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사관련자료/교사

"당신은 선생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알겠어!"

by 참교육 2024. 12. 31.
반응형
오늘은 옛날 얘기 한번 해 볼까요? 2005년에 썼던 글입니다. 그러니까 29년 전이네요.
당시 저는 학교에서 방송실을 맡아 1일 2역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낮에 수업을 하교 저녁시간에 나와 녹화도하고 학생들이 볼 영화를 준비해 편집도 하는 일을 했지요. 그 때는 교장 선생님이 "김 선생은 우리학교 보물"이라고 칭찬하더니 전교조의 전신인 교사협의회에 참가해 거창양민학살사건을 보고 나서 교협 신문에 쓴 글을 보고 교장 선생으로부터 들은 얘깁(꾸중)입니다. 사립학교에서는 교장이 교사의 생사여탈권을 쥔 하늘입니다. 이 글 한편으로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제가어디 있는지 찾아 보세요

교사협의회 소식지에 거창 양민학살사건에 대한 글을 썼다는 이유로 교장실에 불려 갔다. "당신, 아이들만 잘 가르치면 됐지, 왜 이 따위 엉뚱한 글이나 쓰고 그래! 수십년이 지난 얘기를 새삼스럽게 끄집어 내 어쩌겠다는 거야?"

죄인처럼 부동자세로 서서 말 한마디 못하고 있는 나에게, "당신은 선생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알겠어? 똑바로 하시오!"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교장실을 나오는데 뒤 꼭지에 한마디 더 날아왔다.

"건방진 ×× 같으니……."

88년 여름, 교사협의회 소속 몇몇 선생님들이 역사탐방을 가자기에 털거덕거리는 봉고차에 실려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거창 양민학살사건의 현장이었다. 1951211일 국군이 양민 673(젖먹이 50여 명, 부녀자 304명 포함)을 박산골로 끌고 가 무차별 학살하고 석유를 붓고 불을 지른 후 흙으로 덮은 사건이 있었다.

공비와 통했다는 누명을 씌워 어린 아이와 노인까지 끌고 가 무차별 사살한 후 흙으로 덮은 시신을 손댈 수 없어 몇년이 지난 후 남자 뼈와 여자 뼈를 골라 각각 남자 묘와 여자 묘를, 그리고 아이들 뼈를 골라 아이들 묘를 만든 것이다.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일행은 무덤 앞에서 많이도 울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랑하는 남편,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시신도 찾지 못하고 수년이 흘러가서야 시신의 주인도 모르고 찾아 낸 673명의 원혼. 4·19 혁명이 있고서야 비석이라도 세웠지만 다시 5·16 쿠데타가 일어나 비석마저 거꾸로 처박힌 무덤 앞에서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누구일까?

방문자들을 더욱 분노케 하는 일은 거창만이 아니라는 사실과 가해자와 그 후손들은 유명인사가 되거나 후손들까지 당당하게 살고 피해자는 아직도 죄인처럼 숨죽여 산다는 것이었다.

그 날 교사들 앞에 전개된 전도된 역사를 덮어두고 정의나 민주주의를 말한다는 것은 기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곡된 현대사를 덮어두고 고대사나 근대사만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가당치 않는 일인가를 새삼스럽게 경험하게 된 것이다.

유족들이 당한 반세기의 한을 알려주기라도 해야겠다는 순진한 마음에 교사협의회 소식지에 글을 써 학교에 돌리다 교장선생님에게 들킨 것이다. 모든 교장이 다 그렇지만 사립학교의 교장은 왕이다. 평교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교장은 교사의 하늘이다.

초등학교에서 10년간 생활하다 이곳 마산에 있는 사립학교에 옮겨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처음 야간에 발령을 받았지만 주간에 출근해 시청각 기자재를 관리하기도 하고 당시 연구학교론 지정된 발표준비를 하느라고 밤낮을 모르고 지냈다.

교장선생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때는 '우리학교 보물'(당시 교장선생님의 표현)이라고 칭찬 받다가 현실에 눈뜨면서 옳고 그른 것을 깨닫고 아이들을 올바로 가르쳐야겠다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요주의 인물'이 되어 있었다.

'교사가 똑똑해지면 안 된다. 학교장은 똑똑한 교사를 원치 않는다. 다만 순종하는 교사를 원할 뿐이다.'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짧지 않은 교직생활을 경험하고서야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학교는 원칙이나 진리만 가르치면 되었지 현실을 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독재정권의 교직관이기도 했다. 일제시대 친일과 무관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사회 지도층이 부정과 비리와 무관하지 않은 현실에서는 교육자는 가르치라는 것만 가르쳐야 한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지식을 골라 묶은 국정 교과서라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는 민족의식을 갖게 하는 교사는 문제 교사가 된다. 독재정권시대에도 교사는 학생들에게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도록 가르치면 안 된다.

국정교과서만 가르쳐야 한다. 마찬가지로 학교장의 절대권이 유지되는 학교에서도 교장의 생각에 반하는 지식을 가르치면 안 된다. 당시의 교육법에는 '교사는 교장의 명을 받아 교육한다.'라는 대 명제 앞에 교사는 오직 순종이 미덕이었다.

'빨갱이 선생들이 교단에 서면 이 나라 교육이 망한다.'라고 기고만장하던 교장과 교육관료들, 그리고 보수언론들의 애국충정(?)에도 불구하고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이 합법화됐다. 그러나 교육이 망하기는커녕 그들의 교육사랑이 위기의 교육에 버팀목이 되고 있다.

교육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교육정보를 나누느라고 열심히 살고 있다. 그들이 염려하던 교단이 분열되거나 황폐화'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교육개혁의 선두에 서서, 문제투성이 사립학교법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교의 민주화와 예산의 투명성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지금 학교장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만 입 다물고 있어 주면 세상이 조용할 텐데……."

그러나 우리는 '선생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나 혼자의 이익을 위해 불의와 타협할 수 없다. 침묵할 수는 더더욱 없다. 우리가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칠' 것이기 때문이다.

 

.................................................

 

손바닥 헌법책 주문과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 회원 가입 주소입니다. 여기 가시면 손바닥헌법책 회원가입과 손바닥헌법책을 주문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 회원가입 ==>>동참하러 가기  

손바닥헌법책 주문하러 가기====>>> 한권에 500원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