의무교육기간이 중학교를 영어몰입교육을 하는 국제중학교를 만들어 놓으면 사교육비가 줄어들겠습니까? 사교육비를 잡겠다는 이명박 정부는 이제 제주도에 영리학교 설립까지 서두르고 있습니다.

사교육비가 청전부지로 치솟고 있는 이유는 일류대학을 나와야 출세하고 돈을 벌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잘못된 구조 때문입니다. 학벌구조와 대학서열화를 그대로 두고서는 그 어떤 사교육대책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얘깁니다.

과연 교육을 상품으로 보는 이명박대통령은 임기 내 ‘학교교육 만족 두 배, 사교육비 절반의 약속을 지켜 가난의 대물림을 교육으로 끊을 수 있을까요?


후기 : 사교육비에 대한 통계는 통계방식이나 통계 주체에 따라 차이가 많습니다. 자료도 최근 자료가 없어 묵은 자료들입니다. 사교육의 문제제시라는 차원에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교육정책2011.01.06 07:13



교육부와 조중동이 교육이 무너진다고 방정이다.
지금 학교에서는 법이 통과도 되기 전에 교원평가를 하느라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올해부터 교원평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성과급과 연계할 것 같다. 
과연 현재의 평가방식으로 교원들을 ABC급으로 나눠 평가하면 교원의 자질이 향상되교 죽은 교육이 살아날까?

'당신 아니라도 선생할 사람 얼마든지 있다'
교육부의 뱃장이다.  
교원의 자질문제보다 교원정책부재가 우리 교육을 이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분명한 사실은 교육의 질은 교원 양성과정에서 교육을 통해 다뤄여야할 문제다.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교원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필자의 관점에서 적어보았습니다.
 


“교사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교직생활을 하다보면 학생들에게 가끔 받는 질문이다. 학생들의 질문 요지는 ‘교사 자격증을 받아 교단에 설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교원자격증을 획득해 소정의 임용고시를 거치면 교단에 설 수 있다.(사립은 재단에서 임용)

‘교원 자격증’이란 교사로서 자격 요건을 갖추었으니 학생들을 가르쳐도 좋다는 ‘자격을 인정해 주는 증서’다.

‘초등학교 교사는 교육대학을, 중등학교 교사는 대학에서 교직과정을 이수하고 난 후 받는다.

이수과정에서는 ‘교사로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법과 역사 그리고 교육과정이나 교육사, 교육철학 등  관련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자격증을 얻는다고 해도 임용고시에 합격하지 않으면 교단에 설 수 없단다.”
 

이 한마디. 자격증 취득절차를 가르쳐 주면 답이 될까? 
‘할 일 없으면 선생질이라도 하지...’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되는 요즈음 교사라는 직업이 상종가(?)를 치고 있어 그런 시절도 있었는가 할 정도다.

자격증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직업은 교사뿐만 아니다. 변호사, 의사도 그렇다. 자격증은 아니라도 경찰이나 공무원도 일정한 정도의 지식을 확인하는 시험을 거쳐야 한다. 교사가 ‘교육과정’을... 경찰이 ‘미란다법칙’도 모른다면 그 직을 수행하기 어렵다. 자격이란 자격 소지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역량이다. 모든 공직자가 각 영역에서 직무수행을 위해서는 일정정도의 지식과 기능 외에도 ‘세상을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지식은 물론 ‘그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판단의 기준이란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쁘다는 것을 구별하는 근거다. 다시 말하면 세상을 이해하는 세계관이요, 철학이다.

교사가 자신이 전공한 지식만을 피교육자에게 암기시키는 것으로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교사는 교사로서 자격미달이다.

인간으로서 또 사회적인 존재로서 살아 가야할 제자가 자신이 가르치는 지식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에 대한 안내자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교사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교직생활 40년 가까이 생활하면서 궁금한 게 한 가지 있다. ‘학생들..., 그 학생들이 금과옥조로 생각하고 배우는 교과서를 통달하는데 왜 건강한 민주시민,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자상한 부모가 될 수 없을까? 왜 훌륭한 직장인, 사회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단언컨대 대한민국 교과서. 그것이 국정이든 검인정교과서든 교과서만 통달하면 교육목표가 요구하는 인간으로 키워낼 수 있는가? 어떤 선생님에게 물어봐도 답은 ‘노우!’다. 왜 그럴까? 그 교육목표를 당성하기 위해 만든 교과서를 완벽하게 통달했다면 ‘전인인간의 육성’이라는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교과서가 틀렸거나 잘못됐다는 뜻이다.

