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1(107), 한국 2(106), 일본·북한 3(105), 독일·이탈리아 6(102), 중국·영국 13(100), 미국·프랑스 21(98), 러시아·베트남 34(96), 인도 117(81)...

 

                                     

<이미지 출처 : DamoaDamoa>

 

 

무슨 수치일까요? 좀 오래된 자료지만 2002년 영국 리처드 린(Richard Lynn)과 핀란드 타투 바하넨(Tatu Vahanen) 교수가 발표한 공동연구서 'IQ와 국부'에서 제시한 IQ조사 자료다. 홍콩은 중국에 속한 나라니까 홍콩을 빼면 사실상 대한민국이 1위다.

 

IQ가 세계에서 제일 좋은 나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IQ가 세계에서 1등이라니 기분 나빠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뭐가 좀 이상하다. 결과를 좀 더 보면 잠비아는 176위로 평균 IQ64, 적도 기니라는 나라는 183위로 59.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가 교육선진국이라고 알고 있는 덴마크는 21위로 98, 핀란드는 28위로 97, 미국은 21위인 98이다. 그렇다면 교육선진국이라고 믿고 있는 핀란드나 덴마크 그리고 미국 같은 나라의 국민들의 평균지능지수가 100도 안 되는 저능아들이 모인 국민들일까?

 

세계에서 IQ가 일등인 나라! 기분 좋아하기 전에 그 IQ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 IQ검사를 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하는 이 IQ검사 결과를 놓고 학부모들의 관심은 대단하다. 아니 IQ에 대한 신뢰가 거의 절대적이다. 우리 아이의 장래가 이 IQ지수에 달려 있다고 믿는 부모들조차 있다. IQ가 얼마인가에 따라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가 가려진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학부모들이 신앙처럼 믿고 있는 IQ.. IQ의 수치는 정말 그런 마력을 가진 것인가?

 

<이미지 출처 : Ruliweb>

 

교직에 근무할 때 학부모들에게 가장 많이 듣던 말이 "선생님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요" 라는 말이다. 아마 자기 자녀의 IQ는 높은 데 공부를 안 해서 성적이 뒤떨어진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이렇게 IQ에 대해 맹신을 하는 사람이 있다. 만약 자기 자녀의 IQ100이라도 안 되면 저능아로 낙인찍거나 실망하기도 한다.

 

IQ100이 안되면 정말 희망이 없다고 단정해도 좋을까? 공부를 잘한다든가, 서울대학에 합격이라도 했다면 IQ가 어쩌고 하는 말부터 먼저 나오는 걸 보면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IQ=성적과 직결된다고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학부모들이 이렇게 확신하는 IQ란 정말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신뢰로운 수치일까?

 

IQ란 성공지수가 아니다. 지능지수라고 표현하는 IQ(intelligence quotient)개인의 지능을 판단, 이해, 추리... 와 같은 일반적인 정신능력을 판정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학습에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언어능력, 수리력, 기억능력, 지각능력, 추리능력 등과 같은 능력을 수치로 나타낸 개념의 조작적 정의다. 비네라는 사람이 IQ를 처음 만들 때는 100이라는 수를 정상으로 보고 문제지를 제작해 언어능력이나 수리력, 기억능력...과 같은 학습을 위해 필요한 능력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지능 검사표를 처음 만든 사람은 프랑스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다. 비네가 지능 검사표를 만든 이유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의 정신박약 여부를 구별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어린이의 정신연령과 신체 나이 사이의 차이를 알아보는 테스트였다. 그 후 독일의 월리엄 슈테른은 정신연령을 실제의 나이로 나누어 일반인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사용하는 IQ 검사의 모태가 된 것이다.

 

<이미지출처 : dongA.com>

 

 

그 후 미국 스탠퍼드대학 루이스 터먼 고수는 비네의 검사 방식을 발전시켜 스탠퍼드-비네 방식을 발표했다. 그런데 터먼 교수가 만든 지능검사도에서는 늘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러자 여성이 남성보다 우수할 수 없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던 터먼 교수는 여성에게 이롭다는 느낌이 드는 항목을 모두 빼버렸다. 이것이 오늘날 학부모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지능검사의 실체다.

