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차례는 새해를 맞아 조상에게 올리는 안부인사

제사상 차리기 힘드시죠? 유교식 제사에서 유례된 사대봉사四代奉祀)를 받드는 종가집 가정에서는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한다’는 속담처럼 힘들고 어렵다. 특히 이런 종가집 며느리들은 손에 물 마를 날이 없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제자를 격식에 맞추어 잘 지내야 조상들께 복받고 가문의 체통이 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옛날에도 오늘날처럼 모든 가정에서 다 이렇게 제사를 지냈을까?
구례나 사계집에 보면 평민은 부모까지만 봉사하여 왔으나 1894년 갑오경장 이후에 가서야 일반 서민도 고조부까지 4대 봉사(奉祀)가 허용되었으며 1969년 가정의례 준칙에는 한 대를 줄여 3대 봉사를 권장하고 있다. 조선전기 양반은 5%, 농민은 전체 인구의 85% 이상을 차지했다.
■ 전체 국민의 40%가 노비였다
학계에서는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한다. 울산의 호적 자료에 의하면, 47%가 노비였다. 1606년 단성(경남 산청)은 무려 64%가 노비였다. 전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인 박홍갑씨는 ”전근대 신분제도 하에서는 절반이 넘는 사람이 성씨조차 없었고 성씨가 있다 해도 양반일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우리 족보 중 대다수는 아버지를 바꾸고 할아버지를 갈아치워 특정 가계를 통째로 어느 인물의 후손으로 연결해 둔갑시켰거나 조선 전기에 자손 없는 인물에게 후손으로 연접하거나 한 세대를 더 끼워 넣는 방법 등으로 ‘만들어졌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제사는 계급사회에서 양반만 지냈다. 벼슬이 높을수록 더 윗대 조상까지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그러다 조선후기로 내려오면서부터 대도시의 시전상인, 지방향시의 행상, 대외무역 종사자들이 관직이나 족보를 사서 양반이 되기도 하고, 거짓으로 양반을 칭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들이 양반가문을 흉내 내기 위해 제사를 양반가문처럼 제사를 지내면서 계급제도가 무너지면서 제사는 점차 모든 가정에서 지내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 계급사회에서 제사는 양반만 지냈다
제사란 먼 옛날 원시적인 생활을 할 때 천재지변이나 사나운 맹수들의 공격과 질병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하여 하늘과 땅 그리고 큰 산, 큰 물, 크고 괴상한 돌, 큰 나무와 그리고 조상에게 절차를 갖추어 빌었던 것이 발전하면서 비롯됐다. 제례는 조상숭배의 일종으로, 의례적 행위에 한정된다고 볼 수 있다. 제례는 제사라고도 하는데 거의 모든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다.제례의 발생에 대해서는 인간은 죽어도 영혼은 불멸하다는 영육이중구조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는 설과 조상에 대한 애정과 공포라는 설 등이 있다.
전통시대에 가장 중요한 조상 제사는 사시제(四時祭)였다. 이는 보통 시제(時祭)라고 부르는데, 사계절의 가운데 달(음력 2월, 5월, 8월, 11월)에 고조 이하의 조상을 함께 제사하던 합동 제사였다. 그러나 일 년에 네 번씩 제사를 지내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이익이나 정약용 같은 학자는 일 년에 봄가을로 두 번만 시행토록 권고하기도 하였다. 실제로는 일 년에 한 번만 행하는 가정이 많았다.
■ 시제((時祭)와 기제(忌祭)는 달랐다
시제는 일종의 축제와도 같아서, 제사를 마친 후에는 친지와 이웃을 초청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잔치를 벌이기도 하였다. 제사는 길례(吉禮)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후 기일 제사(忌日祭祀)가 중시되면서 시제에 대한 인식은 점차 퇴색해 갔다. 기일 제사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에 올리는 제사로 ‘기제(忌祭)’ 혹은 ‘기제사’라고도 부른다. 이는 고대에는 없던 제사였으나, 송대 성리학자들이 시작한 제사이다. 기제사는 매우 신중하게 거행되었으며, 절차도 다른 제사와 차이가 있었다. 초헌 후에 곡하는 절차가 있었고, 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지도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기제사가 중시되어 모든 제사에 우선하였고, 제수도 풍성하게 차렸다가 친지 이웃들과 나누어 먹는 행사가 되었다.
명절제(名節祭) 혹은 속제(俗祭)라고도 하는 차례(茶禮)는 설, 추석 등에 지냈다. 차례는 오늘날 대표적인 제사로 인식되고 있지만, 원래는 예법에 있는 제사가 아니었다. 차례는 명절날 조상을 추모하고 새로 난 음식물을 올리기 위하여 마련한 약식 제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제가 쇠퇴한 후 차례가 시제와 같은 기능을 갖게 되면서 중시되었다. 차례는 제사의 대수 안에 있는 조상들을 함께 모시는 합동 제사이다. 차례는 설날에는 집에서 지내고, 한식과 추석에는 묘소에서 지내는 것이 관례였다.

■ ‘홍동백서’, ‘조율이시’ 시대는 가라
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송나라 때 주희의 <주자가례>에 따라 차례상을 차렸을까. 유가 사서오경의 하나인 <예기>에는 대부는 조상 3대, 사(선비)는 1대에 한해 제사를 올리는 게 예법으로 돼 있었다. 송나라 때 주희의 <주자가례>에 이르러 사대부 모두 지위에 관계없이 조상 4대까지 제사를 올릴 수 있게 했다. 장인용의 <주나라와 조선>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선 애초 고려 때까지 제사와 상속에 외손들도 동등하게 참여했다.
제사(祭祀)란 신이나 신령, 죽은 사람의 넋 등에게 제물을 봉헌하는 의식을 말한다. 전 세계 어디서나 제사에 해당하는 조상 추모 의식은 존재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유교적 제례 행위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유교식으로는 기본적으로 사대봉사(四代奉祀)라고 하여 '제주'의 4대조(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까지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기본이었다. “기본 음식은 송편, 나물, 구이(적), 김치, 과일, 술 등 6가지, 여기에 육류, 생선, 떡을 추가할 수 있고, 상차림은 가족들이 서로 합의해 결정할 수 있다. 만들기 수고로운 전을 차례상에 올리지 말고, 음식 가짓수도 최대 9개면 족하다.”고 했다. 알파고시대, 쳇 GPT 시대 중국 남송 시대 주희(朱熹)가 쓴 <주자가례>에 매달리지 말고 성균관이 발표한 ‘차례상 표준화 방안’으로 바꾸는게 좋지 않을까요.
.................................................................

손바닥 헌법책 주문과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 회원 가입 주소입니다. 여기 가시면 손바닥헌법책 회원가입과 손바닥헌법책을 주문하실 수 있습니다.
'정치 >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병오년 새해 복많이 지으시고 건강하십시오 (3) | 2026.02.17 |
|---|---|
| 옛날에도 모든 가정에서 다 제사를 지냈을까? (6) | 2026.02.16 |
| 생명의 기적 내 몸 안에 놀라운 우주 (10) | 2026.02.12 |
| 폭력에 순종하도록 길들이는 사회 (5) | 2026.02.09 |
| 자본주의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 아니라 자본이다 (10) | 2026.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