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는 이야기2019.05.14 05:33


사회공부가 어렵다는 학생들이 있다. 사회가 왜 사회공부가 어려우냐고 물어보면 외울게 많아서 그렇단다. 암기과목이 된 사회공부. 우리사회는 관념이 지식이 된 사회다. 안다는 것은 화학의 원소기호를 암기하듯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는 것을 사회공부라고 이해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사회선생님들에게 사회공부를 잘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개념을 이해하라’고 한다.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대한민국은 민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 1조의 이 말은 웬만한 사람들은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런데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공화국’이란 무슨 뜻인가? 또 ‘주권’이 무엇이며 ‘권력’이란 무엇인가라고 따져 물으면 명쾌한 대답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안다고 하더라도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데 구별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 사(公, 私)를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지위가 곧 인품이라고 착각 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분들은 지위가 곧 계급이라고 믿고 인격적으로 하대를 하거나 근무시간 외 혹은 직장 밖에서 지위가 낮은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하대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우리사회를 일컬어 계급없는 사회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계층과 계급이 다른 말일까? 정말 계급이 없는 사회일까?

‘세상을 보는 틀 혹은 고착화된 사고방식’인 이 관념은 사회화 과정에서 형성되고 고착화 된다. 특히 미(美)에 대한 관념, 종교에 대한 관념은 부모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2세들에게 관념으로 전수되기도 한다. 계급과 계층도 그렇다. 우리사회는 계급이 무너진 사회라는 관념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계급은 없지만 계층이 있다는 헛소리를 한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일수록 계층과 계급이 어떻게 다른가 설명하라면 제대로 하지 못한다.

노동자와 근로자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육체적인 노동인가 아니면 정신적인 노동인가를 따라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로 구분해 블루칼라는 마치 천한 일꾼처럼 분류하고 있다. 동무와 친구가 그렇듯이 계급과 계층도 그렇다. 사전을 찾아보면 계급이란 ‘재산·부(富)와 같은 경제적 능력, 신분의 고하, 정치적 지배력의 유무에 따라 구분되는 사회적 집단’,이러고 정의하고 계층이란 ‘재산·교육·직업 등의 여러 차원에서 사회적 지위가 거의 비슷한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정의해 놓았다. 우리사회는 이렇게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을 관념적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민주의식이 없는 시민이 사는 사회는 민주주의 국가일까? 시민의식이 없는 국가에 시민들은 민주시민인가? 주권의식이 없는 주인. 헌법에 선언적으로 보장되어 있다고 또 관념적으로 암기한 주권의식을 가진 시민들은 시민으로서 대접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똑같은 돈으로도 소비자주권을 가진 사람과 그것이 없는 사람들은 소비성향이 같지 않다. 자기 수준만큼 누린다고 한다. 소비자주권이 없는 소비자는 자본의 노예나 무엇이 다른가? 돈이 주인인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의 잇속을 알지 못하고 광고에 속아 건강 잃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똑같은 한 평생을 살면서도 그 사람이 가지는 관념, 의식, 주관, 철학에 따라 삶의 질은 물론 직업까지도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성평등세상을 만들겠다고, 어떤 사람은 환경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어떤 이는 내세를 준비하는 종교인이 되기도 하고 교육을 통해 세상을 바구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언론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믿고 언론인으로 평생 살겠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고 정치계 입문해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개념을 명확히 알지 못하고 관념적인 지식을 암기한 지식인들이 만드는 민주주의는 주권자가 주인으로 대접받고 살 수 있을까? 소비자 주권이 없는 사람들이 소비생활을 하는 자본주의에서는 건강한 소비생활이 가능할까? 계급이 없는 사회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자본주의에는 인격적인 만남이 가능한 사회일까? 깨어나지 못하는 주인은 주인이 아니다. 독재자들은 이렇게 민중을 우민화시켜 관념적인 인간으로 키우고 재벌이 소비자를 우민화시켜 돈벌이로 잇속을 챙기다. 그래도 관념적인 지식교육에 목을 맬 것인가? 그래도 철학교육을 하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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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살다보면 가끔 평범하게 지나친 일들이 뒤늦게 그게 아니라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지난 528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주최한 ‘6개국 수학교육과정 국제 비교 컨퍼런스에서 언론인 서화숙씨의 토론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서화숙씨의 토론 내용 중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이미지 출처 : 사교육걱정없는 세상>