 

사람들은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방사능 오염을 나타내는 베크렐이니 자외선차단지수며 과일의 당도, 심지어 잘산다, 못 산다든지 교회의 신자들의 신앙심이 얼마나 깊은지’... 까지 지수 화하기를 좋아한다점수니 IQ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개념을 조작해 수치로 나타낸 지수란 사람들의 이해를 돕거나 실험을 위해 나타낸 수치다. IQ는 천재를 찾는 수치도, 저능아로 낙인찍는 수치도 아니라는 말이다. IQ가 낮으면 실망하는 어쭙잖은 선입견으로 사랑하는 자녀를 문제아로 낙인 찍는 우를 범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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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참사가 일어난 지 1년 2개월이 지났다. 아이들은 아직도 9명이나 차디찬 바다속에 잠겨 있는데 정부가, 우리가, 내가 한 일이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진상규명....!

 

정부는 진상규명을 할 의지가 있는가? 마지 못해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그 시행령에는 가해자가 진상조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만들어 놓았다. 유가족들은 삭발로 울분을 토하고 가슴을 치지만 대통령은 마이동풍이다. 대통령은 이 나라 경제 살리겠다고 여념이 없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살리겠다는 경제' 그 경제는 누가 죽인 것인가? 재벌의 경제를 살리면 민초들도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가?   

 

세월호 참사...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그것이 억울하게 숨져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길이요, 제 2, 제 3의의 세월호참사를 막는 길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마세요.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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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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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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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옆집에 사는 00는 벌써 영어학원에 다닌다는데....’

‘00는 피아노를 배운다는데....’

‘00는 미술학원에 다닌다는데....’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불안한 어머니들, 사랑일까? 아니면 욕심일까? 이제 겨우 재롱을 피우며 말을 하기 시작한 서너살짜리 아이를 학원부터 보낼 걱정을 하는 어머니가 있다.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으니 학원으로 보내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내 아이가 영어에 취미가 있어서 일까? 아니면 아이가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기 때문일까? 기저귀를 찬 아이에게 영어 공부를 시키는 어머니는 내 아이가 다른 집 아이보다 뒤지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판단 때문이 아닐까?

 

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에 영어도 배우고 피아노도 배우고 미술학원에 보내 기능도 익히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입학한 후 학교에서 경쟁에서 뒤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껴서일까?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어머니라면 학교에 입학하기 전 영어학원이나 미술학원으로 등 떠밀기 전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초생활 습관부터 지도해야 한다. 자고 일어나면 자기 방을 정리하고, 화장실에 가고, 세수를 하고, 스스로 자기 주변의 정리와 이빨을 닦고... 학원에 보내기보다 평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활습관을 체화시키는 게 영어나 피아노 학원에 보내는 거 보다 중요하다는 걸 엄마들은 모르고 있을까?

 

 

기초가 부실한 집은 쉬이 무너진다. 건강이 소중하다는 것, 편식을 하지 않는 것, 남의 얘기를 잘 들을 수 있는 자세며,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법, 인내하고 용서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한다. 영어 단어 한두 개 배우는 것보다 지금 가르치지 않으면 평생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리는 생활습관을 체화하도록 가르치는 게 더 소중하지 않을까?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우리나라 학교 교육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 가르치는 경향이 있다. 구구단을 가르치는데 2×1=2, 2×2=4, 2×3=6... 이렇게 암시시키는 걸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2’라는 것이 무엇을 상징하는 개념인지.. 왜 그런 상징으로 ‘2’라는 모양으로 표시하는지.... ‘사람’이라는 글자는 왜 ‘ㅅ’과 'ㅏ’ 그리고 ‘ㄹ', ’ㅏ', ‘ㅁ'이 합해 만들어졌는지...

