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2012.04.05 07:00


 

 

‘제 탓이오, 제 탓이. 제 큰 탓이 옵니다’

 

성당에 나가면 예배시간에 자신의 가슴을 치며 통회(痛悔) 하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참 아름다운 말이다. 그런데 뭐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내가 못생기고 못난 것도, 내가 가난한 것도, 세상이 물과 공기가 더러워진 것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많은 것도, 병고로 힘들어 하는 사람도 다 제 탓이로소이다?’

 

‘물가가 올라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것도, 빚에 쪼들려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도, 살인과 강도와 사기꾼이 판을 치고 사회도,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사회도.... 모두 다 ‘제 탓이로소이다’...?

 

여기까지 비약해 가면 뭐가 좀 잘못된 것 같은 감이 든다. 나는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나는 월급쟁이로 남에게 싫은 말 한마디 못하고 사는 사람인데... 나는 세상에 법 없이도 살 사람인데.... 세상의 끔찍한 그 모든 죄가 내 탓이라니...?

 

 

사기꾼이 득실거리고 학교폭력으로 아이들이 자살하고,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만들어 팔고... 썩은 중국산 고춧가루를 수입하는 것도 다 내 탓이라고, 국가간의 분쟁도 전쟁도.... 그래서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모두가 내탓일까?

 

말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성서를 보면 ‘오른 뺨을 치거든 왼뺨을 내놓아라’라는 말이 있다. 성서의 이 말씀은 ‘오른 뺨을 치거든 왼뺨을 다시 맞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방이 잘못을 깨우치도록 하라’는 말이지 ‘왼뺨을 맞은 사람이 오른뺨, 왼뺨을 계속해서 맞으라’는 말이 아니다.

 

‘제 탓이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순수한 세상, 정의로운 세상에서 ‘제 탓이오’는 예수님의 정신을 실천하는 길이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이요,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현하는 길이다. 양심도 없는 간악한 무리들, 악의 세력들이 저질러 놓은 불의를 정말 순수하기만 한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면 세상은 어떻게 되겠는가?

 

 

‘학생은 공부나 하고 선생은 아이들이나 가르치라’는 말이 있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교과서나 가르치고 있을 동안 도둑은 안심하고 도둑질을 해도 모른 채 하는 것이 옳은가? 제대로 된 교사라면 아이들이 잘못 만들어 진 교과서를 외우기 전에 옳고 그른 걸 분별할 수 있도록 먼저 가르쳐야 한다. 도둑이 내 집에 들어 와 내가 아끼는 물건을 훔쳐가고 사랑하는 가족을 짓밟아도 그게 다 ‘내 탓’이라고 가슴을 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아니다.

 

말이란 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든지, ‘여자로 태어난 게 죄’라든지 ‘못 올라 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든지 ‘못 배우고 못났으니 가난하게 사는 게 당연하다’든지.... 이런 말은 말 속에 뼈가 들어 있는 말 즉 이데올로기다.

 

‘상대방의 넋을 빼 나의 잇속을 챙기겠다’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양반들이 노예들의 반항을 막기 위해 ‘전생의 죄가 많아서...’ 라는 말은 양심적인 말이 아니듯 재벌이 노동자들에게 ‘부모 잘못 만나 게 죄’라고 하는 말은 말 속에 뼈가 들어 있는 이데올로기다.

 

종교가 이데올로기가 되면 어떻게 되는가? 고려시대에 왜 승려들에게 과거시험(승과제도)을 보게 했을까? 세상의 모든 걸 다 버려야(3법인) 득도(부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불교의 진리다. 승려들에게 계급(국사, 선사....)을 준 것은 불교가 내세를 위해 준비하는 종교가 아니라 현세 지향적으로 세속화시킨 결과다.

 

종교가 이데올로기가 되면 건강한 사람들에게 넋을 빼놓은 무서운 독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종교인이나 사원에 면세를 해 준 이유가 무엇일까? 성서 무오류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는 성서는 왜 믿지 않을까?

 

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는 말이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이데올로기로 쓰이면 독이 된다. 종교가 아편이라는 말은 교의가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운명론자가 되라는 말은 불행한 사람을 두 번 울리는 간악한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 위의 이미지는 다음 검색에서 가져왔습니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