 

 

저는 함수 f(x)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f(x)라는 이름의 대중가수들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뜻을 알았습니다. , 괄호 안에 있는 x의 숫자가 달라지는 것에 따라서 f 값이 달라지는 것을 f(x)라고 표현을 하는 것이더군요. 제가 그것을 그제서야 발견하고 정말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왜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이것을 안 가르쳐 주셨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함수란 Function 한 변수(變數)의 값에 따라 결정(決定)되는 다른 변수(變數)를 앞의 것에 대()해 일컫는 말이다. 학생들이 함수를 배울 때 이 말 뜻을 알고 배울까? 함수라는 말뿐만 아니다. 서화숙씨가 지적한 기하라는 말도 그렇다. 우리나라 말로 기하라는 말은 영어로 geometry. 한자어로 기하(幾何)’. 그런데 학생들은 기하를배우면서도 기하라는 뜻을 모른다. 사전에 찾아봤더니 기하도형 및 공간의 성질에 대하여 연구하는 학문쉽게 말하면 모양이다. 서화숙씨는 수학이 모양과 셈에 관한 학문이라는 걸 알았으면 수학 공부를 잘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화숙씨의 지적하는 글을 읽으면서 필자가 배웠던 수학 시간 생각이 난다. 방정식을 배울 때 수학선생님은 방정식이 어떤 문자가 특정한 값을 취할 때에만 성립하는 등식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지 않았다. 일본선생님에게 공부를 했던 수학선생님은 수학인지, 일본어인지, 영어인지 구별하기 힘든 발음으로 수학을 가르쳐 주셨다. 예를 들어 ‘x+9=15’라는 문제가 있으면 엑스 뿌라스 9 이꼬루 15’.... 라고 읽던 수학선생님의 발음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요즈음 학생들은 수학시간에 이런 표현에 익숙해져서 '이꼬루'니 '뿌라스'는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왜 서화숙씨는 우리나라 수학은 수학이 아니다라고 했을까? 수식을 표현하는 말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수학 교육은 국적이 없다. 미국식 수학에 일본 발음이다. 아무리 도구 교과인 국어, 영어, 수학일지라도 개념의 이해 없이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암기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수학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함수니 기하니 방정식의 뜻이 무엇이며 우리생활에 어떻게 씌여지는지 알지 못한채 시험에 대비해 판서를 복사해 암기하고 있다.

 

여기서 서화숙씨가 지적한 우리나라 수학의 문제점을 더 보자. 그는 수학이 왜 암기과목이냐 하면, 수학적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수학의 지식을 이해하지 못하게끔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인수분해라는 단어는 소인수로 무엇인가를 분해한다는 말이지만 소인수를 분해한다는 뜻으로, ‘무리수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숫자지만 영어인 Irrational number라는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사교육걱정없는 세상>

 

 

 