 

상징으로 표현되는 언어나 문자는 개념의 조작적 정의다. 개념을 가르치기 전에 주입하는 지식은 시험을 치기 위한 답을 암기하는 것일 뿐이다. 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중요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과정이 생략된 교육.... 그런 지식의 주입으로 서열을 매기는 것을 교육이라고 해도 좋은가? 점수 몇 점으로 아이의 운명을 바꿔놓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이 입학하기 전 절대로 글자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들조차 교실에 붙잡아 답을 암기시키는 게 아니라 자연에 풀어놓고 스스로 의문을 갖게 하고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18평 교실에 40여명을 몰아넣고 답을 외워 점수를 내고 서열을 매기는 그런 야만적인 교육을 어떻게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부모들은 왜 경쟁에 매몰되는가? 어차피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하기 때문일까?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녀들이 경쟁에서 이기는 공부보다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옳고 그른 것을 분별도 못하고 시비를 가릴 줄도 모르고 100점만 받으면, 일등만 하면 커서 다 알아서 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부모들... 어려서 잘못된 습관은 어른이 된다고 바뀌지 않는다.

 

교육이란 지식을 암기해 시험 친 결과, 그 점수로 서열을 매기는 게 아니다. 교육이란 나를 찾는 과정이요, 옳고 그른 걸 분별할 줄 알게 하는 것이요,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가릴 줄 알게 하는 일이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내 부모가, 내 형제와 이웃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하는 과정이다. 내가 사는 고장, 나의 조상, 내 민족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를 찾는 과정이다. 사랑과 과욕을 혼동하는 부모는 자신의 욕심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 기사는 충남인터넷신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chungnam.net/news/articleView.html?idxno=80867

- 위의 이미지는 다음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8.28 05:00



여성들의 액세서리로 애용하고 있는 십자가를 보면 개념의 조작적정의, ‘관념(觀念)’의 희화화를 생각한다. 왜 목거리 십자가가 왜 아름다운가? 십자가란 로마시대 중범자들에게 가하는 가장 잔인한 형벌이다. 이 형벌은 사람을 산채로 십자가 형틀에 묶어놓고 손과 발에 못질을 해, 세워놓는 형벌이다. 운이 좋은(?) 죄인은 3일정도면 숨을 거두지만 어떤 죄인은 한 달 정도나 죽지 않고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니 그 고통,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처진다. 그런 십자가가 왜 여성의 액세서리로 애용되는가?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미추(美醜)에 대한 의미까지 혼돈(混沌) 해서일까? 전쟁영화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유는 심리학에서 인간의 사디즘(sadism)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물론 전쟁에서 굶주림과 죽음에 대한 공포만 빼면 그 보다 더한 스릴(thrill)깜이 어디 있을까? 제주 얘기를 한다면서 서론이 길었다. 제주도 아름답다. 적어도 반세기 전의 처참하고도 잔혹한 4·3을 빼고는... 제주도의 아름다움은 직접 가서 보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아픔이 없는 역사가 어디 있으랴 만은 한반도가 그렇고 제주의 역사는 더더욱 그렇다. 역사의 고비마다 민중들이 겪어 왔던 애환이야 도서고금이 다를 리 없겠지만 제주의 역사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한의 역사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제주도는 또 다시 강정마을의 아픔이 4·3을 연상케 한다. 제대로 된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시 반복되는 게 역사의 아아러니가 아닐까?

사람들은 왜 여행을 좋아할까?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지혜를 얻기 위해서...? 즐기기 위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내 삶을 반추(反芻)하기 위해서....?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기 위해서...? 모두 나름대로 일리 있는 이유다. 그러나 진정한 여행의 목적은 역사를 뛰어넘어 과거를 보고 오늘의 의미를 살려내기 위해서다. 목적이 없는 여행은 시간 낭비에 불과할 뿐이다.


