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2010.10.23 07:37


- 종교의 여성 -

남녀를 표현할 때 남자에게 '계집애' 같다고 하면 모욕적인 언사가 되고 여자에게 '치마를 둘렀으니 여자지, 남자못지 않다'고 하면 칭찬이 된다. 보통 '남자답다'는 표현은 진취적이고 이성적인 남녀를 가리키고 '여자답다'고 하면 다소곳하고 소심하다는 뜻으로 통한다.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남존여비의 풍속은 민주주의를 사는 시민의 의식 깊숙히 까지 남아 있다.

오늘은 종교의 여성관에 대하여 살펴 보자.

인류 역사를 50만년으로 본다면 49만 5천년 이상은 모계중심사회였으나 정착하여 농경생활이 시작되고 사유재산과 계급이 발생한 이후는 부계중심사회로 바뀐다. 종교는 계급사회 이전에는 자연에 대한 공포나 경외에서 출발하지만 계급이 발생한 후에는 체제유지 이데올로기로도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진출처:한겨레 21>
기독교는 남자가 여자를 낳는 역사 즉 남자의 갈비뼈에서 여성이 탄생한다는 논리를 비롯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에베소서) 에서는 보는 바와 같다. 생리나 출산때 출혈을 부정하다고 보고 부정한 죄가 벗겨질 때까지 근신해야 한다고 했다.(레위기) 그리고 여성은 이브의 타락에서 악의 근원으로 생각하고 인간사회의 불행과 비참함은 여자의 범죄(선악과를 남자에게 권유한) 댓가라고 보고 있다.

여성의 해산 고통은 남자(아담)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한 죄의 댓가라 보고 오늘날 에덴 동산에서 쫒겨나 인간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것도 여성(이브)의 원죄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남자는 완전한 하나님의 모습'으로, 여자는 '잘못 태어난 열등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정신적으로도 이성적 능력이 열등하고 도덕적으로 의지와 자기 절제능력이 열등한 존재'로 태어났다고 했다.
                                                   <사진출처;한겨레 21>

불교에서도 남자승려인 비구의 계율은 250가지만 지키면 되지만 여승인 비구는 업장이 두텁다 하여 348가지 계울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남자는 부처가 될 수 있으나 여자는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배제되고 보살에 머물러야 한다.

가장 남녀불평등을 강조한 종교는 유교이다. 삼강오륜에서 부부유별은 물론 축접제, 전족, 정조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결을 강조하고, 혼례식도 올리지 않은채 죽은 정혼자를 위해 수절을 강요하고 있다. 죽은 남편따라 죽는 것이 열녀가 되어 여성의 갈 길이라 가르치고 재가금지는 물론 칠출(칠거지악)을 강조한 것도 유교문화의 잔재이다. 여성이 가족의 공유물로서 출산이나 노동력의 제공자인 하급노예 시대가 바로 종교가 기여한 공로(?)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 사진출처 ; 한겨레 21>
더욱 불행한 일은 여성 자신이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이면서 오히려 운명적으로 수용하면서 여성이 더욱 남자편이 되어 스스로 굴레를 만들어 운명적으로 살아 왔다. 여성은 육체적인 힘이 남성보다 약하니까 열등하게 태어났다거나 남성에게 종속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남존여비의 사회에서 남자중심의 도덕이나 가치체계가 종교를 통하여 더욱 운명적으로 수용하고 체계화 되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자본주의 모순의 근원은 남여 불평등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성이 상품화된 사회구조 아래서는 유능한 남성은 화폐가치로 평가되고 경제적인 소득의 고하가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가치체계를 만들어 놓았다.

즉 자본주의의 계급구조는 능력이라고 포장된 불평등이 남여 불평등에 기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이 남성의 미완성품이 아닌 인간으로서 인격적인 존재가치를 인정할 때 종교가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여성 해방과 함께 인간 해방이 가능할 것이다.
Posted by 참교육 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