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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치

광주항쟁은 끝나지 않았다 학살자를 처벌하라!

by 참교육 2019.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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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5·18광주민중항쟁 3주년 째 맞는 날이다. 항쟁 39년을 맞지만 학살자는 여전히 큰소리치고 피해자는 아직도 고통에 허덕이고 있다. 대한민국국민 중 누가 5·18로부터 자유로운? 지금도 학살자가 큰소리치고 살고 있는 세상에 광주항쟁은 끝난게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역사는 박정희쿠데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1년 박정희 일당이 만든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동토(凍土)의 공화국이었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라고 준 총칼로 4·19혁명을 뒤 업고 권력을 도둑질한 박정희는 그렇게 역사를 거꾸로 돌려 놓은 것이다.



박정희역적의 무리들은 이렇게 박정희정권 19년과 전두환, 노태우 13년간의 군사정권의 시대 서막을 연다. 이름은 거창하게 군복을 벗고 ‘민정으로 이양’했지만 사실은 국민의 입과 귀에 자물쇠는 채우는 ‘국가보안법’으로 무장하고 보도 자료로 언론에 입에 족쇄를 채워놓고 ‘한국적민주주의’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말까지 지어내 유신시대, 군사정권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보다 못한 충복(?) 김재규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이 박정희를 향해 “각하도 죽어 주십시오!”라며 방아쇠가 당겨졌고 박정희공화국 한국적 민주주의 유신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왜왕에 충성맹세를 했던 오카모토미노루(岡本 實) 박정희는 갔지만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동토의 왕국 대한민국을 전두환이라는 살인마기 보고만 있을리 없었다. 1979년 12·12일 전두환과 박희도, 노태우, 유학성 정호용, 황영시를 비롯한 하나회는 독재자 박정희의 자리를 재빨리 꿰차고 제 2의 5.16군사반란인 12·12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다. 권력의 맛을 본 군인과 통제에 길들여진 언론 그리고 유신교육에 마취된 민주시민들은 침묵하고 미국의 묵인으로 대한민국은 다시 정치군인들에 의해 13년간의 군사정권의 시대. 국정농단이 시작된다.

유신헌법의 대통령 권한은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토론 없이 무기명 투표로 선거한다. △대통령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정지시키고, 정부나 법원에 대해서도 긴급 조치를 할 수 있다. △긴급 조치는 사업 심사 대상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와 같은 무한권력을 전두환 일당들이 이용해 군복을 민간복으로 재빨리 갈아입고 대통령 자리를 차지한다.△대한민국 (유신)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대한민국(유신)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할 수 있다.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상 군법 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는 긴급 조치 1호로 대한민국은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로 얼어붙고 말았다.

참을성 많은 대한민국국민들이었지만 불의를 보고 침묵할 수 없다는 정의감은 최악의 상황에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한 번의 국정농단으로 짓밟히고 시달린 고통만 해도 견디기 어려웠는데 또다시 등장한 전두환정치깡패 무리들을 용납할 만큼 인내심이 후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계엄령이 선포된 5월의 대한민국은 숨조차 쉬기 어려운 공포의 분위기에서 광주민중들만 불의와 맞서 일어섰다. 4·19혁명을 일궈낸 학생과 대한민국 주권자 민중들조차 공포에 질려 숨죽이고 있던 대한민국에 광주는 침묵하지 않고 도도히 일어섰다.

‘모든 정치활동의 중지 및 옥내 외 집회 시위의 금지,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의 사전 검열, 각 대학의 휴교령, 직장 이탈 및 태업, 파업의 금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후, 전두환 등의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과도 정부를 무력화하고 정승화 계엄 사령관을 체포하면서 12·12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다. 12·12사태 이후 점차 정치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신군부 세력은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외면하였으며 5월 17일에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시키는 한편, 휴교령을 내리는 등 민주 세력에 대한 탄압에 들어갔다.

<광주민중항쟁 전개과정>

5월 18일 광주에서 전남대생 200여명이 휴교령이 내려진 학교에 들어가려다 계엄군과 충돌하여 다수의 사상자들이 발생하였고, 이를 본 시민들이 합세하여 시위를 벌였으나 계엄군의 폭력 진압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항쟁이 촉발되었다. 5월 19일 시위대가 5,000여명으로 불어나자 계엄군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시위대를 진압하였다. 5월 20일 20여만 명의 시민이 군경 저지선을 뚫고 시청 건물을 장악하였고, 계엄군은 모든 시외전화를 끊어 광주를 고립시켰다.