여행의 목적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여행을 위한 철저한 사전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단풍구경을 위한 여행인지, 맛있는 음식을 찾아가는 여행인지, 동료들끼리 침목을 도모하기 위한 여행인지 건강을 위한 여행인지...에 따라 여행의 모습이 달라진다. 아이들에게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서라면 역사기행이나 테마기행을 기획하는 게 맞다. 물론 철저한 사전답사로 시행착오를 최소화해야겠지만...



불교사원을 보고 천편일률적인 모습에 실망한다면 여행의 의미를 살려낼 수 없다. 다같은 사원을 찾아도 종교적인 의미와 권력과 종교의 관계, 건축양식, 민중의 애환, 불교의 사회적 의미, 불상과 사원건축의 발달과정.... 등 많은 의미를 살려 내는 보람 있는 여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내가 3박 4일간 다녀 온 제주여행은 무엇을 보고 배웠나? 6살짜리 외손자와 함께한 여행은 70에 가까운 할아버지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을 만들 수는 없었다. 내 뜻대로라면 비극의 현장, 역사의 현장을 찾아 과거와 만나고 고통의 의미를 오늘의 시각에서 살려 내려고 의도했을 것이다. 세상은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여행자의 눈에 비친 4·3의 모습은 불의한 권력에 의해 짓밟힌 주인의 인권과 권리, 제주는 아직도 생명권까지 유린당한 원한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제주를 진실로 살려 내는 길은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일보다 제대로 된 과거 청산부터 먼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역사청산이 없는 한 암울한 역사는 반복될 뿐이다. OECD국가 34개국 중에서 대한민국 제주는 세계 7대 자연경관 후보지와 경쟁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아무리 경관이 빼어났다고 해도 가해자가 주인행세를 하는 나라에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까? 신이 내린 축복의 땅 제주. 그 제주는 아직도 강정마을로 이름만 바뀌어 항쟁 중이었다. 제주를 4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살려내는 길은 무엇일까? 제주가 천혜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찾는 길은 강정마을의 비극이 사라지는 그날이 아닐까?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정치2011.03.26 22:49


“누나 본 좀 봐라, 누나는 전교 1, 2등을 하는데 너는 어쩌자고 공부는 관심도 없고 컴퓨터만 하고 있는거냐?”
“네 친구 000는 지난 달 일제고사에서 일등을 했다는구나! 너는 왜 공부는 하지 않고 놀기만 좋아하니?”

아이들을 키워 본 부모들은 안다.
아이들이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무엇인지를....!
친구나 혹은 형제간 혹은 이웃의 누구와 비교하는 걸 제일 싫어 한다는 걸...
이런 비교를 하면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이 반발해 엉뚱한 짓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지 출처 : 교육희망>

그런데 학교는 왜 그럴까?
일제고사를 치렀는데 전교에서 일등... 혹은 한 학급에서 몇 등....!

집에서나 학급에서 혹은 학교에서 이렇게 누구누구와 비교하는 것을 아이들이 싫어 한다는 것은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은 어머니들도 다 안다.
그런데 교육을 전공한 선생님들, 학자들... 그리고 정책입안자들은 왜 교육학의 기초인 상호비교하면 안 된다는 걸 모를까?
그게 교육적인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뒤떨어진 아이들에게 열패감을 심어주거나 혹은 반발한다는 것을... !

개인간 비교, 학급간 비교도 부족해 학년, 혹은 전교생을 비교해 서열을 매기는 것이 과연 교육적일까 아니면 경쟁 효과를 기대한 나머지 알면서도 하는 의도적으로 비교하고 있는 것일까?
설사 그게 경쟁효과가 있다 치자. 그런데 그렇게 등수라는 걸 매겨 경쟁을 부추기는 것은 공부 잘 하는 몇몇 학생들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한 학급도 아니고 1천여명이 넘는 학생들, 그것도 학년도 성별도 나이도 다른 학생들을... 그기다 학습한 내용까지 다른 학생들을 한 줄로 세워 ‘전교에서 1등’, 혹은 ‘학년에서 1등’이라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조건이 같을 때 서열이라는 게 의미가 있다. 그런데 학년도 성별도 교과목도 다른 시험을 친 학생들끼리 1등, 2등..이라 매겨진 수치가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일까?