기수서수를 뜻하는 순서도 왜 우리말로 풀이하지 못하고 어려운 한자어를 그대로 쓰는 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소수를 배울 때 이그렇게 배웟따. 소수라는 말은 ‘prime number, 素數라는 ‘1과 자기 자신만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1보다 큰 양의 정수라는 뜻도 있고, '적은 수효'라는 뜻의 소수(少數)도 있다. 이런 두 가지 뜻을 가진 소수라는 말도 수학 선생님들은 구별하지 않고 가르쳤고 우리는 그렇게 배웠던 기억이 난다. 서화숙씨의 지적이 공감이 가는 이유는 학창시절을 겪은 모든 사람들이 배우면서 당했던 고통의 시절(?)을 잊고 그대로 후배들에게 대물림하고 있지만 수학계는 물론 수학선생님조차도 나서서 바꾸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서화숙씨 수학자가 아니라 언론인이다. 수학자가 아닌 사람의 눈에는 보이는데 왜 수학을 전공한 학자나 수학 교사들 눈에는 이런 모순이 보이지 않을까? 서화숙씨의 지적은 끝이 없다. ‘연산, 기수, 서수, , 연산은 왜 계산이라고 하면 안되는지, ‘이니 ()’라는 말도 한국말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말’, ‘일상에서 쓰이지 않는 수학에서만 배우는 말이 되고 있는지... 수학 언어를 고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원론만 가르치고 현실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 그래서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의 열등생이 되는 것일까?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교육의 목적은 어느새 도구교과인 수학까지 암기해 시험준비를 시키는 학교... 그런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이나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어제도 오늘도 그 길을 계속 가고 있다. 삶을 안내하지 못하는 교육. 교과서가 시험을 준비하는 암기과목이 아니라 삶을 안내하는 교과서가 될 날은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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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다. 아이들은 아직도 9명이나 차디찬 바다속에 잠겨 있는데 정부가, 우리가, 내가 한 일이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진상규명....!

 

정부는 진상규명을 할 의지가 있는가? 마지 못해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그 시행령에는 가해자가 진상조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만들어 놓았다. 유가족들은 삭발로 울분을 토하고 가슴을 치지만 대통령은 마이동풍이다. 대통령은 이 나라 경제 살리겠다고 여념이 없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살리겠다는 경제' 그 경제는 누가 죽인 것인가? 재벌의 경제를 살리면 민초들도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가?   

 

세월호 참사...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그것이 억울하게 숨져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길이요, 제 2, 제 3의의 세월호참사를 막는 길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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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수학은 잘하는데 사회를 못해요. 사회가 수학보다 어렵다는 데 어떻게 하면 사회 공부를 잘할 수 있습니까?”

학부모를 만나면 가끔 듣는 얘기다.

 

‘사회과목 공부를 못하는 이유는 ‘개념을 이해 못해서 그렇습니다. 사회는 암기과목이 아닙니다”

학부모들의 질문에 사회선생님들 이렇게 대답한다. ‘사회 과목은 암기 과목이 아닌데 왜 자꾸 외우기만 하려고 하느냐’는 말도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학생이나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시험이 코앞인데 성적은 올려야 하고 언제 개념을 알고 시험에 대비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일에만 순서가 있는 게 아니라 공부에도 순서가 있다.

 

한글을 읽지도 못하는 학생에게 논술시험을 보게 하면 좋은 성적이 나올까? 점수 잘 받기가 급해서 암기한 지식으로 좋은 점수를 받았더라도 학문의 깊이가 깊어지고 논리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면 따라가지 못하고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순서나 절차를 밟아 공부를 해야겠지만 벼락공부로 암기해 성적을 올리다보면 상급학교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성적이 뒤질 수밖에 없다. 사회공부 잘하는 비법이란 없는 것일까? 우선 사회과목이 무엇인지부터 보자.

 

사회과목이란 어떤 학문인가?

 

학문이란 크게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으로 나눈다. 말 그대로 자연과학이란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물리학, 화학, 생물학, 천문학, 지학’과 같은 학문이요, 인문과학이란 ‘사회현상’ 즉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예, 언어 따위를 포함하는 학문’을 탐구하는 과학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과학이란 '자연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탐구하는 학문'이요, 인문과학은 '사회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모든 학문이 다 그렇듯이 사회과학도 문화현상의 한 장르다. 사회과학도 언어를 통해 진술되고 인지되고 습득된다.

 

사회과목 공부를 잘하려면 개념을 이해야 한다. 사회과목뿐만 아니라 언어나 기호로 진술된 모든 학문은 개념이해가 없이 접근하기 어렵다. 어제 포스팅한 ‘2×1=2’라는 구구단도 2라는 숫자가 왜 ‘3’이 아니라 ‘2’라는 숫자로 진술되는 알지 못하면 방정식도 미적분도 암기해야 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그런 식으로 공부한 수학이 암기과목이 되고 말듯이 사회과목도 마찬가지다.