틀린 교과서를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는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는가?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과정이 틀렸다면 교사는 교실을 지키기보다 교육과정 개정 투쟁에 나서야 한다. 틀린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나 잘못된 교육과정을 그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교사는 엉터리 교사다.


주부에게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자료를 다 갖다 주고 ‘무슨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지..., 왜 이런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지..., 알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만들 수 있는 재료(지식)보다 정작 필요한 것은 어떤 방법으로 무엇을 왜(철학) 만드는지 목적이 없다면 그런 요리(요리)가 맛이 있을 리도 없고. 만든 음식이 요리로서 구실을 못하게 될 게 뻔하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문은 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학문만 있는 게 아니라 ‘철학’이라는 학문도 있다. 그런데 왜 학교는 학문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가?

답은 간단하다. 식민지시대에 친일을 했던 사람이 국정교과서 편수관이 됐다면 현대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겠는가?

실제로 박정희나 전두환시대 국사교과서에는 현대사가 몇 쪽밖에 없었다.

과거가 부끄러운 사람은 자신의 과거가 드러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친일 했거나 국민의 권리를 도둑질한 과거가 부끄러운 사람들이 교과서  편수관이 되면 현대사를 2세대에게 현대사를 가르치기가 부끄럽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해방과정에서 권력을 장악한 세력들은 누굴까? 일제시대 민족해방을 위해 가족도 버리고 민족해방을 위해 온몸으로 맞섰던 사람들의 자녀들은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있었을까?

해방 조국의 집권세력 중 상당수는 친일 혹은 부일 세력이었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이승만 정권 12년간의 각료 중 34.4%인 33명이 부일 협력 전력자였고 경찰 간부의 80%가 일제 경찰 출신이라면 그들이 만든 교과서는 일제세대를 어떻게 가르칠까? 민족을 배신한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렸던 세력들은 대를 이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영역에서 화려한 부활을 꾀한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기 위해 현대사를 비롯한 교과서를 저희들의 입맛에 맞게 고치고 꿰맞춰 ‘국정 교과서’라는 이름으로 정당화시켜왔던 것이다. 

보도연맹 사건이 그렇듯이 과거가 부끄러운 사람들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3S정책을 동원하기도 하고 종교를 이데올로기로 둔갑시켜 권력의 도구로 만들기도 한다. 교육 또한 이들에 의해 이데올로기로 변질시키고 있다는 것은 국정교과서가 증명하고 있다. 인품이 아니라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 혹은 연고주의를 동원해 기득권 세습을 괘하고 벌(閥) 문화를 통해 기득권유지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했다.


휴대폰 뚜껑을 열고 칩의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산업사회는 직종이 다양해지고 전문화, 세분화된다. 전문화와 세분화된 사회에서는 현상을 볼 수 있지만 본질은 알기 어렵다. 휴대폰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또한 그렇다. 사회를 알기 위해서는 변증법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전문화세분화가 아니라 변화와 연관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과의사가 산부인과를 잘 알 수 없듯이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자연과학분야를 알기는 어렵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삶의 질은 자신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나무는 보고 숲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교육. 지식의 양으로 사람까지 서열을 매기지만 정작 지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철학)은 가르치지 않는 나라. 민주주의를 가르친다면서 주인인 학생을 소이시키고 순종이 미덕이라고 가르치는 나라. 시비를 가리는 사람은 빨갱이로 매도되고 비판이 비난이라 호도하는 풍토에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자격증의 기준이라는 게 있다. 교육사니 교육철학이니 교육과정이니 그런 것들을 학점을 따고 임용고시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아이들을 사람답게 살도록 이끄는 일, 선악과 시비를 분별하는 일, 정의와 불의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배우지 않는 교사가 2세 국민을 양성할 수 있는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 경제력이 있는 사람, 좋은 옷을 입고 고급 아파트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 명품을 몸에 감고 허세를 떠는 사람이 존경받는 세태에 희망을 말해도 좋은가?

교사는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사람이다. 사랑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희망을 가르치고 시비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자기희생으로 제자를 키우는 마음의 어머니요, 권력 앞에 ‘아니오’ 할 수 있는 사람을 기르는 사람이다. 교사는 갈대처럼 바람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가르치는 일은 뒷전이고 승진점수를 모아 장학사가 되고 교장이 교육관료가 되는 게 꿈인 사람은 진정한 교육자가 아니다. 일류대학 몇 명 더 입학시켰는가의 여부로 스승이 된다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 ‘교원자격증’을 뛰어넘지 못하는 교사는 교육자가 되기 어렵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