백번을 양보해 등수라든가 점수라는 게 경쟁을 자극하는 약간의 효과가 있다고 치자. 그러나 그 수치라는 것. 개념을 조작한 정의 즉 ‘개념의 조작적 정의‘라는 게 어떤 것인지 알만한 사람들은 안다. 윤리점수를 100점 받은 학생은 윤리적으로 흠결이 전혀 없는 완벽한 인격자라는 뜻인가? 영어시험점수를 100점 받은 학생은 영어를 완벽하게 안다는 뜻인가?

머리가 얼마나 좋은 학생인가? 이런 질문에 기억력, 계산력, 지각력, 추리력, 공간지각력, 어휘력, 문장구사력...을 ‘100’이라는 기준을 정해 놓고 100보다 수치가 높으면 기억력, 수리력이 상대적으로 좋은 학생, 100보다 수치가 낮으면 지각력,추리력에 상대적으로 뒤진 학생’이라는 걸 나타내기 위해 만든 게 IQ다. 그런데 이 IQ를 무슨 절대가치라 믿고 아이의 장래까지 확정한다는 건 바보들이나 할 짓이다.

점수를 매긴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100을 만점이라고 전제하고 100점보다 못한 학생은 노력을 요하는 학생, 100점에 가까운 학생은 성취도가 높은 학생으로 확인하기 위해 만든 수치다. 물론 평가도 모든 조건이 동일할 때 의미가 있는 수치다. 미술평가 점수와 영어평가 점수를 비교해 등수를 매길 수 없다는 뜻이다. 설사 그런 결과를 점수라는 수치로 나타낸다고 하더라도 그건 서열의 문제가 아니라 평가자의 참고용 정도의 의미일 뿐이다.

얼마나 부자인가?, 얼마나 행복한가?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가? 머리가 얼마나 좋은가? 이런 측정치를 수량화 할 필요를 느껴, 개념을 수치나 지수나 IQ...로 나타낸다. 사회현상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을 우리가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로 변환하는 작업. 이 작업을 물상화, 수량화 혹은 계량화라고도 하고 개념을 조작적 정의(操作的定議 operational definition)라고도 한다. 다시 말하면 '
어떤 술어를 정의하고자 할 때, 그 술어가 포함되는 명제의 진위(眞僞)를 판별할 수 있는 조건을 지시하여 정의하는 것'개념의 조작적 정의라고 한다.

실험을 위해서... 개념 정의를 위해 도입한 개념. 그 개념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기 위해서 도입한 것이 '개념의 조작적 정의'다. 이런 수치에 목매어 사랑하는 자녀를 학원으로 내모는 부모나 교육자는 자신이 할 일을 다 한 것인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점수 1, 2점으로 학생들을 사람까지 서열화시키는 교육자는 부끄럽지 않은가? 평가 수치로 표현된 개념은 절대치가 아니다. 내일의 주인공이 될 아이들에게 개념을 조작한 수치로 매긴 등수는 고통의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자연과학의 목적이 ‘자연 속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라면 사회과학은 ‘사회 속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과학은 가치중립적이고 시공간적 보편성, 필연이나 인과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명확한 자료만 확보된다면 검증이 쉽다. 그러나 사회과학의 경우는 많이 다르다. 사화과학은 가치함축 적인데다 시공간의 특수성이나 개연성과 확률의 원리가 지배하기 때문에 명확한 결론을 도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과학에서 ‘연인의 사랑의 정도’를 측정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실증적 연구방법으로 접근할 경우 ‘일주일 간 전화 통화 횟수와 데이트의 빈도’를 조사한다. 통회횟수로 사랑의 깊이를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사회과학에서는 자료 수집 방법의 하나로 이렇게 수치로 나타내는 작업을 ‘개념의 조작적 정의’라고 한다. ‘개념의 조작적 정의’란 아무리 완벽하게 조사했다 치더라도 ‘연구자의 편견 개입 가능성’이나 ‘응답자의 불성실한 응답 가능성’, ‘통계처리의 문제점’을 완벽하게 극복하고 원하는 답을 얻어내기는 쉽지 않다.