 

 

언어란 상징체계다. 다시 말하면 실체가 아니라 ‘빨강색은 위험을, 파란색은 안전’을 표현한 것처럼 모든 언어는 상징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소’나 ‘말’이라는 문자는 상형문자처럼 실체를 닮은 것도 실존하는 물체도 아닌 ‘A네 집의 누렁 소, B네 집의 검은 소...’ 이런 모든 소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 문자로 ‘소’라는 모양으로 나타난 표현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누구누구네 집의 어떤 소가 아니라 문자라는 수단을 동원해 상징적으로 진술되어 진 것이 ‘소’라는 모양으로 표현되어 진 것이다.

 

기본개념은 암기할 필요가 있다. 학문의 기본원리원론적으로 이해가 선결되고 다음은 인지, 기억되어야 한다. 물론 전자사전이 있어 찾으면 금방 알 수 있기도 하지만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기초원리는 기억하고 있는 게 유리하다. 그러나 모든 지식을 다 암기할 수도 할 필요도 업다. 

 

사회과목이 암기과목이라고...?

 

사회 성적을 잘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회 선생님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사회는 개념을 이해해야지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개념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개념이란 ‘하나의 사물을 나타내는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요소를 추출하고 종합하여 얻은 관념, 어떤 사물에 대한 일반적인 뜻이나 내용’이라고 진술해 놓았다. 개념의 뜻을 알아보려는데 관념이니 요소추출이니 하는 더 어려운 말로 설명해 놓았다.

 

개념을 국어사전에 풀이한 것처럼 공부하다가는 또 다른 암기를 해야 하는 부담만 늘릴 것이다. 쉽게 말하자. ‘사람’의 경우 개념을 보자. 사람이란 ‘ㅅ+ㅏ+ㄹ+ㅏ+ㅁ’이라는 자음과 모음을 조합한 문자이기도 하지만 ‘남자와 여자, 젊은이와 늙은이, 키가 큰 사람, 작은 사람, 피부가 흰 사람, 검은 사람, 날씬한 사람, 뚱뚱한 사람....’을 통틀어 상징하는 표현이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 보자.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다른 사람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기도 하지만 폭력의 다른 이름일기도 한다. 폭력을 ‘정당하게 행사하면 권력이 되지만 부당하게 행사하면 폭력’이 된다. 폭력이란 이렇게 ‘문자 속에 담겨 있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는 내용을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사회공부를 잘 할 수 있는 비법이란 무엇인가?

 

책을 읽는 것과 독해는 다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문자를 소리로 표현한다는 의미요 독해란 글 속에 담긴 뜻을 이해한다는 말이다. 독해가 안 되는 학생, 벼락치기로 성적을 올리겟다는 생각으로는 사회교과를 제대로 공부할 수 없다. 개념을 이해해야하는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사회교고도 저학년에서부터 다양한 분야의 폭넓은 독서가 자양분이 되어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사회공부는 개념만 이해한다고 사회공부를 잘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지만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불안한 심리상태에서는 수업에 대한 집중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점수를 잘 받아야겠다는 부담으로 암기라도 하려고 든다면 좋은 성적이 나올 리 없다.

 

점수에 매달리는 공부. 소숫점 이하 몇자리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점수만 올리기 위한 사회공부는 고학년으로 올라 갈수록 흥미를 읽고 뒤따라가지 못한다. 진정으로 사회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다면 벼락치기 암기가 아닌 옳고 그름과 시비를 가릴 줄 아는 판단력을 키우는 공부,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공부를 할 때 삶과 연관된 살아 있는 사회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색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엄마,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이라던데 그게 무슨 뜻이야?”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 와 엄마에게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한다면 뭐라고 답할까?

“야, 임마! 넌 그런거 아직 몰라도 돼,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나 열심히 해!”

 

이렇게 윽박지르고 말 것인가? 아니면 “야 나도 잘 모르겠다. 아빠 오시면 물러 봐!” 이렇게 책임을 회피하고 말 것인가?

 

PC가 무엇인지, 인터넷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라면 실명제가 위헌이라는 걸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궁금증이 많은 학생에게 간단하게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가르쳐 주는 방법은 없을까?