5월 20일 밤 11시경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발포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속출하자 이를 보다못한 시민들은 무장을 하고 시민군을 조직하였다. 5월 22일 시민군은 도청을 장악하고 5·18 사테 수습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사태 수습에 들어갔으나 계엄군의 거부로 협상은 결렬되었다. 5월 27일 병력을 증강시킨 계엄군은 도청으로 진격으로 최후 항전을 벌이던 시민군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망자 166명, 행방불명자 54명, 상이 후유증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 등에 달하는 인명피해를 남기고 광란의 살상극은 막을 내리게 된다.

<학살자는 단죄 되었나?>

정상적인 법치국가라면 아니 언론이 깨어 있고 유권자들이 진실여부를 분별할 수 있는 판단력이 있다면 광주는 살아나야 한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기고만장하고 피해자는 여전이 죄인으로 살아 있는 현실은 광주가 아직 청산되지 못한 고립의 도시로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노를 비롯한 학살자들에게 부역한 세력들은 여전히 유명인사로 권력의 주변에서 유권자들을 종롱하고 있는 현실을 언제까지 구겨만 하고 있어야 할까?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그리고 신민주공화당은 민주 발전과 국민 대화합, 민족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 오로지 역사와 국민에 봉사한다는 일념으로 아무 조건 없이 정당법의 규정에 따라 새로운 정당으로 합당한다.’ 학살자 노태우가 3당야합의 정당개편을 하면서 발표한 성명이다. 권력에 눈이 어두운 김영삼은 국민의 열망을 외면한 체 유신세력이 만든 신민주공화당과 광주학살자들이 만든 민주정의당 그리고 권력에 눈이 먼 김영삼이 주도한 통일민주당이 합당해 유신과 학살자들과 손을 잡는다.



유신세력, 광주학살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과에 대한 정당한 심판을 받았는가? 김영삼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워 12·12쿠데타를 주도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혐의 등이 인정돼 1심에서 각각 사형과 징역 22년6개월을 선고받는다. 항소심에서 각각 무기징역(추징금 2205억원)과 징역 17년(추징금 2628억원)으로 감형됐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이들을 모두 특별 사면시켰고 1998년 복권됨으로서 광주시민을 무차별 학살한 살인자들은 면죄부를 받는다. 세월이 지나 1988년 제6공화국 출범 직후 국회에서 '무장 폭도들의 난동'에서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정식 규정되었고, 1988년 11월 사건 규명을 위한 국회청문회가 개최되었으며 1995년에는 '5․18 특별법' 제정, 1997년 5월 18일에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저항권으로 인정되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살인자가 사면·복권되고 국가원로 노릇이라니...>

‘건국훈장대한민국장, 태극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일지무공훈장, 보국훈장 삼일장, 보국훈장 천수장, 보국훈장 국선장, 수교훈장 광화대장’. 전두환이 12·12군사반란 후 자신이 스스로에게 수여한 셀프훈장이다. 그는 전두환일가에 대한 비자금수사가 진행되기 4일 전 이 훈장들을 모두 반납했지만 노태우가 받은 훈장 11개는 여전히 반납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전두환은 1997년 대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을 선고받으면서 연금, 치료, 비서관 지원 등의 예우를 박탈당했지만 ‘대통령이 예우를 박탈당했다고 하더라도 필요한 기간 동안 경호 및 경비는 받을 수 있다’는 예우조항 때문에 1600억여원의 추징금을 아직도 내지 않고 있다. 이런 학살자에게 지난 2011년 한 해 동안 경호를 위한 인건비 6억6700여만 원과 차량‧장비구입비 등 총 7억 원의 국가 예산으로 지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전·노 두 전직대통령 사후 국립묘지에 안장...?>

학살자 전두환 노태우는 죽은 후에도 ‘국가장법’상 전직 대통령은 형벌의 확정 여부를 불문하고 정부 재정으로 장례식이 진행되고 전국에 빈소를 마련할 수 있다. 또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는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에 형벌이 확정된 전직 대통령을 제외한다는 규정이 없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도 있는게 현행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해 5·18 추념사에서 ‘불온한 국가권력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운 광주항쟁’이요 ‘외면할 수 없는 분노’요 ‘부채감’이라고 했다. 그러나 39년을 맞는 지금도 학살자는 국가원로로 대접받고, 전사모는 건재하고 있으며, 모교인 대구공고에는 ‘모교를 빛낸 동문’으로, 그의 고향 합천에는 일해공원(전두환의 호)을 건립해 그를 추모하고 있다. 헌법질서를 파괴하고 광주시민을 학살한 살인자가 존경받는 나라에 어떻게 민주주의를 말하고 정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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