‘잘산다, 못산다’든지 ‘교회의 신자들의 신앙심이 얼마나 깊은지...’ 또는 ‘학생의 성적이나 지능지수’와 같이 양적인 수치로 객관화시키기 위해 연구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개념의 조작정의다. 그러나 아무리 개념을 조작해 수치로 정의한다한들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 대표적인 예가 IQ와 같은 조작된 개념에 대해 오해와 편견이 그것이다.

사람의 두뇌를 수치로 개념 조작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한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IQ Test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우수할 수 없다는 편견을 가진 ‘터먼’이 지능검사도에서 늘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점수를 보이자, 여성에게 이롭다는 느낌이 드는 항목을 빼버렸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쇼클리가 벌인 해프닝에서 볼 수 있듯이 IQ는 결국 백인이 흑인보다 우세하다는 인종주의 이론을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IQ만능의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IQ만 그런 게 아니다. 소수점 몇 점 차이로 인생의 운명을 바꿔놓는 수능점수나 내신 성적은 어떤가?

교육의 목적이 암기한 지식의 양으로 서열화시킬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자는 물론 부모들까지 자식의 점수 몇 점에 명운을 거는 도박에 가까운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세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나나 학자들은 과연 점수라는 개념의 조작적 정의가 인간의 품성이나 인격의 척도를 가늠하는 절대적인 수치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전국 시ㆍ도교육감협의회에서 내년부터 중학교 1ㆍ2ㆍ3학년을 대상으로 내년부터 신학기초와 2학기 말 두 차례에 걸쳐 학력평가를 실시할 것을 결정했다고 한다. 교육감들이 진정으로 교육자적인 철학과 소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학력평가가 몰고 올 후폭풍을 한 번 쯤 생각해봤어야 옳다. 그러나 교육감을 비롯한 교육부장관은 그나마 정착하기 시작한 평준화를 포기하고 연합고사를 치르겠다고 나서는가하면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인구유출을 방지한다면서 공립학원까지 세우고 있다. 이들이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성적 지상주의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연합고사가 시행되던 1974년 이전, 중학교는 밤 10시까지 경쟁적인 보충수업을 했는가 하면 개인별 학급별 학년별, 학교별 지역별로 서열을 매겼다. 사람의 가치도 담임의 능력도 학교나 지역의 가치조차 점수로 서열을 매겼던 것이다. 당연히 교육은 뒷전이 되고 점수 몇점을 더 올리기 위해 교실을 감옥으로 만들었던 지난날의 고통을 재현하자는 연합고사 부활은 올바른 판단인가?

성적 만능주의는 점수 몇 점 때문에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는 학생이 있는가하면 교육목표는 뒷전이 되고 응시과목 문제풀이로 교육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초등학교에서부터 시험 준비에 매몰되고 일류 중학교, 일류고등학교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백번 양보해 개념을 조작한 점수가 중요하다고 치자.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는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시대다. 세계화를 주장하고 국제경쟁력을 위해 창의력을 말하면서 아날로시대로 회귀하자는 교육자들은 시대감각도 없는 청맹과니인가? 청년실업문제가 만연한데 대학을 나와 취업할 수 있는 길은 교사나 의사, 바늘구멍만한 재벌회사 정도다.

우수인재가 고시나 공무원 준비에 목숨을 거는(?) 기현상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SKY가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대학을 다양화해 적성과 소질에 맞는 일감을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도 못하는 교육자들 때문에 청년들의 방황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추신 : 2007년 9월 30일 썼던 글입니다.

전국단위 일제고사를 강행하고 이제는 전교조와 단협까지 폐지하겠답니다.
철학이 없는 정책!
일개 평교사도 예측할 수 있는 일을 교육부 관료들이 저지르고 있다니 ...
우리나라에서는 10년 후에 다시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닐런지요?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