 

“그건 말이야...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이라는 말은 ‘익명성 때문에 유언비어와 괴담으로 쓰레기통이 된 인터넷을 본인이라는 것을...” 어쩌구 하면 질문을 한 아이가 “아 인터넷 실명제는 그런 거였구나!”하고 만족해할까?

 

‘2×1=2, 2×2=4, 2×3=6...’

지금 나이가 4~50대가 된 사람이라면 초등학교 2~3학년 때 외우던 구구단이 기억 날 것이다. 기억력이 좋은 학생들은 잘 외워서 선생님에게 칭찬을 듣기도 했겠지만 기억력이 뒤떨어진 아이들은 그걸 외우지 못해 방과 후에 남아서 공부를 하거나 벌 청소를 하기도 했던 기억을 말이다.

 

 

그런데 따져 보면 정말 웃기는 얘기다. ‘2’라는 숫자가 왜 ‘2’라고 써야 하는지 ‘×’라는 기호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아이에게 ‘2곱하기 1’이 왜 ‘1’라고 적는지 알 리 없다. ‘2×1=1, 2×2=4’를 암기하는 것은 단순이 기억이라는 방법을 이용한 인지학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더욱 황당한 것은 이런 암기를 공부라고 생각하고 많이 잘 외우는 학생이 우수한 학생이 되는 야만적인 학습이 수십년동안 계속돼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학은 잘하는 데 사회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있다. 답답해서 “선생님 얘는 어찌된 게 사회과목을 수학보다 더 어려워합니다.”라고 질문이라도 하면 “개념을 이해 못해서 그렇습니다. 개념을 이해하는 게 사회공부를 잘 하는 지름길입니다.” 이렇게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개념...? 도대체 개념이라는 게 뭐야! 복잡하게 그냥 외우면 될 것이지...’

맞는 말이다. 우리는 수십년 동안 수학도 영어도 사회교과도 그냥 외우면 되는 공부로 알고 있었다. 전자사전 한 권이면 수백권의 지식을 검색해 볼 수 있는 세상인데... 아직도 ‘KBS 도전 골든 벨’같은 프로그램은 암기를 잘하는 학생이 영웅으로 대접받고 미국어학연수 4주간, 해외 배낭여행 연수비 전액과 대학입학등록금 전액지원이라는 부상이 주어지는 인기프로그램으로 방영되고 있을 정도니...

 

질문을 받은 학생의 어머니가 궁금해 국어사전을 찾아 봤더니 개념이란 ‘하나의 사물을 나타내는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요소를 추출하고 종합하여 얻은 관념, 어떤 사물에 대한 일반적인 뜻이나 내용’이라고 설명해 뒀다. 이건 또 무슨 뜻이야? 우리시대 공부하던 것처럼 그냥 외우면 될텐데 복잡하게 ‘관념’은 또 뭐며 ‘일반적인 요소를 추출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야?

 

 

사람이 혼자서 살면 문화니 도덕이니 질서...와 같은 것들이 필요할 리가 없다. 더불어 살다보니 소통이 필요해 말이나 글이 생겨나고 좀 더 편해지기 위해 점점 더 복잡한 문화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자연적인 것이 아닌 인위적인 것, 예를 들면 ‘사람은 왼쪽으로, 차는 오른 쪽’과 같은 질서는 자연 질서에는 없는 것이다. 문화의 한 장르인 숫자나 문자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고 서로 알고 지키도록 한 약속이요, 질서요 문화에 불과하다.

 

자연적인 것은 직관이나 감각을 통해 인지할 수 있지만 인위적인 것,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기 위해 약속한 기호나 문자는 과정을 생략하면 알 수가 없다. 사회가 수학보다 어렵다는 이유가 그렇다.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이다’라는 명제로 돌아가자. 이 말을 곰곰이 따져보면 모두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명사와 문자와 문화로 조합돼 있다. PC를 본 일도 인터넷을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는 아이라면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이라는 뜻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필요한 유치한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나라교육이 아직도 이 수치스런 암기교육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아이는 초등학교 때는 우등생이었는데 중학생이 되고부터 성적이 떨어져 속상하다’는 학부모들... 암기한 지식은 지식의 외연이 확대되고 논리적인 사고가 필요한 단계가 되면 기억력만으로 경쟁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2×1=2은 왜 2이 되는지,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도 모르면서 왜 남의 인격을 존중해야하는지 알 리 없다. 수학문제까지 달달 외워야 일류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이런 유치한 교육을 벗어던지고 교육다운 교육을 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 이미지 출처 : 다음 검섹에서...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
인성교육자료2011.08.05 05:00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말처럼 흔하게 씌어지는 말은 없을 것이다. 세상에 탄생한 시나 소설, 그림이나 영화..등 예술 작품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흔하다는 말은 경제용어로 표현하면 희소성이 떨어지다는 뜻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그 가치가 희석되거나 소멸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니 희석되거나 소멸되기는커녕 더욱 더 많이 사랑받고 있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에서>

사랑이란 무엇일까? 요즈음 사람들 중에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개인이 다음에서 카페나 블로그를 만들어 자신이 가진 솜씨를 발휘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를 쓰는 사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html이나 플래시를 배워 아름다움을 형상화하거나 자신의 작품을 과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번은 어떤 카페에 들어갔더니 '사랑해요'라는 기계음이 튀어나왔다. 아마 자기 카페를 찾는 사람을 반긴다는 뜻일텐데 '사랑해요'라는 말이 참 멋쩍다는 느낌을 받았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에게 '사랑해요'라는 표현으로 사랑 받고 있다고 행복해 할 사람이 있을까?

언어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까? 진실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나는 행복하다'라고 느끼며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일까? 학문을 하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언어에 대한 명확한 개념 없이는 살아가면서 많은 착각을 하거나 갈등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학력'이라는 용어가 있다고 하면 그것이 시험을 친 결과로 표현된 수치인지 아니면 교육과정을 얼마만큼 잘 이수했는지의 여부를 나타내는 결과인지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학원과 학교를 비교하는 엉뚱한 일이 벌어진다.


그렇다면 개념(槪念)이란 무엇일까? 개념이란 '객관세계의 사물과 현상들의 공통적이며 본질적인 특징들이 인간 의식에 반영된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개'라고 하는 단어에 대해 살펴보자. 언어로 표현되는 '개'라는 구체물은 없다. 언어로 표현되어지는 개는 언어일뿐 '개'라고 하는 실존물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개'란 무엇인가? A라는 집에서 기르는 애완용 '○○○', B라는 사람이 키우는 '□□□' C라는 사람 집에서 키우는 '◇◇◇'....를 통털어 '개'라고 일컫는다. 다시 말하면 '○○○', '□□□', '◇◇◇'....등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을 묶어 '개'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 '개'라는 구체적인 실존물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언어란 개념의 집합으로 상징화 된 것이다.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언어로 표현되어지는 개라는 것이 마치 실존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고 있다. 


사람도 그렇다, 사람이란 '이 아무게, 김 아무게,  최 아무게. 와 같은 구체적인 존재의 특징을 '사람'이라고 표현 했을 뿐 사람이란 실존물이 아니다. 언어란 이렇게 개념으로 구성된 집합체며 상징화된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사랑이라는 언어도 마찬가지다. 사랑이라는 언어가 개념으로 상징화되었을 때는 이미 진정한 의미가 실종되고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사랑이란 감각적으로 '아프다'거나 '싫다'와 같은 단순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복합적이고 다의적인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름답다' '평안하다' '행복하다' '만족하다'...와 같은 좋은 감정적인 것의 총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른 본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 순을 보고 '야!~ 참...' 하는 감정이나 산을 오르다 '참 편하다...'하고 느끼는 마음이나 '자기 자식이 대견스러운 일을 했을 때의 모습을 보는 감정'....

만족이나 행복이나 즐거움이나 기쁨이나...이러한 좋은 느낌의 총화랄까? 그런 감정의 모음을 한마디로 '사랑해요'로 표현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성서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그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